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3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35화(135/1105)
135회
30. 공작가 간의 대립 (7)
“스토커네.”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내 감상은 이 한 마디로 충분했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여기 계신 아리따운 아가씨께 관심이 있어서 먼발치에서 지켜본 것뿐입니다! 스크롤을 자주 사러 온 것도 어디까지나 대화를 좀 붙여 보려던 거고···. 이름을 남기지 않았던 건, 신비주의 작전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레세라투스 님께서도 제게 관심을 둬 주시지 않을까 해서···.”
곧 죽어도 자신은 잘못하지 않았고, 오해에 불과하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순도 100% 스토커 발언인데?’
본인이 누군지도 밝히지 않고, 직장에 찾아와서 치근덕거리며, 몰래 숨어서 지켜봤다니.
완벽한 스토커의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노라, 자신의 입으로 당당하게 밝히고 있었다.
이쯤 되면 그냥 자백이라 보아도 무방했다.
“그것 때문에 당사자가 불안과 위협을 느꼈다잖아, 그게 스토킹이지!”
내 말에 윈스톤이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쩐지, 너무 쉽게 잡힌 것이 이상하다 했다.
뭔가 큰 사건이 일어날 조짐인 줄 알았는데, 그냥 조질 놈만 튀어나왔다.
“스토킹이 아니라니까요!”
“거 보십시오! 당사자인 레세라투스 님께서도 아니라고 말씀해주시지 않습니까!”
솔레르티아가 스토커의 스토킹을 부정하자, 놈이 얼굴을 환히 밝히며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다.
“역시 레세라투스 님···. 아니, 솔레르티아! 나의 태양! 당신이라면 이 마음을 알아줄 거라 믿었습니다! 이제 저의 사랑을 받아주시는···.”
“제 능력을 탐낸 악마 숭배세력에서 보낸 끄나풀일 거예요! 제 사업을 망쳐서, 제가 길바닥에 나앉게 되면 슬그머니 다가와 달콤한 말로 꾀어내서, 저를 스카우트하려던 속셈이었겠죠!”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굉장하다.
스토커의 개 헛소리를 무시한 솔레르티아가 열을 올리며 분통을 터트렸고, 갑자기 악마 숭배자가 되어버린 스토커는 할 말을 잃고 입을 벙긋거렸다.
“저는 악마 숭배자가 공작님의 명성을 깎아내리고, 프라시더스 가문을 제국의 황실이나 귀족 가문과 부딪히도록 갈등을 유발해서, 제국의 혼란을 야기시켜, 끝내 파멸로 몰아가기 위한 준비 과정 중 하나일 줄 알았는데···.”
“맞아요! 그럴 가능성도 있네요!”
아무 문제가 없다니 잘된 일이나, 어딘가 허탈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한탄 비슷하게 흘린 말에, 솔레르티아가 맞장구쳤다.
“···스, 스토커입니다.”
어디선가 기어들어가는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스토커 녀석이 새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자기소개를 하고 있었다.
“저, 저는 스토커입니다! 악마 숭배··· 그, 그런 것과는 전혀! 관련도 없는 쓰레기 같은 스토커 새끼입니다! 다시는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을 테니,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그럴 리가 없어요, 당신은 스토커가 아니에요! 그렇죠?”
“아닙니다! 저는 스토커입니다!”
눈부신 태세 전환이다. 악마 숭배자로 몰리는 것 보다, 스토커가 낫다 이건가.
“그럼 가게 주변에 남은 마력의 흔적은 뭐고요!”
“그냥 주변을 지나가던 마법사가 우연히 근처에서 마법을 쓴 것 아니오?”
“윈스톤 경이 마법을 아시나요?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긴데 마법사도 아닌 일반인이 스크롤의 서명은 또 어떻게 알고···. 그래요, 그 존재는 안다고 쳐요. 그런데 그것이 마법사에게 ‘의미 있는 문장’이라는 건 또 어떻게 아는 데요?”
“레세라투스 양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공부해 온 것 아니요? 본래 사내들이란 다 그렇소. 매력적인 여성 앞에서 잘난 체를 못 해서 안달이지.”
솔레르티아가 ‘비전문가는 조용히 해!’를 시전하자, 윈스톤이 ‘마법은 몰라도, 남자들의 허세라면 내가 더 잘 안다.’라는 식으로 받아쳤다.
한쪽은 펄펄 뛰며 주장하고, 한쪽은 기계적인 말투로 그것을 반박한다.
“그것 말고도 가게 주변을 기웃거리던 이들은 분명 있어요! 후드를 뒤집어써서 누구인지 확인은 못 했지만···. 이 사람은 아닐 거라 확신해요. 뭔가 본능적으로 위험하고 쎄한, 그런 느낌이 왔다니까요?”
“스토커가 위험하고 쎄한 건 당연한 것 아니오?”
그녀의 의견을 들어보면 그런 것도 같고, 윈스톤의 반박을 들으면 그것도 맞는 말 같다.
“그것 말고도! 제 스크롤은 무척이나 고가예요. 그걸 그렇게나 펑펑 구매할 정도로 부유한 집안의 사람이라면 알려지지 않았을 리 없어요!”
“확실히, 그건 좀 의심이···.”
“파, 팔았습니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던 둘의 의견이 하나로 일치되려는 찰나, 끼어드는 목소리가 하나 있었다.
스토커인지 끄나풀인지 모를 녀석이다.
“구매한 스크롤은 모두 팔았습니다. 정가보다 조금 저렴한 가격에 중고로 판매해서, 거기다 제 돈을 조금 더 얹어서 새로 사는 식으로···.”
“파, 팔았다니. 대체 누구에게요?!”
“그냥 여기저기···? 워낙 수가 많아서 잘 기억이···.”
이곳이 내가 살던 세계였다면 중고 나라를 무척이나 애용했을 것 같은 녀석이다.
마법 스크롤 중고 거래라니, 정말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부끄러운 일인 건 알지만, 레세라투스 님을 가까이서 뵙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요! 스크롤 같은 섬세한 물품을 전문가도 아닌 그쪽을 믿고 사는 사람이 어딨어요?”
이 세계 출신인 솔레르티아 또한, 마법 스크롤을 중고로 거래되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나 보다.
자신의 스크롤이 헐값에 팔렸다는 얘기에 분노하기에 앞서, 중고 거래 소식에 기막혀했다.
“즉, 레세라투스 씨는 이자가 시선을 돌리기 위한 미끼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용히 듣고만 있던 세르펜스가 갑자기 나섰다.
“네, 맞아요! 이번 일을 단순한 스토커 소동으로 몰아서, 진짜 계획을 숨기려는 연막작전인 게 틀림없어요!”
“레드포드 경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잡히자마자 가장 먼저 뱉은 말도 저와 레세라투스 양과의 관계를 묻는 것이었고, 시선에도 질투와 집착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일관성 있게 스토커적인 면모를 뽐냈다는 소리다.
듣고 보니, 저놈은 아까부터 솔레르티아만 힐끔거리고 있었다.
“두 분의 생각이 모두 맞을 겁니다.”
“악마 숭배자가 솔레르티아 씨를 스토킹했다는 겁니까?”
“···그런 게 아니라. 이자가 세뇌를 당한 것 같다는 얘깁니다. 이자에게서 미세하게 흑마력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내 반문에, 세르펜스가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는 눈빛을 보내며 부연 설명을 했다.
‘그런 게 느껴졌으면 빨리 얘기를 했어야지!’
이 난장판을 왜 가만히 싸움 구경만 하고 있던 건지 모르겠다.
흑마력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더라도, 다짜고짜 스캔부터 하던 녀석이···.
“아! 설마!”
“네, 그 설마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세뇌 마법이 만들어져 사용된 것은 무척이나 오래된 일이다.
[성검의 주인]에서도 악마 숭배자에 의해 일반인들이 세뇌당하는 일이 더러 있었다.그러나.
‘이전에 사용되던 세뇌 마법과 [성검의 주인]에서 사용된 세뇌 마법은 다른 방식이라는 게 문제지.’
악마 숭배자들은 끊임없이 타인을 조종하기 위한 마법을 개발해왔다.
가장 처음 개발된 것은 자아를 완전히 말살시킨 후, 그때그때 명령어를 입력하여 조종하는 방식이었다.
세뇌라고 불릴 수도 없는 수준.
대단히 수동적이라, 누가 봐도 어색하고 번거로웠다.
그래서 만들어진 두 번째 마법이 강한 암시와 최면으로, 그것을 진실로써 믿게 만드는 방식이다.
장점이라면 자아가 살아있기에 자연스러운 행동이 가능하다는 것과 흑마력의 잔재가 거의 남지 않는다는 것.
단점은 더럽게 쉽게 풀려서, 주기적으로 관리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성검의 주인]에서 나온 방식은···.‘뇌와 정신에 직접 흑마력을 주입해서 조작하는 것.’
뇌에 흑마력이 스며들어 깊게 뿌리 박혀 있으니, 결코 풀리는 일은 없다. 조작된 것을 진심으로 자신의 기억과 의지라 믿으며, 능동적으로 행동한다.
어떤 방법으로 심문하여도, 이 방법으로 세뇌당한 이에게는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다.
‘정말로 아무 기억이 없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뇌가 그것을 오래 버틸 수 없다는 점이다.
치료의 효능을 지닌 신성력조차, 뇌와 정신을 건드는 것은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섬세한 작업이지 않던가.
흑마법사가 세뇌당하는 사람을 안중에 둘 리 없다.
작은 두통으로 시작된 부작용은, 점차 그 고통이 커지며 서서히 죽음에 다다르게 한다.
‘그렇다고 섣불리 신성력을 주입하기라도 한다면···.’
흑마력이 너무 깊숙이 스며들어 있어서, 그것이 정화되어 사라지면서 뇌에 큰 타격을 입히고, 종내에는 정신이 붕괴되어 버린다.
그것을 내가 알고 있는 이유는, 당연히 [성검의 주인]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기 때문.
마물 퇴치를 위해 방문한 영지에서 함께 싸우던 기사가 돌연 그들을 공격해 왔다.
리에나가 그의 세뇌를 풀기 위해 이전의 해결법대로 정화를 걸었고, 그 결과···.
이지를 잃은 텅 빈 눈을 마주한 그녀가 얼마나 당황했던가.
두 번째 피해자는 무력이 갖춰지지 않은 일반인이었다. 이번에는 섣불리 손을 대는 대신, 감시자를 곁에 붙이는 것으로 그쳤다.
그 결과,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리에나도 많이 힘들어 했지···.’
그리고 그것을 눈치챈 악마 숭배 세력은 아예 민간인 마을 하나를 통째로 세뇌시켰다.
어떠한 무력도 없으면서 주인공 일행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일행은 그들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제압하였다.
그대로 둔다면 고통 속에서 죽게 될 이들.
리에나는 한 명씩, 그들의 머릿속에 자리한 흑마력을 지워내기 위해 노력했다.
조심스럽게 신성력을 사용해 그들의 정신을 어루만졌으나, 어김없이 흐리멍덩한 눈을 마주해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자책하며 고통스러워하였다.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긴장하면 할수록. 신성력의 제어가 버거워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은 늘어나지···.’
시간까지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그렇게 고통 속에서 며칠의 시간을 보냈고···.
『
사건은 식사를 위해 마을 사람들의 재갈을 잠시 풀어주었을 때 일어났다.
“이 더러운 악마 숭배자들!”
세뇌당한 사람의 말이었다. 무시해도 좋았다.
성검과 신성력을 직접 눈앞에서 보여주어도, 그들은 믿지 못했다.
그들의 눈에는 신성력이 시꺼멓고 음울한 흑마력으로 보였으니.
그들의 머릿속에서 성검의 주인과 그 동료들은 모두 악마 숭배자에 불과했다.
죽이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죽고, 울고불고 매달려도 소용없는 비정한 자들이었다.
세뇌가 풀리지 않는 이상, 그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자들을 붙들고, 반강제로 음식을 먹이는 일은 몇 번을 해도 지치는 일이었다.
그들의 헛소리까지 받아 줄 여유는 없었다.
“사악한 흑마법사 년!”
무시해야 했다.
“같은 인간을 가지고 실험하는 기분이 어때?”
“······!”
무시할 수 없었다.
“그, 그런 게 아니에요···. 실험이 아니라, 저는···!”
“거짓말하지 마! 실험에 실패한 결과물들이 저렇게 버젓이 있는데!”
“······!”
“다음은 누구지? 옆집 아저씨, 우리 아빠. 이제는···!”
“그런 거 일일이 들어주지 마!”
미동조차 하지 못한 채 굳어 있는 리에나를 발견한 푸로르가 들고 있던 그릇을 내동댕이치며 달려왔다.
“이, 이거 놔···앗! 으읍!”
그녀는 리에나의 옆에 있던 바구니의 빵을 대충 찢어냈다.
그리고는 리에나가 들고 있던 수프 그릇에 푹 하고 담근 후, 폭언을 쏟아붓던 소녀의 입에 그것을 욱여넣고 천으로 틀어막아 버렸다.
“그렇게 거친 행동은···!”
“잘 들어! 휴마누스도 그렇고 유지스도 그렇고, 리에나. 너도 이 대륙, 가나안의 모든 이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건 잘 알고 있어. 그리고 나는, 저기서 혼자 어쩔 줄 몰라하는 꼬맹이까지, 너희 넷을 지키는 사람이야. 나는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만 지키고, 나머지는 상관없어. 내 친구를 상처 입힌다면, 그게 누구든 모두 내 적이야.”
푸로르가 짐승처럼 낮게 그르렁거리며 말했다.
“설마 아까 그 얘기 마음에 담아두는 건 아니겠지? 흑마력 때문에 맛탱이가 가서 한 말이야. 제정신 들면 네게 싹싹 빌걸? 안 빌면, 내가 강제로 빌게 만들 거니까 말리지 마.”
“푸로르 님···. 제가, 할 수 있을까요?”
그녀가 그들을 치료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푸로르의 말에, 리에나가 자신 없다는 듯 물었다.
열 쌍이 넘는 눈동자가 총기(聰氣)를 잃었다.
그리고 그것은 리에나의 자신감도 함께 앗아갔다.
“이 세상에 그 일이 가능한 사람이 있다면, 오직 너뿐일 거야. 네가 할 수 있다면 가능한 일이고, 못 하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야. 안될 것 같으면, 그냥 포기해.”
“···할 수 있어요. 포기 못 해요, 반드시 해내 보이겠어요!”
리에나의 다짐을 들은 푸로르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 참. 아까 내가 한 말 휴마누스에게는 얘기하지 마. 그 녀석, 제국이 그렇게 되고 난 이후로 자신이 모두를 지켜야 한다면서 계속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잖아. 며칠째 잠도 자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주변을 경계하고, 지금도 혼자 순찰하러 나가고···. 내가 저를 지킨다고 말했다는 거 알면, 전투 중 나한테 엄청나게 신경 쓸걸?”
“···네, 알겠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리에나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 마을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짓는 미소였다.
』
리에나가 처음으로 세뇌당한 사람의 치료에 성공한 것은, 바로 그다음 날이었다.
세르펜스에게도 이 얘기를 미리 해 둔 상태.
분명 흑마력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윈스톤이 스토커를 운운하니.
세뇌의 가능성을 떠올리고, 평소대로 다짜고짜 신성력을 주입하는 대신 정황을 먼저 파악한 걸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