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4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45화(145/1105)
145회
31. 공작가 동상이몽 (8)
저잣거리에서나 쓰일 법한 경박한 단어 선택에, 귀족이고 신관이고 할 것 없이 헛기침하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그렇다고 그가 한 말까지 묻히지는 않았다.
되려 그 강렬한 언사로 인해,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았으면 남았지.
“저, 저자는 지금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저런 돼먹지도 않은 자가 하는 소리를 믿어서는 안 됩니다!”
어찌나 다급했는지, 백작의 입을 통해서만 목소리를 내던 스테인 경이 직접 목소리를 냈다.
페라리우스 백작이 고개가 자꾸 자신의 뒤에 선 스테인 경을 향하려 하는 것을 억지로 정면에 고정하였다.
그의 표정은 일견, 모함을 당하여 그에 따른 분노로 일그러진 것처럼 보였으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지고 싶은 얼굴이네.’
정말 따져주었으면 가관이었겠지만, 그 정도로 판별력 없는 놈은 아니었나 보다.
그보다, 크로만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의 세뇌를 올바른 방법으로 안전하게 풀어냈다는 뜻.
‘대단하다고 듣기는 했어도, 이 정도인 줄은 몰랐나 보지?’
스테인 경이 혼란스럽다는 표정으로 크로만을 보다가, ‘설마···?’하는 눈으로 세르펜스를 향했다.
그리고 그 시선을 받은 세르펜스는···.
“돼, 돼먹지 못한··· 거, 거짓말···이라니···. 네, 아무런 죄도 없는 피해자분에게 거짓으로 죄목을 씌워 감옥에 보낸 것은···. 비난을 받아 마땅한 행동이란 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악마 숭배자로부터 피해자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자신을 향한 말이 아니란 걸 뻔히 알면서, 저러고 있다.
비록 얼굴을 보고 있지 않았지만, 그의 대사를 통해 그가 어떤 표정을 연기하고 있는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처음 듣는 모욕적인 언사에 충격을 받았다는 듯 눈을 크게 뜬 채, 입을 살짝 벌리고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있겠지.’
아니나 다를까, 그의 왼쪽 어깨가 슬쩍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커다랗게 떴던 놀란 눈을 천천히 반쯤 감아 긴 속눈썹을 눈가에 드리우며, 고생했을 크로만을 향한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담긴 표정을 지었을 것이 틀림없다.
“알고 있습니다! 프라시더스 공작님께는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공작님이 아니셨더라면 저는···!”
“아···.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유가 어찌 되었건, 심한 거짓말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저런 악마 숭배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시면 안됩니다! 그게 바로 저들이 노리는 바가 분명합니다! 저런 빌어 처먹을 놈들!!”
훌륭한 연기자는 본인뿐 아니라, 상대 배우 또한 몰입하게 한다더니.
‘크로만, 댁은 또 왜 거기에 맞춰주고 있는 건데?!’
거짓말을 난생처음 해보는 사람처럼.
양심에 통증을 호소하며 처연하게 읊조리는 세르펜스의 말에, 크로만은 완전 과몰입 상태가 되어 길길이 날뛰고 있다.
‘세르펜스의 표정이 상상은 가지만, 그래도 보고 싶어 미치겠네!’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는 알지만, 실제로 보는 것과 차이는 어마무시하다.
어디 그의 얼굴이 상상만으로 구현될 만한 급이던가.
‘우리 애가 학예회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는데, 그걸 나만 못 보다니! 이게 말이 돼?!’
오늘 일을 교훈 삼아, 탁상 거울이라도 갖고 다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프, 프라시더스 공작님께 드린 말이 아니라···.”
어디선가 난처하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졸지에 세르펜스에게 돼먹지 못한 거짓말쟁이라 욕한 꼴이 되어버린 스테인 경이었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 속에서 ‘스테인 경이 다 잘못 했네. 저런 악마 숭배할 새끼.’라는 생각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여기 계신 크로만 씨는 흑마력에 의해 세뇌당한 상태였습니다. 그것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방식이 아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말입니다. 흑마력이 뇌의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섣불리 손을 댄다면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도 있으나, 당장 그것을 정화하지 않으면 그대로 죽음에 이르게 될 지경이었습니다.”
스테인 경이 말을 정정하려 했으나, 다 알면서 생쇼를 하고 있는 세르펜스가 귀담아들을 리 없었다.
“다행히도 제 능력 범위 안인지라, 겨우 치료할 수 있었으나···. 선택의 날 각성을 하지 못했더라면 그조차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신성력은 충분했다. 중요한 건 컨트롤이었으니, 저 말은 거짓말일 게 틀림없었다.
“그런 일을 겪으신 분이, 세뇌가 풀린 지금. 이제 와 다른 사람을 거짓으로 지목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그, 그걸, 그건···.”
스테인 경이 반박해야 한다는 것도 잊고 입을 벙긋거렸다.
그도 그러할 게, 세르펜스가 말한 내용은 이렇게 쉽게 알려질 일이 아니었다.
[성검의 주인]에서도 경험을 통해 알게 되는 정보였다.‘팔숨 경에게는 이런 얘기 안 했나?’
만약 했다면 반사적으로라도 그에게 눈길을 한 번쯤은 줬을 법도 한데, 그런 기미가 전혀 없다.
기왕이면 악마 숭배자들 사이에 간첩이 있는 것이 아닐까 오해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방식의 세뇌는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저도 이번 사건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뇌가 풀린 채로 멀쩡히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세뇌만 믿고 경솔하게 얼굴을 보였던 악마 숭배자가 그를 해하지 않을까 하여···. 부득이하게 감옥으로 보내게 된 것입니다.”
“그, 그렇다면 지금 제 보좌관이 악마 숭배자라고 말씀하고 싶으신 겁니까?!”
스테인 경 대신 페라리우스 백작이 반박에 나섰으나, 도리어 치명적인 일격을 받았다.
그 경솔한 악마 숭배자가 자신의 보좌관을 지칭하는 것임을 알고 얼굴이 벌게졌다.
“현재 상황으로는 그렇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 정도가 아니지 않습니까, 프라시더스 공작? 보좌관뿐 아니라, 저자 역시 악마 숭배자라고 봐야 옳습니다.”
“···예. 아르젠토 공작께서 하신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세르펜스가 씁쓸한 목소리로 답했다. 더없이 슬프고 착잡한 심정이 전해져왔다.
“그, 그럼 저··· 저자는 뭡니까! 가족이 죽었다지 않습니까? 무고한 사람을 지목할 리 없는 건 저자 또한 마찬가지 아닙니까?!”
초조해진 백작이 시선을 굴리다, 눈에 들어온 사람을 가리켰다. 아르젠토 공작저에 스크롤 테러를 자행한 놈이다.
“사실, 저도 처음부터 쭉 의문이었습니다. 페라리우스 백작의 말대로 이간질이 아닌 단순 테러 사건에 불과하다면, 어째서 일반인을 협박하면서까지 일을 벌였어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세뇌라는 편리한 수가 있는데, 어떤 얼간이가 제정신인 사람에게 얼굴을 내보이고 그냥 보내는가. 그리고 인질이 되는 가족을 죽여 없애는가. 프라시더스 공작께서는 그런 얘길 하고 싶으신가 봅니다.”
“···맞습니다.”
세르펜스가 대외적 이미지 때문에 차마 하지 못한 과격한 말을, 아르젠토 공작이 속 시원하게 대신 말하였다.
‘이 녀석은 세상을 참 어렵게 산단 말이야···.’
자신이 꾸민 음모도 아니고, 남이 꾸민 짓인데도 그런 얘길 하기가 그렇게 어렵나.
“이번 사건의 목적은 테러 자체가 아니라, 혼란과 반목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뇌를 당한 상태에서 하는 말이라면 누구도 믿어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범행을 저지르도록 강제를 당했다는 상황을 만들어 내기 위해···.”
세르펜스가 상상만으로도 너무나 참담하기 그지없다는 감정을 연기하기 위해,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속에서 무언가 왈칵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강제로 누르듯, ‘으음···.’하고 힘겹게 침음성을 삼켰다.
“···죽은 이들이 원래 그 집에 살던 사람이 맞는지. 그리고··· 정말 저자의 가족이 맞는지. 조사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가족이 인질로 잡혔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타인. 그러니까 솔레르티아가 시켜서 아르젠토 공작저에 스크롤 마법 세례를 퍼부었다고 말하기 위함이고.
‘그들을 죽였던 것은···.’
정말 가족이 맞지만, 악마를 숭배하는 건 그뿐이라서 거짓 증언을 하기 위한 협조를 받지 못했다거나.
진짜 가족들은 빼돌리고 생판 남을 데려다 죽였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일가족 살해 후, 가족인 양 연기 했거나···.
‘와, 어느 쪽이든 진짜 나쁜 놈이잖아?’
대외 버전인 순수펜스가 받아들이기에는 무척이나 잔인한 이야기라, 연기펜스가 저러고 있는 것이 이해가 간다.
그가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치밀어오르는 울화와 격노를 두 눈에 담은 채. 그러나 표정만은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몸서리치도록 슬픈 낯을 꾸며내고 있으려나?’
세르펜스의 고개가 움직였다.
이번 사건의 발단인 저택 폭파범부터 시작하여 스테인 경. 그리고 페라리우스 백작을 쓰윽 바라보았다.
“이, 이건 모함입니다!”
모함밖에 모르는 바보. 모함무새 페라리우스 백작이 소리쳤다.
“고, 고작 마약 하나 구매한 내용 가지고, 끼워 맞추는 것 아닙니까?! 그 구매내용을 듣고···.”
“이제 그만하십시오. 이제···, 이제 되었지 않습니까. 크로만 씨는 바깥과 완전히 단절된 채, 감옥 안에서만 지내왔습니다. 페라리우스 백작이 ‘미혹의 안개’를 구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 이후입니다. 제 보좌관이 아르젠토 공작가의 보좌관을 만나 침입자를 보낸 것이 페라리우스 백작가였다는 진상을 듣게 된 것도 그 이후입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곧장 황궁으로 불려왔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 그건!”
“또한, 시온 경에게 전해 듣기로, 자신이 약을 구매한 이들에 대해 언급하는 것보다 아르젠토 공작가 측에서 페라리우스 백작가를 지목한 것이 먼저라고 하였습니다. 구매자들 중, 페라리우스 백작가가 있지 않으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은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물론, 아르젠토 공작가에서 나온 증언은 끼워 맞춘 거짓말이지만···.’
우리가 그랬나? 아르젠토 가문이 그랬지.
나와 세르펜스는 전혀 모르는 일이다. 대외적으로는.
“···하, 이것 참. 맞습니다, 전부.”
“뭐, 뭣?! 스테인 경! 그, 그게 대체 무슨 소린가!”
더는 버텨봤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추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끝까지 버티며 잡아떼려는 백작과 달리, 스테인 경이 순순히 인정해왔다.
그의 말에 페라리우스 백작의 안색이 허옇게 질렸다.
“너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페라리우스 백작. 당신은 충분히 제 몫을 하셨고, 팔숨 경···. 저 간사한 배신자와 달리 끝까지 함께하시지 않았습니까?”
어쩐지 순순히 결과를 인정한다 했더니만. 결국, 팔숨 경까지 물귀신 작전으로 끌고 들어갈 생각인가보다.
“···스, 스테인 경? 그렇게 말하면 마치··· 우리가 악마를 숭배한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그리고 이쪽은 아직도 결과를 부정하고 있다.
백작이 당황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보좌관이자 악마 숭배자인 스테인 경의 어깨를 붙들었다.
“죽음은 잠시일 뿐입니다. 악마들이 대륙을 뒤엎고, 마왕님께서 이 땅에 강림하시게 되면 백작께서 그동안 바쳐왔던 노력과 제물로 바쳐온 재물(財物)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겁니다. 우리는 그분의 힘으로 다시 육체를 얻어,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 아니···. 나는 그냥 지금을 잘 살고 싶은···.”
“지금의 세상은 괴로움뿐입니다! 잠깐의 안식을 맞이한 뒤, 깨어나면 그곳에 진정한 이상향이 펼쳐져 있을지니! 백작의 노력을 알아준 그분의 은혜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가 그딴 걸 원한다 했습니까?! 들키지 않는다고 하였잖습니까! 그 세뇌인지 뭔지, 절대 풀리지 않을 거라더니···. ‘그날’이 왔을 때···. 제국이 망하여도 목숨을 부지하는 것은 물론, 지금 이상의 권력과 재물을 얻게 될 거라고···!”
“백작은 아직 배움이 부족하니, 당장은 두렵고 당황스러우시겠지요. 하지만 이해합니다. 그분께서도 용서해 주실 겁니다!”
···아니, 이게 뭐야, 무서워.
갑자기 분위기 광신도, 뭔데?
별안간 환하게 웃으며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스테인 경의 모습에 소름이 다 끼친다.
반사적으로 세르펜스가 앉아있는 의자의 등받이 윗부분을 양손으로 꼬옥 잡으며, 그 뒤로 바짝 붙어 섰다.
‘도를 믿습니다와는 차원이 다르네···.’
그들이 사기꾼이라면 이들은 진짜 미친 거다. 온몸의 털이 쭈뼛거리며 곤두서는 것 같다.
그때 무언가 툭- 하고, 손가락 위에 무언가가 닿았다.
세르펜스의 뒤통수였다.
‘짜식···!’
기특하긴.
녀석이 자세를 고쳐 앉는 척, 등받이에 등이 닿도록 의자 깊숙이 앉아서 자신의 뒤통수를 갔다 댄 모양이다.
‘괜찮으니까, 안심하라는 의미이자···.’
당장 일어날 듯 몸을 앞으로 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뒤로 기대었다.
그냥 관전하겠다는 뜻.
‘어차피 팔숨 경도 잡아야 했으니 일단 지켜보자, 이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