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4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43화(143/1105)
143회
31. 공작가 동상이몽 (6)
페라리우스 백작가에서 두 공작가를 이간질하였다는 얘기 중이었다.
흐름상 메모가 적힌 쪽지를 보낸 자 역시 그쪽 사람이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예정이라는 것은 누가 들어도 뻔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그런 걸 보낸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의 계획대로라면 나는 공작가의 보좌관이라는 체면을 불고하고,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린 개망나니로 보여야 했다.
먼저 화해의 뜻을 보인 팔숨 경과 회포를 풀다가, 돌연 혼자 흥분해서 그에게 달려들어 폭력을 행사한 양아치로 몰아가려 했던 걸테다.
‘그래야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평소 행실이 어떻고 하면서, 프라시더스 가문의 위신을 떨어트릴 수 있을 테니까.’
그렇기에, 세르펜스가 말한 내용이 적힌 카드 따위는 존재해서는 안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거물로 실재하여 가지고 오는 중이란다.
환장할 노릇이겠지.
제1 발견자인 내가 조작한 것이 아닐까 하여, 나를 보는 눈이 매서워지는 것도 이해한다.
‘그런데 뭐. 증거 있나?’
자기네가 산 약을 내게 몰래 먹이려 했던 것은 사실.
그걸 내가 어찌 알고 성분 검사를 했겠어?
증거가 없음은 물론, 정황상으로도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 내용이 사실이라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믿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그날 있었던 침입자의 공격이 사실은 암살이 아니라, 이러한 사실을 알리기 위한 경고였던 것이라면. 그것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아르젠토 공작저의 경비를 뚫고 숨어든 것이었다면. 과연 그 성의를 외면하여도 좋은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내 쪽에서 보이는 것은 세르펜스의 정수리뿐이었음에도.
절절하고도 애타는 그 목소리만으로도, 그가 느꼈을···. 아니, 느끼지 않았던 고뇌가 전해져오며, 가슴 한편이 아리었다.
그 정도로 호소력 짙은 음색이다.
‘내가 이 정도인데, 얼굴을 보고 있는 남들은 더 하겠지.’
심지어는 페라리우스 백작과 그 보좌관도 어딘가 먹먹해진 표정을 짓고 있다.
억눌러왔던 감정 표현이 자연스러워지면서, 그의 연기에도 한 층 더 물이 오른 것이 틀림없다.
뛰어나다는 말조차 부족한 연기력과 그것을 뒷받침해줄 미모와 미성.
무엇 하나 빠짐없는 완벽한 구성이다.
“그리고 조사 결과, 정말로 검출된 겁니다. 환상을 보게 하여, 정신을 미혹시키는 류의 마약···이 말입니다. 목숨을 앗아가는 독은 아니었으나, 어찌나 충격적이었는지···.”
세르펜스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감정이 격해져 더이상 말을 잇기 힘들다는 듯.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사선으로 떨궜다.
잠시 침묵이 찾아왔지만, 아무도 그를 채근하지 않았다.
그것은 침묵이었으나, 동시에 여운이었다.
그 여운 속에는,
‘시온 경은 제 보좌관이 된 탓에 겪지 말아야 할 일을 겪고 말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저의 부덕함 때문입니다. 저로 인해 제 주변인이 상처 입을 뻔했습니다.’
···라는. 미처 내뱉지 못한 죄책감이 담겨 있었다.
적어도 듣는 이들은 그렇게 느꼈고,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스스로를 탓하는 세르펜스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으음···. 죄송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마약의 이름은 ‘미혹의 안개’이며 그 효과를 극대화 시키기 위함인지 각성 효과가 있는 약물도 함께 검출되었습니다.”
이제 슬슬 팔숨 경이 내 잔에 약을 탄 것이 적힌 카드에서 어떻게 페라리우스 백작으로 연결되는 것인지 질문할 법도 했지만, 모두 세르펜스의 말에 집중하며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다들 생동감 넘치는 3D 영화를 보고 있는데, 혼자 오디오만 듣고 있는 것 같아서 뭔가 아쉽네.’
세르펜스는 흡입력 있는 연기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며,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 이건 모함입니다!!”
나와 팔숨 경이 만나서 주고받은 거짓 정보들이 세르펜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자, 페라리우스 백작이 버럭 소리쳤다.
마약 구매자 목록에 이름이 올라간 것 정도야, 그것을 유통한 것도 아니니 치명적이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악마 숭배와 비교하면 뭐든 그러하다.
더군다나 그 마약을 구매해간 사람이 그의 보좌관 한 명만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문제는 그 날, 팔숨 경이 내게 했던 말이었다.
“증거는 있습니까?! 그 침입자를 제가 보냈다는 증거 말입니다! 또, 이전에 침입자에 대해 한 말과 다르지 않습니까!”
“당시에 그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탓에 어쩔 수 없었소. 사실대로 발표했다면 더 철저하게 감추고, 또 숨겼을 것 아니오?”
페라리우스 백작의 말에 아르젠토 공작이 여유롭게 답했다.
“그리고 덕분에 지금 이렇게 정황 증거가 갖춰지지 않았소?”
“아, 아니···. 이, 이건 모함입니다!”
“모함이라는 증거는 있소?”
페라리우스 백작은 나에게 카드를 보낸 적도, 아르젠토 공작저에 침입자를 보낸 적도 없다.
애초에 이런 얘기 자체를 오늘 처음 들은 걸 테다. 증거 역시 준비되었을 리 만무.
이전에 들었다 한들, 준비할 수 있는 종류의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마약의 구매에 관한 정보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거늘···. 조금도 부정하지 않는 것을 보니, 그쪽의 증거는 확실하다고 봐야겠군.”
“···크윽.”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겨났다.
‘아르젠토 공작은 침입자의 진실을 알지 않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그게 세르펜스라는 사실은 모르더라도, 페라리우스 백작이 보낸 악마 숭배 세력의 일원이라는 소리는 거짓부렁이라는 것 쯤은 알고 있을 테다.
왜냐면 못 잡았으니까.
세르펜스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볼까 했으나, 이내 그만두었다.
이 자리에는 그의 능력과 비교하면 발끝도 못 따라가겠지만, 일반적인 인간을 초월한 청각을 소유한 이들이 다수 있었다.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할 거다.
‘하긴. 나와 세르펜스만 해도 미리 말을 맞춰놨으니까.’
진상을 알고 있는 로베르토 조손(祖孫)과 제온에게 메시지 카드 아이디어를 내가 낸 것으로 설명해 둔 상태.
저쪽도 어떻게든 말을 맞춰 놓긴 했을 터.
그 ‘어떻게든’이 어떤 방법인지, 전혀 감이 안 와서 그렇지.
“이제 그만 인정하시오. 페라리우스 백작, 그대는 지금 자신의 꾀에 스스로 걸려 넘어간 거요.”
아르젠토 공작의 조소 어린 말에, 페라리우스 백작이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뒤에서 스테인 경이 나와 팔숨 경을 번갈아 보며 이를 갈고 있다.
‘팔숨 경은 제대로 짚었지만, 우리 쪽은 공작인 세르펜스가 날조한 거거든?’
부디 생사람 잡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최근, 그 마약을 구매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 하나 때문에 악마 숭배자라는 누명을 뒤집어쓸 수는 없습니다! 죽었다는 침입자가 거짓을 말했을 가능성도 있고···. 아니면, 침입자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거짓일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지금 상황만 보면 생사람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악마 숭배 세력과 결탁한 것이 맞는 페라리우스 백작이 다급하게 변명을 쏟아냈다.
“저는 오히려 아르젠토 공작가 쪽이 의심스럽습니다. 이번 스크롤 테러와 저번 보좌관 모임 모두 아르젠토 공작저에서 있었던 일이잖습니까!”
놀랍게도 그 이론이 꽤나 그럴듯했다.
“내가 백작에게 악마 숭배 누명을 씌우기 위해, 내 저택을 폭파했다는 거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글쎄요? 공작님께서는 그러지 않으셨을지 몰라도, 내부에는 그런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 카드에도 적혀있다지 않습니까? 당신의 보좌관인 팔숨 경이 음료에 약을 탔다고.”
“그런 짓을 해서 그에게 무슨 이득이 있다고···.”
“그렇다면 제가 아르젠토 공작저를 폭파하게 시키고, 두 공작님의 사이를 이간질한다고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제국이 흔들리면 악마 숭배자들의 먹잇감이 될 뿐인데! 제가 악마 숭배자이니,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이 그 주장이잖습니까!”
와, 말 참 잘한다 싶은 생각이 아주 잠깐 들 뻔했다.
자세히 들어보면 페라리우스 백작이 한 모든 말은 놀랍게도 전부 사실을 기반에 두고 있었다.
‘이쯤 되면 그냥 사실대로 자백했다고 봐도 되는 거 아닌가?’
세뇌로 인해 스토커가 되었던 크로만도 그렇고.
요즘은 이런 식의 자백이 트랜드인가보다.
아르젠토 공작저 테러를 팔숨 경이 한 걸지도 모른다는 식의 작은 각색이 있었지만, 그 외에는 고증이 출중하다.
“이득이 없을 리가. 내가 백작이 손댄 사업체들도 대부분 동결시키고, 주 수입원인 광산에도 그렇게 세금을 올렸는데. 반응을 바라고 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집을 날려 먹을 줄은 몰랐구려.”
“대, 대체 제게 왜 그러셨습니까···!”
“페라리우스 백작이 악마 숭배 세력과 손을 잡았다는 것을 뻔히 알게 되었는데, 그 자금이 악마 숭배 세력에 들어가면 안 되잖소.”
뭐라고 해야 할까.
‘권력을 쥔 아가리 파이터라고 불러야 하나?’
가문의 힘으로 실컷 패 놓고 여유롭게 저런 소리를 하니, 페라리우스 백작의 입이 떡 벌어진다.
안 그래도 일방적으로 얻어터진 것도 서러운데 거기에 팩트 폭력까지 더해지니, 정신이 혼미해진 모양이다.
“아, 아까부터 이간질이니 뭐니 하며 논점을 흐리시는데···! 오늘 이 자리는 흑마력이 깃든 스크롤을 만든 저 악마 숭배자를 심판하기 위한 자리라는 걸 잊지 마십시오!”
“아까부터 헛소리한다 했더니, 자리를 잘못 알고 온 모양이오. 이 자리의 목적은 고작 악마 숭배자 한 명을 잡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악마 숭배 세력의 더러운 음해 공작들을 타파하여 다시는 제국 내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에 있소. 적어도 제국 내에서는 그들이 활동할 수 없도록. 완전히 배격하는 것이 진정한 목표요.”
···라고 음해 공작에 한 손 거들었던 사람을 보좌관으로 둔 사람이 말하였다.
저런 소리를 듣는데 찔리지도 않는 건가 싶어 팔숨 경의 안색을 살폈으나,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아르젠토 공작이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건 또 처음 보네.’
자문회의 수장이다 보니 항상 중립적인 위치에서 한두 마디 툭툭 던지는 정도라, 저런 기질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페라리우스 백작을 압박하기 위한 안건을 내는 것도, 긍정적인 의견을 슬쩍 내비친 정도.
그것만으로도 그에게 잘 보이려는 귀족들이 알아서 동의해 왔으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것에 가까웠으려나.
‘팔숨 경에게 휘둘린다길래, 기운 없고 우유부단한 느낌의 노인일 줄 알았더니···.’
정정하다 못해 펄펄 날아다닐 기세다.
‘그래, 아르젠토 공작가면 신성력으로 프라시더스 가문과 유일하게 비벼볼 만한 가문이잖아?’
세르펜스가 그런 프라시더스 가문에서도 유독 뛰어나서 그렇지···.
어쨌거나 아르젠토 공작 또한 신성력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소리고, 신성력 넘치는 몸에 기운이 떨어질 리 없다.
“우선 사건의 본질부터 보자는 소리였습니다! 제가 악마 숭배자라는 직접적인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잖습니까? 그래요, 제가 마약을 좀 샀습니다! 요즘 사는데, 살 맛이 안 나서! 그래서 좀 했습니다!”
페라리우스 백작이 길바닥에서 술주정 부리는 아저씨 같은 소릴 하기 시작했다. 저기에서 혀만 꼬이면 완벽한데.
‘진짜 어디서 몰래 술 먹고 온 거 아냐?’
아무리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려 하여도 없는 무고함이 생겨날 리는 만무.
아르젠토 공작도 그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어주니, 그냥 막 나갈 생각인가 보다.
체면이고 뭐고 이단 심문관에게 잡혀 신전에 끌려가면 다 소용없다.
당장의 체면(體面)을 지키자고, 체신(體身)을 잃을 수는 없으니까.
“그런 와중에 이런 누명 쓰고, 압박받고! 거기다 하필 이 시기에 악마 숭배 세력이 테러하는 바람에···.”
결정적인 단서가 없으니 일단 우겨보려는 것 같다.
“그리고 아까부터 이간질, 이간질하시는데! 그렇다면 저 여자는 오자마자 자신의 죄를 자백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처럼 이간질 운운하는 말이 나오기 전에, 자신이 악마 숭배자라고 밝히며, 그 스크롤을 만드는 데 프라시더스 공작님의 지원을 받았다던가. 그런 소리를 했어야 옳은 것 아닙니까?”
“네?! 그게 무, 무무 무슨 소리죠?!”
진짜 악마 숭배자인 페라리우스 백작이 열심히 내몰려지는 중이고, 흑마법에 의해 세뇌당해 그에게 자신의 스크롤을 전달했던 증인도 오고 있겠다.
그런 생각에 마음을 살짝 놓고 관전 중이던 솔레르티아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훅 들어온 폭탄 전달식에 화들짝 놀라 하며 말까지 더듬거렸다.
“보십시오, 제가 악마 숭배자로 몰리자 마음을 놓고 있다가 이렇게 지적당하니 당황하며 말을 더듬는 모습을!”
“내가 보기에는 페라리우스 백작의 과장된 태도가 더 의심스럽소. 그리고 저 여인은···. 의심이 아주 가시지는 않았지만, 백작이 그렇게 몰고 가니 오히려 결백해 보이는구려.”
본의는 아닌 것 같지만, 페라리우스 백작이 1어시스트를 적립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