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096)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097화(1097/1105)
1097회
103. 공작님과 황제 (18)
일어나서 씻고 아침 식사까지 마쳤을 무렵, 우리가 탄 기차 칸에 방문자가 찾아왔다.
기차에서 내릴 때까지 아무도 안 올 줄 알았건만.
오랜만에 보는 그 반가운 얼굴에, 나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다.
“유지스!! 와, 이게 얼마 만입니까?! 진짜 반가워요!”
“저도 반가워요, 선우. 저번에는 미안했어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 이후의 일은 에드나에게 들었어요.”
유지스가 그렇게 말하며 면목없다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탓에, 푸로르가 황제누스와 싸웠다고 생각하나 보다.
“미안해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유지스가 왜 사과를 합니까?”
“휴마누스가 틀린 조언을 한 건 아니었는걸요.”
“하지만 말하는 방식이 틀려먹었죠.”
“······.”
마음씨 착한 유지스는 황제누스를 감싸주려 했으나, 그의 말본새에 관한 건 차마 편들어 주지 못하고 입을 닫았다.
그런 유지스의 반응을 보고도 황제누스의 표정에는 반성의 기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마치 ‘나는 틀리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몹시 아니꼬웠다.
“결국 내 조언에 따르기로 결정했나 보군.”
“네. 고민 끝에 정령들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 봤는데, 다들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줬어요. 마왕이 신이 되었으니 정령계가 손을 놓고 있을 상황이 아니기도 하고···. 무엇보다 친구인 저를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싶대요.”
유지스가 더없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재수없는 황제누스와 대비되어 유지스의 순수함이 더욱 빛을 발했다.
내가 황제누스였다면 유지스의 미소를 보는 순간 막말을 한 것을 후회하며, 바닥에 엎드려 석고대죄라도 했을 텐데.
느끼는 바가 없는지, 황제누스는 바닥에 엎드리기는커녕 고개조차 숙이지 않고 뻣뻣한 태도를 고수했다.
“잘 생각했네.”
“제 고정관념을 깨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러 왔어요. ···그럼 저는 새로운 전투 방식에 적응해야 해서, 훈련하러 가 볼게요.”
도착 예정 시간이 고작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건만.
유지스는 그 말을 끝으로, 나와 세르펜스와 윈스톤에게 가볍게 눈인사만 한 뒤 도망치듯 다른 칸으로 넘어가 버렸다.
훈련은 핑계고 황제누스가 불편해서 자리에서 벗어난 것이 틀림없다.
‘어젯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달라진 게 하나도 없네.’
변함없는 저 태도로 보아 그는 현재누스가 나왔다 들어간 사실을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이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착잡한 심정으로 황제누스를 쳐다보고 있는데, 돌연 그의 고개가 내 쪽을 향했다.
“왜 그렇게 빤히 쳐다보지? 내게 할 말이라도 있는가?”
“어···, 그러니까···. 곧 기차에서 내려야 하잖아요? 티 안 나게 잘하라고요. 악숭이들은 사람들의 혼란을 파고드니까, 성검의 주인인 휴마누스가 인간을 혐오한다는 게 알려져서 좋을 건 없습니다.”
“할 말은 그게 다인가?”
“네.”
“···알겠네.”
황제누스가 나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다른 이유로 자신을 빤히 쳐다봤다는 걸 눈치챘지만, 내 말마따나 그런 거라 치고 넘어가 주겠다는 반응이다.
지난 며칠간 황제누스와 한 공간에 머물렀는데도 통 적응이 안 되는 모습이다.
휴마누스의 얼굴로 저리 띠꺼운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게 아직도 놀랍다.
‘과연 황제누스가 내용물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고, 무사히 공작저에 들어갈 수 있을까? 아니, 잠깐만. 진짜 문제는 공작저에 도착한 이후 아닌가?’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이야 그냥 우리를 지나칠 뿐이지만, 공작저로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세르펜스가 공작위에 오른 이후 휴마누스는 뻔질나게 공작저를 드나들었다.
즉 휴마누스가 본래 어떤 사람인지 아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다.
직접 황제누스와 말을 섞지 않더라도, 계속 지켜보다 보면 이상함을 눈치챈 이들이 하나둘 나타날 테다.
이를 어쩌면 좋을지, 답이 없는 문제로 고민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기차에서 내려 우리가 올 것을 알고 대기 중이던 공작가 소속 마차에 올라탔다.
마침 준비된 마차가 두 대였던 터라, 사이가 안 좋은 황제누스와 푸로르를 떼어 놓을 수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걸 알기에 나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윽고 마차가 멈추고 사람들을 대면할 때가 왔다.
내 문제도 아니고 타인 문제로 이렇게 긴장해야 한다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서 오너라, 세르펜스! 기다리고 있었단다. 다른 분들도 오랜만···입니다.”
에일리히가 마차에서 내린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다 말고 흠칫 놀랐다.
그의 곁에는 어째서인지 알타르가 아닌 마리안느 이단 심문관이 서 있었는데, 그녀의 표정에는 낯선 존재를 보는 듯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제온 또한 평온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말도 안 돼! 벌써 들켰다고?!’
나는 기겁하며 소리칠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최대한 태연한 척하려 애썼다.
하나 머릿속은 아수라장이었고, 얼굴 근육을 통제하려 할수록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 게 느껴졌다.
이미 들킨 건 어쩔 수 없다. 차라리 빨리 털어놓고 협조를 구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죠.”
“아! 죄송합니다. 시온 경···, 맞으시죠? 편지를 통해 바뀐 외모에 관한 얘기를 전달받긴 했습니다만, 실제로 보니 놀라서 실례를 범했습니다.”
내가 잘못 짚은 모양이다.
이들이 놀란 건 휴마누스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눈치채서가 아니라 내 모습 때문이었다.
황제누스 문제로 정신이 팔린 탓에 내 모습이 바뀌었다는 중대한 사실을 깜박 잊어버렸다.
순간 머쓱함이 밀려들었으나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부터는 사람들 앞에서도 시온 말고 선우라 부르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선우 경.”
내가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사람이 맞는다는 확신이 들었는지, 에일리히가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속으로 안도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마주 웃어 보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본관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얘기 잘 나눠. 나는 리에나랑 뭣 좀 하던 게 있어서···. 식사도 방에서 따로 먹고 싶은데, 괜찮지?”
푸로르가 슬그머니 발을 뺐다.
공작저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황제누스와 겸상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발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 둘은 마주하지 않는 게 나았다. 그렇기에 편한 대로 하라는 뜻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저랑 아니마의 식사는 제 연구실로 가져다주실 수 있을까요? 모처럼 연구 시설이 제대로 갖춰진 곳에 왔으니 연구에 집중하고 싶네요.”
“네, 알겠습니다.”
“아! 저도 한동안 방에서 안 나올 생각이에요. 새로운 전투 방식에 관해 정령 친구들과 길고 긴 회의를 해야 하거든요.”
“예, 그렇다면 유지스 님의 식사도 방으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일행들이 너도나도 식사를 따로 하겠다고 나오자 졸지에 제온만 바빠졌다.
에드나와 아니마는 곧장 연구실이 있는 건물로 향했고, 푸로르와 리에나는 제온의 안내를 따라 이동했다.
유지스는 남았는데 방이 본관 5층에 있는 만큼 4층 계단까지는 함께 할 생각인가 보다.
“다들 수련에 열심이로군요!”
응접실로 향하는 동안, 마리안느 이단 심문관은 감탄하며 일행들의 열정을 칭찬했다.
일행들이 뿔뿔이 흩어졌음에도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는 그 모습에, 나는 마음 깊이 안도했다.
그런데 알타르는 어디 가고 교황을 호위 중이던 마리안느가 여기에 와 있는지 모르겠다.
옷을 보아하니 아직 은퇴한 건 아닌 것 같고, 에일리히 옆에 붙어있고 싶어서 알타르와 호위 대상을 서로 바꾼 건가 싶다.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넘어가고. 황제누스에게 시선이 집중되지 않는 건 다행인데 말이지···.’
복도를 걷는 내내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붙는 게 느껴졌다.
공작저에서 일하는 이들은 전부 프로였으니 대놓고 쑥덕거리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런 그들조차 시선 처리에는 실패하고 만 것이다.
하기야 평범하게 대화를 나눴던 사람이 알고 보니 신의 사자였는데, 그조차 위장 신분이고 실상은 천사였다는 전개가 펼쳐졌으니.
아니, 그런 전개가 없더라도 천사가 본체로 나타났다고 하면 누구나 구경하려 하겠지.
“무사히 다시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응접실에 도착하여 드디어 시선에서 자유로워졌나 싶었을 때, 돌연 에일리히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꽥꽥이를 안고 있지만 않았어도 내 손을 꼭 붙잡았을 기세다.
그 모습이 세르펜스와 닮아 감탄이 나오는 한편, 조금 전만 해도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왜 이러나 싶어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 설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고 있는 건 아니겠지? }
내 표정을 읽은 세르펜스가 에일리히가 눈물을 글썽이는 이유에 관해 귀띔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곳에 돌아오기 전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그전에는 악숭 세력에 납치되어 행방이 묘연했고, 그 이전에는 기억상실 사건이 있었으며, 그보다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타락펜스 납치 사건에 다다른다.
그 모든 걸 알고 있는 에일리히가 내 걱정을 안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조금 전까지 멀쩡한 척 보였던 게 연기인 거겠지.
공작저 최고 어르신인 자신이 안절부절못하면 아랫사람들까지 덩달아 동요할 테니까.
“저는 이제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예전과 달리 스스로를 지킬 힘도 생겼고요.”
“예? 힘이 생겼다니 어떻···. 아, 아닙니다. 선우 경은 원래 천사였고 지금은 본체로 이곳에 와 계시니···. 네, 그렇겠죠.”
에일리히가 아직 교단 소속인 마리안느의 눈치를 보며 급히 말을 바꿨다. 누가 들어도 어색함이 느껴지는 문장이다.
그러나 마리안느는 눈물을 글썽거리는 에일리히의 얼굴에 완전히 넋이 나간 터라,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듣지 못한 듯하다.
순간 호위가 저래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떤 의미로는 굉장히 믿음직해 보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에일리히의 얼굴에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도록 잘 지켜줄 것 같다.
“그보다 별일 없으셨어요?”
“안전한 곳에 머무는 제게 무슨 일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는 선우 경이야말로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대체 무슨 일을 당했기에 모두의 기억에서 지워지기까지 한 건지···.”
“저는 진짜 괜찮습니다. 꽥꽥이가 보호해 줘서 악숭이들이 제게 아무 짓도 하지 못했거든요. 기억에서 잊혀진 건 구출 과정에서 생긴 약간의 사고에 불과하고요.”
“꽥꽥이···라면···. 지금 품에 안겨 있, 아니, 계시는 그···. ‘플람’이란 이름의 동료 천사분 얘기는 교단을 통해 들었습니다.”
“네, 얘가 절 지켜줬어요.”
내가 꽥꽥이를 자랑스레 들어 올리며 답하자, 에일리히와 마리안느가 나란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아차 싶었다.
꽥꽥이가 전직 대악마라는 사실은 아직 비밀인데, 그가 나를 보호해 줬다고 말했으니 저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어떻게 둘러대야 하나 고민하던 나를 구한 건 뜻밖에도 어리둥절해하던 그 두 사람이었다.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선우 경을 보호할 수 있도록, 플람 님께서 미리 가호를 내려 둔 겁니까?”
“아! 그렇게 된 거로군요! 이해했습니다. 하기야 신 룩스메아 님께서 아무런 보호 조치도 없이, 천사님을 연약한 인간의 몸에 넣으셨을 리가 없죠.”
“···아, 네. 그렇죠. 신께서도 생각이라는 게 있고 계획도 세울 줄 아시니까.”
나는 룩스메아가 생각 없고 계획도 없는 존재라 돌려 깠다.
하지만 눈앞의 전·현직 성직자는 내 말속에 숨겨진 뜻을 알아채지 못하고,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