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1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18화(118/1105)
118회
28. 공작님과 일루미나티 (2)
‘에라, 나도 모르겠다.’
내가 수고하는 것도 아니고, 세르펜스의 일이 가중되는 것도 아니며, 유지스 또한 기꺼워하는 일이었다.
세르펜스에게 알아서 하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안 그래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정해졌으니, 자세한 임무 전달은 먹으면서 하죠! 아니면 다 먹고 하던가.”
“그게 좋겠어요.”
내 말에 유지스가 호응하며 조심스럽게 샴페인 뚜껑을 열었다.
축하를 위해 샴페인을 준비하긴 했으나, 실내이기도 하니 그것을 터트릴 생각은 없었나 보다.
‘톡-.’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병의 주둥이에서 하얀 김이 흘러나왔다.
“어쩌다 보니, 신입 맞이 환영회 겸 저의 첫 단독 임무의 성공을 기원하는 자리가 되어버렸네요.”
“이렇게 된 거, 건배사는 유지스가 하는 게 어떻습니까?”
나와 유지스가 하하 호호 웃으며 샴페인이 든 잔을 들어 올렸다. 세르펜스도 분위기에 맞춰주려는 듯, 싱겁게 웃으며 잔을 들었다.
그러나 테이블 위에는 여전히 잔 하나가 남아있었다.
“선배님이 어째서 주군의 이름을···? 그리고 방금 상황은 대체···.”
혼란스러워하는 한 줄기의 음성이 귀에 꽂혔다. 고개를 돌려보니 윈스톤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있었다.
‘설마, 내가 세르펜스를 그냥 이름으로 불렀었나?’
되짚어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 이전에, 대화의 흐름부터 문제였다. 마치 세르펜스가 나에게 허락을 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이거, 당황할 만도 하네.’
어쩐지 아까부터 윈스톤이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히 있더라니···.
안 그래도 자신도 모르는 새 일루미나티 단원이 되어있어,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었을 거다.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상황에, 내가 세르펜스를 이름으로 불러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세르펜스를 비롯해 유지스까지 너무 자연스럽게 넘겨버렸으니.
정신이 혼미해진 모양이다.
어째서 중간에 내 입을 틀어막지 않았느냐는 눈으로 세르펜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본인이 거기에 맞장구친 것은 생각도 안 하고, ‘선우가 입조심 안 한 것을 왜 내 탓으로 돌립니까?’라는 눈빛으로 받아쳤다.
“사실 오늘 모임은 일루미나티의 비밀 회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뒷수습은 해주려나 보다.
처음부터 준비된 것처럼, 세르펜스가 변명을 꺼내 들었다.
“맞아요, 일루미나티의 수장은 시온이니까요.”
“그게 아니더라도 저와 세르펜스는 친구 관계라, 원래 사석에서는 편하게 이름으로 부릅니다.”
유지스가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받았고,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거기에 편승했다.
계속해서 밀려드는 정보의 홍수에, 윈스톤은 진정하지 못하고 더욱 혼란스러워했다.
“레드포드 경.”
“예, 주군!”
세르펜스가 청아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로 윈스톤을 호명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그는 주군의 부름에 바로 응답했다.
“혼란스러우십니까?”
“···예.”
“이해합니다. 어째서 이런 자리에 본인이 불렸는지. 그리고 어째서 자신이 비밀 결사 단체의 일원이 된 것인지. 당혹스러울 만도 합니다.”
세르펜스가 정말 이해하고 저런 말을 하는 거라면, 내가 성을 간다.
말투부터 몹시 사이비 교주틱 하지 않은가. 무언가 시동을 걸고 있음이 분명하다.
“저희가 바스툴 왕국까지 간 것을 알고 계시니, 이미 눈치 채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의 말에 윈스톤은 어리둥절해 하며,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세르펜스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 말을 이어나갔다.
“일루미나티는 제국을 넘어 전 대륙의 평화를 위해. 범 대륙적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누가 세르펜스에게 유지스를 묻혔지? 나는 안 그랬어요.
애초에 윈스톤까지 더한다 쳐도 고작 네 명밖에 안 되는데, 범 대륙적으로 퍽이나 운영되고 있었겠다.
“한 국가에 묶여있다 보면 정치적으로 얽히고, 견제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는 동안 악마 숭배 세력을 놓칠지도 모르는 만큼, 그것은 불가결한 일입니다.”
몹시나 안타깝다는 듯, 씁쓸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이 오늘도 숭고하기 짝이 없다.
빠른 대처와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설정이 무척이나 비밀 결사 조직다웠다.
저 봐라.
일루미나티의 진정한 창시자 또한,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오늘 이 자리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선 안 됩니다.”
“그, 그런 중요한 자리에 어째서 저를···.”
윈스톤의 의문에 세르펜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의 입은 다물려 있으나, 어디선가 ‘그건 제가 레드포드 경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이 자동으로 음성 지원되는 표정이다.
실체 없는 목소리를 들은 것은 윈스톤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그가 깊이 감복하였다.
그러나 직접 말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는 꼴이, 진심으로 믿음을 내어준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저것도 재주다, 재주야.’
나도 모르게 절로 혀가 내둘러지는 연기다. 맞은 편에 앉은 유지스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관전하고 있었다.
아직 세르펜스는 윈스톤을 완전한 남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나마 이런 대화에 끼워주는 것도, 윈스톤이 악마 숭배 세력에 적의를 가지고 있어서. 그가 기사도를 신봉하는 고지식한 외골수라서.
그를 우리가 구해냄으로써, 그가 우리에게 느끼는 감사와 부채의식 등을 근거로.
‘다른 이들보다는 배신의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했을 뿐이겠지.’
그를 구해내며 ‘일루미나티’의 이름을 대었으니, 일루미나티의 정체를 알고 있는 그를 같은 배에 태워버리려는 속셈도 있을 거다.
“자, 자. 이제 빨리 짠하고, 어서 친목이나 다집시다.”
나의 당당한 친목질 선언에 윈스톤이 할많하않.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라는 표정을 지었다.
명색이 비밀 결사 단체인데, 그렇게 가벼워도 될 일인가 싶은 거겠지.
“적은 수니까, 우리끼리 더 똘똘 뭉쳐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어서 잔이나 들죠! 사 오신 분 성의도 있는데, 언제까지 구경만 할 겁니까?”
이번에야말로, 테이블 위에 놓였던 네 개의 잔이 모두 들렸다.
“신입 윈스톤님의 빠른 적응을 위해, 저의 첫 단독 임무의 무사 성공을 위해, 대륙의 평화를 위해! 광명이 함께 하길!”
유지스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건배사를 선창했다.
잘 나가다가 마지막에 사이비 종교 단체가 된 것 같지만, 아무렴 어떠랴! 즐겁고 뜻만 좋으면 그만이지!
“광명이 함께 하길!”
그녀의 마지막 어절을 따라 하며, 높이 치켜든 유지스의 잔에 나의 잔을 부딪쳤다. 세르펜스와 윈스톤은 묵묵히 잔을 내밀었다.
챙그랑하는 맑은소리가 울렸으나, 이래서는 제대로 된 건배가 아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잔을 거두지 않고, 일부러 눈썹을 찌푸리며, 그 둘을 째려봐 주었다.
“···광명이 함께 하길.”
세르펜스가 작게 실소를 흘리며 잔을 살짝 뒤로 거두었다가, 가볍게 잔을 가져다 대었다. 다시 한 번 챙하고 맑은소리가 울렸다.
모두의 시선이 윈스톤에게 쏠린다.
“과, 광명이 함께 하길···!”
아직도 얼떨떨한 모양이다. 그래도 곧 익숙해지겠지.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잔을 거둬 샴페인을 한 번에 들이켜고 빈 잔을 머리 위에 털었다.
“크~!”
내 행동에 세르펜스는 그냥 내 세계 문화려니 하고 넘어가며, 샴페인을 홀짝였다.
“시온은 술을 참 좋아하시나 봐요.”
예절이 어쩌고 하며 따질 만도 한데, 유지스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거 많이 마시라는 듯, 빈 잔을 바로 채워준다.
그 선만 지킨다면, 개인의 성향에 따른 행동에는 터치하지 않는 엘프다웠다.
법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남들에게 피해를 주고 제 욕심을 채우려 드는 이들 때문에, 최소한 지켜야 할 도덕성을 명시해 두기 위함이다.
예절과 격식 또한 마찬가지.
‘타고나길 남들을 배려하고 평화로운 종족인 엘프에게, 그런 건 애초부터 필요가 없었던 거겠지.’
이유는 달랐지만, 세르펜스와 유지스는 내 행동을 자연스럽게 넘겼다.
윈스톤은 우리가 이상한 건지, 자신이 이상한 건지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술도 술이지만, 그보단 그 분위기가 좋은 겁니다.”
평소보다 들뜨고, 신나는 분위기. 좀 더 허물없이 서로를 대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좋은 거다.
‘이 세계에 와서 마신 술들이 고급품들뿐이라 그런가, 맛도 훌륭하고!’
시온의 몸에 들어와서 내 몸보다 좋은 점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단연코 주량이 세다는 점을 뽑겠다.
몸 안에 신성력이나 오러, 마력 등등의 기운을 품고 있는 이들에 비하면 가소롭기 짝이 없으나, 일반인치고는 훌륭했다.
‘그래, 역시 술자리에선 술을 마셔줘야지!’
물론, 안 마셔도 분위기에 취해 마신 것처럼 놀 수는 있다.
처음 나와 술자리를 함께한 이들이 나중에 그것을 알게 되면 깜짝 놀랄 정도로, 아주 신명 나게!
똑같이 개가 될 바에야, 그냥 술을 마시면 되는게 아닌가 싶겠지. 하나, 아쉽게도 나는 알코올 쓰레기였다.
술이 조금만 들어가도 병든 닭처럼 꾸벅거리다, 술자리를 즐길 틈도 없이 잠들어버리는 걸 어쩌겠는가.
그때의 설움을 잔에 담아 샴페인을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코끝을 스치는 달큼한 향기와 혀끝을 쏘아대는 자극이 무척이나 즐겁다.
“그래서, 그 임무라는 건 뭔가요?”
유지스가 유자 타르트를 아주 큼직하게 잘라, 세르펜스의 접시 위에 올리며 물었다. 녀석이 그런 핑계 없이는 먼저 디저트에 손을 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라드라바’라는 도둑을 알고 계십니까?”
“알고 말고요. 그때 보통 난리도 아니었잖아요.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춘 데다, 사라진 재물들도 시중에 풀리지 않아서···. 앗, 설마 그 자금이라는 게?!”
과거를 회상하듯 ‘그땐 그랬지.’라는 투로 말하며, 나의 접시에 타르트를 올려주던 유지스가 별안간 놀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방금 지나가듯 엄청난 소리를 하지 않았어?!’
나도 덩달아 놀랐다.
나이가 세 자릿수라는 건 알았지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안 주고 세대···. 아니, 세기 차이가 훅 들어올 줄이야.
유지스가 윈스톤의 접시에도 타르트를 올려 주려 하니, 그가 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단 음식은 별로 즐기지 않는 터라···.”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그리고 같은 일루미나티끼리 그렇게 예의 차리시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냥 시온에게 하듯, 편히 대해주세요.”
그의 접시 위에 올려주려던 타르트 조각을 자신의 접시로 옮기며, 유지스가 살갑게 웃었다.
그러는 동안 세르펜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포크의 옆 날로 유자 타르트를 잘라 입에 넣었다.
타르트지와 크림치즈 필링. 그 위에 올라간 유자커드의 조화가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그러도록 노력해 보겠···소.”
조금 전 느낀 세기 차이 탓인가, 윈스톤이 조금 망설이며 답했다.
“그럼 얘기를 이어가도 되겠습니까?”
지가 타르트를 먹고 싶어서 그랬던 주제에, 윈스톤과 유지스의 대화가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 세르펜스가 말했다.
“네, 말씀해주세요.”
유지스가 자세를 바로 고쳐 앉았다. 그녀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위리디아님께서 추측하신 대로, 그자가 모았던 재물들을 이용할 생각입니다.”
“라드라바의 은신처를 찾으신 건가요?”
“정확한 위치는 아니나, 그 단서는 얻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세르펜스가 내 쪽에 슬쩍 시선을 던졌고, 유지스는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 룩스메아님의 은총이군요.”
본디, 성검의 주인인 휴마누스가 얻었어야 할 재물이다.
그런 것을 가로채는 일에 신 룩스메아의 은총이라는 표현이 붙으니, 참으로 괴이쩍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