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4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48화(148/1105)
148회
31. 공작가 동상이몽 (11)
그것에 대해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마차가 멈춰 섰다.
“자, 자. 세르펜스. 화내지 말고, 진정하세요.”
“···’화’라니?”
마차의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 쪽으로 향하던 세르펜스의 손이 멈췄다.
“본인 표정도 모릅니까? 이해가 안 되는 게 아니라, 용서가 안 된다는 표정이거든요?”
“······.”
“대외펜스 때려치우고 그냥 세르펜스로 나갈 생각이라면 전 상관없는데, 아니라면 미간 정도는 펴는 게 어떻습니까?”
내 말에 세르펜스가 이번에야말로, 정말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매만졌다.
‘자기가 인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공감도 가능해진 거려나?’
예전에 아니마의 ‘언니’에 관한 얘기를 했을 때는 오해가 있어서 그랬다고 쳐도, 이번에는 타인의 이야기라는 것을 지각한 상태다.
그것을 알면서도, 팔숨 경에게 자신을 대입해보고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라는 마음으로 화를 내는 거다.
기특하고, 뿌듯하고. 무엇보다 고마웠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잖습니까. 일단 부른 용건부터 들어보죠. 그러고 나서 팔숨 경에 대해 떠보든, 대놓고 물어보든 하자고요. 화를 내는 건 그때 해도 됩니다.”
“···그래야겠지.”
세르펜스가 미간을 매만지던 손을 내렸고, 나는 마차의 문을 열었다.
“서로 나눌 대화가 많으셨나 봅니다.”
마차에서 내려서자, 아르젠토 공작과 팔숨 경이 먼저 내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오늘 자문회에서 나왔던 얘기들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일에 관해 토의하다 보니···.”
세르펜스는 어느새 대외펜스가 되어, 겸연스럽다는 표정으로 사과의 말을 꺼냈다.
“나무라려던 의도로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일이 어디 보통 일이었습니까? 그럴 만도 합니다. 그보다 제가 괜히 바쁘신 분을 불러낸 것이 아닐까 걱정입니다.”
아르젠토 공작은 사과할 필요 없다는 식으로 말하며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세르펜스가 저러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라지만, 아르젠토 공작 또한 자문회에서 보았던 공격적인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하긴, 세상에 한 가지 얼굴로만 사는 사람이 어딨겠어?’
세르펜스의 경우 그 차이가 커서 그렇지, 누구에게나 다양한 얼굴이 있는 법이다.
“아닙니다. 저보다는 아르젠토 공작께서 저택 일로 신경 쓰실 것도 많으실 텐데···.”
“하하하, 이 기회에 리모델링이라도 한다고 생각하면 나쁠 것도 없습니다.”
리모델링이라 함은, 건물의 골조는 따라가는 걸 기본으로 하지 않나?
배포가 큰 건지, 그냥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우선 들어갑시다.”
아르젠토 공작의 말대로 길 한복판에서 계속 얘기를 이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직원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프라이빗 룸은 지난번 팔숨 경과 식사했던 곳보다 좀 더 넓었다.
처음부터 세르펜스뿐만 아니라, 나까지 부를 생각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대체 무슨 이유로?’
보좌관도 같이 오라는 말은 안 했지만, 돌려보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대놓고 말을 하지 않더라도 팔숨 경을 돌려보내는 것만으로 충분히 그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르젠토 공작은 그러지 않았다.
예약된 방의 크기를 봤을 때, 내가 먼저 돌아간다고 했으면 그럴 필요는 없다며 막지 않았을까?
‘그렇다는 건 나 아니면 팔숨 경. 혹은 양쪽 모두와 관련된 얘기를 할 생각이라는 건데···.’
세르펜스가 제대로 본 것 같다.
아르젠토 공작은 팔숨 경이 악마 숭배자와 결탁한 것을 알고, 그것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우리가 팔숨 경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모르는 척해달라고 부탁이라도 하려는 걸지도···.
‘···내가 왜 이걸 고민하고 있지?’
어차피 바로 들을 얘기고, 선택은 세르펜스의 몫이다. 고민해봐야 머리만 복잡하지.
이 세계에 와서 이래저래 머리 쓸 일이 많아서 열심히 굴리다 보니, 그것이 거의 습관처럼 굳어져 가나 보다.
식사는 저번과 마찬가지로 오늘의 추천 메뉴로 주문했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오늘의 식사는 풀 코스라는 것.
‘이야, 제대로 된 풀 코스 요리는 처음··· 응?’
서양 배경의 판타지 세상이다.
몸의 주인인 시온은 어엿한 귀족이며, 더군다나 공작인 세르펜스의 보좌관이었다.
그런데도 어언 1년이라는 시간 동안 풀 코스 요리를 한 번도 안 먹어봤다고?
‘세상 헛살았네, 헛살았어!’
다이어트를 해도 치팅데이가 있는데,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풀 코스로 식사해도 괜찮은 것 아닐까?
애초에 다른 귀족들은 평소에도 자주 그렇게 먹지 않아?
“그나저나, 갑자기 무슨 연유로 저를 보자고 하셨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아직 메인 요리는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프라시더스 공작께선 의외로 성격이 급하신가 봅니다.”
세르펜스의 질문에 아르젠토 공작은 답을 미루며, 느긋하게 말했다.
자기가 불러놓고 무슨 짓인가 싶기도 하고, 이런 게 분위기를 주도해 나가기 위한 정치질인가 싶기도 하다.
용건이 있는 건 저쪽일 테니, 굳이 먼저 물을 필요가 없음에도 세르펜스가 먼저 물은 건 마차에서 나와 나눴던 대화 때문일 거다.
‘괜히 얘길 꺼내서 초조하게 만들었나···.’
그래도 아르젠토 공작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으니, 크게 손해는 아니다.
덕분에 세르펜스의 성장도 엿볼 수 있었고.
“듣기로는 본관 건물이 파손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지내는 데에 문제는 없겠습니까?”
“안 그래도 그 때문에 업무에 필요한 서류들을 수도 외곽에 있는 별장으로 옮겨 놓으라 지시해 둔 상태입니다. 지금 식사가 끝난 뒤에 바로 그쪽으로 갈 생각입니다.”
아르젠토 공작이 바로 본론을 꺼내는 것을 피했기에 소소한 신변잡기적 대화가 오갔다.
그러다 나온 주제가 바로 이것이다. 저택의 본관이 일부나마 날아가 버렸으니, 그의 거주 문제가 자연히 언급되었다.
“그럼 당분간은 별장에서 지내시는 겁니까?”
“예. 한 번도 쓴 적 없지만, 선대가 취미로 구해놓은 것을 팔지 않고 두었더니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을 누가 알았겠소이까. 이래서 뭐든 가지고 있다면 다 쓸모가 있다고 하나 봅니다.”
현 아르젠토 공작의 선대라고 하면 대체 몇 년 전이지?
관리비가 꽤 들 텐데, 제국의 공작가답게 돈이 썩어 넘치나 보다.
‘별장 하니까, 예전에 가족들이랑 펜션 빌려서 놀았던 게 생각나네···.’
세상이 뒤숭숭해서 그런가.
펜션에서 친구들과 신명 나게 놀았던 기억보다, 가족끼리 느긋하게 여유를 만끽했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리벨론 경이라고 했던가?”
“···네, 네?!”
추억을 떠올리며 뫼니에르를 조금 잘라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아르젠토 공작이 나를 불렀다. 급하게 음식을 넘기고 대답했다.
“보좌관이 된 지 이제 1년이 되었다고 들었네.”
이것도 잡담의 한 부분이려나, 본론을 꺼내기 전에 미리 깔아 두는 밑밥이려나.
슬쩍 고개를 들어 올리는 경계심을 속으로 꾸욱 눌렀다.
“네, 벌써 그렇게나 되었군요. 시간이 참 빠른 것 같습니다.”
아르젠토 공작의 의도를 알 수 없어서 조심스러운 답변을 찾다 보니, 어쩜 이렇게 상투적인 문장이 있을 수 있나 싶은 말이 튀어나왔다.
“프라시더스 공작이 좋은 상사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테고, 일에 적응은 잘 되었는가?”
“네. 저희 공작님께서 배려를 많이 해주신 덕분에, 생각보다 빨리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다행이구먼. 요즘 시기가 시기라서 그런지, 프라시더스 공작의 보좌관이 되어 고생이 참 많네.”
“아하하···.”
명절날 큰 집에서 만난, 도대체 몇 촌 사이인지도 모를 먼 친척 어른이 덕담하는 것을 듣는 기분이 들었다.
한 마디로 어색해 미치겠다.
“프라시더스 공작이 이전 보좌관을 그렇게 잃고, 많이 힘들어했네.”
누가 뭘 잃고, 뭐 어쨌다고?
어리둥절하여, 고개가 자연스레 세르펜스 쪽으로 돌아간다. 눈이 마주친 그가 쌉싸름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연기였다.
“아, 듣지 못한 건가?”
“···네?”
“시온 경. 그 암흑가의 마약 유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 아아-! 네. 들었습니다.”
대체 뭔 소린가 눈을 끔벅거리며 반문하니, 옆에서 세르펜스가 설명을 덧붙였다.
‘역시 아르젠토 공작도 알고 있는 거였나.’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게 되었으나, 아르젠토 공작이 왜 세르펜스가 힘들어했다고 표현을 한 것인지를 모르게 되었다.
“자신이 좀 더 빨리 알아챘어야 했다고. 그래서 그를 바른길로 인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그가 그렇게 떠났다고 자책했지.”
내 생각이 여실히 표정에 드러났는지, 아르젠토 공작이 바로 의문을 풀어주었다.
그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절대 알 수 없었을 얘기다.
어휴, 이런 설정펜스.
“보좌관은 다른 이들보다 가까운 위치에서 그 섬김을 다하기 때문에, 가신보다는 가족 같은 느낌이지.”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르젠토 공작의 말에 내가 그리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다. 그가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을지.
가족같이 지낼 사람을 찾는다는 문구로 아르바이트를 구인했는데, 뽑아 놓은 알바생이 아주 가관인 거다.
자신은 부모님께 반말한다면서 반말을 찍찍 내뱉고, 말대꾸해대는 걸 마주한 사장과 비슷한 심정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한마디로 그걸 왜 네가 동감하고 있느냐, 이거지.’
지금 아르젠토 공작은 내게 말을 하는 척, 세르펜스에게 간접적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얘기를 전달하려 하고 있었다.
“아르젠토 공작께서 무슨 말을 하시려는지, 잘 알겠습니다.”
그것을 눈치챈 것은 세르펜스 역시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가 아르젠토 공작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평소 연약한 척하던 표정이 아니라, 꽤 다부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긴가민가했는데, 다 알고 계셨나 봅니다.”
“네.”
“어째서 폐하께 그것을 바로 보고하는 대신, 보좌관을 통해서 경고해 온 겁니까?”
“아르젠토 공작께서는 단순히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세르펜스는 말끝을 삼켰다.
굳이 뱉어내지 않더라도, 그 뜻은 충분히 전달되었으니까.
아르젠토 공작가가 악마를 숭배했다는 낙인이 찍히는 것을 막으려고 일부러 경고까지 해 주었는데, 어째서 팔숨 경의 편을 들고 있느냐는 말이었다.
“제가 이전 보좌관에 대해서 한 말은, 그 죄를 덮어주고 모른 척하고 싶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슬펐지만, 그 죗값은 반드시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르펜스가 진중하게 입을 열었다.
연기 중이었으나, 단 한마디의 문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진실이고 진심이었다.
하필 그 거짓말이 ‘그의 죽음은 슬펐지만.’이라는 부분이라 문제지.
“팔숨 경은 아직 큰 잘못은 저지르지 않았으니, 아직 회심의 여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큰 잘못은 아직이라는 걸 보니, 작은 잘못은 꽤 있나 보다. 정말 깨끗했다면 ‘아무 잘못도 없다.’라고 말했을 테지.
그렇다는 건, 팔숨 경은 자신이 해온 짓들을 죄다 아르젠토 공작에게 밝혔다는 소린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시온 경의 음료 잔에 약을 탄 것이 팔숨 경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미수로 끝났다고 해서, 그것을 행한 사실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페라리우스 백작···가의···. 혹시 그 메시지 카드, 프라시더스 공작가에서 준비한 거였습니까? 침입자도?”
세르펜스가 내 잔에 약을 탄 것이 팔숨 경이라는 것을 확신하자, 아르젠토 공작이 흠칫 놀라며 물었다.
다 밝히자는 분위기라서 나는 당연히 그것에 대해 내게 사과할 생각일 줄 알았는데, 끝까지 말하지 않으려 했다는 저 태도가 놀랍다.
“애석하게도 아닙니다. 사실, 시온 경이 발견한 카드는 두 장이었습니다.”
나는 처음 듣는 얘기지만 그렇다고 치자.
어차피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던 것이 한 장이건, 두 장이건 알게 뭔가.
“또 한 장의 카드는 자신들이 ‘일루미나티’라는 것과 아르젠토 공작가의 보좌관이 악마 숭배 세력의 지시를 따르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카드를 그들에게 먼저 보여준 후, 사실을 실토하면 두 번째 카드도 보여주며 서로 협조할 것. 거짓으로 대응한다면 두 번째 카드는 폐기할 것. 그렇게 적혀있었습니다.”
···그래.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일루미나티지.
비밀 조직이란 증거 날조에 아주 탁월한 효능을 발휘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