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103)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104화(1104/1105)
1104회
103. 공작님과 황제 (25)
“다녀왔습니다! 저희가 자리 비운 사이 별일 없었죠?”
“없었소.”
“있었어.”
본관 5층으로 돌아와 문을 열며 가볍게 안부를 물었더니, 윈스톤과 꽥꽥이가 상반된 대답을 내놓았다.
일단 황제누스를 포함하여 셋 모두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이긴 했다. 옷이나 깃털이 상한 것 같지도 않고.
애초에 싸움이 있었다면 세르펜스가 미리 언질을 줬겠지.
그래도 꽥꽥이에게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다.
“무슨 일?”
“휴마누스가 나한테 가식적인 인간들이 너를 속이고 이용하려 할지도 모른다면서, 걱정도 안 되느냐고. 친구를 지켜야 하지 않느냐며 별관에 숨어들어 가자고 꼬셨어.”
“그런 짓을 하면 세르펜스가 바로 알아챌 텐데?”
“다른 인간들 앞에서 갈등을 빚을 수는 없으니, 알아도 그냥 내버려 둘 거라고 하더라.”
“···그래서?”
“당연히 됐다고 거절했지! 세르펜스 저 존재가 얼마나 너를 끔찍이 아끼는지 뻔히 아는데. 누가 너를 이용하려 드는 걸 내버려 두겠어?”
꽥꽥이의 얘기에 나는 기가 차서 헛웃음을 흘리다가, 황제누스와 윈스톤을 스윽 노려보았다.
황제누스는 내 시선을 가볍게 무시하며 딴청을 부렸다.
그리고 윈스톤은···.
“결과적으로는 아무 일 없었소.”
결과 지상주의적 발언을 내놓았다.
미수로 끝난 일인데 괜히 나와 세르펜스가 신경 쓸까 봐 말하지 않고 넘어가려던 걸 테지.
아무튼 이번 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세르펜스의 추측대로 꽥꽥이가 황제누스의 행동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꽥꽥아, 정말 잘했어. 앞으로도 잘 부탁해!”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접시와 쿠키를 꺼내어 창틀에 앉아 있는 꽥꽥이 앞에 내려놓았다.
물론 그가 먹기 편하게 쿠키를 잘게 부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뒤를 돌자 불퉁하게 입술을 삐죽거리는 세르펜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 붓세를 먹고 왔으면서도 쿠키가 탐나는 모양이다.
“세르펜스도 쿠키 먹을래?”
“먹기야 하겠지만, 뭔가 잊은 거 없나?”
세르펜스가 쿠키를 받아 입에 물면서 서운하다는 눈빛을 보내왔다.
이제 보니 꽥꽥이한테만 쿠키를 줘서 토라진 게 아니라, 꽥꽥이만 칭찬해 줘서 삐친 모양이다.
녀석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다. 오늘 매우 기특한 행동을 했으니까.
“안 그래도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칭찬해 줄 생각이었어.”
나는 침대에 털썩 앉으며 무릎을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세르펜스가 기다렸다는 듯 내 무릎을 베고 누웠다. 조금 전 토라졌던 게 거짓이었던 것처럼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발했다.
아까는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어른스러웠는데 어리광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뭐, 다른 사람한테도 이러는 게 아니라 나한테만 이러는 거니까 상관없나?’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세르펜스가 헤실헤실 웃으며 오독오독 쿠키를 갉아 먹었다.
정말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라 나도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오구오구~, 우리 세르펜스! 정말 너무너무 기특하다! 오래전 일이니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모르는 척 넘어갔어도 됐을 텐데, 어떻게 사과할 생각을 다 했어?”
“예전에 선우가 만취했을 때, 속상하다는 감정을 내비쳤잖은가? 그 이유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지. 잘 무마했다고 생각한 행동이 ‘올바름’과는 거리가 멀어서, 그럼에도 나를 혼낼 수가 없어서. 그래서 선우가 혼자 속으로 괴로움을 삭히려 했다는 것을.”
나는 세르펜스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으며 녀석이 언급한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오래된 일이기도 하고 당시의 나는 만취한 까닭에 확실한 것은 아니나, 비비의 ‘비’자도 꺼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도 내가 무엇 때문에 속이 상했는지 정확히 파악했다는 건, 그만큼 본인의 행동을 돌이켜 보며 고민을 많이 했다는 뜻이다.
“선우의 말대로 오래전 일이니 넘어가려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르펜스가 잠시 말을 끊고 쿠키를 마저 먹어치웠다.
그러고 나서 돌연 벌떡 일어나 앉더니 두 눈동자에 내 모습을 담으며 말을 이었다.
“선우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그들 가족이 좋은 이들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사과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그렇다 하여도 망설임은 남았지만···. 선우가 그들과 가족이 되겠다고 하여 조금 더 용기를 냈다. 과거의 내 잘못 때문에 선우가 불편해하는 일은 없었으면 해서. 그리고···, 나도 그들과 잘 지내보고 싶어서···.”
“정말 잘 생각했어! 세르펜스는 언제나 내 자랑이었지만, 오늘은 특히나 더 자랑스러워. 비비에게 사과한 것도 그렇고, 내 선택을 도와준 것도 그렇고. 진짜 진짜 최고야!”
나는 다시 한 번 감격하며 세르펜스를 꽉 끌어안고 뒤통수를 마구 쓰다듬어주었다.
비비에게 사과한 이유를 설명하며 나에 관한 언급이 많았지만.
어쨌거나 녀석은 스스로 생각해서 자신의 잘못을 찾아냈고, 혼자서 사과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내가 그 문제를 신경 쓰지 않았으면 한다는 건 나를 향한 배려였으니.
어찌 녀석이 자랑스럽지 않을 수 있으랴.
“흠, 흠! 그런데 세르펜스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사과를 했다는 겐가?”
한참 세르펜스를 예뻐해 주고 있는데 황제누스가 목소리를 냈다.
나름대로 세르펜스가 놀라지 않도록 조심한 것인지, 황제누스가 말을 꺼내기 전에 헛기침을 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세르펜스가 몸을 굳히며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휴마누스랑은 상관없는 일이니까 관심 끄세요.”
“그런가? 얘기를 듣자 하니 결국 리벨론 가문에 들어가기로 한 것 같던데, 그것도 내가 관심을 꺼야 하나?”
“아주 잘 아시네요.”
“···정말 불합리하군.”
“뭐가요?”
나는 황제누스의 말에 적당히 응대하며 세르펜스에게 이불을 둘러주었다.
황제누스의 의도를 살피려면 그를 마주 봐야 할 것 같은데, 겁먹은 세르펜스를 그냥 떼어 놓는 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폭신한 이불로 싸 놓고 손을 꼬옥 잡아주니 녀석의 표정이 아주 조금 편안해졌다.
“누구는 고작 자네에게 잘해준 것만으로도 신뢰를 얻는데, 나는 말을 꺼내기만 해도 경계를 사야 한다는 것이.”
“세르펜스와 잘 지내는 건 포기한 거 아니었어요? 전 그런 줄 알았는데?”
“포기···, 했네. 아니, 포기했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눈앞에서 그러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시기하지 않을 수 있겠나?”
이거 나와 세르펜스가 사이 좋은 모습을 보고 샘이 나서, 대답을 못 들을 줄 알면서도 끼어들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는 걸까?
하기야 휴마누스가 과거 세르펜스에게 어깨동무를 한다거나 반가움의 포옹을 시도했을 때, 세르펜스가 어떤 반응을 보였던가.
어쩔 수 없이 받아주긴 했으나 대놓고 떨떠름한 기색을 드러내며 불편해 했다.
휴마누스는 그걸 쑥스러움으로 이해한 듯했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그게 불쾌함이었다는 사실을 황제누스도 알고 있을 테다.
그런데 자신이 세르펜스에게 하던 것 이상으로, 녀석이 내게 들러붙으며 행복해하니 울컥한 기분이 들 수밖에.
“하아···. 누가 만취했다는 얘기를 들어서 그런가 술이 당기는군.”
“뭡니까? 그 이상한 핑계는. 만취할 때까지 술을 들이켜고 싶다는 뜻입니까?”
“그래도 되나?”
“되겠습니까? 안 그래도 미쳤는데 알코올까지 들어가면 어찌 될 줄 알고요?”
황제누스는 이성 있는 미친놈이다. 미친 것치고는 얌전하게 구는 게 전부 이성이 남아있는 덕택이다.
그런데 이성을 날려 버리는 술을 준다?
미친놈에게 한 번 난장판을 벌여 보라고 자리를 깔아 주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절대 안 될 일이다.
“여태껏 사고 한 번 안 치고 얌전히 있었건만, 이리도 신용이 없다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맨정신으로 하세요. 그편이 더 진정성 있으니까.”
“······.”
“싫으면 계속 그렇게 입 닫고 지내시든가.”
말을 하지 않아서 답답한 건 저쪽이지 내가 아니다.
기왕이면 황제누스와도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저쪽이 비협조적으로 나오는데 난들 어쩌겠는가?
할 말이 있으면 하라고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내가 할 일은 끝났다.
이제 어떻게 나오나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데, 황제누스의 표정이 구겨졌다.
답답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딘지 모르게 화가 난 듯한 얼굴이다.
“자네가 생각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해 보이겠지만,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네.”
“그래요?”
“세르펜스와 처음 만났던 그날부터 내 노력은 시작됐네.”
현재누스의 몸을 차지한 이후 최선을 다해 협조했다는 얘기를 강조하려는 줄 알았건만, 까마득한 옛날이야기가 튀어나왔다.
굉장히 당혹스러웠으나 일단은 가만히 들어보기로 했다.
“그날 세르펜스는 정말 눈이 부실 정도로 밝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지. 그 얼굴을 다시 보고 싶어서 나는 그가 흥미를 느낄 만한 화제를 찾아 떠들어댔고, 실소라도 흘리지 않을까 싶어 투정을 부려 보기도 하고, 장난도 쳐 보았네. 하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지.”
“그랬어요···?”
“그뿐이겠는가? 세르펜스가 공작이 되었을 때는 홀로 남은 그가 안쓰러워, 바쁜 시간을 쪼개 하루가 멀다 하고 공작저를 방문했고. 성검의 주인이라는 직책이 그를 괴롭게 한다는 걸 알고, 그 짐을 대신 짊어지기까지 했네. 왜냐하면 그는 내가 진정으로 친우라 여기는 유일한 이였으니까.”
한 번 물꼬를 트자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는지 황제누스가 하소연을 토해냈다.
조금 갑작스럽다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의 자아가 휴마누스의 몸을 차지한 기간을 생각해 보면.
그리고 세르펜스가 그간 황제누스를 어떻게 대했는지를 떠올려 보면 굉장히 늦은 편이다.
“사실···. 세르펜스는 나를 그 정도로 가깝게 여기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네. 그는 세상 모든 이들과 같은 거리를 두고 대하였고,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거리감이 느껴졌으니. 하지만 그게 싫지 않았네. 내가 황태자라는 이유로 친분을 쌓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들과 그의 차이점이니, 오히려 기꺼웠네. 아쉬움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다른 이들보다 한 발짝 안쪽에 서 있다고 자신했네.”
표면적으로는 나에게 말하는 듯하지만, 역시나 이건 세르펜스에게 하는 말이 틀림없다.
그러나 녀석이 대화에 응해주지 않으니 이런 식으로 나를 거쳐서 말하는 거겠지.
“세르펜스와 함께 할 때면 황태자가 아닌 ‘나’로서, 남들보다 특별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네. 그도 나와 함께할 때 같은 기분을 느꼈으면 하고 바랐지. 제국을 이어받을 후계자라든가, 대륙을 구원할 영웅이라든가. 태어날 때부터 부여된 역할 따위가 아니라 그냥 한 명의 사람으로서, 우리는 서로를 특별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네.”
현재누스에게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얘기들이 황제누스의 입에서 나왔다.
그에게 세르펜스가 특별한 친구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다.
어린 세르펜스가 휴마누스 또한 자신과 같은 처지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어린 휴마누스도 세르펜스에게 동질감을 느꼈던 걸 테지.
비록 세르펜스는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빠르게 깨달았고, 휴마누스는 끝까지 그러지 못했지만.
‘아니지? 전부 다 착각이었던 건 아닌가?’
휴마누스도 황태자로서 압박감과 외로움을 느꼈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세르펜스를 각별히 여기게 된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