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2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28화(128/1105)
128회
29. 공작가의 보좌관들 (9)
세르펜스가 괜찮으냐는 질문을 하는 것도 면구스럽다는 듯. 살금살금 눈치를 보며, 시선만으로 내 안위를 살핀다.
‘여기 있다는 건 방금 일어났던 소란도 알고 있었다는 걸 텐데···.’
고작 마차에 몰래 숨어들었다고 이러는 것 같지는 않고.
“아까 그거, 세르펜스가 한 겁니까?”
“그게···, 시종이 선우가 마실 음료에만 무언가를 더 타는 것 같길래···.”
말썽을 피우다 선생님께 걸려 변명을 하는 어린아이처럼, 세르펜스가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당연히 주의했어야 했는데···.’
술이 너무 수상해서, 그쪽에 신경을 집중하느라 방심했다. 그것을 타면서 시선을 붙잡아 놓고 뒤에서 수작질을 벌인 거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도 아니지 않아?’
모두의 시선은 ‘용감한 자의 불꽃’에 쏠려 있었다.
‘세르펜스가 숨어서 보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어후, 소름!’
현장에서 같은 물병의 물을 따라, 같은 통에 담긴 꿀을 떠서 섞었다. 그리고 그것을 먼저 들이키는 모습에.
무의식중에 마음을 놓았나 보다.
“알았어요, 알았어. 많이 놀라긴 했지만, 그게 제 목숨을 노린 공격이 아니란 걸 알았으니 괜찮습니다. 진정 됐어요.”
“···면목 없군.”
지켜준다고 해 놓고 본인이 위협을 가한 꼴이라 생각했나 보다. 보통 미안한 게 아닌지, 고개까지 푹 숙이며 재차 사과를 해왔다.
오랜만에 보는 소심펜스의 모습이다.
“절 구하려고 한 행동에 사과하지 말아 주실래요?”
“그래도···.”
“쓰읍─!”
인상은 찌푸리며 잇새로 숨을 들이켜 소리를 내니, 소심펜스가 하려던 말을 집어삼켰다.
“으음···. 어디 다친 곳은 없습니까?”
“척 보면 아시잖아요? 어디 사는 누구 씨가 어련히 안 다치게 잘 던져서 말이죠. 생채기 하나 안 났습니다.”
내 대답을 듣고 나서야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파리해진 안색이, 누가 보면 내가 아닌 그의 눈앞에서 칼날이 지나간 줄 알겠다.
“그렇게 마음 졸일 거면 언질 좀 해주시지. 따라온다는 사실만 미리 알았더라면, 눈치채고 덜 놀랐을 텐데.”
“······?”
참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이라 생각하며 투덜대듯 작게 중얼거렸다. 그것에 세르펜스가 의문을 표한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눈을 깜박거린다. 시선이 마주치니 고개까지 비스듬히 기울였다.
“···그 표정은 또 뭡니까?”
“선우가 먼저, 내게 따라와서 지켜달라 하지 않았던가?”
“제가? 언제요?”
언제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거지?
나도 모르는 새에 지나가듯 흘린 건가 해서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그런 말을 한 기억은 없다.
‘아무리 혼날 것 같아도 그렇지, 없는 얘기를 꾸며내기까지 할 줄이야!’
나는 우리 애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도끼눈을 뜨고 그를 노려보자, 세르펜스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를 믿고 있으니, 어디든 겁 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거라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숨어서 지켜주면 괜찮은 것 아니냐는 말을 돌려서 그리 말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네?! 아뇨, 전혀요! 세르펜스의 지위가 있으니, 그 보좌관인 저에게 대놓고 해코지하진 못 할 거란 얘기였는데요?”
“······.”
“······.”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대체 이 녀석은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얼마나 뻔뻔한 놈으로 봤기에, 그 말을 저런 식으로 해석하는 게 가능했던 건지. 도통 이해가 안 간다.
아니, 본인이 상관이라는 자각이 있기는 한 건가?
이쯤 되면 그냥 지금 당장 말을 놓아도 상관없는 거 아냐?
“상식적으로, 대낮에 남의. 그것도 다른 공작 가문의 저택에 숨어들면서까지 저를 호위하라고 할 리 없잖습니까?”
“상···, 뭐?”
세르펜스의 눈이 크게 뜨이고, 입까지 살짝 벌어졌다. 어이가 없다 못해, 충격적인 얘기라도 들은 듯한 표정과 흔들리는 동공.
녀석이 저렇게까지 놀라는 모습은 처음 봤다.
사상의 근간이 뿌리째 뒤흔들린 사람이 있다면, 그 표정이 저러할까.
“무슨 반응이 그래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 같다.
미심쩍지만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 일단 넘어가자.
“어쨌거나요. 아무리 세르펜스가 강하다 해도 그렇지, 공작가 기본 병력이 얼만데.”
“밤에 자주 오가서 익숙해져서 괜찮다.”
“밤에 몰래 오가는 거랑 대낮에 소란을 피운 뒤 도망치는 상황이랑 같습니까?”
“······.”
물론 세르펜스가 잡힐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다친다거나 정체를 들킨다거나 할까 봐. 그게 걱정인 거다.
가령 청은색의 긴 머리카락이라도 한 올 떨어져 있어봐라. 빼도 박도 못 하고···.
‘···아닌가? 세르펜스의 대외적 이미지를 생각해 봤을 때, 잡아떼고 모함이라 우기면 그만인가?’
이래서 평소 행실이 중요한 거겠지.
거기서 한 발 나아가 눈물을 글썽이면서. 세상 처량한 표정으로,
‘이 모든 건 여러분께 믿음을 드리지 못한 저의 잘못이 큽니다. 어쩔 수··· 없···, 흐읍!’
···따위의 대사와 함께 가련미를 뽐내며 입을 틀어막는다면!
그 누가 세르펜스를 비난할 수 있을까.
‘[성검의 주인]에서도 세르펜스가 우는 법만 알았더라면! 저 대사만 읊었더라면!’
사람 일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
시간 여유가 되는 대로, 방금 대사를 세르펜스에게 외우게 하고 연습시켜놔야겠다.
“그리고 단검은 또 뭔데요. 처음부터 작정하고 챙긴 겁니까?”
“검이 길면 잠입할 때 거추장스럽다 보니···.”
제 딴에는 검 좀 챙겨 들고 다니라는 내 말을 지키려 한 건가 보다. 기특하긴 하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그딴 이유로 주 무장을 내팽개치고 다니지 말라고!’
도대체가.
아무리 몸놀림이 고양이처럼 은밀하면서 가볍고 유연해도 그렇지. 어디서 암살 같은 걸 배운 것도 아닐 텐···.
‘···어쩌지? 진짜 받았을 것 같은 데?’
어린애를 고문까지 하던 양반들이다. 그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약과다.
“아, 그 출처 때문에 들킬 일은 없을 거다. 그때 얘기를 듣고 난 뒤, 혹시나 해서 암흑가에서 구해놓은 거라···.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지만.”
다른 생각에 잠겨있자니, 오늘도 세르펜스가 알아서 설명을 빙자한 변명을 덧붙였다.
그도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했던 건 아닌 모양.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쪽으로 던질 생각은 없었던 거겠지.
‘마침 챙겨온 단검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없었다면 나뭇가지라도 꺾어 던졌으려나.’
하마터면 나뭇가지 암살자에 관한 소문으로 수도가 떠들썩해질 뻔했다.
나뭇가지 암살자에게 노려지는 사람이 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그런데 꿀물에 탔던 건 대체 뭘까요? 역시 독? 독 마시고 쓰러지나, 암살 위협을 당하나 아르젠토 공작가의 입장에서는 좋을 게 하나도 없을 텐데···.”
내 질문에, 세르펜스가 갑자기 자신의 손가락을 슬쩍 핥는다. 아까 내 손을 잡았던 손이다.
“···뭐 하세요?”
“으음···. 이 정도로는 확인이 어렵나?”
“지금, 뭐가 든 건지 직접 맛을 봐서 확인해 본 겁니까?!”
환장하겠다.
“구강기에 들어선 아기세요? 무턱대고 입에 아무거나 집어넣지 좀 마시죠?”
“그 표현은···. 일단 넘어갑시다.”
그걸 그냥 넘어간다고?
충동적으로 나온 말이라 뭐라고 할 줄 알고, 뱉어 놓고 살짝 긴장했는데. 세르펜스는 내가 저를 어떻게 취급하든 그냥 포기했나 보다.
“나는 신성력이 있으니 어지간한 독은 통하지 않는 몸이라 상관없으나. 선우, 당신은 다르지 않던가?”
이 말인즉슨, ‘그러는 너야말로 아무거나 입에 넣으려 해 놓고, 남 말 하지 마라.’라는 뜻이렷다.
반박의 여지가 없다.
“쳇-!’
패배를 시인하니, 세르펜스가 한결 당당해진 표정으로 무언가를 달라는 듯 손을 내민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여전히 끈적거리는 나의 오른손.
“미쳤습니까, 세르펜스?! 지금 제 손을 핥으려고···!”
화들짝 놀라,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빼며 내 오른손을 왼손으로 숨기듯 감싸 쥐었다.
그러자 세르펜스의 눈이 급작스럽게 가라앉는다.
차게 식은 눈빛으로 그가 정확한 요구사항을 말했다.
“···손수건.”
“아···.”
그러고 보니 손수건을 계속 손에 쥐고 있었다. 꿀물을 머금어 축축하고 끈적거리는 그것을 차마 주머니에 넣을 수 없어서.
나는 손수건을 세르펜스에게 얌전히 건넸다.
세르펜스는 그것을 받아들고 입가로 가져갔다.
“으음···. 독까지는 아니고, 환각성 약물 같군. 기본적으로 지효성이지만, 알코올 섭취 등으로 혈류가 빨라지면 약효 또한 빠르게 올라오는 종류의···. 그리고 약간의 각성제도 섞여 있나?”
환각을 보이게 하고, 흥분을 유도하는 각성제라···. 내가 술에 취해서 미쳐 날뛰는 모습을 만들어 내고 싶었나 보다.
어쩌면 그런 나를 도발해서, 환각을 보고있을 내가 자신을 공격하도록 유도할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환각성 약물이라면, 마약 아냐···?’
독은 즉사만 아니라면 세르펜스가 치료해주겠거니 하는 생각에, 무척이나 막연하게 느껴졌다.
하나, 몰래 먹이려 했던 게 마약이라 하니 소름이 끼쳤다.
‘몸은 신성력으로 치유가 되겠지만, 정신은 어떻게 되는 건데?’
신성력에 정신 안정 기능이 있다 해도 그때뿐 아닌가? 마약에 취했을 때의 기억은 고스란히 남을 텐데.
마약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 때문일까.
나 자신이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될 것 같다는 공포가 일었다.
대중 매체에서 흔히 떠들어대던, ‘처음은 호기심으로 딱 한 번만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었는데···.’로 시작하는.
한 번이라도 경험하면 놓을 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과연 내가 그것에 노출되었을 때, 중독되지 않고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
덜컥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잠깐만···. 그런데 얘는 왜 이렇게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건데?’
익숙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미쳤어요, 세르펜스?!”
“살짝 핥은 정도면 극미량이니 상관없다.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기도 전에 분해될 정도이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내놔요, 그거 압수입니다! 돌아가는 대로 깨끗이 빨아서, 소각로에 태워버릴 겁니다!”
그딴 건 줄 알았으면 절대 입을 대게 하지 않았을 거다.
‘나는 그냥 독의 유무만 판별하려는 줄 알았지!’
더군다나 지효성 약의 효과까지 알아냈다는 건, 분명 신성력으로 혈류 속도까지 조정했다는 얘기.
신성력을 그딴 곳에 사용하다니. 룩스메아가 땅을 치며 통곡할 일이다.
진짜, 내가 얘 때문에 못 살겠다.
“안됩니다.”
“왜요!”
“좀 더 정밀한 성분 조사 후, 정확한 약물의 정체를 밝혀내고 그 입수 루트를 확인해야 합니다.”
“···정말 그게 답니까?”
“달리 뭐가 있나?”
세르펜스가 한 점의 흐림 없이, 맑고 투명한 눈동자로 대답해왔다. 괜찮아 보이기는 하는데···.
그가 마약 따위에 손댈 것 같지는 않으나,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저랑 약속합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약물이나 신성력 따위에, 두 번 다시 정신을 의탁하지 않기로.”
“갑자기 그 얘기가 왜 나오지?”
“왜겠습니까? 세르펜스는 전적이 있잖아요. 아주 요주의 인물입니다.”
“···약물에는 손댄 적 없는데.”
“아무튼요!”
그도 그러할 게, 긴 시간 동안 신성력에 의지하며 살아온 녀석이 아니던가.
아무리 그것에 대한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는 하여도. 천에 하나,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 나를 붙잡는다.
“나를 너무 못 믿는 거 아닌가?”
“그냥은 못 믿고, 약속하면 믿어줄게요.”
“···알았다. 약속하지.”
“감정 소모는 언제나 건전하게! 아셨죠?”
“그래.”
구두로 한 약속에 불과하지만, 세르펜스라면 분명 지켜주겠지.
그의 확답을 받고 나니 굉장히 뿌듯했다. 큰 문제 하나를 처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와 눈을 마주쳤다. 녀석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슬슬 다 와 가니, 나는 먼저 내리겠다.”
“달리는 마차에서요?”
“흐음, 역시 눈에 띄려나···?”
나와 세르펜스가 생각하는 ‘달리는 마차에서 뛰어내릴 때의 주의사항’은 많이 다른가 보다.
‘그러고 보니, 얘 몰래 탄 거였지?’
마차는 사용이 다 끝나고 난 뒤, 마부가 안과 밖을 꼼꼼히 확인하며 청소나 결손 등을 확인했다.
그 때문에 먼저 내리려나 본데···.
“내릴 때 제가 넘어지면서 큰소리를 지르며 시선을 끌 테니, 반대편 문으로 몰래 빠져나가세요.”
“옆에 골목이 보일 때, 그쪽으로 바로 뛰어들면···.”
“쉽고 안전한 길로 갑시다! 밖에서 누가 볼 수도 있고, 제가 마차 문을 제때 못 닫을 수도 있잖습니까.”
“···넘어지면 다칠 텐데, 그게 안전한 건가?”
“다친 건 세르펜스가 치료해 줄 텐데요, 뭘.”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니, 세르펜스가 머뭇거리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먼저 방에 가서 기다리고 있겠다.”
“···네? 누구 방이요? 제 방?”
구태여 그럴 필요는 없지 않나?
오늘 일에 대한 보고 차, 내가 그의 집무실이나 서재로 가면 되는 문제다.
“그냥 서재에서 기다리시죠? 방에 들렸다가 올라가겠습니다. 지금 찝찝해서 빨리 씻고 싶거든요.”
“알겠다, 응접실에서 기다리지. 그 대신 지금 입은 옷가지들도 챙겨오도록.”
“또 맛보시려고요?”
농담 삼아 던진 말에, 세르펜스가 혐오감을 조금도 감추지 않고 여실히 드러냈다.
“아, 아니-! 농담이었거든요?! 옷소매에도 꿀물이 묻었고, 용감한 어쩌고 하는 술의 성분도 확인해보려는 거잖아요! 압니다, 저도!”
“······.”
“그 표정 진짜 상처받으니까, 그만둬 주실래요? 아니, 제발 그만둬 주세요!”
뭔 농담도 못 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