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1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20화(120/1105)
120회
29. 공작가의 보좌관들 (1)
또다시 주말이 돌아왔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저번 주에 계획해두었던 케이크를 사러 공작저 밖으로 나섰다. 평소라면 혼자 외출했을 터이나, 오늘은 옆에 동행이 있었다.
“···윈스톤 경도 뭐 살 거 있습니까?”
“없소.”
돈을 챙겨 들고 저택을 나서는데, 그가 갑자기 말없이 따라붙더라.
처음에는 윈스톤도 밖에 볼일이 있나 보다 했다. 그러나 허리에 검을 차고, 일정한 지근거리를 유지하며 뒤따라 걷는 것이 마치 나를 호위라도 하는 모양새다.
“그럼 왜 따라오세요?”
“음?”
누가 보아도 따라오고 있는 주제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한다. 진심으로 내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만일 저것이 연기라면 대단한 능력이나, 윈스톤은 연기를 잘할 것 같지 않았다.
“저 따라오고 계신 거 아닙니까?”
“맞소.”
따라오는 건 맞는데, 왜 따라오느냐는 질문에는 어째서 그런 반응을 보였던 걸까.
잠깐 걸음을 멈췄다. 세르펜스가 내게 그러했던 것처럼, 윈스톤을 분석하듯 빤히 바라보았다.
전혀 모르겠네, 그 녀석은 대체 뭘 보고 날 분석해 낸 거람?
“혹시 듣지 못한 거요?”
“듣다니, 뭘요?”
“앞으로 선배님이 저택 밖을 나설 때면, 나더러 항상 호위하라는 명을 내리셨소.”
누가 그딴 걸 시켰느냐는 질문은 생략해도 상관이 없었다.
윈스톤에게 그런 명령을 시킬 수 있고, 시킬만한 사람은 세르펜스뿐이었으니.
“대체 왜 그런 명령을 내린 거래요?”
본인의 개인 호위를 보좌관에게 붙여 놓고, 자신은 혼자 다니는 귀족은 세상 천지에 세르펜스뿐일 거다.
당장 공작가의 다른 기사들에게 내 개인 호위를 맡긴다면 어떨까?
눈에 보이는 문제가 터져, 내가 누군가의 표적으로 노려지는 중이라면 모를까.
한가롭게, 치안 훌륭한 수도 중심지에 케이크를 사러 가는 일에 따라가는 것을 그 누구도 반기지 않을 거다.
세르펜스의 명이니 듣기야 하겠지만, 분명 자존심 상해 하겠지.
그러나 윈스톤은 아주 막중한 임무라도 받은 양, 그 표정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선배님은 그···, 중요한 위치의 분이질 않소.”
어쩐지 자꾸 윈스톤의 앞에서 나를 열심히 포장하며, 온갖 설정을 덕지덕지 붙인다 했다.
‘이러려고 그랬던 거냐?’
지금 윈스톤은 자신이 비밀 결사 단체의 수장이자, 신의 계시를 받는 존재를 호위하는 임무를 받았다고 생각하겠지.
남들이 보기에는 능력이 부족해서 주군이 떼어놓고 다니는 게 아니냐며, 손가락질할 일이었다.
하지만 윈스톤의 기준에서는 정 반대.
어쩌면 대륙의 미래가 걸렸을지도 모를, 중요 인사를 지키는 막중한 임무를 받은 것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본인이 받은 임무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에. 그는 지금 누구보다도 당당했다.
“걱정도 팔자지, 위험할 게 뭐가 있다고.”
“주군께선 선배님의 그러한 태도를 걱정하셨소.”
“제가 뭘 어쨌다고요?”
윈스톤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는 듯하더니, 내 허리춤에서 멈춰 섰다.
“검은 어디 갔소?”
“···주말이라 오늘은 쉬게 해줬습니다.”
“평일에도 두고 다니는 것으로 알고있소만.”
“세르펜스가 바로 옆에 있는데, 제가 검을 들어 뭐 합니까?”
평일에는 세르펜스를 믿고 검을 두고 다니는 것이 맞지만, 사실 오늘은 그냥 까먹었다. 평소에도 안 챙기던걸, 오늘이라고 잘만 챙겼겠다.
“허···.”
윈스톤이 탄식을 흘렸다. 총체적 난국을 맞닥뜨린 듯, 참담하기까지 한 표정.
고작 케이크 사러 가는 것뿐인데 저렇게까지 반응할 일인가?
“어차피 사람 많은 큰길로만 다니는데 뭐가 문젭니까? 방어 스크롤은 항상 품에 하나씩 넣고 다니니까 괜찮습니다.”
“선배님은 없는 사고도 만들어서, 기어이 휘말리는 사람이라 들었소.”
그건 오해다. 이미 있는 위험에 내가 휘말렸을 뿐, 만들어 내진 않았다.
그마저도 악마 숭배 세력과 엮였던, 세미타 거리와 바스툴 왕국에서 있었던 일뿐이었다.
나는 열심히 스스로를 변호했지만, 윈스톤은 들은 척도 안 했다.
그것은 윈스톤이 나를 무시해서 라기보다, 세르펜스가 그에게 미리 언질을 준 까닭이다.
[“그러한 얘기는 모두 주변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니, 속아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이전에도 그런 식으로 저를 떨어뜨려 놓으시고는···.”]그딴 식의 말을 하며 씁쓸한 표정을 짓고 말끝을 흐리는데, 그 누군들 속아 넘어가지 않겠는가.
둘의 대담을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아니나, 말만 들어도 녀석이 어떤 표정을 꾸며냈을지 머릿속에서 훤히 그려졌다.
‘야, 세르펜스! 너 인마, 그러는 거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윈스톤만 불쌍하게 됐다.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으니, 다시 공작저에 돌려보낼 수도 없고.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며 그의 모습을 살폈다.
‘군기가 바짝 들었네.’
허리를 빳빳이 세우고 주변을 경계하며 걷는 모습이 무척이나 긴박해 보일 정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줄 알겠다.
툭 까놓고 말해···.
“윈스톤 경, 지금 엄청나게 수상한 거 알아요?”
그의 거대한 신장과 덩치는 눈에 띄어도 보통 띄는 게 아니다. 그런 사람이 주변을 경계하며 움직이니 몹시나 위협적이다.
지나가던 사람들까지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덩달아 경계하고 있다.
개중에는 사건에 휘말리기 싫다는 듯. 걷는 속도가 갑자기 빨라져 멀리 달아나버리거나,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는 사람까지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제까지 윈스톤이 맡았던 일들이라곤···.’
말 뭐시기 백작가의 개 같은 도련님 뒤치다꺼리뿐이랬나.
그런 놈들이 노는 곳이야 뻔하다. 시비를 피하고자 더욱 위협적으로 보여야 했겠지.
하지만 우리가 향할 곳은 귀여운 디저트 가게가 즐비한 거리였다.
저러한 태도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해코지라도 하는 줄 알고, 겁먹은 가게 주인이 문을 닫아버린다면 밖에 나온 보람도 없지 않은가.
“그렇게 사방을 경계하며 다니다간, 경비대에 신고 들어가겠습니다! 긴장 좀 푸시죠?”
“누가 언제 어디서 선배님을 노릴지 모르오.”
“······.”
처음으로 세르펜스가 내린 정식 임무고, 개 같은 놈팡이를 호위하다 나처럼 얌전한 사람을 호위하게 되니 그 마음가짐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너무 과했다.
“대놓고 경계를 하는 것보다는 모르는 척하다, 결정적일 때 낚아채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요?”
“과연, 주군의 말씀이 옳았소. 밖으로 나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는 함정을 파려 하시다니···.”
“그런 얘기가 아니라, 계속 긴장하고 있다가 체력이 떨어지면 중요할 때 힘을 못 쓰지 않겠느냐. 뭐 그런 뜻이었습니다!”
여전히 미심쩍다는 표정이었으나,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받아들인 건지. 아니면 이대로는 끝이 없겠다고 생각한 건지, 그의 자세가 조금 풀어졌다.
절도 넘치는 발걸음은 여전하지만, 그건 직업병이나 마찬가지니 어쩔 수 없겠지.
“일단 윈스톤 경께서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잘 알겠습니다.”
실제의 나와 차이가 굉장히 벌어졌다는 건 확실하다. 정말 환장하겠네.
“세르펜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 명의 검사로서, 한 명의 사람으로서 존경스럽고, 감탄이 나올 지경이오. 세상에 이리도 완벽한 사람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요.”
이쪽의 차이도 좁혀질 기미가 없어 보인다. 윈스톤에게 유지스와 같은 눈치를 바라는 것은 역시나 무리였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완벽하길 강요당하는 사람만 있을 뿐, 사람은 완벽할 수 없어요.”
완벽하다는 말이 어째서 사람에게만 붙으면 한없이 불안정한 느낌이 드는 건지 모르겠다.
“그것은 주군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오?”
“누구든 해당하는 말입니다. 감정이 있는 한 사람은 완벽할 수 없고, 감정이 없는 사람을 완벽하다고 말할 수 없으니. 완벽한 사람이란 건 존재할 수 없는 게 아닐까요?”
“···무슨 뜻인지 모르겠소.”
선문답이라도 들은 듯한 표정이다.
그래, 말하는 나도 이게 뭔 소리인가 싶은데 듣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지.
“사실 세르펜스는 매운 거 못 먹어요.”
“···허?”
“약간 매콤한 걸 먹였을 때도 눈물이 그렁그렁했는데, 제대로 매운 걸 먹이면 울걸요?”
내가 씨익 웃으며 말하자, 윈스톤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문득 뭔가 떠올랐다는 듯 ‘아!’하는 탄성을 뱉었다.
“혹시 주군께서는 단 걸 좋아하시오?”
참 빨리도 알아챈다.
유자 타르트의 대부분은 세르펜스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그 이전 공작령에 내려갔다 왔을 때도 마찬가지. 나의 다이어트를 위해 군것질거리를 처리한다는 이유로 세르펜스가 해치웠다.
기차에서는 ‘어쩔 수 없이 먹는다.’라는 연기를 했으나, 내 체중 조절이 목적이었다면 그것을 뺏는 것으로 족했다.
‘뺏는 건 윈스톤이 했지만···.’
그것을 세르펜스가 먹어 치웠어야 할 이유는 없다.
사랑과 기침은 숨길 수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아닌 척 연기하고 있지만, 단것을 먹을 때 조금씩 새어 나오는 행복한 미소를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세르펜스가 단것을 먹는 걸 몇 번이고 봐 놓고, 이제야 눈치챘다니.’
고정관념이란 게 이래서 무서운 거다. 인간적인 면모를 알게 되니, 그제서야 눈에 훤히 보이던 것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제가 어디 다닐 때마다, 괜히 군것질거리를 바리바리 싸서 다니는 줄 아십니까?”
“선배님이 드시려고 그러는 줄 알았소.”
“저도 단 걸 꽤 즐기지만, 달고 살 정도는 아니거든요?”
“그렇게나 많···. 아니, 아무것도 아니오.”
그렇게나 많이 처먹어 놓고 그런 소릴 하냐고 묻는 거였다면, 많이 슬퍼질 것 같다. 고로 나는 슬퍼해야겠다. 흑흑.
“굳이 따지자면 매운 걸 더 좋아합니다. 윈스톤 경은요?”
“단 것만 아니라면, 가리지 않고 다 잘 먹는 편이오. 부득불 한 가지를 뽑자면 짠맛?”
하필 못 먹는 한 가지가 단맛이라니. 그래도 같이 내놓으면 단 짠 조화가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유지스는 유자를 좋아하니, 신맛을 좋아하려나?’
어째 네 명의 입맛이 모두 제각각이다. 그나마 단맛이라는 공통분모조차 사라졌다.
“그보다 주군께서 참···. 특이한 구석이 있었구려.”
“그냥 어린애 같다고 표현해도 괜찮습니다.”
내 말에, 윈스톤이 전혀 안 괜찮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사실이지 않나?
단 걸 좋아하고 매운 걸 싫어하는 것을 특이하다 표현하진 않는다. 그것을 숨기고, 시치미를 뚝 떼는 거라면 모를까.
세르펜스의 과거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린애 같은 입맛을 숨기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의 치기라 생각할 만했다.
그렇게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슬슬 걸었더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목표했던 밀크레이프 케이크를 무사히 구매하고, 공작저로 돌아오는 동안 그 어떤 위험도 없었다.
“것 보시죠. 아무 일도 없었잖습니까?”
“오늘 없었다고 한들, 내일도 없을 거라는 보장은 없소. 다음에도 어디 나갈 일이 있거든, 꼭 잊지 말고 말하고 가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따라나서겠소.”
“윈스톤 경은 제 호위가 아니라, 세···. 공작님의 호위라는 건 기억은 하고 계시죠?”
공작저에 도착했기에, 급히 호칭을 정정했다.
“주군께서는 스스로의 안전은 충분히 챙길 수 있는 분이오.”
그런 사람이 길거리에서 아무거나 주워 먹나?
세르펜스가 자신의 안위를 돌볼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성검의 주인] 꼴 안 났다. 하다못해 일반인의 절반 정도만 챙길 줄 알아도, 내 걱정도 절반가량 줄었을 텐데.
윈스톤은 다시 훈련하러 병영 쪽으로 돌아갔고, 나는 세르펜스가 있을 그의 서재로 향했다.
“이거 봐라, 이거 봐. 또 말도 없이 몰래 나갔네.”
서재는 텅 비어있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호위를 붙일 정도면 그냥 자신이 따라오면 되는 거다. 따로 갈 곳이 있어서 내게 윈스톤을 붙여 놓은 거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