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4화(14/1105)
14회
4. 공작님의 영지에서 (1)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 이건 명백한 제 실수입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느새 다 먹은 빈 식기를 한쪽에 밀어두고, 다시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래도 깨끗하게 다 비우긴 했네.’
조금 뿌듯해졌다.
“저는 공작님께서 이 세상에 즐거운 일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공작님께 많은 것들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
“싫으시다면 억지로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권하는 것 정도는 허락해주실 수 있습니까?”
긴 침묵이 흘렀다.
‘고민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무시하는 건가?’로 바뀔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에게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미트볼 토마토 리조또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대체 무슨 소리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처럼, 너는 나빴지만 미트볼 토마토 리조또는 나쁘지 않았다.
뭐, 그런 얘긴가?
뜬금없는 동문서답에 나는 눈을 끔벅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걸 본 세르펜스가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으로, 서류를 들어 자신의 시야를 가려버린다.
“허락하겠다는 얘깁니다.”
대체 그 얘기를 어떻게 하면, 그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걸까. 그냥 알기 쉽게 직설적으로 말해주면 어디 덧나나?
왜 굳이 알아듣기 힘들게 빙빙 돌리고, 꼬아서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럼 차를 준비시킬 테니, 챙겨온 쿠키도 좀 드실래요?”
세르펜스가 들어 올린 서류를 눈가만 살짝 보일 정도로 내리고, 나와 눈을 마주친다.
그 상태로 그의 속눈썹이 천천히 내려앉았다가, 다시 올라간다. 그리고는 재빨리 서류를 다시 들어 올려 제 얼굴을 가려버린다.
“···말로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아니면 고개를 끄덕이시던가. 자꾸 그러시면 제 맘대로 해석해버립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내 마음대로 하라는 의미로 해석했다.
벨을 눌러, 빈 접시를 치우고 차를 준비해달라 부탁했다.
가져온 쿠키의 절반이 세르펜스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 * *
내가 옆에서 뜯어말렸음에도, 세르펜스는 기어코 이틀째의 밤까지 꼬박 새웠다. 일이 끝난 것은 점심때가 조금 지났을 무렵이다.
지난 식사들은 내 임의로 골랐으나, 이번 점심은 세르펜스에게 직접 골라보길 권했다.
그는 메뉴판을 성의 없이 흘깃 보고는 미트볼 스파게티를 골랐다.
‘이때까지만 해도, 평소와 다름없이 멀쩡해 보였는데.’
마주 보고 밥을 먹으며 가만히 관찰하고 있자니, 다른 점이 하나둘 눈에 띈다.
애꿎은 안경을 자꾸 고쳐 쓴다든가, 미미하게 인상을 찌푸린다든가. 평소보다 날카로워져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러면서도 식기 소리 하나 안 내고 완벽을 유지하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나라면 일을 끝내자마자 곯아떨어졌을 텐데. 곧 내릴 때가 됐다며, 그대로 또 씻고 나왔다.
‘그럴 거면 첫날 도망이나 가지 말지···. 아니면 빨리 돌아오기라도 하던가.’
괜히 나 때문인 것 같았다.
속상한 마음에 샤워실에서 나온 그의 머리를 말려주며, 정수리에 대고 한참을 투덜거렸다.
그게 듣기 싫었던 것인지. 세르펜스가 영주 성으로 가는 마차 안에서는 얌전히 자겠다며, 자진해서 약속했다.
기차가 플랫폼에 멈춰 섰다.
나는 내리기 전에 직원들에게 다음부터는 코스요리까지는 아니어도 좋으니, 어느 정도의 구색은 맞춰 달라고 부탁했다.
‘비싼 푯값을 받고, 이따위로 날로 먹으면 안 되지. 암!’
기차에서 내리니, 벌써 저녁 여섯 시다.
이곳에서 영주 성까지 4시간가량 걸린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근처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게 먼저겠지만.
‘얘 상태가 너무 안 좋은데···.’
그 스스로는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안경알 너머로 보이는 눈의 초점이 흐릿하다.
혹시 기차에 오르기 전부터 이미 철야를 한 상태였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완전 나 때문이잖아?!’
앞으로 근무시간만큼은 정말 최선을 다해 일해야겠다. 진심으로 반성한다.
현재의 세르펜스에게 필요한 건, 밥 보다 잠이었다.
식사는 포기하고 미리 대기 중이던 공작가의 마차에 바로 올라탔다.
‘계절이 여름으로 넘어가는 봄이라 그런가?’
해는 아직 하늘에 걸쳐져 있었다. 창문의 빗장을 걸어 잠가도, 약간의 빛이 새어 들어온다.
마차 내부 등까지 끄니, 그런대로 잠들기 좋은 환경이 갖춰졌다.
다그닥거리는 말발굽 소리와 거리의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그것들을 백색소음 삼아 잠들어있는 세르펜스의 맨얼굴이 희미한 빛줄기 사이로 드러났다.
안경은 안경집에 고이 넣어 잡고 있는 채로, 양손을 다소곳하게 무릎에 얹고 있다.
‘잠자는 모습까지 쓸데없이 성스럽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기도라도 하는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숭고해 보인다.
성인이 된 지금도 이러한데, 어릴 때는 어땠을까.
‘그야말로 아기 천사나 다름없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었겠지···?’
그런 아이를 정서적으로 학대하고, 물리적으로 고문까지 해댔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그게 어디 사람의 탈을 쓰고 할 짓인가?
어두운 곳에서 잠든 세르펜스의 모습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 보다.
꿈속에서.
어린 세르펜스를 괴롭히는 두 마리의 악마가 나왔다. 성인 세르펜스는 그들을 물리쳤다.
그는 은색으로 찬란한 광휘를 뿌리며, 성스러운 검을 휘둘러 악마들을 처단했고.
어린 세르펜스의 등에는 어느새 날개가 돋아나, 감사 인사를 남기고 하늘 높이 자유롭게 날아올랐다.
땅에 남아 그 모습을 올려다보던 세르펜스는 눈물을 흘리며, 부서질 듯 애잔하게 미소 지었다.
“리벨론 경. 일어나십시오.”
어느덧 목적지에 다 와가는지, 먼저 일어난 세르펜스가 내부 등을 켜며 나를 깨웠다.
분명 앉아서 잠든 것 같은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옆에 두었던 짐가방을 베고 누워있었다.
심지어 침도 흘렸는지 조금 축축해졌다.
“으하아암─. 벌써 도착한 겁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기지개를 켜자, 불편한 자세로 잔 탓인지 허리에서 두둑 소리가 났다.
맞은편의 세르펜스에게 눈길을 주니, 방금 일어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이 말끔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이 없을 수가 있지?
‘그에 비하면 나는···.’
거울을 안 봐도 뻔했다.
소매로 입가의 침을 닦고 머리를 손으로 대충 빗어 내렸다.
어차피 세르펜스의 미모에 묻혀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거, 신경을 써서 뭐 하겠는가.
그냥 사람의 형상만 취하면 됐지.
“그보다 몸이 좀 찌뿌둥해서 그런데, 회복 좀 해주실래요?”
세르펜스가 어딘지 회의를 느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신성력의 구체를 만들어 내게 날리는 그 모습이, 어째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성검의 주인]의 설정에 따르면, 회복은 다친 부위에 직접 접촉해서 신성력을 주입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 했다.‘그런데도, 적선이라도 하듯 대충 던지는 모습이 참···.’
독실한 신자가 봤다면 신성모욕이라며, 거품 물고 기절할지도 모르겠다.
‘아닌가? 세르펜스니까 그 모습마저 신성해 보이려나?’
영주성에 완전히 도착했는지, 마차가 멈춰 섰다. 문을 열고 마차 밖으로 내리니 이미 하늘은 완연한 밤이었다.
도착하면 성의 인원들이 모두 나와 좌우 2열 종대로 주르륵 서서, 세르펜스를 향해 인사하는 그런 모습을 기대했는데.
경비를 서는 병사와 기사를 제외하면, 시종 두엇과 집사복을 입은 남성 한 명뿐이었다.
슬쩍 세르펜스에게 물어보니, 늦은 밤이라 피해를 끼칠까 봐 그러지 말라고 지시해 뒀다나?
“보좌관님께서 쓰실 방은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시종 중 하나가 내가 들고 있던 짐가방을 받아들며, 조용히 말했다.
“그럼 부탁하겠습니다.”
앞서가는 시종을 따라 성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워서 외관은 거의 보지 못했으나, 내관은 복도 곳곳에 켜져 있는 흐릿한 촛불과 시종이 들고 있는 랜턴의 빛 덕분에 어렴풋이 분간할 수 있었다.
‘수도의 저택과 비슷한 느낌이네.’
하기야, 주인이 같으니 다를 것도 없겠지.
밤이라 그런지 주위는 조용했고, 이따금 들려오는 야행성 조류들의 나직한 울음소리와 발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그런 와중에 엔틱스러운 장식물과 고전적 디자인의 벽지에 주황색 불빛이 어른거리며 흔들리니, 조금 으스스하다.
시종의 걸음이 멈췄다.
그는 내일 아침 식사시간에 자신이 직접 와서 식당으로 안내해드리겠다는 말과 안녕히 주무시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그러고 보니 왜 성안에 있는 방으로 안내해 준거지?’
저택에서처럼 본성이 아닌 별관 같은 곳으로 안내받을 줄 알았는데.
의문은 좀 들었지만, 별거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방 안으로 들어가 침대 위로 몸을 날렸다.
“으음─. 이 흔들림 없는 편안함!”
씻는 건 내일로 미루자. 일단 그 안락함에 온몸을 내맡기며, 또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
예고했던 대로 어제 보았던 시종이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어쩌다 보니 세르펜스를 따라서 마차에서 꽤 자둔 덕분인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준비를 마쳤기에 바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아차, 어제 물었어야 했는데···. 그러고 보니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먼저 자기소개를 하던 수도 저택의 시종들과 달리, 이 남자는 묵묵히 필요한 얘기만 했기에 직접 물어봐야만 했다.
“노만 아르키누스입니다. 그냥 노만이라 불러주십시오.”
약 3~40대쯤 돼 보이는 이 남자는 저리 말하고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어제는 그저 밤이라 그런 줄 알았더니, 원래 말이 적고 차분한 사람인 듯했다.
“그렇군요. 저는 시온 리벨론이라고 합니다!”
“예.”
“···잘 부탁해요?”
“잘 부탁합니다.”
더는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어색함에 몸부림쳤다.
수도의 저택에서 그랬던 것처럼. 세르펜스를 금칠하면 말문이 좀 트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의 칭찬을 열심히 해봤다.
그 결과,
‘그렇습니까?’, ‘굉장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등등. 단답형의 답변만 받았을 뿐, 전혀 통하지 않았다.
혹시 낯을 가리는 게 아닐까 싶어 포기하지 않고 몇 마디 더 붙였더니, 이제는 나를 세르펜스의 사생팬 보듯 바라보기까지 한다.
‘억울하고 어색해서 미치겠네!’
성이 넓고, 세르펜스가 한 달 중 겨우 일주일. 정확히 따지자면 이동에 쓰이는 시간을 제외하여 4일인가?
짧은 기간만 머무는 탓에 직접 마주칠 일이 적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세르펜스가 수도에서 행하는 수많은 선행에 대한 소문이 여기까지 당도하지 못하기라도 한 것인지.
‘공작저에서 보았던 열성적인 반응이 없네.’
식당에서 주변의 이야기를 귀를 기울여보았다.
세르펜스에 대한 이야기를 어느 정도 하는 듯하더니, 결국에는 자신들의 소소한 대화로 흘러갔다.
물론 그렇다고 세르펜스에게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존경심은 담겨있었지만···.
‘그래, 그냥 평범하게 존경하는 영주님. 딱 그 정도네!’
수도 저택의 사람들이 팬카페도 가입하고, 게시글도 열심히 올리며, 굿즈를 사재기하는 광신도에 가까운 열혈팬이라 한다면.
이곳의 사람들은 신곡 나오면 꼬박꼬박 재생목록에는 넣어 열심히 듣지만, 굳이 CD는 사지 않는 듯한. 딱 그 정도의 느낌이다.
‘역시 그 저택이 이상한 거야···.’
계속 그런 모습만 봐온 탓에, 프라시더스가와 연관된 모든 사람이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 저택에 일주일만 머무르면 누구나 그렇게 변하지 않을까 싶다.
‘원래 덕질은 함께할 때 더욱 불타오르는 법이라잖아?’
아마 나도 세르펜스에 대해 사전에 아는 게 없었더라면, 영업 당해서 플랜카드를 들고 따라다녔을지도 모른다.
‘으으, 소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 온 참이지만 빨리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어떻게든 떠들썩 한 게 낫지, 어색하고 침잠된 분위기는 딱 질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