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21)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22화(122/1105)
122회
29. 공작가의 보좌관들 (3)
세르펜스는 올해 들어, 연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교류라 할 만한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1월에는 유지스와 접근 금지 아우라를 뿜어댔고, 2월에는 2황자인 프레드릭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고.
저번 달은 적당히 음식을 챙겨 들고, 유지스를 포함. 셋이 함께 테라스에서 느긋하게 노닥거리다 왔다.
‘게다가 작년 말에는 바스툴 왕국에 다녀왔으니, 연회 자체를 걸렀지.’
슬슬 인맥관리를 해야 할 때가 왔다.
안 그래도 가뜩이나 사람들과 사적인 교류를 피해왔던 세르펜스였다.
그런 상태로도 사람들이 그를 옹호해주었던 건, 어디까지나 그를 같은 사람이라기보다 메시아적 존재로 바라보았기 때문.
그래서 세르펜스는 홀로 고고할 수 있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개인의 사사로운 정에 의해, 자신의 우선순위가 밀려 도움을 받지 못할까 봐.
그렇다고 특별히 가까워지기에는 그의 약점이 되어, 악마 숭배자들에게 노려질까 봐서.
때문에, 세르펜스가 사적으로 누군가와 어울리지 않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던 거다.
모두를 평등하게 여기며, 그 무엇에도 휩쓸리지 않도록.
성검 문제만 제외하고 본다면, 세르펜스는 젊은 나이의 유력가다. 너도나도 친해지고 싶어 안달을 내야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의 작위가 높아서 다가갈 수 없다고 하기에는, 황태자인 휴마누스와의 친분을 주장하는 이들은 많았다.
‘세르펜스가 벽을 세운 것이 가장 큰 문제긴 한데···.’
그들 역시 세르펜스에게 벽을 세우고 있던 셈이다.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괜히 휴마누스가 ‘세르펜스에겐 친구가 나밖에 없다.’라고 단언했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세르펜스와 일정 거리 이상 가까워지려 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유지스가 세르펜스의 생일을 축하해 준다고 하니, 유독 반가움을 느꼈던 게 아닐까 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확실히 주인공 감이긴 하네.’
좌우간.
성검이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갔으니, 세르펜스가 사람들과 교류를 하는 것을 계속해서 미룰 수만은 없었다.
당장 그들과 사사로운 친분을 쌓는 건 불가능하더라도. 최소한 작년 연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러 학설 등을 주제들로 논평을 주고받거나, 정치적인 일로 논의를 나누는 정도는 유지해야 했다.
“제가 아르젠토 공작의 보좌관에 관한 이야기를 한 건, 어디까지나 알아서 피하고 조심해달라는 뜻이었습니다.”
나를 떨어뜨려 놓는 것이 걱정되는지, 황궁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올라탄 마차 안에서 세르펜스가 말했다.
그가 다른 귀족들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옆에서 자리를 지킨다는 방법도 있긴 했으나, 이전처럼 사람에 떠밀릴 가능성이 컸다.
알아먹기 힘든 얘기를 들으며 가만히 서 있는 것도 고역이고.
“예이~, 예~. 암요, 그러시겠죠.”
“선우, 당신은 정말···.”
나의 빈정거리는 대답에 그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심히 우려된다는 표정이다.
그가 걱정하는 바는 알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이런 얘기를 한 게 오늘뿐만이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또 뭐라고 하셨더라? 말을 안 해도 저라면 휘말릴 테니, 차라리 알고 주의라도 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에서 말한 거라고도 하셨고요.”
걱정도 하루 이틀이지,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해서 듣다 보면 잔소리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법이다.
“잘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죠?”
“알고 있다는 사람이···. 그래서 지난 자문회에서 그자를 노골적으로 쳐다본 건가?”
세르펜스에게 그러한 얘기를 듣고 나니 괜히 신경 쓰여, 무의식적으로 팔숨 경을 빤히 쳐다보며 살피고 있었나 보다.
갑자기 다리에 무언가 툭 닿는 느낌이 들어 확인해보니 세르펜스더라. 손을 의자 뒤쪽으로 뻗어,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나를 건드렸던 거다.
의심하는 티 좀 내지 말고, 딴 데 보라는 뜻이었다.
‘이 자식은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닌데, 대체 어떻게 눈치챘던 거지?’
하여간 귀신 같은 놈이다.
“괜히 도발하지 말고, 도발 당하지도 말고.”
“누가 들으면 제가 싸움 못 해서 안달이라도 난 줄 알겠습니다.”
“···아닌가?”
놀랐다는 듯, 그의 눈이 조금 커졌다.
‘저건 장난이야, 진심이야?’
대체 그의 머릿속에서 내 이미지는 어떻게 돼 먹은 것인지 모르겠다. 여하튼, 상식인을 보는 시선은 아니었다.
때마침 마차가 황궁에 도착했기에, 그것을 따져보지도 못한 채 찝찝한 기분으로 연회장으로 이동했다.
연회가 시작되고, 오랜만에 혼자서 연회장을 지키는 세르펜스에게 귀족들이 몰렸다. 나는 그들에게 떠밀리기 전에 먼저 떨어져 나왔다.
“오랜만입니다, 리벨론 경!”
반갑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니, 투스토르가 그곳에 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얘가 있었지?’
그가 모시는 상관은 세르펜스와 달리 여러 연회에 참여할 테니, 그곳에서 팔숨 경과도 마주치지 않았을까?
“오랜만은요, 어제도 자문회에서 뵈었잖습니까.”
“하하! 맞습니다! 자문회에서 항상 뵙는데도 대화를 나누지 못하니, 참으로 오래간만인 줄 알았지 뭡니까?”
처음 보았을 땐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던 주제에. 이제는 내 말이 무조건 맞는다는 듯 동조하며, 아부를 떨고 있다.
“저희 공작님께서 워낙에 유흥과는 거리가 머나먼 분이시다 보니, 황실 연회 외의 자리에는 참석하지 않아서 더 그런가 봅니다.”
“참 아쉬운 일입니다.”
과장스럽게, 그가 유감을 표했다.
“투스토르 경께서 모시는 분은 연회 같은 곳에 잘 참석하십니까?”
“참가할 수 있는 자리는 모조리 참석하십니다.”
놀지 못해 환장한 사람이거나, 인맥을 통해 세력을 불리려는 탐욕적인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다.
‘얘를 보면 후자인가?’
어쩌면 투스토르가 내게 열심히 손바닥을 비비는 것에 자신의 의지도 있겠지만, 그가 모시는 백작의 지시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럼 다른 귀족분들이나, 그 보좌관들을 많이 만나셨겠군요.”
“물론입니다! 누구 궁금하신 분이라도 있으십니까?”
사교계 출입이 잦다더니, 척하면 척이다.
나는 연회장을 둘러보았다.
아르젠토 공작은 세르펜스와 달리 자신의 세력을 만들어 뒀는지, 연령대가 다양한 귀족 무리와 함께 있었다.
세르펜스를 둘러싼 무리와 달리, 확실한 상하관계가 잡혀있는 듯 보였다. 대충 봐도 아르젠토 공작을 떠받들고 있다는 느낌이다.
‘팔숨 경은···.’
그를 찾는 것 또한 어렵지 않았다. 보좌관들이 모여있는 곳을 찾으면 되니까.
팔숨 경이 보좌관들 무리에서 왕 노릇을 하는 것이 보였다. 아주 그냥 제 상관과 똑같다.
‘저렇게 하는 짓이 똑같으니, 아르젠토 공작이 제 아들처럼 친근감을 느끼지.’
하는 꼬락서니가 마음에 들지 않아, ‘쯧-.’하고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역시! 고매하신 프라시더스 공작님의 보좌관답게, 저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 봅니다. 저도 완전 딱 질색입니다.”
권력을 향해 필사적으로 아부하고 있는 주제에, 자신은 그런 것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다는 식으로 투스토르가 말했다.
“팔숨 경은 어떤 분입니까?”
“자기주장이 강해서, 항상 자신이 주도하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는 분입니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큼, 큼-!”
투스토르가 헛기침을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내게 가까이 붙었다.
“리벨론 경을 그렇게 까고 다닙니다.”
“네?!”
“왜, 일전에 팔숨 경과 크게 싸우시지 않았습니까? 그 뒤로 교양이 없다느니, 단순 무식하고 속이 비비 꼬여서 말도 꼬아서 듣는다느니···.”
싸우고 나서 쿨하게 사과하고 끝낸 것처럼 굴더니, 뒤에서 호박씨를 무진장 까고 다닌 모양이다.
갑자기 눈앞의 투스토르가 대인배로 보일 지경이다.
“어쩌다 리벨론 경 같은 사람을 보좌관으로 들였는지 모르겠다고 하더이다. 프라시더스 공작님께 안 좋은 영향을 줄까 걱정이라면서 은연중에 프라시더스 공작님까지 돌려서 욕을 하지 뭡니까?”
“뭐, 그딴···!”
걱정하는 척 욕하기라니. 생각보다 질이 더 나쁘다.
“그게 다 리벨론 경의 대단함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는 사람이 그래서야, 프라시더스 공작님이 안됐다느니 하는데. 제가 다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지 뭡니까?”
내가 반응하자 더욱 신이 났는지, 투스토르가 미주알고주알 잘도 떠들어댔다.
“저번에 리벨론 경에게 그렇게 혼나고도 정신을 못 차렸나 봅니다.”
어째, 말하는 게 꼭 ‘가서 쟤 좀 혼내줘!’처럼 들린다. 말만 그런 게 아니라, 눈빛도 무언가 기대하는 듯했다.
투스토르의 눈이 부담스럽게 반짝거렸다.
‘이 자식, 지금 이간질하는 건 아니겠지?’
그 부담스러운 눈빛에, 나도 모르게 의심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반응이다.
“그냥 저는 사실을 전했을 뿐입니다! 약간 감정이 들어갔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제가 리벨론 경과 친하다 보니 그자가 저를 자꾸 배척하는 통에···.”
의심스럽다는 생각을 가감 없이 표정에 드러내며 투스토르를 바라보니, 그가 펄쩍 뛰며 자신을 변호했다.
황실의 연회에 참여할 때마다, 그가 내 수족처럼 행동했던 탓에 밉보였나 보다.
‘···그러고 보니, 얘만 보좌관 모임에서 떨어져 나와 있었네?’
하지만 내게 보였던 눈부신 태세전환을 생각하면, 내가 참여하지 않은 연회에서는 또 어떻게 행동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털긴 털어봐야지.
“그 외에는 없습니까? 절 욕하고 다니는 거 말고요.”
“그거 말고, 어떤···?”
“듣기로는 아르젠토 공작님과 무척이나 가깝다고 들었는데.”
“아~, 그거 말입니까?”
투스토르가 팔숨 경이 있는 곳에 눈길을 한번 주고는 조소를 흘렸다.
“우리 사이에서는 있는 대로 윗사람 행세를 하는 주제에. 아니, 그 정도를 넘어서 우리 백작님에게까지 아니꼽게 행동한단 말이지요? 그런 주제에 아르젠토 공작님 앞에서는 어찌나 잘 길들여진 개새···, 강아지 같이 구는지. 아주 그냥 같잖습니다.”
함께 까이는 처지라 그런가, 자신이 모시는 상관에게까지 없던 충심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모양이다.
“자신의 과거 생각은 안 하고, 공작 가문의 위세를 빌려 나대는 꼴이···.”
윗입술을 들썩이며 말하는 모습이, 뚜렷한 경멸을 담아내고 있었다.
“과거요?”
“아, 모르십니까?”
나는 당연히 모르고, 시온의 기억을 뒤적여봤지만 나오는 건 없었다.
“오래전 일인 데다, 사교 활동을 하지 않으시니 모르실 만도 합니다.”
시온의 기억을 뒤적이느라 골똘히 생각에 잠긴 것을, 모르느냐는 자신의 질문에 기분이 나빠 입을 다문 것으로 받아들였나 보다.
투스토르가 빠르게 말을 바꿔, 그럴 만도 하다며 알랑거렸다.
“팔숨 경의 가문은 본디 백작 가문이었으나, 이젠 그냥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없다고요?”
“예. 그의 아버지는 노름에 빠져 재산을 날려 먹고, 팔숨 경의 여동생까지 정략혼 형식으로 도박 빚과 맞바꿔 팔아먹으려 했다죠?”
아주 쓰레기 같은 놈이다.
그나저나 그러려 했다는 건, 그러지 못했다는 뜻인가?
“다행히도 그의 어머니가 미리 알고, 그녀와 함께 도망가서 그대로 잠적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게 또 화가 되어, 일방적인 혼약 파기를 빌미로 상대 가문이 영지전을 걸어온 겁니다.”
어떻게 버티기라도 해야 합의를 하든 말든 하지, 창고가 텅텅 빈 영지가 그것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병사들의 월급도 못 챙겨 줬겠지.’
순식간에 영지가 통째로 상대 가문에 넘어가 버렸다.
빚은 빚대로 지고, 영지까지 빼앗겨 버린 팔숨 백작은 자살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렇게 남겨진 팔숨 경은 홀로 남겨졌다.
가진 거라고는 무거운 빚과 영지 없는 백작가의 가주라는 허울 뿐인 직책이 전부였다.
그 직책 마저도, 일어서려는 그에게는 짐이 되었다.
‘한 가문의 가주가 다른 가문에 취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전에 친하던 이들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모두 거절당하고, 이리저리 무시당하며 치여 살았다는 모양이다.
그러다 무슨 결심을 했는지, 갑자기 어디에 사는지도 모를 여동생에게 직책을 넘긴다는 서류를 황실에 제출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직책에는 빚더미도 함께 묶여 있었다.
“원래 추심(推尋)하는 놈들이 사람 하나는 기똥차게 찾아낸다지 않습니까.”
그들은 조용히 숨어 살던 모녀를 찾아냈고, 그녀들은 아르젠토 공작의 보좌관이 된 팔숨 경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자신이 떠넘긴 책임이면서, 먼저 자신을 버린 건 당신네라며 그 청을 거절했다지 뭡니까?”
“그래서 그녀들은 어떻게 됐죠?”
“돈 많은 상인과 혼인하여 백작위를 넘긴 뒤, 바로 이혼하고 위자료로 받은 돈을 가지고 다시 잠적했다고 합니다. 어딘가에서 잘살고 있겠죠.”
사실상 작위를 돈 받고 넘긴 셈이다.
귀족 작위의 거래는 엄연히 불법이나, 혼인을 통해 배우자에게 그것을 넘기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걸 이용한 편법이다.
“팔숨 가문은 영지도 없고, 새로이 가주가 된 팔숨 백작에게는 팔숨 가문의 피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으니. 이게 멸문이랑 뭐가 다르겠습니까?”
아마 투스토르가 내비친 경멸은 그 때문인가보다.
저 혼자만 살겠다며 귀족으로서의 긍지와 가주로서의 책임을 버린 거나 마찬가지라며, 투스토르가 이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