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09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096화(1096/1105)
1096회
103. 공작님과 황제 (17)
* * *
어느덧 수도 도착을 목전에 두었다. 내일이면 기차에서 내려야 한다.
세르펜스가 황제누스 앞에서 과하게 긴장하는 원인을 알게 된 이후로, 황제누스와의 트러블은 없었다.
그야 당연하다.
우리는 황제누스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았고, 그 또한 그러했으니까.
‘내가 황제누스에게 세르펜스와 대화한 후 그에 관한 얘기를 하겠다고 말했으니, 그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올 법도 한데···.’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거로 보아 세르펜스와의 관계를 개선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래도 대화가 없어 싸울 일도 없는 덕에, 관계가 더 나빠지지는 않았으니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애초에 여기서 더 나빠질 것이 있겠냐마는···.
‘아, 있다.’
세르펜스가 공작저에 가고자 한 이유.
그건 믿을 수 있는 이들, 그러니까 공작저 소속 사람들에게 세례명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대대적으로 세례명을 알리며 신이 되겠다고 선언하기는 이르지만, 그냥 소중한 이들에게 세례명을 알려주는 건 문제 될 것 없다나?
그래서 정말 그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느냐 물어보니, 공작저를 돌아갈 장소로 생각하고 있다는 동문서답에 가까운 답변을 받았다.
‘그곳 사람들을 완전한 타인이라 여기지 않고, 조금은 친근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이려나···?’
문제는 세르펜스가 신이 되길 원치 않는 데다가, 인간 불신에 시달리는 황제누스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세르펜스가 세례명을 밝히는 자리에서 그가 깽판을 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잠이 안 오는가?”
잠자리에 든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내가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침낭 안에서 뒤척거리자, 세르펜스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으응, 조금 답답해서.”
“그런 곳에 들어가 있으니까 답답하지.”
내가 소곤소곤 대답하자 불만 가득한 대답이 돌아왔다.
답답함의 원인이 따로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기회다 싶어 트집을 잡는 거다.
아무리 잠버릇 때문이라지만, 내가 침낭 안에서 자는 게 어지간히도 못마땅한 모양이다.
이래서야 언제쯤 잠자리 분리가 가능할는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쉿, 다들 자는데 떠들지 말자.”
{ 정말로 계속 침낭에서 잘 생각인가? 나는 선우의 잠버릇이 험해도 상관없다. 뭣하면 선우가 팔다리를 휘젓지 못하도록 내가 붙잡아 둬도 되고···. }
다른 이들을 핑계 삼는 건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떠들지 말자고 했더니 세르펜스는 내 머릿속에다가 직접 말을 걸어왔다.
결국 괜한 소리 그만하고 어서 잠이나 자라고 얘기하고 나서야 녀석이 조용해졌다.
– 터벅, 터벅.
웬 발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순간 세르펜스가 움찔하더니, 부스럭부스럭 이불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고 내가 들어있는 침낭을 꼭 끌어안았다.
그런 녀석의 반응을 통해 발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이 오밤중에 무슨 일입니까?”
“저기, 그게···. 나야, 나. 너무 경계하지 마.”
이게 말로만 듣던 ‘나야 나 사기’라는 건가?
경계심이 줄어들기는커녕 없던 경계심마저 생겨나게 하는 발언에 나는 잔뜩 긴장했다.
마음 같아서는 일어나 앉고 싶은데, 세르펜스가 나를 침낭째로 끌어안고 있는 탓에 꼼짝도 못 하겠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누운 자세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쪽도 2회차의 세르펜스처럼 현재의 인격을 흉내 내기로 한 겁니까? 아니면···, 설마 기어코 현재누스의 자아와 강제 합병한 겁니까?”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이전 회차의 인격이 잠들어 있는 사이에 내가 몰래 나온 거야.”
“그 말인즉···?”
“나야, 현 시간대의 휴마누스.”
그 말에 세르펜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상대의 말을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닌지, 주섬주섬 나를 일으켜 앉혀서 다시 끌어안았다.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세르펜스가 저렇게까지 나를 경계하는 거야?”
“몰라서 묻는 겁니까?”
“응, 그동안 할 일이 있어서 외부 일에는 전혀 신경 쓰지 못했거든.”
자칭 현재누스가 민망하다는 듯 머쓱하게 웃었다.
나는 그가 정말 현재누스인지, 그리고 지금 말한 게 진실인지 확인하고자 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머쓱하게 웃던 그가 왜 그렇게 쳐다보냐고 묻는 듯 눈을 끔벅거렸다.
표정과 눈빛, 말투. 그 어디에서도 황제누스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세르펜스도 상대가 현재누스라는 것을 확신했는지 끌어안는 힘이 약해졌다.
그 틈에 나는 꿈틀꿈틀 몸을 움직여 녀석을 떼어내고 침낭에서 상체를 꺼냈다.
“휴마누스의 다른 인격이 일행들한테 막말을 날려댄 탓에, 다들 화 나서 같이 밥도 못 먹고 있습니다. 그래 놓고 사과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고 하지 않나, 다들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라며 헛소리를 하지 않나···. 그중에서 최악은 윈스톤을 쫓아내고 이단 심문관을 영입하여 방패막이로 세우되, 그들이 죽으면 마음이 아플 테니 아예 정을 주지 말라고 한 겁니다.”
“와···, 진짜 심각하네···.”
“그니까요! 정말 말도 못하게 힘들었습니다. 황제누스는 현재누스가 이전 회차의 실패를 받아들일 용기가 없어서 숨었다고 말하지, 애는 울지···. 하아─.”
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휴마누스를 찌릿 노려봤다.
지은 죄가 있는 휴마누스는 아무런 항변도 못하고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사과는 됐고, 그동안 뭘 하고 계셨던 겁니까?”
“1회차의 기억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나와 분리해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어. 2회차의 기억은 그동안 꿈을 통해서 천천히 지켜봐 오기도 했고, 사고방식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너희도 잘 알겠지만, 1회차는 그렇지 않잖아. 아무런 준비 없이 그 인격과 합쳐지면 나 자신을 잃고 다른 사람이 될 것 같더라고.”
도망친 거라던 황제누스의 말과 달리, 현재누스는 이전 회차의 기억과 자아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얘기를 듣자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휴마누스가 도망칠 리 없다고. 다시 돌아와 줄 거라고 믿고는 있었지만, 그의 소식을 확인할 방도가 없으니 내심 불안했던 까닭이다.
“휴마누스는 1회차의 인격을 어떻게 생각해요?”
“처음에는 냉혹하고 권위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냥 약한 사람?”
“약한 사람치고는 막말을 아주 입에 달고 살던데.”
“아하하···.”
내 빈정거림에 휴마누스가 곤혹스럽다는 표정으로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본인이 생각해도 황제누스가 약한 사람이라는 표현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긴 하나 보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 인격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는 꾸준히 전해져 왔거든. 그는 자신이 잘못되었고 본인의 방식이 옳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도 매정하고 가혹하니까, 다들 그렇게 살아가니까. 자기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며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있어. 그러면서 본인도 상처받고, 계속해서 망가지는 중이야.”
“거기서 더 망가진다고요? 정말 환장하겠네.”
“그래도 덕분에 틈이 생겨서 내가 이렇게 나올 수 있었던 거니까,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지.”
“자신이 그 망가진 인격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건 인지하고 있는 거죠?”
“아하하하···.”
열없이 웃는 모습이 영 미덥잖다.
나는 휴마누스를 가만히 흘겨보다가 ‘에라, 모르겠다! 휴마누스가 알아서 잘하겠지!’라는 심정으로 무거워진 머릿속을 비워냈다.
“저···, 휴마누스는 언제쯤 완전히 돌아올 수 있습니까?”
세르펜스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꺼냈다. 안 그래도 나도 그게 궁금했던 참이다.
이전 회차 인격이 잠든 사이에 몰래 나온 거라고 했으니, 현재누스가 몸의 주도권을 되찾은 것은 아닐 테다.
내일 아침에는 또다시 황제누스와 얼굴을 마주해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방금 비워낸 머리가 다시 무거워지며 지끈지끈 두통이 찾아왔다.
“어···,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되도록 빨리 돌아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휴마누스는 일부러 상처 주는 말을 하고, 소중한 것을 멀리하며 다른 이들에게 마음을 열지 말라고 하는 것이···. 꼭···, 전대 공작을 떠올리게 해서···. 너무 무섭습니다.”
휴마누스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어물쩍거리자, 세르펜스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가련하게 말했다.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그 모습에 휴마누스가 무척이나 심각한 표정으로 낯을 굳혔다.
“이전 회차의 기억과 인격에 휘둘리지 않고, 반드시 나로서 다시 돌아올게. 최대한 서두를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줘.”
“네, 브라이트. 믿고 있겠습니다.”
“···어? 으응. 믿어줘서 고마워, 아도르.”
세르펜스가 예고도 없이 세례명으로 부른 탓에 휴마누스가 잠시 당황했으나 그것도 잠시.
그는 이내 진정하고 마찬가지로 세르펜스의 세례명을 입에 담으며 회답했다.
“그럼 나는 다른 인격이 깨어나기 전에 돌아가 볼게.”
“네, 다시 돌아오실 날을 기다리겠···.”
“잠깐, 잠깐! 휴마누스, 저 할 말 남았어요.”
나는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세르펜스의 말을 끊었다.
훈훈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좀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하니까.
“응? 무슨 얘긴데?”
“휴마누스, 다른 인격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신경 좀 써요. 사람은 한결같은 듯하면서도 시시각각 변하는 존재이기도 하고, 문제의 그 인격은 1회차가 메인이긴 해도 2회차와 섞인 상태잖아요? 1회차의 기억 속 모습만 보고 지금의 황제누스를 판단하려 하면 안 됩니다.”
“아, 그것도 그렇네?”
“제가 할 말은 끝입니다. 그럼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만나요!”
“조언해 줘서 고마워, 선우야. 나중에 다시 보자.”
나와 휴마누스는 서로 웃는 낯으로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 나서 휴마누스는 곧장 몸을 돌리지 않고, 세르펜스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건넨 뒤 칸막이 너머로 사라졌다.
실체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어쩐지 꿈이라도 꾼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현재의 휴마누스와 대화를 나눴다는 게 실감 나지 않는다.
미친 꼰대를 보다가 정상적인 휴마누스와 대화를 나누니 왠지 색다른 경험처럼 느껴졌다. 원래 이게 보통인 건데.
얼떨떨한 기분으로 멍하니 앉아있자, 세르펜스가 나를 눕히고 저도 누우며 이불을 목 바로 아래까지 끌어 올렸다.
“어서 자라. 밤이 늦었다.”
“응, 세르펜스 너도 잘 자.”
나는 세르펜스가 참 기특한 행동을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내일이 걱정되는 건 여전했다. 하지만 현재누스의 무사함을 확인한 데다가, 그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기에 마음이 가뿐해졌다.
그 덕에 잠이 솔솔 왔고, 그러한 까닭에 내가 침낭을 반쯤 벗었던 사실을 다음 날 아침이 돼서야 떠올릴 수 있었다.
‘기특하기는 개뿔.’
밤중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침낭은 저 멀리 날아가 바닥을 뒹굴었고, 나는 가로 방향으로 세르펜스의 몸을 깔고 누워 십(十)자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이렇게 된 건 세르펜스의 계략 탓이니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