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101)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102화(1102/1105)
1102회
103. 공작님과 황제 (23)
“만약 선우가 시온 리벨론과 동일 존재가 아니라고 밝힌다면, 본래 몸의 주인은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해하는 자가 나올 거다. 그러니 불의의 사고나 지병 등으로 죽어가는 순간, 천사가 그 몸에 깃들었다는 흐름으로 가는 게 좋겠지.”
“응?”
“반대로 동일 존재라는 설정을 잡는다면···. 특수한 임무를 받고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다가, 내 보좌관이 될 즈음 봉인되었던 천사로서의 기억이 깨어났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
나는 설정 잡는 걸 도와 달라고 쳐다본 게 아니라 선택을 도와 달라고 쳐다본 것이었다.
그럼에도 세르펜스는 구체적인 설정을 늘어놓더니, 둘 중 마음에 드는 쪽을 골라보라는 표정으로 나를 마주 보았다.
나만 해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설정펜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얼마나 황당할까?
하지만 녀석의 입이 다시 열리는 순간 감상은 180도 뒤집혔다.
“어떤 선택을 하든 뒤탈이 생기지 않도록 무마해 주겠다. 그러니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무슨 낭설이 돌지 고민하지 말고 선우가 마음 편한 쪽을 선택해라.”
세르펜스야 늘 믿음직했지만, 오늘따라 더더욱 믿음직스럽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녀석을 쓰다듬어주고 싶었으나 보는 눈이 있어서 참았다.
리벨론 가문 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아랫사람인 이올렌 앞에서 애 취급을 받으면 윗사람으로서의 위신이 안 살 테니까.
이올렌이 한스의 손녀인 것도 신경 쓰이는 요인 중 하나다.
‘···만약 한스가 알게 되면 잔소리하러 쫓아올 것 같아.’
물론 정보원인 이올렌의 입이 가벼울 리 없고, 한스도 지은 죄가 있어 자숙 중이니 정말 따지러 오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괜히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나는 대화를 마치고 본관으로 돌아간 뒤에 세르펜스를 잔뜩 쓰다듬어 주기로 결정했다.
“결정을 내린 표정이군.”
“응. 아, 아니!!”
“···음?”
“잠깐만, 조금만 더 고민해 볼게.”
지금 결정해야 하는 건 세르펜스를 쓰다듬는 타이밍이 아니라, 내가 시온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느냐 마느냐다.
내 마음이 편한 건 당연히 진실을 밝히는 쪽이다. 본체로 넘어온 마당에 계속 시온 행세를 하는 건 사양이다.
다만 그쪽을 택할 시 ‘시온의 영혼이 어디로 갔는가?’ 하는 의문이 부상하는 것이 문제였는데, 세르펜스의 말대로 처리한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아.”
“그렇다면, 으음···. 리벨론 가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라.”
세르펜스가 굉장히 의외의 말을 입에 담았다.
내 입에서 ‘엥?’ 하는 소리가 튀어나온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녀석은 내가 자신과 같은 성을 사용하길 바랐으니까.
뿐만 아니라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과 리벨론 가에 입양되는 게, 당최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반대로 해야 하는 거 아냐? 시온으로 환생했다는 설정이면 리벨론 가문에 들어가고, 아니면 말고.”
“선우가 리벨론 가문과 관계없는 남이라고 밝힌 후 다른 가문에 적을 둔다면, 사람들은 오히려 선우를 진짜 시온 리벨론이라 여길 거다. 적들로부터 가족들을 지키고자 거짓말을 한 거라고 멋대로 생각하겠지. 전부 그런 것은 아니고 일부일 뿐이며, 마왕은 선우가 시온 리벨론이 아닌 별개의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긴 하지만. 선우는 세상 모든 이들에게 자기 자신으로 인식되길 바라는 것이잖은가?”
아니다. 나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거짓말로 남들을 속여가며 나 자신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는 쪽이다.
진실을 밝혔는데도 믿지 않는 것까지 내가 신경 쓸 이유는 없다.
남이야 어찌 생각하든 나는 나니까.
그런데 세르펜스는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거짓된 모습이 아닌 제 본연의 모습으로 모두에게 인식되고 인정받고 싶은 건, 사실 녀석의 욕구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누가 자꾸 진짜 시온인 거 다 안다고 떠보면 귀찮을 것 같긴 해. 리벨론이라는 성이 익숙하기도 하고. 그리고 리벨론 가 사람들을 지키고자 거리를 둔다는 얘기를 들으니 생각난 건데, 악숭이들도 비슷한 생각을 떠올릴 수도 있지 않을까?’
놈들은 내가 시온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제껏 내가 관심 없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리벨론 가 사람들을 보호하는 쪽으로 움직여 왔으니. 한번 찔러보자는 식으로 그들을 공격할지도 모른다.
이럴 땐 차라리 리벨론 가 사람들이 나를 이용해 먹으려 한다고 소문을 내서, 그들이 잘못되면 내게 득이 된다고 착각하도록 유도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아니, 이런 건 그냥 변명이지. 솔직하게 내 마음을 마주 보자면···.’
나는 이들 가족이 마음에 든다. 가정 분위기도 화목하고 구성원 개개인을 따로 봐도 좋은 사람들이라는 게 느껴지니까.
어디 그뿐이랴?
이들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배려해 주었다.
내가 그리움과 외로움에 사무쳐 있다는 걸 알고, 그간 자신들을 속여온 내게 가족처럼 여겨달라는 말을 건넬 정도로.
‘말만 그러한 게 아니라, 이들은 정말로 나를 가족처럼 대해줬지.’
기억을 잃고 나 자신을 시온으로 착각했을 때, 내가 이상함을 눈치챈 건 이들의 태도가 아닌 내 감정 때문이었다.
오죽했으면 그 당시 꽥꽥이가 이들은 내 정체를 모른다고 단정 지었을까?
그 정도로 나를 대하는 이들의 태도는 따스했다.
‘입양을 제안한 것도 다른 가문에서 나를 이용하려 들까 봐 걱정해서 그런 거겠지. 또다시 내가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힘들어하지 않도록, 이곳에서도 가족의 정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려는 의도도 있을 테고···.’
제온과는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불편한 관계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제법 친근한 사이로 발전하여 형이라 불러주지 않으면 서운할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공작저의 집사이기도 하니 앞으로도 개인적인 친분을 유지할 수 있을 터.
반면에 리벨론 부부와의 교류는 많지 않다.
그들과 나를 이어주는 건 오직 시온의 육체뿐이었고, 그마저도 사라진 지금 그들과 나는 완벽한 타인이라 할 수 있다.
입양 제안을 거절한다면 이들은 내가 자신들을 부담스러워한다고 판단하겠지.
그렇다면 이들과 나와의 관계는 여기서 끝이다.
‘그런 건 싫어.’
이렇게 근사하고 멋진 사람들과의 인연을 내 쪽에서 끊고 싶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니 결론이 나왔다.
“고민해 봤는데, 역시 리벨론 가문에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 리벨론 가문이 좋아요. 세르펜스가 말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냥 앞으로도 여러분과 가족처럼 지내고 싶어서요.”
“그게 정말이니?!”
내 말을 들은 전 리벨론 백작 부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말썽 부리는 자식이 마음을 고쳐먹고 새사람이 되겠다는 말이라도 들은 듯한 반응이다.
그런 그녀를 마주하니 괜히 쑥스러운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멋쩍은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잘 생각했다. 그럼 입양 서류를 작성하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
가주직은 내려놓았지만, 가문의 큰 어른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기 때문일까?
전 리벨론 백작은 내 입양 문제에 신중을 기할 생각인가 보다.
진중한 그의 모습에 나는 입가에 걸렸던 웃음기를 지우고 긴장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까 공작님께서 마왕은 네가 진짜 시온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고 말씀하신 게 마음에 걸리는구나. 정말로 납치당했을 때 아무 일도 없었던 게 맞는 거니? 혹시 우리가 걱정할까 봐 괜찮은 척하는 거라면···.”
“아뇨, 아뇨! 진짜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엄청 잘 지냈어요!!”
어쩐지 혼자 분위기가 무겁더라니.
곧 내 양아버지가 될 예정인 그는 내가 악숭이들에게 고문을 당했다고 오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오해는 빠른 속도로 모두에게 번졌다.
나는 오해를 풀기 위해 꽥꽥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했고, 내 말벗도 되어주었노라 자세히 얘기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꽥꽥이가 본래 악마였고 어쩌다 친해지게 되었는지 설명하게 되었고.
꽥꽥이가 천사로 다시 태어나게 된 부분은 신의 힘이 일으킨 기적으로 적당히 넘어갔다.
그 신이 룩스메아가 아닌 세르펜스라는 부분을 빼먹었을 뿐 거짓말은 안 했다.
“정말 고마운 친구구나! 한 번 만나보고 싶네.”
“다음에 데려와서 소개해 드릴게요.”
말을 뱉어 놓고 나서 황제누스의 낯짝이 떠올라 아차 싶었지만, 그건 나중에 고민하기로 했다.
지금은 황제누스에 관한 문제로 머리를 싸매고 싶지 않다.
“그런데 그럼 마왕은 어떻게 네가 시온과 별개의 존재라는 걸 확신하고 있는 거야?”
“누가 봐도 시온 형이랑 선우 형은 다른 사람이잖아.”
“너도 보자마자 알아챈 건 아니라며? 그래서 공작저 사람들 앞에서 시온이 소심해서 걱정이라는 소리를 했다가, 이상한 오해를 샀다고 툴툴댔잖아.”
“그, 그건···.”
제온이 말문이 막혀 멈칫하자 카론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말싸움으로 제온을 이긴 건 처음인가 보다.
티격태격 장난을 칠 정도로 우애가 돈독한 형제의 모습이 보기 좋았으나, 지금은 흐뭇하게 지켜볼 때가 아니다.
나는 카론이 던진 물음에 대답을 내놓아야 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세르펜스가 나섰다.
“그건 세상이 망하며 반복된 시간 속에서 ‘시온 리벨론’만이 이전과 다른 행보를 보이며,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세르펜스의 발언에 모두가 당혹감을 드러냈다.
나는 녀석이 다른 회차 얘기를 꺼낼 줄 몰라서 그랬고.
비비는 악숭이에게 속았던 것 때문에 그런 듯하며, 그 외 나머지 사람들은 시간이 반복되었다는 믿을 수 없는 얘기에 놀라서 그렇겠지.
“역시···, 나 때문에 망한 거였어···? 내가 공작님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하고, 나쁜 놈들에게 속아 함정에 빠뜨리려 해서···. 나 때문에 공작님이 인간 불신에 빠져 세상이 망해버린 거야!!”
“그런 것 아닙니다. 변화가 필요한 건 저였습니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저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을 텐데, 그렇다면 그쪽이 모셨던 저와 현재의 제가 얼마나 다른지 아실 것 아닙니까?”
패닉에 빠지려는 비비를 건져낸 건 세르펜스였다.
녀석은 쓴웃음을 머금고 부드러운 어투로 비비를 달랬다.
모든 사정을 아는 나조차 세르펜스가 이런 말을 꺼낸 의도를 알 수가 없어 당혹스러웠다. 그러니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오죽할까.
다들 비비와 세르펜스의 대화를 따라가지 못하여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눈만 끔벅였다.
“괴리감이 느껴지긴 했어요. 당시 공작저 사람들은 공작님의 완벽함을 찬양하고 우상으로 떠받들어서, 공작님이 이질적인 존재로 느껴져 거부감이 들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뭔가···, 안타까워요. 그 완벽한 모습은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모두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다는 뜻이잖아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전에는 그쪽···, 으음···. 당신을 탓하듯 말해서 죄송합니다. 당시에는 제 마음에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느꼈을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여 배려가 부족했습니다. 제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완벽한 선인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변호하는 데에만 급급했던 것 같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 제온은 세르펜스가 따라오는 것에 의문을 드러냈고, 그에 세르펜스는 자신도 용건이 있다고 답하였다.
그저 녀석이 내 곁에 붙어 있고 싶어서 둘러댄 말인 줄 알고 가볍게 넘겼었는데.
이제 보니 그 말은 사실이었다.
세르펜스는 처음부터 비비에게 사과할 마음을 먹고 이곳에 온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