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10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101화(1101/1105)
1101회
103. 공작님과 황제 (22)
별관에 관한 것을 시작으로 제온에게 공작저의 근황을 질문하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중간부터는 제온이 세르펜스에게 보고하는 형식이 되어버렸지만. 덕분에 나는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빠질 수 있어서 좋았다.
“꺄르르륵-!”
리벨론가 사람들이 기거하는 건물 가까이 다가가자, 열린 창문을 통해 아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 머무는 이 중에서 아이는 하나뿐이니 저 웃음소리의 주인은 비비일 게 분명하다.
정체가 탄로 났는데도 여전히 평범한 아이처럼 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떠올렸을 때.
“새아가는 힘이 정말 세구나! 제온은 비비를 잠깐 안는 것도 힘들어하던데!”
“원래 저희 집안사람들이 대대로 건강 체질이거든요, 호호호.”
두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나는 전 리벨론 백작 부인의 것인 듯한데 다른 한쪽은 좀 아리까리하다.
전 리벨론 백작 부인이 제온을 들먹이며 새아가라고 불렀으니, 높은 확률로 제온의 아내이자 공작가 정보 조직의 현장 지휘자인 이올렌일 터.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이올렌의 목소리와 말투는 저렇지 않았다.
“한 바퀴···, 아니 열 바퀴만 더!”
“호호호, 도련님이 좋아하시니 그럼 또 돌아 볼까요?”
“꺄르르륵!”
다시 한 번 비비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제온이 손을 들어 올려 민망함에 달아오른 얼굴을 가렸다.
이제는 동생이 된 ‘작은+형’이 부끄러운가 보다.
반면에 그의 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째서 비비가 아직도 어린애처럼 행동하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다.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겨 거실로 향하자, 허리까지 오는 긴 붉은 머리칼의 여성이 비비를 들고 제자리에서 도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빙빙 돌다 우리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며. 아니, 놀라는 척하며 공손히 허리 굽혀 인사했다.
“어머나! 공작님을 뵙사옵니다.”
간드러지는 말투를 사용하는 이 여성은 놀랍게도 이올렌이 맞았다.
전에 봤을 때는 짧은 머리를 하고 있던 거로 기억하는데, 그새 머리카락을 저만큼 기른 것 같지는 않고 아마 가발일 테다.
입고 있는 옷은 드레스였고, 신발은 치맛자락에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분명 구두겠지.
‘···지금 저 차림새로 만 3살짜리 애를 들고 빙글빙글 돈 건가?’
저런 짓을 해 놓고 겨우 ‘건강 체질’이란 말로 퉁치려 하다니 여러 의미로 대단하다.
것보다 로베르토가 사람들의 신체 능력이 뛰어난 건 체질이 아니라 수련의 성과 아니었나?
기가 막혀서 멍하니 서 있자 세르펜스가 현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 대외적으로 이올렌 로베르토는 신체 단련조차 해본 적 없는 평범한 여성이다. }
아무래도 이올렌은 시부모에게도 자신의 직업을 밝히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는 건 제온도 집사에 딸려온 직업, 그러니까 공작가 정보 조직의 수장이라는 걸 제 부모님께 숨기고 있다는 뜻이다.
정보 조직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이올렌이 비비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녀는 비비가 오리지널 시온이라는 걸 모르는 건가?’
참 비밀이 많은 집구석이 아닐 수 없다.
하마터면 나도 모르게 ‘헐’ 하는 소리를 내뱉을 뻔했다. 그런 내게 냉정함을 되찾아준 건 다름 아닌 카론이었다.
“고, 고, 공작님···!!”
그는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호들갑을 떨어댔다.
공작님께서 이곳을 찾아와 주실 줄 몰랐다는 둥, 가족들이 신세를 지고 있다는 둥,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라는 둥.
정돈되지 않은 말이 두서없이 튀어나왔다.
전에 리벨론 령에서 만났을 땐 긴장하긴 했어도 저 정도는 아니었던 거로 기억하건만.
그때는 세르펜스와 만날 것을 대비하여 할 말을 미리 준비해 둔 거였나 보다. 지금은 갑작스러운 만남이라 당황한 걸 테고.
기뻐서 오두방정을 떨어대는 카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평화롭다고 해야 할지 어처구니없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비비가 꺄르륵 웃어댈 땐 흐뭇해하던 전 리벨론 백작조차, 큰아들의 추태에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큰형, 진정하고 앉아. 주인님께서 곤란해 하시잖아? 비비도 이올렌 귀찮게 하지 말고 이리 와.”
제온이 형과 형이었던 자에게 잔소리하며 상황을 정리했다.
그제서야 우리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올렌, 온다는 말도 없이 여긴 어쩐 일이야?”
“네에? 분명 어제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얘기하긴 했지, 그런데 그···. 아니야.”
제온이 무언가 말하려다 얼버무렸다.
추측하건대 정보원인 이올렌은 공작저에 몰래 방문하는 일이 많았을 테고, 그 탓에 얘기가 엇갈린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 해도 평소라면 아무 문제 없었을 터이나 지금은 평소와 다르다.
“그럼 저는 용건도 마쳤으니 이만 돌아가 보겠사와요.”
나와 세르펜스가 찾아온 것과 제온의 태도를 통해, 자신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라는 걸 눈치챘는지 이올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나는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그녀를 불러세운 뒤 제온에게 말을 붙였다.
“이올렌 씨에게는 얘기 안 할 거야?”
“···해도 돼?”
되묻는 제온의 얼굴에 반기는 기색이 역력하다.
내심 이올렌에게도 사실을 밝히고 싶었지만, 내 의중을 몰라서 말하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세르펜스를 쳐다보았고 녀석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가 바라는 대로 해라.”
“얘기해도 된대.”
허락이 떨어지자 제온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전부 닫은 뒤, 이올렌을 붙들고 나와 비비의 정체에 관한 얘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는 동안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찻주전자와 찻잔, 접시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다.
“도와줄까···?”
내가 붓세가 든 상자의 포장을 뜯고 있을 즈음, 전 리벨론 백작 부인이 어색하게 말을 붙여왔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려다가, 그녀에게 발열석과 세계수 잎을 맡기고 차를 우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가 안절부절못하며 내 눈치를 살피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 게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다.
제온이 설명을 마친 건, 그의 어머니가 우러난 차를 찻잔에 따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모든 얘기를 들은 이올렌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비비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시동생이라 생각하며 잔뜩 귀여워해 줬는데, 사실 시형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충격을 받을 만도 하다.
“그렇다면 리벨론 가에서 너무 소심하여 걱정이라던 분이···?”
아무래도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부분에서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리벨론 가문의 소심함 기준이 범상치 않다는 오해가 풀리는 날은 평생 오지 않을 듯싶다.
제온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제 다들 상황을 아시니까 편히 얘기할게요. 여러분께서 제 걱정을 많이 하셨다는 얘기는 제온에게 들었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괜찮은 거니···?”
“네, 이젠 괜찮아요. 지금 제 모습을 보면 아시겠지만, 약 한 달가량 고향에서 가족들과 지내면서 편히 쉬다 왔거든요. 아, 참! 악숭 세력에 붙잡혀 있을 때 아무 짓도 당하지 않았으니, 그 부분 또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색함을 견뎌내며 애써 웃는 낯으로 밝게 말하자, 사람들의 얼굴에 안도감이 떠올랐다. 심지어는 제온의 얼굴에도.
납치됐을 때 별일 없었느냐고 안 물어보길래 별생각이 없는 건가 했는데, 무서운 기억을 떠올리게 할까 봐 묻지 않은 거였나 보다.
“그런데 서···, 선우 님···? 제온의 말에 의하면 다른 세상의 사람이라 하고, 소문에 의하면 천사라던데 어느 쪽이 맞는 건가요?”
대외 모습을 연기하고 있어도 직업병은 어쩔 수 없는지, 이올렌이 모순되는 정보를 판별하기 위한 질문을 던졌다.
카론도 그게 궁금했었는지 관심 있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반면에 내가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끙끙 앓던 모습을 본 이들의 반응은 담담했다.
당연히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걸 테고, 그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지.
“두 얘기 다 맞습니다. 원래는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이번에 돌아오는 과정에서 어찌어찌 하다 보니 천사가 됐거든요.”
“······!!”
“그렇긴 해도 저는 아직 저 자신을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예전처럼 편하게 대해주세요. 특히 거기 카론···, 형···? 갑자기 바닥에 무릎 꿇고 앉지 마.”
“그치만 천사님인데···?”
“아니, 얼마 전까지는 사람이었다니까? 천사가 되었다고 해 봤자 바뀐 거라고는 없···진 않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어.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먹고 나면 화장실도 가야 하고. 똑같아. 꽥꽥이를 보면 진짜 천사는 화장실도 안 가는 것 같던데···.”
내가 꽥꽥이와 나를 비교하며 진짜 천사와 다르다는 걸 설명하고 나서야, 카론이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바닥에서 일어나 다시 소파에 앉았다.
얘기하고 보니 나도 내가 정말 천사가 맞는 건지 긴가민가하다.
그래서 세르펜스를 흘깃 쳐다보자, 녀석이 내 의문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화장실의 진실을 설명했다.
{ 플람 그자의 본래 육체는 불에 타 사라졌고, 현재의 육체는 신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잖은가. 그에 반해 선우의 육체는 아직 인간의 것이지. 아, 그렇다고 천사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단지 선우가 아직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어 하는 듯하고, 현재 신의 힘을 보유한 건 내가 아닌지라 선우를 완전한 천사로 만들어 줄 수가···. }
나는 대충 이해했다는 뜻으로 녀석에게 눈을 깜박여 보였다.
그러고 나서 제온의 가족들을 슥 훑어보며,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얼마든지 물어봐도 된다고 말하였다.
정말로 질의응답 시간을 갖자고 꺼낸 말은 아니고,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몰라서 되는 대로 던진 말에 불과했다.
어차피 질문거리도 없을 거라 생각했고. 하지만 그런 내 예상은 틀렸다.
“카론을 형이라 부른다는 건,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인가···?”
“아직 고민 중입니다.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전 리벨론 백작의 물음에 나는 제온에게 했던 대답을 고스란히 들려주었다.
그러고 나자 곧바로 제온의 질문이 이어졌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천사가 된 거야?”
“그건 지금 말할 수 없어.”
내가 천사가 된 건 세르펜스가 신의 격을 갖추게 된 것과 깊이 연관된 사안이다. 말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노코멘트로 일관하였고,
“내 원래 몸은 어떻게 된 거야?”
“어, 그게···. 아마 악숭 세력이 가지고 있을 걸···? 천사의 영혼이 오래 머무른 육체가 어쩌고 하는 소리를 했으니까···. 미, 미안.”
비비의 물음에 고개를 푹 숙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시온이 천사인 거 알고 있었느냐며, 출생의 비밀을 묻는데 뭐라고 답해야 해?”
“그동안 뭐라고 답해왔는데?”
“그냥 시온은 평범하고 소심한 내 동생일 뿐이라고 답했지, 뭐. 여기 와서 가족들에게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정말 그런 줄 알았으니까.”
“이미 훌륭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 같은데···, 소심하다는 말은 이제 빼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내 기억 속 시온은 소심한 동생이 맞는걸?”
“······.”
카론과 대화를 나눌 때에는 잠시 할 말을 잊었으며.
“네가 진짜 시온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힐 생각이니?”
전 리벨론 백작 부인의 질문에는 바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세르펜스를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이 문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