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43)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44화(144/1105)
144회
31. 공작가 동상이몽 (7)
“실제로도 그녀는 결백하니, 그렇게 느껴지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지금 그 발언. 책임지실 수 있소이까?”
세르펜스의 말에 아르젠토 공작이 심히 우려된다는 투로 물었다.
‘프라시더스 공작가를 공격적으로 대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 신경 써주는 척하는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두 공작가가 맞부딪힌다면 서로 손해라는 것을 지금에야 알게 된 것은 아닐 테고.
‘도대체 팔숨 경이 무어라 말을 했길래···.’
제국에 혼란이 오는 것을 감내하면서도 프라시더스 가를 공격했고, 지금은 태도가 이렇게나 바뀔 수 있는 건지.
‘혹시 자신이 아르젠토 공작을 구워삶은 것을 힌트 삼아, 내가 세르펜스를 뒤에서 조종한다는 식으로 말해 놓은 거 아냐?!’
무척이나 그럴듯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딱 그 짝이다.
리벨론 경은 악마 숭배자로서 프라시더스 공작을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식의 말로 아르젠토 공작을 현혹했겠지.
그러다가 악마 숭배자들이 자신을 뒤통수 치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 태세 전환을 시전.
‘저도 그들에게 속았던 겁니다. 악마 숭배자들의 악마 같은 속삭임에 넘어가, 리벨론 경에 대해 오해하여 그만···. 제가 어리석어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술수였다는 걸 이제야 깨닫고야 말았습니다. 그 탓에 공작님의 눈까지 흐리게 만들었으니, 이 모든 것이 저의 업보입니다.’
···같은 말을 하며, 아르젠토 공작에게 눈물로써 호소한 게 아닐까?
직접 들은 건 아니라 확신은 못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아무튼 중요한건 아르젠토 공작이 세르펜스를 걱정했다는 것이다. 더는 프라시더스 가를 적대시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우호의 표시다.
“네, 가능합니다. 이제 슬슬 증인이 올 때도 다 되어가니, 지금부터 설명을 시작하면 얼추 시간이 맞아 떨어질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바로 설명을 해드려도 되겠습니까? 아니면 증인이 오고 난 뒤에···.”
“흐음···. 제출하려 했던 증거품은 마약이 묻은 옷가지와 페라리우스 백작 측에서 그것과 같은 종류의 마약을 구매했다는 이력인가?”
“예, 맞습니다.”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기 전, 앞서 나왔던 얘기를 확실히 해두려는 것인지 황제가 확인 질문을 해왔다.
“그리고 페라리우스 백작은 해당 약물을 구매한 것은 틀림이 없고.”
“그···렇습니다.”
페라리우스 백작이 머뭇거리며 긍정했다.
답은 황제에게 하고 있으나, 그의 시선이 세르펜스를 계속 힐끔거렸다.
“흐음···. 그래, 그럼 해 보게나.”
황제의 허락이 떨어졌다.
백작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알아서 함정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 웬 떡이냐 싶은 얼굴이다.
세르펜스가 크로만의 스토킹···이 아니라, 수상했던 행동들을 설명하며 솔레르티아를 옹호하였으나, 도착한 것은 증인이 아닌 그의 부고 소식.
‘일부러 증인이 도착하기 전에 설명을 시작한 것이, 사실은 이미 그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 그런 것이 아니냐며 추궁할 생각이려나?’
처음부터 증인 같은 것은 없었다, 정도로 운을 떼고.
솔레르티아와 악마 숭배 세력의 접선 등을 본 탓에, 죄 없는 이를 감옥에 보낸 뒤 그곳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도록 조처를 한 것이 아니냐는 말을 거쳐서.
그리고 그 불쌍한 영혼을 죽어서까지 욕되게 할 생각으로 끝까지 이용해 먹는다는 말로 마무리.
그런 레퍼토리를 풀어내기 위해, 좀 더 그럴듯한 대사들을 떠올려 보고 있을 거다
‘그러라고 일부러 미리 준비하지 않은 거니까.’
괜히 세르펜스가 아무 증거도 챙기지 않고 맨몸으로 온 것이 아니다.
일이 이렇게 흘러갈지 몰라서?
천만의 말씀.
그렇게 신나게 행복 회로를 돌리다가, 실제 증인이 멀쩡히 살아 도착했을 때.
백작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크건 미세하건, 정도의 차는 있겠지만 완벽하게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 터.
“···프라시더스 공작, 역시 증인이 도착한 후에 설명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페라리우스 백작의 미소에서 불길함을 감지한 아르젠토 공작이 반대 의견을 표했다.
“어째서 머뭇거리십니까? 어디 켕기는 구석이라도 있으신 모양입니다. 그 증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나, 저는 떳떳합니다! 아르젠토 공작님. 이제 이런 식으로 정황만 붙들고 애먼 사람 몰아가는 것은 그만두고, 확실한 물증이 갖춰진 이야기를 합시다.”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는 모르나, 페라리우스 백작이 원하는 대로는 되지 않을 거요.”
“꾸미다니,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증인은 프라시더스 공작님께서 요청하신 거잖습니까?”
말로만 시비 걸지 말고, 더 따지고 싶다면 물증을 내놓으란 소리이자, 무언가 꾸몄다면 그것은 자신이 아닌 프라시더스 공작이라는 얘기다.
아르젠토 공작이 제아무리 공작이라 하여도, 황제가 있는 자리에서 ‘웃는 것이 기분 나빠서.’라는 이유로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질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한 발짝 물러났다.
“···프라시더스 공작도 생각이 있으시겠지. 얘기하십시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세한 얘기는 저보다 사건의 당사자가 직접 말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내가 겪은 일들은 모두 세르펜스가 직접 듣고 보았으니 그가 설명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솔레르티아의 경우는 달랐다.
간단한 상황 정도는 들었지만, 더 세밀한 설명을 위해 세르펜스는 발언권을 솔레르티아에게 넘겼다.
고양이 간 골에 쥐 죽은 듯, 조용히 눈치를 살피던 그녀가 드디어 제대로 된 발언권을 얻은 순간이었다.
“시작은 저번 달···. 아니지, ‘그 사람’이 처음 나타난 것은 두 달하고도 보름 전이었어요. 그는 첫 방문 날, 상비된 스크롤을 종류별로 다양하게 구매해갔죠. 그렇게 많이 구매하면서도 따로 스크롤의 주문 제작을 의뢰하고 가셔서 상당히 의아한 마음에···. 아! 여기 계신 분들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보통은 스크롤이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일단 한두 장을 구매하여 써보신 뒤 주문을 넣잖아요. 방문 첫날부터 그렇게 많은 스크롤을 구매해가신 분은 처음이라 기억에 강하게 남더라고요.”
그녀가 크로만이 처음 방문한 날부터, 시간순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갔다.
“···그래서 딱 느꼈죠. 아, 이 사람은 내 스크롤을 카피하려고 하는 거구나! 하고. 처음에는 제게 손님을 빼앗긴 라이벌 가게에서 보낸 사람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이내 그것은 아니라는 판단이 섰어요. 마탑이 위치한 프뤼네 왕국이라면 모를까, 신성력 중심의 제국에서 저와 라이벌이라 할 만한 실력을 갖춘 스크롤 제작 상인은 없을 테니까요.”
또, 중간중간 그녀가 크로만을 의심하게 된 계기와 그 이유 등을 설명해나갔다.
자랑 반 추리 반이기는 해도, 돌고 돌아 목적지에는 알맞게 도착하니 큰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무작정 악마 숭배자 같다며 의심하는 것 보다, 듣는 사람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의 자기 자랑일지라도 의식의 흐름이 자연스럽다는 점에서 받아들이기는 쉬웠다.
“확실히, 이 정도 완성도를 갖춘 스크롤은 제국에선 보기 힘들긴 하지···.”
궁중 마법사인 헤론드의 고개까지 끄덕여졌으니, 말 다 했지.
“그 비싼 마법 스크롤을 수십 장 구매해가고, ‘문장’에 관해서도 물었다니···. 확실히 의심할 만도 하군. 거기다 주문 제작까지? 그렇다면 이번 사건을 위해 만들어 낸 스크롤에 필요한 구성 요소들도 조금씩 가져다 쓰는 것 정도로···. 으음,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악마 숭배자가 아닌가 의심했던 것이 미안할 정도로, 그냥 혼잣말과 생각이 많은 유형일 뿐이었나보다.
그가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공작님께서 기사를 한 명 붙여주셔서, 그자를 무사히 붙잡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조금···. 이런 걸 조금이라 말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척이나 이상한 부분이 하나 있군.”
솔레르티아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스테인 경으로부터 귓속말로 무언가를 전해 듣던 페라리우스 백작이 이때다 싶었는지, 그녀의 말을 끊으며 의문을 표했다.
그의 입가에는 아까보다 더욱 짙어진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 ‘이상한 부분’을 알아챈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귀족들은 물론, 교단 측의 의원들 역시 미심쩍다는 표정이었다.
“여기서, 최근 악마 숭배자로 의심을 받아 잡혀 온 범죄자가 있다는 소리를 들으신 분이 계십니까? 그게 아니면 스크롤 도용 사건이라거나?”
“······.”
회의장 내부에는 침묵이 흘렀다.
“프라시더스 공작님.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그자는 대체 무슨 죄목으로 잡혀 들어간 겁니까? 그리고 저 여자가 하는 말들을 전부 곧이곧대로 믿으신 건 아니겠죠? 그러시리라 믿습니다.”
명백한 조롱이다.
그렇게 세르펜스를 깎아 먹고 싶어 안달하더니, 기회를 잡았다고 여긴 듯하다.
세르펜스가 사람이 좋은 정도가 아니라 자비와 자애 그 자체의 존재이며, 드넓은 아량을 가졌다고 소문이 난 탓에.
어지간한 말실수는 용서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도, 평소라면 주변인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서라도 하지 못했을 말이다.
‘애초에 세르펜스가 실수를 하지 않으니, 이런 기회 자체가 없다는 이유도 있지만.’
원래 완벽했던 존재일수록 작은 흠결 하나가 크게 보이는 법.
거기에 페라리우스 백작은 누명을 쓰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인지, 다들 ‘아, 그건 좀···.’싶으면서도 큰 소리로 그를 경솔하다 비난하지 못했다.
“고의로 상대의 개인 공간을 침해하여, 집착증을 보이며 사생활을 파고들며, 자신이 거절당하자 윽박지르고 협박하는 등. 그로 인해 상대방에게 위협을 느끼게 한 행위로 인하여···.”
“혹시 주거 침입과 스토킹, 공갈 협박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불쌍한 크로만은 언제까지 유지해야 할지 모를 수감 생활을 좀 더 완벽하고 장기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각종 죄목이 추가된 상태.
세르펜스의 장황한 설명을 페라리우스 백작이 짧게 간추려 말했다.
“확실히 큰일이 날 뻔하긴 했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악마 숭배자라 생각하시다니···. 아무리 성검의 주인이 되기 위해 살아온 인생이라지만, 너무 순수하신 것 아닙니까?”
“그건···.”
이죽거리는 백작의 말에, 세르펜스는 말끝을 흐렸다. 마치 말 문이 막힌 사람처럼.
그의 고개도 시선을 피하듯, 옆으로 돌아갔다.
그 방향에 있는 것은 자문회가 열리는 회의장으로 들어오는 문.
“프라시더스 공작저로부터 증거품이 도착했습니다.”
“증거품이 도착했나 봅니다. 대체 누가 음료에 약을 푼 것인지는 몰라도···, 어이쿠. 누군가 남긴 메시지 카드가 있었다는 걸 잠시 잊었습니다. 저의 죄는 법으로 금지된 마약을 사용한 것뿐. 제가 저지른 행위에 대한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페라리우스 백작이 오늘 본 얼굴 중 최고로 밝은 표정으로,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와, 진짜···.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그렇게 웃으면 어떻게 해. 완전 수상해 보이잖아!’
억울하게 쓴 누명을 가까스로 벗겨낸 안도에서 온 기쁨이라고 우긴다면야 그래 보이지만···.
진실을 알고 있어서 그런가?
자신의 범죄 행각을 들키지 않고, 덮는 것에 성공한 자의 희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마저도 들뜬 탓에, 그의 뒤에 서 있던 스테인 경이 무시무시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제발 작작하고 그 입 좀 닥쳐, 라고 말하고 싶은 표정이다.
‘악마 숭배 쪽 사람이라더니···.’
대외적인 업무에서만 상하관계를 유지할 뿐. 어쩌면, 대내적으로는 서로 대등하거나 상하가 반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페라리우스 백작의 눈은 뒤통수에 달리지 않았다.
그리고 축배를 들기에도 일렀다.
“증인, 크로만 베롬 또한 도착했습니다.”
“···뭐?”
그제야 백작은 뒤를 돌아 자신의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스테인 경이 굳은 표정으로 턱을 슬쩍 들썩거렸다. 이쪽 보지 말고 앞을 보라는 보디랭귀지였다.
“그건 어디까지나 흑마력에 의해 세뇌당한 설정이 그랬다는 뜻이었습니다.”
세르펜스가 짐짓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던 것처럼 끊었던 말을 다시 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먼 타지에서 홀로 고생하는 젊은 여성 사업가를 희롱하고 도착(倒錯)하여, 집까지 몰래 숨어든 희대의 개새끼가 된 크로만은···.
“저, 저···! 저 새끼입니다! 저 새끼가 세뇌당한 저에게 스크롤을 사 오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감옥에서 온갖 고초를 겪었는지 잔뜩 야윈 채, 눈만 형형하게 빛내며 스테인 경을 삿대질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