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4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50화(150/1105)
150회
31. 공작가 동상이몽 (13)
“시온 경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르펜스가 눈빛이 아니라, 육성을 내어 물었다.
“솔직히, 저는 못 믿겠습니다. 지나치게 보여주기식의 대화처럼 느껴져서···.”
좀 더 까놓고 말하자면, 난 지금 상당히 빡쳐 있는 상태다.
긴 시간 정치판에서 굴러왔고, 항상 권력의 중심에 서 있던 사람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건 아니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어떻게 이해하려고 해도, 갈수록 가관이다.
악마 숭배 세력의 일에 가담했던 자를 돕는 것은 큰 부담이 되는 일이다.
그런 것을 부탁하는 주제에, 세르펜스의 정에 약하고 너그러운 마음씨를 이용하려 들었다.
‘그것이 단순히 설정값이기에 망정이지, 정말 그런 사람이었다면?’
거기에 영악하게도, 나까지 끌어들여서 동질감을 끌어내는 것을 도입부로 삼았다.
하물며 가족이라니.
아르젠토 공작이 팔숨 경을 진심으로 가족으로 여기고, 아들처럼 생각해서 그런 표현을 쓴 거라 해도 지나쳤다.
‘세르펜스에게 가족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조금 전 아르젠토 공작이 자신의 입으로 말한 대로, 세르펜스는 아직도 부모님을 죽음으로 몰아간 악마 숭배자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고 알려졌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이 아니더라도.
실제로 세르펜스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가족의 정을 느껴보지 못하고 자라 왔다.
‘그런 아이에게 계산적으로 가족을 들먹거리면서 이용해 먹으려 들어?’
대화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느껴지던 동질감이, 그것을 인위적으로 유도하려 드는 그 행태에 도리어 사라져 버렸다.
세르펜스는 그가 팔숨 경에게 이용당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화까지 내주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배신감마저 들었다.
“아르젠토 공작님께서 식구를 챙기는 건 좋습니다. 긴 시간 이용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에도 용서해주는 그 도량도 존경스럽고요.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요. 지금 이러시는 건 부탁이 아닌 강요입니다.”
“그렇게 들렸는가?”
“네. 저희 공작님께서 아르젠토 공작님을 얼마나 걱정하고, 드물게 화까지 내셨는데···.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과 전혀 달랐다.
아르젠토 공작은 세르펜스를 이용하려 들고, 정작 팔숨 경은 반쯤 포기 상태다.
“···아까 마차에서 그런 얘기를 했구먼.”
“아, 음. 뭐···, 자문회의 연장이긴 하잖습니까?”
혹시 말실수인가 싶어 옆자리의 세르펜스를 바라보자, 그가 눈을 마주치며 깜박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 정도는 괜찮다는 의미다.
다시 앞을 보니, 아르젠토 공작이 스테이크와 함께 나온 최고급 레드 와인을 앞에 두고서 굳이 맹물을 들이켜고 있었다.
“미안하오이다, 프라시더스 공작. 당신이 그런 사람이란 걸 알면서도 진솔하게 털어놓기보다, 그것을 이용할 생각을 먼저 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세르펜스가 전혀 괜찮지 않은 듯한 얼굴로, 부서질 듯 슬픔 어린 미소를 꾸며냈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을 이용하려 드는 사람은 자주 봐서 이제는 무뎌졌다 말하는 것처럼 보여서.
어쩐지 나까지도 과거를 반추하게 할 정도로, 없는 죄책감도 끌어내어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물론 그 무언가는 얼굴일 테다.
“커험, 크흠! 지난날은 이 괘씸한 녀석에게 속아 넘어간 것이 맞긴 하나, 이번은 순전히 제 의지가 맞습니다. 그가 먼저 진실을 밝히면서 모든 일은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미리 빠져나갈 대비를 하라며 사죄해 오는데···. 용서해줘야지, 어쩌겠소이까.”
찔리는 구석이 많은지, 아르젠토 공작이 연달아 헛기침하며 겸연쩍이 말했다.
아르젠토 공작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팔숨 경의 생각이 그러했을 줄은 몰랐다.
그것마저도 고도의 계산이 밑받침된 거라면 할 말 없지만, 뭐···.
‘그래 보이지는 않네.’
팔숨 경이 면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굳게 다문 입의 꼬리가 아래로 축 처졌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아르젠토 공작은 저자···. 보좌관이 아니더라도 진짜 가족이 있잖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피가 섞이지 않았다 한들, 그동안 저를 보필해온 시간과 정성이 얼마인데. 외로워하는 녀석에게 그깟 정 하나 주는 것이 무에 어렵겠소이까? 보통이라면 숨기기 급급했을 일을, 먼저 꺼내온 것을 보면 지난날이 그리 헛된 것 같지는 않더이다. 그래서 용서했습니다.”
“······.”
“자식 중, 아직까지 제 앞가림도 못 하는 자식은 이 녀석 하나뿐입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친 사고인데, 능력이 닿는 한에서 수습을 도와야지요.”
그 사고가 장기간에 걸쳐 쌓인 것일 텐데도 하나로 봐주는 건가?
참, 배포가 크기도 하다.
“프라시더스 공작에게 부탁할 것은 폐하의 설득을 돕는 것도 있으나, 페라리우스 가문을 처분할 때, 혹시 그쪽에 팔숨 경에 관련된 정보가 있다면 그 폐기 또한 부탁할 생각이었소이다.”
···그걸 왜 세르펜스에게 시켜?
너무 어이가 없는 나머지, 내 의지가 반영되기도 전에 ‘허···.’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런 경우, ‘효도는 셀프’가 아니라 뭐라고 외쳐줘야 옳지? 내리사랑도 셀프?
“···그, 이런 일은 보통 프라시더스 공작이 처리하게 되다 보니···. 커흠! 참 가차 없는 보좌관을 두셨습니다.”
“시온 경은 워낙에 충심이 뛰어난지라···.”
세르펜스가 ‘아하하···.’하고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충성심이라 들으니 뭔가 기분이 미묘하긴 하지만, 세상에 나만큼 상사에게 지극정성인 보좌관도 없지.
그게 곧 충심이지, 충심이 따로 있으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프라시더스 공작처럼 유한 사람에게는 저런 자가 옆에 있는 쪽이 더 균형이 맞을 것 같소이다.”
“네, 그에게는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봐라, 제국의 두 공작이 인정했다.
“하여간, 아까 했던 말은 처음의 계획일 뿐입니다. 제가 부탁할 것은 침묵과 양보입니다.”
“폐하를 설득하는 데에 있어서 반대하지 않고, 이번 사건에서 손을 떼주길 바란다고 들으면 되겠습니까?”
“그렇소이다.”
아르젠토 공작의 말에 세르펜스가 고민된다는 표정으로 뜸을 들였다.
“판단을 내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폐하께서 하실 일입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 고맙소이다, 프라시더스 공작.”
아르젠토 공작의 말에 세르펜스가 과연 자신이 맞는 선택을 한 것인지 복잡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저···, 외람되오나 만일 폐하께서 그것을 용납하지 않으신다면 저의 처분이 비밀리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정말 염치없는 부탁이란 것은 알지만···.”
팔숨 경의 말이었다. 그 옆에서 아르젠토 공작이 이마를 짚은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폐하께서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실 겁니다. 일이 그렇게 될 경우 교단과 협상은 해봐야겠으나, 아르젠토 공작가에서 그간 교단에 보인 성의가 있으니 그 정도는 들어줄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아르젠토 공작의 면을 봐서 넘어가 드리는 것뿐, 그쪽에게는 유감이 많습니다. 이런 부탁을 하거나 제게 감사하는 것 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세르펜스가 정중하지만, 살짝 냉랭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가 말한 ‘먼저 해야 할 일’을 알아듣지 못했는지, 팔숨 경이 주춤거렸다.
‘얘, 또 화났네?’
대놓고 한숨을 쉬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과 마찬가지로 세르펜스의 호흡이 깊고 길어졌다.
숨을 들이켤 때, 가슴이 평소보다 크게 부풀어 오르고 어깨도 살짝 들렸다.
어지간히 팔숨 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시온 경에게 사과하실 일이 있지 않습니까?”
정말 반성을 한 것이 맞는지 의심스럽다는 말투다.
“죄송합니다, 제가 눈앞의 일에 정신이 팔려···.”
“······.”
“리벨론 경, 그간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경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이나 약을 타려 했던 것과···.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팔숨 경은 반사적으로 변명을 내뱉다가, 세르펜스의 눈빛에 움찔하며 하던 말을 집어삼켰다.
그리고는 내게로 시선을 옮기며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나저나 저 설정 참 편하네···.’
악마 숭배 관련자라면 부모님을 죽인 원수의 동료 같은 거니까, 서스펜스 모드도 한···, 두세 큰 술쯤은 끼얹어도 괜찮은가 보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걸 대체 어떻게 갚아야 할지···.”
“아뇨, 됐어요. 괜찮습니다!”
“···그러시다면야. 나중에라도 생기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서스펜스 모드의 허용 가능 지점에 관한 고찰을 하느라 입을 다물고 있었더니,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 줄 알고 팔숨 경이 보상까지 내걸며 재차 사과해 왔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그 보상이 실체화되어 어느 날 갑자기 공작저로 선물이 도착할까 봐, 양손까지 내저으며 거절했다.
“대신, 질문 하나 해도 됩니까?”
“하십시오.”
“갑자기 어떤 심경으로 아르젠토 공작님께 자신이 당신을 속여왔노라 말씀하신 겁니까? 밝혀진다는 것이 확실한 것도 아닌데, 끝까지 잡아떼지 않으시고.”
“···예?”
너무 노골적인 질문이었나?
팔숨 경이 크게 당황해하는 것이 보였다.
“저는 팔숨 경이 악마 숭배자를 끌어내는 것에 최대한 공을 세워서 그 보상으로 교단에 보호 신청을 하거나, 그럴 줄 알았거든요.”
“···제가 저지른 죄의 값을 제가 치르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저희 공작님께서는 잘못이 없으시잖습니까. 그분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진짜 아버지에게서도 받지 못한 것들도 받았는데. 실컷 이용해놓고, 이미 큰 누를 끼친 뒤지만, 거기에 악마 숭배와 같은 큰 오명까지 씌울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팔숨 경의 모습이 오만하고 당당해 보이던 평소와 달리, 늙고 기운 없어 보였다.
“···저도 한 가지 질문드려도 되겠습니까?”
나와 팔숨 경이 대화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세르펜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저는 그렇다 치고, 폐하는 어찌 설득하실 생각이십니까?”
팔숨 경의 대답에 뭔가 느끼는 점이 있었나 했더니, 그냥 딴소리였다.
“공작께서 나서서 저자를 두둔한다면 아르젠토 공작가 때문이라도 당장은 넘어가겠지만, 크게 노여워하실 겁니다.”
감히 공작가문을 볼모 삼아 황제를 협박하는 거나 다름없는 짓이다.
팔숨 경에 관련된 악마 숭배에 관한 건은 어쩔 수 없이 모르는 척 넘어갈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큰 화를 피치 못하게 될 거란 얘기다.
“프라시더스 공작. 아직 암흑가를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질문 하나 했을 뿐인데, 느닷없이 팩트 폭력이 날아왔다.
‘어? 아닌가? 암흑가 발견한 걸 못 찾은 척 한 거니까···.’
설마하니, 세르펜스가 암흑가를 고의로 찾지 못한 척하면서 뒤에서 좌지우지하는 것을 눈치챈 건 아니겠지?
“부끄러워할 것 없소이다. 그럴 만도 합니다.”
다행히도 그건 아닌 모양인데, 이건 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지금 우리 애 무능하다고 깐 건가?
“···프라시더스 공작처럼 깨끗한 사람에게 그런 정보가 닿기란 쉽지 않다는 뜻이니, 눈에 힘 좀 풀게나.”
“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가 갑이었기에 망정이지, 보통 때라면 이렇게 타이르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재빨리 눈을 깔았다.
“팔숨 경에게 전해 듣기로, 악마 숭배자들은 암흑가에 악마를 소환할 계획이라 하더이다.”
“그 말씀은··· 다른 곳도 아닌 제국 내에서 악마가 소환될 예정이라는 겁니까?”
세르펜스가 다 알면서 모르는 척 깜짝 놀라 했다.
“그렇소이다. 또한 팔숨 경은 암흑가에 들어가는 방법도 알고 있다 하니, 이 정보를 알린다면 폐하께서도 선처해주시지 않을까 합니다.”
쉽게 말해, 퉁치자는 거다.
제국에 큰 피해를 줄지도 모를 악마 숭배자들의 음모를 물어왔으니, 이제까지 그들의 지시를 따른 것은 이런 중요한 정보를 빼 오기 위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대충 그런 식의 얘기가 오가지 않을까.
‘그 정도 교환 조건이라면···.’
이제 보니 황제를 설득하는 것에 있어 세르펜스의 도움이 필요했다기보다, 처음부터 세르펜스가 반대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제국의 공작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가보다.
“이 정보가 새어나갔다는 것을 악마 숭배 세력은 모르는 일입니까?”
“팔숨 경도 그들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된 거라, 아마 그럴 겁니다.”
아르젠토 공작의 말에, 세르펜스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원래 세웠던 계획과 이 상황을 어떻게 짜 맞출까 머리를 굴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