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09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100화(1100/1105)
1100회
103. 공작님과 황제 (21)
“자네, 설마하니 저자의 말을 믿는 건 아니겠지?”
남의 대화를 도청한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참견까지 할 생각인가 보다.
황제누스의 그 후안무치한 태도에 ‘얼씨구?’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특히나 확신 가득한 표정으로 ‘설마하니’ 같은 소리를 해대는 모양새가 매우 아니꼽다. 저따위로 말하면 내가 안 믿는다고 대답할 줄 아나 보다.
“휴마누스는 왜 제온의 말이 거짓이라 생각하는데요? 이 세상에 타인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고결한 이는 오직 자기 자신과 세르펜스 뿐이라서?”
“하하하, 그럴 리가 있나. 단지 의심해 보라는 것뿐이네. 이 세상에는 이타적인 이보다 이기적인 이가 훨씬 많고, 자네는 이용 가치가 매우 높으니까.”
애석한 일이지만, 황제누스의 말에 틀린 부분은 없다. 하지만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쳤다.
그 중요한 것이란 바로 리벨론 일가의 성향이다.
가족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그들이 ‘가족’이란 단어를 앞세워 사기를 칠 리 없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그들이 나를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내가 시온이 아닌 다른 존재라 밝혔을 때에도, 나 자신을 시온이라 착각한 상태로 그들을 마주했을 때에도.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면면에 떠오른 감정은 걱정과 안타까움뿐이었다.
“저는 그들이 절 이용하려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당장은 그럴지도 모르지. 하나 선의로 시작된 일이라 하여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질되는 건 흔한 일이지 않나?”
“세르펜스를 위해 성검의 주인이 되겠다고 했으면서, 지금은 세르펜스에게 상처를 주고 겁먹게 하는 누구처럼요? 아! 아니다. 본인은 그것조차 희생으로 여기겠죠. 자신이 미움을 사면서까지 세르펜스를 돕고 있노라 합리화 하면서.”
“하하하, 이것 참···.”
황제누스가 한 방 먹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이 이상 나와 대화를 이어나간다 한들 말이 통할 리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의 입이 다시 열리는 일은 없었다.
나 또한 그와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랬기에 시선을 옮겨 윈스톤을 바라보았다.
윈스톤은 황제누스와 두어 걸음 떨어진 곳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었는데, 내 시선을 받자 ‘크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이 상황에 대해 찔리는 구석이 있어서 나온 반응일 테다.
“어째서 휴마누스가 복도에서 오가는 대화를 훔쳐 듣게 놔둔 겁니까?”
“···그렇다고 이곳에서 몸싸움을 할 수는 없지 않소. 얌전히 지켜보기만 한다는 약속을 받고 비켜준 거요.”
아무래도 황제누스가 문 앞을 막아선 윈스톤을 협박한 모양이다.
순순히 비켜주지 않는다면 무력으로 비키게 하겠다고. 그렇게 되었다면 방이 어질러지는 건 물론이거니와 문까지 부서졌겠지.
그 장면을 제온이 보게 되는 것도 문제고 뒷수습은 더 큰 문제다.
세르펜스의 방은 대대로 가주가 사용하는 곳이다.
이 말인즉 문의 크기와 디자인부터 다른 방과 구별이 된다는 뜻이다.
문짝을 다는 건 이쪽에서 어찌어찌 해결한다 해도, 그것을 만드는 건 외부인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평소라면 인테리어를 새로 하는 겸 문짝을 갈아 치운다는 변명이라도 할 수 있을 터이나, 지금은 시기가 영 좋지 못하다.
분명 이런저런 루머가 양산되겠지.
‘윈스톤은 현명한 판단을 내린 거였구나.’
나는 윈스톤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다가 황제누스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황제누스가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마주 보았다.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순 양아치가 따로 없다.
“세르펜스. 너 정말 나 없이도 저딴 놈이랑 한 공간에 같이 있을 수 있겠어?”
“없다.”
내가 예상했던 답변이 아니다.
결의에 찬 표정으로 괜찮으니 다녀오라고 말하거나, 머뭇머뭇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가로저을 줄 알았건만.
너무나도 위풍당당한 태도로 그럴 수 없다는 답을 내놓으니 당혹감이 나를 덮쳤다.
“어···, 그럼 윈스톤 혼자 저 미친놈을 감당하게 두고 우리끼리 별관에 다녀오자고?”
“한 명···. 아니, 한 마리 더 있잖은가?”
당사자는 원치 않겠지만, 여기서 ‘마리’로 칭해질 만한 존재는 하나뿐이다.
내 시선이 자연스레 품 안의 꽥꽥이에게로 향했고, 꽥꽥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며 ‘꽥?’ 하고 의문을 표했다.
전에는 자신도 모르게 오리 소리를 흘리고 나면 깜짝깜짝 놀라더니. 지금은 가만히 눈만 깜박거리고 있는 거로 보아 적응을 마친 모양이다.
나는 잠시 고개를 들어 황제누스를 봤다가 다시 꽥꽥이를 내려다보았다.
윈스톤만큼은 아니어도 휴마누스는 키도 크고 상당한 근육을 자랑했다. 반면에 꽥꽥이는 그냥 작고 귀여운 오리일 뿐이다.
요 깜찍한 존재에게 저 무서운 인간을 상대하게 하라니 안 될 말이다.
황제누스가 꽥꽥이를 마음에 들어 하니 윈스톤만 붙여놓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미친놈이 괜히 미친놈이겠는가?
세르펜스의 말도 듣지 않는데 꽥꽥이의 말이라고 들어줄 리 만무하다.
더욱이 리벨론가 사람들이 머무는 장소는 이곳 본관이 아닌 서쪽 별관이다.
‘대화가 얼마나 길게 이어질지도 확실치 않고···.’
꽥꽥이와 윈스톤만 믿고 황제누스를 이곳에 두고 다른 건물로 가는 건 영 불안하다.
그렇다고 타락펜스와 공작저에 방문했을 때처럼, 황제누스를 비밀 통로에 두고 리벨론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제온과 잠깐 대화한 것도 참견하려 들었으니, 그의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끼어들지 말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하다못해 리벨론가 사람들을 응접실로 부르면···. 아, 그건 너무 눈에 띄나? 게다가 별관이든 응접실이든, 휴마누스가 난동을 부렸을 때 바로 제압할 수 없다는 건 마찬가지니까···.”
“어째서 내가 난동을 부리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지 모르겠군. 그동안 내가 날뛴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았나?”
“저랑 제온의 말을 엿듣겠다고 윈스톤에게 무력시위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합니까?”
“뭔가 잘못 알고 있군. 대화를 듣는 것뿐이라면 굳이 문을 열 필요 따윈 없었다네. 신성력으로 청력을 강화하면 그만이니. 그저 자네의 표정과 반응이 궁금하여 윈스톤 경에게 협조를 구했을 뿐이네.”
황제누스가 조곤조곤한 투로 늘어놓는 설명을 듣자 하니, 더 악질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황제누스의 감시를 소홀히 하는 건 안 될 일이다.
그러한 내 뜻을 전하고자 세르펜스를 쳐다보았다. 눈을 마주친 녀석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녀석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제온을 돌려보내겠다는 내용이 아니었다.
“걱정하지 마라. 플람은 평범한 오리가 아니잖은가? 그동안 꾸준히 치료해 왔으니, 2~3분가량 본모습을 취할 수 있을 거다. 그 상태로 힘을 사용한다 해도 1분 정도는 버틸 수 있겠지.”
“고작 1분 가지고 뭘 할 수 있다고? 어찌어찌 1분 안에 제압한다 해도, 다시 오리로 돌아가면 끝이잖아?”
“그냥 모습만 되돌아가는 게 아니다. 그동안 치료한 것도 원상복구 되겠지. 어쩌면 상태가 더 나빠질 수도 있고.”
“그럼 더더욱 큰일이잖아?!”
나도 이렇게 어처구니가 없는데 당사자인 꽥꽥이는 얼마나 황당할까.
슬쩍 고개를 내려 꽥꽥이를 쳐다보니, 그는 부리를 쩍 벌린 채 흔들리는 눈으로 세르펜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르펜스는 꽥꽥이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다, 정말 큰일이지. 플람의 전력은 강하니 마왕과 싸울 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텐데···.”
세르펜스가 한 손으로 제 뺨을 감싸며 고개를 모로 기울이고 한숨을 폭 내쉬었다.
표정에 근심과 걱정이 그득 묻어나는 게, 보는 이로 하여금 탄식을 자아내는 모습이었으나 실상은 연기일 뿐이다.
“쉽게 말해 마왕과 싸울 때 꽥꽥이의 도움을 받으려면, 휴마누스가 얌전히 있어야 한다는 소리네?”
“그러하다.”
헛소리 같은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꽤 일리가 있다.
녀석의 말을 황제누스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싶어 슬쩍 곁눈질로 살피니, 황당하다는 표정을 한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황제누스는 몇 번 눈을 끔벅이더니 이내 하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나와 대화할 때 흘렸던 거짓 웃음이 아니라 진심으로 재밌어하는 듯한 웃음이다.
세르펜스는 그런 황제누스에게서 휙 등을 돌려 창가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꽃 화분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하나는 ‘유니어’일 테고 다른 하나는 ‘나의 벗’이겠지.
나의 벗은 몰라도 유니어는 평소 에일리히가 집무실에 두고 돌보는 거로 알고 있다.
오늘은 우리가 돌아온다고 하여 미리 세르펜스의 방에 가져다 둔 모양이다.
그 두 개의 화분 중, 세르펜스는 잎과 가지가 더 풍성한 쪽만 챙겨서 내 곁으로 돌아왔다.
꽥꽥이를 붙여두면 황제누스가 얌전히 있을 거라고 자신할 땐 언제고, 그가 자신의 소중한 유니어를 망가뜨릴까 봐 걱정된 모양이다.
아니면 꽥꽥이가 유니어는 보호해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나.
“나의 벗은 안 챙겨?”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러지 말고 나의 벗도 예뻐해 줘. 유니어에서 뻗어 나온 가지잖아.”
“선우는 그···, 으음···. 아니다.”
세르펜스가 할 말이 많아 보이는 표정으로 입술을 벙긋거리다가, 터벅터벅 창가로 가서 나의 벗도 챙겨서 돌아왔다.
그동안 나는 꽥꽥이를 황제누스의 품에 떠안겨 주었다.
“진짜 나를 이 미친 인간에게 맡기고 가겠다고?”
“그 반대야. 너한테 저 미친 인간을 맡기는 거야. 꽥꽥이 넌 혼자서도 우리 일행을 전부 상대할 수 있다고 자신했었잖아? 그러니 휴마누스 한 명쯤이야 30초 안에 제압할 수 있지 않겠어?”
“아무리 그래도 30초는···.”
“꽥꽥아, 너만 믿을게. 네가 짱이야!”
“···알았어, 빨리 갔다 와.”
황제누스의 품에 안긴 꽥꽥이가 해탈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뱉더니, 손을 내젓듯 휘휘 한쪽 날개를 흔들었다.
나는 그에게 거듭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세르펜스와 함께 복도로 나왔다.
세르펜스의 손에 들린 화분들을 본 제온이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숙련된 집사답게 자세히 캐묻지는 않았다.
“결정된 거야?”
“응. 지금 다들 별관에 있는 거지?”
“아니, 아빠는 집무실에 계셔.”
“잘 됐네! 안 그래도 집무실에 들러야 하는데.”
에일리히에게 용건이 있겠거니 생각한 건지 이번에도 제온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러나 세르펜스가 화분을 에일리히에게 맡기고 별관으로 향하는 우리를 따라오자, 결국 의문을 입에 올렸다.
“저···, 그런데 주인님께서도 오시는 겁니까···?”
“예. 저도 용건이 있어서···. 혹시 불편하십니까?”
“아, 아닙니다!”
세르펜스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서운함을 연기하자, 제온이 절대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마구 내저었다.
공작저에서 일을 한 지는 오래되었으나 세르펜스의 얼굴을 본 기간은 짧아, 녀석의 얼굴 공격에 면역이 없는 탓이다.
그래도 에일리히의 얼굴은 자주 보았을 텐데.
에일리히는 세르펜스만큼 적극적으로 얼굴을 활용하지 않는 모양이다.
제온은 세르펜스에게 그 용건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고, 전 리벨론 백작은 힐끔힐끔 나를 곁눈질하며 걸음을 옮겼다.
뭔가 할 말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남들이 보는 앞에서 그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자신이 없다.
그래서 서둘러 제온에게 말을 붙였다.
“참! 그러고 보니 서쪽 별관은 리벨론 가문이 쓰고 있고, 동쪽 별관은 창고가 됐잖아? 그럼 푸로르랑 리에나는 어디서 지내고 있는 거야?”
“동쪽 별관을 1층만 치우고 가구를 다시 들여 놨어. 전에 무너진 창고를 대신할 건물을 새로 하나 지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 같은 때에 외부인이 저택 안을 드나드는 건 위험하니까 어쩔 수 없지.”
“그렇지, 어쩔 수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