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4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46화(146/1105)
146회
31. 공작가 동상이몽 (9)
“그러나 네루스 팔숨! 저 배신자만은 용서받지 못할 겁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이간질이라니. 정말 추하기 그지없군.”
보좌관의 탈을 벗고 광신도로서의 민얼굴을 드러낸 스테인 경이 부르짖는 소리에, 아르젠토 공작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아무것도 없던 당신이 공작가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우리’가 얼마나 도왔는지 잊었나? 아르젠토 공작의 신임을 네 혼자 힘으로 얻어낸 것 같은가!”
아르젠토 공작이 듣건 말건, 광신도는 꿋꿋하게 제 의견을 소리 높여 외쳤다.
악마 숭배자가 이간질하려다 들켜서 내뱉는 마지막 말이기에 그것을 신용하는 것 같지는 않았으나, 내용이 내용인지라 사람들의 시선이 팔숨 경에게 쏠리는 것이 보였다.
“하하하! 아무래도 당신네는 이간질에 영 소질이 없나 보오. 악마 숭배 세력을 이용해 먹고 농락했다? 그것만큼 유쾌한 일이 어디 있을까! 정말 그랬다면 오히려 상을 내려야 할 일이라 생각하네만.”
광신도의 말에 아르젠토 공작은 흔들리기는커녕, 도리어 웃음을 터트렸다.
이간질을 할 거라면 좀 더 번지르르한 얘기를 꺼내보라는 도발이었다.
웃음소리는 호탕했으나, 그 안에 담긴 것은 선명한 우롱과 비소.
조금 전 보았던 광신도 스테인의 광기 어린 말까지 광대의 과장된 연기처럼 느껴졌다.
대륙을 위협하는 악마 숭배자가 한순간에 우스꽝스러운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번 사건의 전모도 밝혀졌겠다, 더는 미지의 공포와 싸울 필요는 없었다.
여기저기서 풋-, 하고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제는 악마 숭배자들이 나쁜 놈들이라서가 아니라, 못 미더워서 손절할 것 같은데?’
보아하니 백작은 권력욕도 있겠지만, 악마 숭배자들의 세력이 커져서 제국에 위협이 닥쳤을 때. 박쥐처럼 진영을 갈아타서 살아남으려고 했던 것 같은데···.
다시는 그런 귀족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저런 허술해 보이는 놈들의 무얼 믿고 제 목숨을 맡기겠는가.
“아르젠토 공작, 당신은 지금 속고 있다! 당신의 보좌관은···!”
“가는 길에 아무나 붙잡고 끌어내리고 싶다는 건 알겠지만, 더이상 죄 없는 사람을 욕되게 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소.”
보좌관으로 위장하고 있던 광신도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들이 정말 팔숨 경을 뒤에서 도왔는지 어쨌는까지는 모르겠지만, 팔숨 경도 그들에게서 무언가 받은 게 있으니 그들과 협조를 한 걸 테다.
연결점이 있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데도 과연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의심할 만한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을까?’
한두 가지쯤 의심스러운 점이 있을 법도 한데.
눈 하나 꿈쩍도 하지 않는 아르젠토 공작의 모습을 보니, 팔숨 경을 보통 신임하는 게 아닌가 보다.
의심은커녕, 터럭만큼의 동요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굳건한 신의에 나도 모르게 ‘와···.’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올 정도였다.
‘···응?’
의자를 잡고 있던 손가락을 타고, 세르펜스의 둥근 뒤통수가 굴렀다.
그 무게 중심이 내 왼손 검지에서 중지로. 다시 검지를 타고 이번에는 오른손 검지를 거쳐 중지로 갔다가 처음 위치로 돌아오는 것이 느껴진다.
‘···얘 지금 도리도리 한 건가?’
작은 움직임이었으나, 일부러 지그시 누른 것이 그 움직임을 통해 내게 무언가 전달하고자 함이 분명했다.
고개를 젓는다는 행위는 무언가를 거절하거나 부정할 때 쓰인다.
내가 세르펜스에게 무언가 요청한 것은 없으니···.
‘부정? 대체 뭘?’
···아르젠토 공작이 팔숨 경을 믿고 있는 거, 아니야?
그럼 저거 뭔데, 연기야?
“악마 숭배자가 아무렇게나 떠드는 소리를 언제까지 들어야 하는 건지···. 폐하, 저자는 모든 죄가 밝혀진 지금에 이르러서도 반성의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당장 저자를 끌어냄이 옳습니다.”
더는 그 헛소리를 듣는 것조차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한 저 반응이?
“확실히···. 열심히 떠들어 대기에 무언가 정보를 흘리지 않을까 기대했더니, 더는 못 들어 주겠구려.”
황제가 특유의 느긋하면서도 느릿한 어투로 긍정하며, 허공에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뒤쪽에서 목석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던 황실 근위기사단의 단장이 수신호를 보내자, 일정 간격을 두고 회의장 전체를 감싸듯 둘러싸고 있던 근위기사 중 일부가 움직였다.
죽은 가족을 떠올리며 서럽다는 듯 울어 젖혔던 테러범은 진실이 밝혀지자마자 언제 울었느냐는 듯, 싸늘한 표정으로 얌전히 잡혔다.
페라리우스 백작은 넋이 나가 반항할 여력조차 남지 않아 보였고.
“약을 구매한 것은 우리지만, 그것을 탄 것은 팔숨 경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딴 메시지 카드 따위는 보낸 적이···! 읍, 으읍!!”
마지막까지 발악하듯 소리치던 광신도 스테인을 끝으로 악마 숭배 트리오가 모두 제압당했다.
‘어쩐지 악마 숭배자인 건 깔끔하게 받아들였으면서 끝까지 구질구질하게 굴길래 왜 그런가 했더니···.’
자신이 참여했던 대규모 프로젝트가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던진 단검과 의문의 카드로 인해 망해버렸다.
그것이 보통 억울했던 게 아닌 모양이다.
그 탓에 나름 신경 써서 준비 중이던 조작된 스크롤도 완벽하게 카피하지 못한 채, 급하게 써버렸고.
악마 숭배 세력의 흑마법사들이 긴 시간, 공들여 만들어낸 것이 분명한 세뇌 마법의 실체까지 드러나 버렸다.
‘흑마법사들이 세뇌가 풀릴 때는 죽거나, 죽은 거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거나. 둘 중 하나뿐이라고 떠들어댔을 텐데···.’
흑마력을 직접 사용하고 악마를 소환하는 주축이 되는 흑마법사는, 스테인처럼 아무 힘도 갖추지 못한 광신도들에게 우상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러니 그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크로만에게 민얼굴을 내보인 것.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억울할 만했다. 예기치 못한 외부 변수가 너무 많았다.
인정할 건 깔끔히 인정하되, 억울한 것은 확실히 짚고 떠나는 광신도 스테인의 뒷모습이 참으로 추했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나뿐만이 아닌지,
“결국, 자신들의 범행을 부정하고 싶었을 뿐인가···.”
“역시 악마 숭배자들의 말 따위를 귀 기울여 듣는 건 손해야.”
“난 또 뭐라고···. 다 헛소리였군.”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 말대로라면 팔숨 경이 직접 약을 타고, 카드를 쓰고, 사람을 고용해서 단검까지 날렸다는 것 아닌가.
‘못 믿지, 그딴 거. 대체 누가 믿겠어?’
태어난 지 한 달 조금 넘긴 리벨론 가의 넷째도 안 믿을 거다.
그렇게까지 해서 악마 숭배자들을 끌어내어 잡은 거라면, 팔숨 경을 악마 숭배자라고 볼 수도 없다.
대륙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 사이에 숨어들어 첩자 노릇을 했다고 봐야 했다. 일종의 정의 구현.
“크흠···. 그건 그렇고.”
사건의 진상도 밝혀졌고 악마 숭배자들도 잡혀갔다.
이제 다 끝난 줄 알았는데 갑자기 황제가 입을 열어 운을 떼었다. 회의장은 다시 조용해졌고,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오늘 있었던 모든 말을 종합하면, 두 공작은 페라리우스 백작가와 악마 숭배 세력의 유착을 최소 한 달 전부터 알고 있던 것 같네만.”
“······.”
“······.”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님들, 왜 나 무시하고 늬들끼리만 알고 있음?’이라는 뜻이다.
왜 그런 중요한 사안을 두고서 자기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일을 진행했느냐, 이거다.
사무적인 질문인 양 물었지만, 섭섭하다는 기색이 숨겨지지 못하고 드러났다.
‘아, 이건 잘못했네!’
누가 봐도 서운할 만했다.
셋이서 함께 밥을 먹기로 했는데, 둘이서 날짜와 시간을 정해놓고 남은 한 명에게 ‘쟤가 알려 주겠지.’라는 생각으로 서로에게 그것을 암묵적으로 떠넘긴 상황.
그 상태로 당일이 되어 약속 장소에 도착한 둘이, ‘님 왜 안 옴? 지각임?’ 이따위 카톡을 보낸 거나 다름없다.
“확실한 증거가 갖춰지지 않아서···.”
“보다 명확한 증거를 찾기 전까지는···.”
아르젠토 공작과 세르펜스가 앞다투어 변명을 늘어놓으려다, 서로의 목소리가 겹쳤음을 알고 멈칫했다.
짧은 눈빛 교환 후, 먼저 변명권을 획득한 것은 아르젠토 공작.
“커험!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확실한 증거도 없이 보고를 올린다면 자칫 모함으로 여겨질까 하여···. 우선 페라리우스 백작가를 건드려서 반응을 유도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확실한 증거가 나오면, 폐하께 바로 보고를 올릴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반응이 하필 저택 폭파와 같은 큰 사건이라서 말할 타이밍을 놓쳤다는 얘기다.
“증인을 찾았다고는 하나, 흑마력을 정화한 뒤에야 그 배후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명백한 증거가 되는 흑마력의 기운은 이미 사라진 뒤였습니다. 만일 구매해 간 마법 스크롤들을 전부 악마 숭배 세력의 흑마법사에게 넘긴 뒤라면, 저택을 수사한다 하여도 증거를 찾기는커녕 그들이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상황이 생길까 하여···.”
이미 저택을 뒤져서 스크롤이 그들의 수중에 없다는 걸 확인한 세르펜스가, 아직 확인하지 못한 척 말했다.
‘그러고 보니 흑마법사도 또 놓쳤잖아···?’
바스툴 왕국에서 윈스톤을 구해냈을 때 이어서, 두 번째다.
하필 세르펜스가 감시하지 못한 시간대에 흑마법사와 접선을 한 건지.
아니면 자금줄 중 하나인 페라리우스 백작가가 궁지에 몰려서, 그쪽에서 먼저 도와주겠다고 나선 건지···.
‘설마 소란을 틈타 제국을 완전히 뜬 건···, 아니겠지?’
그들로서 제국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을 텐데.
“그런 거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네. 다른 이도 아니고, 두 공작의 말을 못 믿겠는가.”
“크흠···! 송구스럽습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으음···. 죄송합니다, 이후부터는 시정하겠습니다.”
죄송하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나쁜 짓 하는 걸 숨긴 것도 아니고.
황제가 사죄하는 두 공작을 번갈아 보다가, 앞으로는 작은 의심이라도 좋으니 즉각 보고하라 일렀다.
어쩐지 선생님이 말썽 피운 학생을 혼내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세르펜스는 그렇다 쳐도, 황제보다 나이가 많은 아르젠토 공작도 함께 그러고 있으니 참으로 안 어울렸다.
* * *
“그나저나, 이제 그놈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황제의 폐회 선언이 떨어지고 난 후. 회의장 밖으로 나서며 세르펜스에게 질문했다.
저번 세미타 거리 사건 때와 달리, 누가 고문을 담당하는가로 다투지 않길래 귀족이랍시고 다른 대우를 해주는 건가 의문이 들었기 때문.
“아마 교황 성하께서 주도하시는 종교 재판으로 회부될 겁니다.”
“재판을 또 해요? 방금 다 밝혀진 거 아닙니까?”
내 질문에 대외 버전의 세르펜스가 ‘후후-.’하고 온화한 웃음소리를 낮게 흘리며 빙그레 웃었다.
호기심 많은 아이를 대하는 듯한 그의 연기를 마주하니, 살짝 후회스럽다.
‘괜히 바로 물었나?’
마차에 올라탄 후에 질문할 것을.
그냥 생각나자마자 바로 입에 올렸더니 이런 부작용이 생길 줄이야.
공개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대외펜스와의 대화보다는 대내펜스와의 대화가 더 익숙한지라, 다소 겸연스러운 느낌이 없잖아 있다.
‘어쩐지 나도 뭔가 연기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주어진 대본은 없고···.’
모든 걸 애드립으로 때우라는 지시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합니다. 이번 사건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공개 처형식을 하기 위한 수속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신성 루멘 제국에서는 웬만한 사건들은 따로 재판을 여는 대신, 자문회에서 처리했다.
어차피 따로 재판을 열어도 오는 놈이 거기서 거기라는 이유도 있으나, 사건의 경중에 따라 밖에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보안적 측면···이라고 해야 할지.
사실은 폐쇄적인 이유가 크다.
따라서, 자잘한 일들은 따로 재판장에 넘기고 중요한 일은 황제의 주도하에 자문회에서 처리했다.
‘하지만 교단에서 열리는 종교 재판은 별도인가 보네.’
형식적인 절차라니, 그냥 세워놓고 그 죄만 줄줄이 읊으려나?
생각만 해도 엄청나게 지루한 자리가 될 것 같다.
그건 그렇고, 방금 뭔가 서스펜스적인 단어를 들은 것 같은데···.
“공개 처형이요?!”
“필참은 아닙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질겁하듯 되물었더니 세르펜스가 안심하라는 듯 다정한 목소리로 답했다.
“저도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아무래도···. 조금 힘이 드는지라···.”
네? 누가 뭘 어쨌다고요?
‘아, 괜히 물었어. 마차 타고 나서 물어볼걸, 왜 바로 물어서는!’
공적인 질문이라 상관없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굳이 붙이지 않을 말을 덧붙여가며 내숭을 떨고 있는 세르펜스의 모습이란.
참으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