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2화(12/1105)
12회
3. 공작님과 기차여행 (4)
“제가 원래 사람 보는 눈이 좋은 편이라서 말입니다···.”
이 말은 거짓이다.
첫인상과 실제 성격을 제대로 맞춘 적이 더 드물다.
“공작님을 처음 마주한 순간. 어째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세간에 들려오는 소문과는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스쳤습니다.”
“···변명 같지만 들어보겠습니다. 계속해보십시오.”
세르펜스가 여유롭게 ‘어디 한 번 해볼 테면, 해봐라.’라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처음엔 그게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 알 수 없는 괴리감 때문에, 지레 겁을 먹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그의 말대로. 최대한 진정하려 했지만 쿵쾅거리는 심장박동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일평생을 거짓된 모습으로 살아온 세르펜스와 달리 연기력도 형편없지.
“원래 상처 입고 주변에 가시를 세우는 야생의 동물을 마주하면 다들 그렇잖습니까?”
그러니 부족한 연기력은 말로 때울 수밖에.
감정을 숨길 수 없으면 어떠한가. 그 감정에 다른 의미를 덧붙이면 그만인 것을.
“···상처? 그게 지금 필요한 이야기입니까?”
내 말에 세르펜스가 도통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답한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정말로 자신이 상처를 입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인지.
‘어느 쪽이든 상관없나?’
어느 쪽이든 그는 동정받아 마땅하다.
나는 그를 동정해서, 그가 안쓰럽고 안타까워서 어떻게든 돕고 싶은 거다.
그렇게 생각하자.
“날을 세운 채 경계하는 모습은 당연히 위협적이고 무섭죠. 하지만 동시에 안타까우면서 짠한. 그런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하잖습니까.”
“그것이 지금 상황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쓸데없는 이야기로 논점을 흐리지 마십시오.”
세르펜스가 무결점의 미소로 나를 바라본다.
단 한 번도 타인에게 상처 따위는 받아본 적 없다는 듯. 온전히 애정 속에서만 자라난 듯.
지금 이 상황에서조차, 순진무구한 표정을 꾸며낸다.
“외면하지 마십시오. 그대로 두면 언젠가 썩기 마련입니다.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제는 압니다.”
바짝 마른 목소리는 떨리고, 또 갈라졌다.
완벽한 세르펜스에게 유일한 약점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자기 자신을 향한 감정’일 것이다.
“스스로 느끼지 못하셨을 뿐입니다. 공작님의 태도와 눈빛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당신이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아무리 숨기고 거짓으로 치장하려 한들, 숨길 수 없는 아픔이.”
“제게 그런 것은 없습니다.”
세르펜스가 더 들어볼 것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대답했다.
“공작님, 당신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어째서 자신을 죽이고, 억누르는 겁니까?”
“···리벨론 경.”
테이블 쪽으로 기대고 있던 세르펜스가 몸을 세워, 자세를 바로 했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올라갔던 입꼬리가 아래로 쳐지고, 여유롭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의 표정이 굳어진다.
“헛소리는 이제 그만 합시다.”
“아뇨, 헛소리도 아니고 이야기도 계속해야겠습니다.”
세르펜스의 얼굴이 굳어가다 못해, 서서히 표정이란 게 사라진다.
무표정이라는 단어조차 그것을 표현하기에 부족했다. 그 어떤 감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과할 정도로 아름다운 탓에, 인위적이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살아있는 사람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마치 잘 깎아낸 조각상처럼, 한 줌의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이 공작님을 그렇게 내모는 겁니까? 왜 그렇게까지 희생을 자처하시는 겁니까? 어째서 그렇게 아파하면서 울지도 못하고 덮어두십니까?”
계속해서 쌓아왔던 의문을 하나둘씩 쏟아냈다.
말을 하다 보니, 정말로 그가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져, 눈물이 흐른다.
“당신이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는 어렴풋이 짐작은 갑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책임에 짓눌리고, 절제를 강요당하고. 모든 욕구를 제한당해 왔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인형처럼 무감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세르펜스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아니라면. 제 추측이 틀렸다면, 어디 틀렸다고 말씀해보십시오.”
아무리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나다 한들,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도 상대가 세르펜스처럼 제 생각과 감정을 숨기는 게 익숙하다면 더더욱.
심지어 매우 구체적이고 정확하기까지 했으니.
조금만 생각해도 단순 추측으로 알아낼 수 있는 내용이 아님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르펜스는 그 점을 지적할 수 없겠지.’
그것을 지적하는 순간, 내가 말한 모든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테니.
···스스로 생각해도, 비겁하기 짝이 없다.
“어째서 아프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무엇이 그렇게 무서운 겁니까?”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죠? 아니지. 그렇군요. 그조차 외면당하신 겁니까?”
세르펜스의 표정은 여전히 고요했다.
표정을 꾸며 낼 여유조차 없는 것인지, 그럴 가치조차 없는 것인지.
‘내 말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건가? 그렇다면 어째서 부정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는 거지?’
『 아무런 감정이 없는 듯한 메마른 얼굴로. 섬뜩할 정도로 무표정한 얼굴로. ······ 아무 대답도 없다. 그저 가만히 지켜볼 뿐. 그저 가만히 기다릴 뿐. 』
아무런 표정도 말도 없었다. 그저 우두커니 앉아있는 그의 모습에 책에서 읽었던 묘사가 떠올랐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세르펜스는 그때 화를 내고 싶었을지도···.’
언제나 진심으로 웃고,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할 수 있었던 휴마누스와 달리.
가식으로 웃으며, 자신의 원하는 것을 모두 외면해야만 했던 처지가 비교되어 견딜 수 없었겠지.
‘자기 자신이 너무 비참해 보였겠지.’
휴마누스는 스스로 친구를 자처하던 주제에, 자신의 잣대에 저를 끼워 맞추고 있었다.
제멋대로 자신에 대해 떠들어대는 그의 모습이 꼴 보기 싫었을 거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결국. 휴마누스는 그를 이해하길 포기했고, 세르펜스는 그를 이해시키길 포기한 것이리라.
“하···, 공작님은 이제 보니 화내는 법도 모르시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다 나온다.
“···리벨론 경.”
긴 침묵을 지키던 세르펜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가 객실에 울렸다.
“당신은 지금 저를 이해하고 있다. 그리 말씀하고 계신 겁니까?”
“아니요, 이해하고 싶다고 말하는 겁니다.”
“당신은 저에 대해 대체 무엇을 알고 있는 겁니까?”
“모릅니다. 그러니 알고 싶은 겁니다.”
“당신은 대체. 도대체 제게 무엇을 바라는 겁니까?”
“그저···. 당신을 돕고 싶을 뿐입니다.”
적막한 공기 위에, 그와 나의 문답이 계속해서 쌓여간다.
“돕고 싶다니, 어째서···?”
여전히 나의 심증을 의심하는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혼란스럽다는 표정.
그의 얼굴에 작은 표정이 떠올랐다.
“눈앞에 상처를 입은 아이가 있는데, 구해 주는 것이 당연하잖습니까.”
* * *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세르펜스는 도망쳤다.
내 입장에서야 도망칠 수 없는 밀실이었지, 그의 기준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고 도망친다는데, 인간인 세르펜스야 오죽하겠는가.
“···뛰어내리는 줄 알고 깜짝 놀랐네.”
세르펜스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창문 밖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는 내가 반응조차 할 수 없는 속도로 창틀을 밟고, 기차의 지붕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언젠가, 그를 길고양이에 비유한 적이 있었는데. 방금의 행동을 보니 정말 적절했던 것 같다.
생긴 건 굳이 따지자면 강아지 과에 가까운데, 행동을 보면 고양잇과가 분명하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두 번 다시 그에 대해 파악하고 있다는 둥 소리는 못 할 것 같다.
그가 도망치기 전 살짝 내보인 표정은 무언가에 쫓기듯, 평소의 침착함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딘가 모르게 당황하는 것 같기도 했고, 동시에 겁을 먹은 것 같기도 했다.
‘괜히 죄책감 들게···.’
한숨을 푹- 내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가 계속 천장 위에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칸으로 옮겨갔는지도 모르겠다.
저녁 시간이 되어 창문을 열고 천장 위를 향해 그를 불러봤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래도 식사 시간이 되면 내려오지 않을까?’
···라 생각하며, 2인분을 주문해 놓았으나. 세르펜스가 나도 아니고, 고작 그딴 이유로 돌아올 리 만무했다.
결국, 식사의 절반은 싸늘하게 식은 채 방치되었다.
나는 그의 몫에 해당하는 식사를 제외한 빈 그릇만 치워달라 부탁하고, 남은 것은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혹시 몰라 옆에 쿠키가 담긴 종이백도 함께 놓아두었다.
‘내가 너무 성급했어.’
언제 어떤 이유로 시온이 죽게 되는지 몰라서.
그래서 어떻게든 그와 빠르게 친해져서, 내 안전을 보장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그의 신뢰를 얻기는커녕, 의심을 사버린 거고···.’
이래서야 내 서투름 탓에, 그를 몰아세운 것이나 다름없다.
언젠가 부딪혀야 할 문제였지만 너무 빨랐다. 좀 더 천천히 다가갔어야 했다.
하지만 내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그런 것을 떠올릴 만한 재주가 없었다.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는 결과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저 세르펜스가 더는 돌발행동을 하지 않길 바랄 뿐.
‘이렇게까지 했어도, 결국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려나.’
그는 여전히 나를 의심할 것이다. 오늘은 그저, 허점을 찔러 상황을 연기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적어도 뿌리치지만 않으면 좋을 텐데···.’
멍하니 앉아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객실 안에 비치된 책꽂이의 책을 하나 꺼내 들었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으며 그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처음에는 천장 위가 신경 쓰여 집중되지 않던 책이 시간이 지나니 한 장씩 넘어갔고. 서서히 지루해지고.
어느 순간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창문 너머의 하늘은 짙은 라벤더 색으로 물들어있었다.
‘아직 새벽인가···?’
아무리 편의를 위해 많은 것이 갖춰져 있는 곳이라 해도, 기차 특유의 흔들림은 어쩔 수 없는 탓이다.
그래도 침대가 좋아서 그런가. 어디 배기거나 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부스스 일어나 칸막이 너머의 침대들을 모두 확인해 봤지만, 세르펜스는 돌아오지 않은 듯했다.
테이블이 있는 소파 쪽을 보자 테이블 위의 음식이 담긴 그릇도, 쿠키가 들어있는 봉투도 그대로다.
어제 세르펜스가 꺼내놓은 서류도 그 장소에 그대로 있었고.
소파 다리 쪽에 떨어져 있는 책은 내가 읽다 잠들면서 떨어뜨린 것이겠지.
“···내가 왜 침대에서 자고 있지?”
머릿속이 아직도 비몽사몽 하다.
그가 돌아왔는데 내가 못 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샤워실도 열어봤다.
이건 정말 아니란 걸 알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닥을 기며 침대 밑도 살펴보았다.
세르펜스는 어디에도 없었다.
“대체 이게 뭐 하자는 짓이야?”
어처구니가 없다.
하지만 일단 침대로 옮겨준 것을 봐서는 나를 적대시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한 건가?
기왕 왔다 갈 거라면 쿠키라도 좀 들고 나갈 것이지. 괜시리 더 짠하다.
– 드르륵.
창문이 열리는 소리에 세르펜스인가 싶어,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온통 검정 일색인 누군가가 날렵한 몸놀림으로 방 안으로 몸을 날리는 모습이 보인다.
‘침입자? 암살자? 암살자라면 내가 목적일 리는 없을 테고, 목표는 세르펜스인가? 하지만 그는 이 자리에 없는데.’
숨어야 하나? 아니면 다른 칸으로 도망쳐?
그렇게 속으로 혼자 우왕좌왕 망설였으나, 그자는 아무런 위협도 하지 않았다.
눌러쓰고 있던 검은 후드를 걷어낸다.
그 안에 뒤집어쓴, 눈만 겨우 뚫어낸 복면까지 벗었다.
그와 동시에 검은 복면 안에 숨어있던 청은빛의 머리카락이 쏟아지듯 흘러내렸고, 세르펜스의 하얀 얼굴 또한 드러났다.
‘뭐죠, 이 상황?’
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