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088)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089화(1089/1105)
1089회
103. 공작님과 황제 (10)
“···대화 끝났으면 이제 시작해도 될까?”
꽥꽥이가 ‘하고 싶은 말이 많으나 입에 담는 것조차 싫으니 하지 않겠다.’라고 이마에 써 붙인 듯한 표정으로 부리를 뗐다.
오늘따라 그에게 동질감이 느껴진다.
주군과 기사 간에 신의를 다지는 것도 좋지만, 슬슬 간식 시간이 다가오니 빨리 시작했으면 좋겠다.
“그냥 그쪽에게 신성력을 밀어 넣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아마도 그럴걸?”
“아마도? 설마 확신이 없는 겁니까? 그런 주제에 ‘힘을 원하는가?’ 따위의 말을 자신 있게 내뱉었다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세르펜스가 정중한 말투를 사용하는 것과 반대로, 혐오와 불신이 가득 담긴 눈으로 제 손에 들린 꽥꽥이를 내려다보았다.
저럴 거면 그냥 하대하는 게 낫지 않나 싶다.
조금 전 꽥꽥이는 자신에게 예속된 존재라고 인정하기까지 했으면서, 윈스톤에게 하는 것의 반의반만큼이라도 친근하게 대해주면 어디 덧나나?
“남의 힘을 빌려서 계약해 본 적은 없어서 그래!”
“으음···. 그럼 이렇게 합시다.”
“어떻게?”
“현재 플람의 신성력 대부분은 영혼을 치료하는 데 묶여 있잖습니까? 그러니 제가 그쪽을 치료하는 동안, 영혼에 묶여 있는 힘을 끌어다 계약을 진행하십시오.”
“내 신성력이 그런 곳에 쓰이고 있었다고?”
“자기 영혼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 것을 보고 설마 했는데, 정말로 자신의 힘이 어디로 새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을 줄이야···.”
생각을 줄줄 흘리고 다니다 최근에 조절할 수 있게 된 세르펜스가 남 얘기하듯 말했다.
입술을 삐뚜름하게 말아 올린 모습이 굉장히 얄미웠다.
저 곱디고운 얼굴로 얄미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정말 재주다.
‘그보다 꽥꽥이의 영혼이 자연 치유 중이라더니, 신성력이 작용하고 있어서 그런 거였구나.’
예전에 세르펜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녀석은 신성력 보유자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그것을 치료하는 데 우선적으로 신성력이 소모된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그게 신체뿐만이 아니라 영혼에도 적용된다는 건 지금 처음 알았다.
당시 세르펜스도 ‘신체의 회복’이라 언급했었지.
영혼을 직접 볼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영혼이 다치는 일도 흔치 않다 보니 알려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신성력이 정말 대단한 힘이라는 게 새삼 와 닿았다.
“끄응···, 지금은 몸 안에 흐르는 신성력밖에 안 느껴지는데···? 일단 그 영혼 치료라는 걸 해 봐. 그럼 내 영혼과 그것에 작용 중인 힘도 느낄 수 있겠지.”
꽥꽥이가 끙끙거리며 영혼 치료 쪽으로 빠진 신성력을 느껴 보려고 애썼으나, 별 소득은 없었는지 못 먹어도 고를 외쳤다.
마치 지시하는 듯한 그 말투에 기분이 상한 듯 세르펜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불필요한 언쟁을 벌이며 꽥꽥이와 길게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걸까?
녀석은 잠자코 눈을 감으며 신성력을 발휘했다.
은빛과 백색이 뒤섞인 휘광이 꽥꽥이 몸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신성력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함인지 꽥꽥이도 눈을 감고 집중 모드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한쪽 무릎만 꿇은 어중간한 자세로 앉아있는 윈스톤이 신경 쓰였다.
“윈스톤, 오래 걸릴 것 같은데 그냥 저처럼 편히 앉는 게 어때요? 아니면 일어나든가.”
“······.”
윈스톤이 카펫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나를 쳐다보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르펜스가 서 있는데 기사인 자신이 편하게 앉아있는 건 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런데 선배는 멀쩡한 소파를 놔두고 언제까지 바닥에 앉아 있을 생각이오?”
“제가 살던 나라는 좌식 생활에 익숙해서, 바닥에 앉는 게 편하니 신경 쓰지 마세요.”
“그래도 좀···, 더럽지 않소?”
“이미 앉았는데 뭐 어때요. 지금 일어난다고 달라지는 건 없잖아요?”
“그건 그렇소.”
윈스톤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게서 시선을 뗐다.
그가 그렇게 바닥에 앉아 있는 내게서 신경 끈 것과 반대로 나는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얘기가 나온 김에 이따 에드나가 오면, 마법으로 신발 밑창이랑 바닥 전체에 청결 마법을 써 달라고 부탁해야겠다.
수도에 도착할 때까지 쭉 여기서 지내야 하는데 기왕이면 깨끗한 게 좋겠지.
‘그보다 오늘 간식은 뭐로 할까?’
멀뚱히 앉아서 간식 메뉴를 고민하는 사이, 세르펜스의 손에 들린 꽥꽥이에게 변화가 생겼다.
드디어 영혼에 작용하던 신성력을 빼 오는 데 성공한 것일까?
그가 감았던 눈을 번쩍 뜨며 기쁨의 환성을 내질렀다.
“오, 오오오!! 몸에 힘이 넘친, 꽥!!”
“앗···.”
꽥꽥이가 철퍼덕 바닥에 떨어졌고, 세르펜스가 흠칫 놀라며 내 눈치를 살폈다.
녀석의 반응으로 보아 일부러 꽥꽥이를 떨군 건 아닌 모양이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실수를 한 다음에 어떻게 행동하느냐다.
다음부터는 꽥꽥이를 떨어뜨리지 말라고 세르펜스에게 주의를 줄 수는 있지만, 따끔하게 혼을 낼 수는 없다.
하지만 곧장 꽥꽥이를 주워서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하고 사과를 하는 대신, 내 눈치만 살피고 있는 건 혼나야 한다.
그건 올바른 행동이 아니니까.
“가, 갑자기 이 오리가···, 아니, 플람이 소리를 지른 데다가 묘하게 무거워져서···.”
내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자 세르펜스가 바짝 졸아 눌린 표정으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나는 ‘지금 네가 해야 할 행동은 그게 아니야.’라는 뜻을 담아, 엄한 표정을 계속 유지한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제야 세르펜스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바닥에 떨어진 꽥꽥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죄송합···.”
“킬킬킬킬킬···. 크키키키킥, 으히히히히!!!”
세르펜스가 꽥꽥이에게 사과하며 그를 주워들려던 그때.
꽥꽥이가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키더니 날개를 퍼덕거렸다.
정신이 출타한 듯한 그 모습에, 세르펜스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 설마 떨어질 때 머리를 다친 건가? 이 오리에게 문제가 생기면 선우가 엄청 혼낼 텐데···. 아니, 혼내기만 한다면 다행이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나를 싫어하게 된다면 어떡하지? 지금보다 더 이 오리를 애지중지하게 될 텐데, 선우의 화가 풀릴 때까지 내가 질투를 억누르며 참을 수 있을까? }
녀석은 알고 있을까? 너무 당황한 나머지 생각이 새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도 세르펜스에게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느닷없이 광소를 터트린 꽥꽥이의 모습에 당혹스러운 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꽥꽥이에게 힘을 받아서 파워 업 할 예정이던 윈스톤도 당혹을 금치 못했다. 황금색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마구 흔들렸다.
이 자리에서 침착한 건 제정신이 아닌 황제누스뿐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뭐야, 분위기 왜 이래?”
미친 듯이 웃어 젖히던 꽥꽥이가 돌연 웃음을 뚝 그치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리가 어째서 당황스러워하며 넋을 놓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제정신으로 보이는 그 모습에 나는 안도의 숨을 푹 내뱉었다. 세르펜스와 윈스톤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행 중 미친놈은 하나로 족하다. 아니, 그것도 너무 많다.
“떨어진 거, 괜찮아?”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은 것 같아!!”
“···응?”
“킬킬킬킬!”
어째서 꽥꽥이가 미친 듯이 처 웃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오리 모습에서 벗어날 방법을 알아내어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서 그런 거였다.
개인적으로는 무척 아쉬웠으나 잘된 일이다. 축하해 마땅하다. 하지만.
“기분 좋아 보이는 와중에 이런 말 하기 미안한데, 앞으로는 천사처럼 웃어주면 안 될까? 지금 웃음소리는 너무···, 깬다.”
“천사처럼 웃는 게 어떤 건데?”
꽥꽥이의 물음에 나는 숙련된 조교에게 시선을 주었다.
내 의도를 파악한 세르펜스가 눈매와 입꼬리를 곱게 휘며 ‘후후후’ 하고 우아하게 웃었다.
그리고 웃음기를 지웠다가, 이번에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활짝 웃으며 ‘아하하’ 하는 웃음소리를 냈다.
“두 버전 중에서 하나 골라 봐.”
“둘 다 내 스타일이 아닌데···?”
“선우, 간식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웃음 소리를 고쳐주는 건 나중에 해도 되니, 일단 계약부터 진행하는 게 낫지 않나?”
두 가지 버전의 천사다운 웃음을 선보이며, 훌륭한 예시가 되어주었던 세르펜스가 자신은 삼천포로 빠진 적 없다는 듯 말했다.
자기는 안 그런 척하는 모습이 어처구니 없었으나 말 자체는 옳았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킬킬···. 아, 아니지. 크후후후! 그래, 계약해야지!”
꽥꽥이가 또다시 악마처럼 웃었다.
그래도 나름 웃음소리를 고치려고 노력한 것 같으니 더는 지적하지 않기로 했다.
조금 전과 비교하면 꽤나 점잖아지기도 했고, 오리 모습이라 그런지 저렇게 웃는 것도 귀여웠으니까.
“보라, 내 진정한 모습을!!”
펄럭, 날개를 활짝 펼친 꽥꽥이가 이상한 소리를 해댔다.
눈부신 빛이 꽥꽥이를 감싸는가 싶더니 새파란 불길이 되어 화르륵 불타오른 건 그때였다.
순식간에 불길이 덩치를 키웠고 놀랄 겨를도 없이 사그라졌다.
그리고 이 세상 기준에서는 굉장히 이질적인 복색을 갖춘, 청회색 머리칼의 성인 남성 모습이 드러났다.
“내가 한낱 미물의 모습을 하게 된 건, 영혼를 치료하는 데 힘이 묶여서 그런 거였구나! 크하하하! 이렇게 쉽게 본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을 줄, 쿨럭, 꽤액!”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파악할 틈도 없이 남성은 붉은 피를 토하더니, 다시 불길에 휩싸였다.
바닥을 향해 추락하는 작은 오리의 몸을 받아낸 건 세르펜스였다.
꽥꽥이를 손에 든 녀석이 칭찬해 달라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주 잘했어! 그건 그렇고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면 설명 좀 해 줄래?”
“영혼을 치료하는 데 쓰이던 힘을 완전히 거둬버린 탓에, 조금씩 맞춰지기 시작한 균형이 틀어져 그 충격으로 피를 토하며 기절한 거다.”
{ 영혼만 회복되면 인간 형태로 돌아가는 거였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치료를 시작했을 텐데. }
“세르펜스, 마음의 소리가 새고 있어.”
“으음···, 너무 아쉬운 나머지 실수했군.”
세르펜스가 내 눈을 피하며 꽥꽥이의 몸통에 손을 얹고 신성력을 사용했다.
그러자 꽥꽥이의 표정이 눈에 띄게 편안해졌다.
비록 내 애정과 관심을 독차지하기 위한 꿍꿍이 수작이라지만.
직업 윤리를 내다 버린 의사펜스가 꽥꽥이의 영혼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 건, 무척이나 좋은 일이다.
“근데 이렇게 되면 윈스톤 강화는 어떻게 되는 거야?”
“플람의 상태를 보아하니 내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계약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꽥꽥이가 피를 토하며 기절해 버렸으니 당연한 일이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세르펜스의 품속에서 아공간 주머니를 꺼냈다.
곧 간식 시간이니 다른 칸에 탄 일행들이 오기 전에 간식 준비를 마칠 생각이다.
“윈스톤 경, 미안하다. 이자가 이렇게까지 아둔한 줄은 몰라서 멍청한 짓을 하는 걸 막지 못했다.”
“괜찮습니다. 일이 이렇게 된 건 세르펜스 님의 잘못이 아니며, 계약이 하루 정도 미뤄진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오늘의 간식, 바클라바를 테이블 위에 꺼내놓고 있는데 세르펜스와 윈스톤의 대화가 들려왔다.
세르펜스는 꽥꽥이를 욕하자는 건지, 윈스톤에게 사과를 하는 건지 분간이 안 되는 소리를 입에 담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건 윈스톤의 반응이다.
윈스톤이 제법 능숙하게 세르펜스를 달랬다. 제 주군이 어린애처럼 굴면 어떻게 응대해야 하는지 노하우가 생긴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