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2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30화(130/1105)
130회
30. 공작가 간의 대립 (2)
다른 보좌관에 대해서는 차차 알아보기로 했다.
당장 급한 것은 아르젠토 공작가다. 그쪽의 정보원들로 인해 우리 쪽 정보원들까지 묶여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운만 좋으면 팔숨 경을 조사하다 딸려 나올 수도 있고···.
‘이건 너무 희망적인 얘긴가?’
암흑가의 정보상을 이용할 수도 있겠으나, 명확한 조사 목적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그들이 악마 숭배 세력과 연관이 되어 있는가?’를 내걸고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것과 그냥 막연히 자료를 모으는 것.
조사 과정과 방법도 달라질 테고, 그 결과물 또한 천지 차이일 수밖에.
“집사는 하시던 대로 아르젠토 가문 측과 대치 중인 정보원들의 관리를 부탁합니다. 약에 관한 조사는 부 집사와 로베르토 씨께서 담당해 주시고···.”
이제 슬슬 대화를 마무리 지으려나 보다. 세르투스가 각자가 할 일을 지시하기 시작했다.
“네, 여유가 생기는 대로 제가 잘 확인하고 신경 쓰겠습니다.”
“바쁘실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세르투스가 저를 보며 말끝을 흐리자, 제 주인이 하고자 하는 말을 눈치챈 한스가 망설임 없이 곧장 대답했다.
그에 세르투스는 너무 부담을 준 게 아닐는지 우려된다는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온 군이 와준 덕분에 최근 집사 업무가 많이 줄어, 요즘 체력이 남아돌 정돕니다. 그 정도는 거뜬합니다.”
걱정을 연기한 목소리에 한스가 몹시 기꺼워하며 말했다. 세르투스가 다행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며, 이올렌을 바라보았다.
“최우선적으로 약물이 정확히 무엇인지 밝혀지는 대로, 부 집사님을 통해 1차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그 이후는 진행 상황에 따라 나눠서 알리겠습니다.”
이올렌이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
어느 정도 교육을 받긴 했다더니. 당장 집사로 취직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각이 잘 잡혀있다.
지시 전달이 끝났고, 슬슬 저녁 시간도 다 되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좌관님.”
세르투스와 식사실로 향하려는 나를 제온이 불러세웠다.
내가 시온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업무 관련 일이 아니면 내게 말을 붙이지 않던 그였다.
아르젠토 공작저에서 있었던 일이나, 팔숨 경에 관한 질문이려나···?
“네, 더 물어보실 거라도 있으십니까?”
“그게 아니라···.”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제온이 한참을 미적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냥. 몸조심하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제온은 그 말만을 남기고,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그가 말하는 건 ‘내’가 아닌 ‘이 몸’을 뜻하는 거겠지.’
그것을 알고 있다 보니, 어딘가 씁쓸해졌다.
* * *
식사를 끝낸 후, 평소대로 본관 5층에 있는 세르투스의 개인 서재로 올라왔다.
“그런데 세르투스···가 아니라! 세르펜스!”
“···세르투스?”
속으로 계속 세르펜스를 세르투스라 부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말이 헛나왔다. 이젠 그만해야겠다.
“갑자기 내 이름을 잊어버린 건 아닐 테고.”
“그냥 말실숩니다! 속으로 생각만 한다는 게 그만···.”
손까지 내저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주장을 펼쳐봤으나, 그의 눈빛이 더욱 매서워졌다.
어서 바른대로 고하라는 눈이다.
“우리 세상에는 ‘브루투스’라고 하는 배신의 아이콘 같은 사람이 있는데···. 뭐, 그런 겁니다.”
“배신···?”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세르펜스가 배신이란 단어를 중얼거렸다.
그런 말을 한 심중을 파악하려는 듯 내 눈을 빤히 마주한다. 그리 오래지 않아, 그의 얼굴에 깃들었던 의문이 확신으로 변했다.
“아까 내가 선우, 당신을 편들어 주지 않아서 화가···. 아니지. 서운···하다기보다는. 혹시 삐진 건가?”
“······.”
삐돌이 세르펜스에게 삐졌느냐는 지적을 받게 될 줄이야.
하지만 정답이라 반박할 말이 없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 내 행동과 말투는 가벼웠다. 그리고 종종 이상한 단어를 쓰는 등 수상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팔숨 경도 사교계에서 그런 식으로 떠들고 다녔기도 하고.’
이 저택에 있는 자들은 지체 높은 공작가에 걸맞는 사람들뿐이다. 몸에는 격식이 배어 있고, 입에는 교양이 담겨 있는.
그중에서 나만이 유별난 거다.
그래서 만만한 것이. 작정하고 나쁘게 몰아가기 딱 좋은 사람이 나라는 거겠지.
‘세르펜스의 대외적 이미지상, 제 사람을 끊어내지 못하고 보호해 줄 것이라 판단했을 테고.’
그들이 알고 있는 세르펜스와는 별개로, 그라면 분명 나를 감싸 줄 것이다. 그러다 곤란한 일에 처하게 될지도.
그저 주변만 갉아먹는 것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거기까지가 한 세트.
‘이제라도 조금씩 바뀌어야 하나···?’
그동안은 세르펜스가 받아줘서 괜찮다고 생각해서 계속 편하게 행동했었는데, 평판을 깎아 먹기 좋다는 말에 반박하지 않던 그의 모습을 봤더니.
괜스레, 내가 잘못한 것 같다. 울적해졌다.
그게 불편하고 자신의 이미지에 해가 된다면 직설적으로 말해주었으면 고쳤을 텐데, 하는 생각에.
하지만 내 행동을 받아주었을 뿐인 세르펜스를 탓할 수는 없어서.
속으로 작은 반항을 했던 것인데. 그가 너무 편해진 나머지, 바로 말실수로 티를 내버렸다.
“으음···. 선우, 당신이 남들과 다르고 철면피한 구석이 있다는 건 사실이잖은가. 내게 자신을 부정하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선우.”
세르펜스가 나를 타이르듯 불렀다. 어째서인가 무척이나 괴롭다는 표정을 짓고.
“상대를 깎아내고 끌어내리려 마음먹는다면, 얼마든지 그러는 게 가능한 세상이다. 어떻게 행동하건 결과는 같다. 자신을 버리고, 타인의 기준에 완벽하게 부합되는 모습에 끼워 맞추지 않는 이상.”
“···세르, 펜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이곳 기준에 맞게 변하려 한다면 확실히 평판이 나아지기는 하겠지. 그것을 적응이라 한다면 그리 부를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가 잠시 말을 끊고, 호흡을 골랐다.
“나는 그대가··· 변하지 않길 바란다. 그러지 않았으면 해.”
세르펜스가 간원하듯 말했다.
아까 그가 지었던, 미안하다는 표정이 무엇 때문인지 알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그는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혀 미안해할 것 없는데···.’
내가 나로 존재하여도 괜찮다는 인정.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다.
내가 그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지, 그가 나에게 사과해야 할 일이 아니다.
“선우, 당신은 나처럼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많은 것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래서, 정말 내가 그래도 되겠냐는 질문은 그냥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렸다.
“···세르투스라 부른 건 취소할게요.”
“그래. 고맙다.”
세르펜스가 빙그레,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저는 세르펜스가 저 때문에 불편을 감내하고 있다는 줄 알고···. 그래서 그들의 말에 반박할 말이 없어서 제 시선을 피하고 미안해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럴 리가.”
불편하기는커녕, 무척이나 가뿐하다는 얼굴로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예기치 못한 곳에서 위로받고, 마음이 치유된다고 하더니. 이게 바로 그런 건가 보다.
우중충하던 머릿속이 맑게 갠 느낌이다.
“그래서. 무슨 얘기를 하려고 불렀던 거지?”
내 표정이 풀린 것을 확인한 세르펜스가 본래의 화두로 돌아왔다.
“아, 참. 그냥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서요.”
“아까 다 이야기된 것 아니었나?”
“다른 사람들 말고요. 세르펜스가 남들 손에 일을 다 맡겨둘 사람은 아니잖아요?”
세 사람에게는 각각 일감을 던져줘 놓고, 정작 본인은 무엇을 할 예정인지에 대해선 쏙 빼놨다.
그에 대해 지적하니, 세르펜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알아들었음을 표했다.
“선우의 잔에 약을 탄 시종을 조사해볼 생각입니다. 그 보좌관의 지시를 받고 일을 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겠지.”
“허벅지에 칼 꽂힌 놈 말이죠? 직접 만나보시게요?”
세르펜스가 고개를 저었다.
“협박해서 자백을 얻어내거나, 회유해서 간자로 쓰는 방법도 있지만. 양쪽 모두 그다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군.”
당연히 그중 하나를 행할 거라 생각했으나, 세르펜스는 회의적이라는 반응이었다.
“저는 그러려고 일부러 그자의 허벅지에 칼을 맞춘 줄 알았는데···.”
아르젠토 공작 또한 신성력이 있기는 하나, 시종 하나 다쳤다고 직접 나서 신성력으로 치료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치료를 위한 금전적 지원과 며칠 간의 휴가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세르펜스라면 직접 치료해 준 뒤, 위의 지원까지 해주었겠지만.
‘이러니 저택의 사용인들이 세르펜스라면 환장을 하지.’
업무 중 얻은 크고 작은 상처들을 치료해 주며 걱정하는 낯빛을 했을 테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휴가’가 지급된다는 것.
한동안 저택을 나와 있을 테니, 그때를 노리고 접근을 하기 위해 고의로 겨냥한 줄 알았다.
“당신이 깨진 유리잔 파편에 다치지 않을 만한 각도가 그 방향뿐이라 어쩔 수 없었다.”
“···어, 음.”
고맙다고 칭찬을 해줘야 하는 건지, 그러면 안 된다고 혼을 내줘야 할지 모르겠네.
칼을 맞은 시종이 무고한 이였다면 모를까···.
잠시 고민하다가, 이번만은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기로 했다.
“협박이나 심문을 통해 그자의 입을 열게 한대도, 당장은 그 보좌관을 몰아갈 다른 증거가 갖춰지지 않았다. 모함일 뿐이라며, 흐지부지 넘어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증거를 모을 때까지 납치해 둔다면, 괜한 경계심만 살 뿐이다.”
멀뚱히 있으니, 언제나 그러하듯 세르펜스가 알아서 상세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보통 악당 캐릭터는 자신의 계획을 줄줄이 말하는 버릇이 있던데···.’
[성검의 주인]에서 악마의 편으로 돌아섰을 때는 항상 침묵을 지키던 그가, 대륙의 편에서는 그 반대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그리고···. 갑자기 왜 웃는 거지?”
“아뇨, 그냥. 세르펜스가 너무 친절해서요.”
세르펜스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이내, ‘그래, 얘가 뜬금없는 반응을 보이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도 아니니 그러려니 하자.’라는 느낌으로 변화했다.
그는 다시 입을 열어 설명을 이어나갔다.
“회유를 위해서라면 이쪽의 정체를 밝혀야겠지. 그게 아니라 제3 세력을 위장한다 하여도, 그자가 완벽하게 넘어오리라는 보장이 없다. 옆에 두고 계속 감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만일 그자가 그 보좌관에게 접촉 사실을 알린다면. 그 또한 경계를 살 일이다.”
“그도 그렇네요.”
“차라리 그자를 조사해 두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것을 이용하여 증인으로 세우는 편이 낫다.”
이해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 외에는 오늘 일에 대한 아르젠토 공작가의 대응에 따라 갈리겠지.”
침입자를 잡아내겠다고 선언하거나, 그냥 찾아내지 못했다는 발표로 그치거나···.
“짐작하건대 거짓으로 범인을 체포하고, 뒤에서 몰래 조사를 진행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본다.”
공작가로서의 명예와 자존심이 걸린 일이었다.
또한, 오늘 모임에서 보좌관들이 돌아가기 전에 나온 이야기들도 있으니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