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51)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52화(152/1105)
151회
32. 공작님과 리벨론 백작가 (1)
기차가 달리기 위해서는 철길을 깔아야 하고, 귀중한 철을 아무렇게나 땅바닥에 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 보니 왕래가 잦은 큰 영지들을 중심으로 인프라를 형성하게 되었고, 리벨론 령은 거기에서 제외되었다.
그 탓에, 우리는 리벨론 령과 인접한 다른 영지에 있는 기차역에서 내리게 되었다.
“프, 프라시더스 고, 공작···님? 마,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미리 마중을 나오느라 기차역 주변을 서성거리던 카론이 세르펜스를 발견하고 잽싸게 튀어와 인사를 건넸다.
세르펜스가 조용히 방문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환대식은 생략하기로 하였지만, 그렇다고 리벨론 백작령의 영주성에서 가만히 앉아 기다리기만 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그런 까닭으로 마차를 보내는 겸, 기차역까지 카론이 마중을 나오기로 약속되었던 것.
“네,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리벨론 가의 카론 공자, 맞으십니까?”
“마, 맞습니다! 제가 먼저 소개를 드렸어야 했는데···!”
“괜찮습니다. 소개가 없어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바싹 긴장해서 몸 둘 바를 몰라서 우왕좌왕하는 카론을 보며, 세르펜스가 부드럽게 후후 웃으며 답했다.
올리브색 머리카락에 고동색 눈.
색 배치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상당히 닮았기에, 누가 보아도 카론과 시온이 형제 관계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편하게 대해주십시오.”
“아, 아닙니다! 제, 제가 어찌, 감히!”
시온의 기억에 따르면 이런 성격은 아니었던 거로 아는데···. 소심과 호방 중에 고르라면 호방함 쪽에 가까웠다.
그런 그가 저렇게 말을 더듬어가며 굽신거리는 걸 보니, 세르펜스를 만난 것이 보통 기쁘고 영광스러운 것이 아닌가 보다.
‘그래도 그렇지, 3년 만에 만난 동생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건가?’
내가 진짜 시온이었다면 섭섭할 뻔했다.
“큰 형, 마차는 어딨어?”
“아차!”
보다 못한 제온이 카론에게 ‘언제까지 세워둘 거야?’라는 말을 돌려서 물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카론이 세르펜스에게 사과를 하며, 우리를 마차로 안내했다.
“시온 너는 프라시더스 공작님의 보좌관이 되었는데, 어떻게 편지 한 통 없을 수 있냐?”
마차에 오르고 나서야 내가 보였는지, 진정이 된 카론이 나에게 말을 붙여왔다.
불만스럽게 따진다기보다는, ‘나라면 기뻐서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녔을 텐데, 그걸 어떻게 참았지?’라고 묻는 말투였다.
“아, 하하···. 나도 실감이 잘 안 나서.”
“그래, 그럴 만도 하지.”
“그동안 별일은 없었어?”
“궁금하면 연락 좀 하고 살지 그랬어? 제온은 꼬박꼬박 매달 편지를 보내오던데.”
“어, 음···. 그게···.”
카론이 이번에는 진짜로 불만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괜히 물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것보다 넷째는 어때? 편지로 물어도 직접 내려와서 보라는 답만 돌아오더라.”
내가 어물어물하며 난감해하는 표정을 짓자, 얼른 제온이 끼어들며 카론에게 물었다.
“아, 그거? 저놈이 연락도 없고 내려오지도 않으니까,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고 엄···, 어험! 큼! 어머니께서 강력하게 주장하셔서.”
카론이 ‘엄마’라는 단어를 입에 담으려다, 내 옆에 앉은 세르펜스의 존재에 급히 명칭을 바꿨다.
그 모습에 세르펜스는 형제끼리의 대화가 보기 좋다는 듯, 자신은 신경 쓰지 말라는 의미를 담아 카론에게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차피 공작님께서 내려가시니 당연히 따라오게 될 텐데, 굳이?”
“작은 복수 같은 거지, 뭐.”
내 소식이 궁금해도 도통 답장이 없었으니, 너도 한번 궁금해져 봐라. 그런 느낌인 것 같다.
졸지에 제온만 불쌍하게 되었다. 보통 궁금한 게 아닐 텐데.
“아무튼, 비비라면 건강하게 잘 크고 있어.”
“이름이 비비야? 비온이 아니라?”
제온이 놀라 하며 물었다.
나도 놀랐다. 이름을 짓는다면 당연히 ‘-온’이나 ‘-론’형태일 줄 알았는데.
막둥이라고 변화구를 준건가?
“비비는 그냥 애칭이고, 정식 이름은 레비비셴티오.”
“······.”
“···레비, 뭐?”
뜬금없이 튀어나온 6자 이름에 제온의 입은 다물려져 버렸고, 반대로 입을 다물고 있던 나의 입은 절로 열렸다.
“레비비셴티오. 줄여서 비비. 레비라던가 티오라던가 애칭 후보가 몇 개 있었는데, 비비라고 부르면 뭔가 반응이 크길래, 그게 귀여워서 비비라고 부르기로 했어.”
떠올리기만 해도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카론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근데 지금 애칭이 중요한 게 아닌데?’
카론, 시온, 제온 다음이 뭐? 레비비셴티오?
변화구도 정도껏 쳐야지, 혼자만 완전 별세계 이름이었다. 넷의 이름을 주르륵 늘여 놓고 보니, 그것이 더 심했다.
“이름이 대체 왜 그렇게 된 거야?”
“왜, 어머니께서 이번에는 기필코 딸이 태어날 거라고 자신하셨잖아. 너 수도에 올라가고 나서, 이름도 미리 지어 오셨더라. 원래는 ‘레비비셴티아’였는데, 남자아이라···. 일단 지어놓은 이름이 아까우니 살짝 바꿔서 쓴 거지.”
듣고 보니 시온의 기억 속에서도 그녀는 딸이 갖고 싶다고 아주 노래를 불렀었다. 그런데 4연속 아들일 줄이야.
룩스메아도 무심하지···.
“이름은 그렇다 치고···. 아기 침대랑 옷까지 모두 여아용으로 사지 않았어?”
“······.”
제온의 이어진 질문에 카론은 입을 다물었다.
“···설마?”
“어머니 말씀으로는 어차피 크면 기억도 못 할 테고, 바지보다 치마 쪽이 기저귀 갈기도 편하다고···.”
“그거 어머니가 직접 갈으시는 거 아니잖아.”
“···그렇지.”
정곡을 찔렀는지 카론이 슬쩍 고개를 창밖으로 돌리며 대답했다.
보통 가난한 게 아니고서야, 백작가의 부인이 몸소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는 경우는 없었다.
사실, 그쯤 되면 그냥 가문이 나앉은 거나 다름이 없다.
나와 제온이 매달 보내는 돈도 있고, 무엇보다 세르펜스가 아기의 호위를 겸해 무력을 갖춘 정보원 중 한 명을 전담 시녀로 붙여주었다.
리벨론 가에서는 그녀를 그냥 유능한 시녀쯤으로 알 테지만···.
‘···제온, 이 녀석 좀 보게?!’
분명 그녀로부터 레비비셴···, 비비에 관한 보고를 받았을 거면서 난생처음 듣는다는 듯 반응하고 있었다.
“그냥 새로 사지 않고? 나랑··· 작은 형이 보내준 돈 많잖아.”
“말도 마. 너희가 결혼할 때, 수도의 귀족들에게 얕보이면 안 된다면서 고스란히 모으고 계신다더라.”
“···뭐하러. 따로 모으는 돈 있으니까, 그건 그냥 쓰시라고 해.”
“그게 아니더라도 사두고 그냥 버리기는 아깝잖아. 뭣보다 진짜 귀여워.”
카론의 마지막 말에, 제온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귀엽다면 어쩔 수 없지.’
옷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능은 몸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입은 사람과 잘 어울리느냐다.
그 두 가지만 충족된다면 아무 문제 없다.
‘거기다 어린애 옷이 어디 보통 비싼가?’
어릴 때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데, 그 잠깐을 위해 있는 새 옷을 버리고 새로 사기도 좀 그럴 것 같긴 하다.
“네가 직접 봐야 해. 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자신만만한 카론의 말에 제온이 실없게 웃었다.
그 뒤로 둘은 계속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고, 세르펜스는 간간이 맞은 편에 앉은 카론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빙긋 미소 지었고, 나는 그저 창밖을 바라보았다.
시온이 먼저 나서서 대화를 주도하는 성격이 아니라 다행이다.
리벨론 백작가의 문양이 그려진 마차는 리벨론 령 외성의 성문을 아무 제지 없이 통과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마차는 리벨론 영주성 앞에 멈춰 섰다.
“리벨론 영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리벨론 가의 영주인 카일 리벨론이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세르펜스 A. 프라시더스입니다.”
마차에서 내리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시온의 아버지가 우리를 반겼다.
그가 인사와 함께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고, 세르펜스가 그 손을 잡고 가볍게 악수를 하였다.
그 모습을 본 카론은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긴장하느라 악수할 수 있는 기회를 그냥 날려버렸네.’
울상에 가까워질 정도로 억울함이 가득한 표정이 퍽 안타깝다.
돌아가는 길에 카론과도 악수 한번 해주라고, 세르펜스에게 말해놔야겠다.
“이쪽은 제 아내인 아를리네 리벨론, 그 옆이 며느리인 미레아 리벨론입니다.”
리벨론 백작의 소개에 그 둘이 고개를 숙이며 세르펜스에게 인사했고, 그도 싱그레 웃으며 또다시 반갑다는 말을 입에 담았다.
“그리고 이 아이가 이번에 태어난 막내 아들인 레비비셴티오입니다.”
세르펜스의 시선이 닿자, 아기가 ‘아우···.’하고 칭얼거리며 제 어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크고 쌍꺼풀진 푸른 눈과 고불거리게 말린 보송보송한 녹갈색의 배냇머리.
부모 양측을 고루 닮은 아기는 카론의 말대로 무척이나 귀엽고···. 파스텔 색조의 연두색 원피스를 잘 소화해 내었다.
“일단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리벨론 백작이 살짝 비켜서며, 안으로 들어가자는 제스처를 취했다.
잠깐 스치듯 마주친 그의 눈길이 잠깐 사납게 바뀌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밝은 미소를 띠었다.
‘지금은 공작님이 계셔서 참지만, 나중에 두고 보자···. 그런 건가?’
아무 말이든 좋으니, 편지를 보내둘 걸 그랬다.
영주성 안의 구조는 시온의 기억 탓인지, 처음 오는 것임에도 눈에 익었다. 혼자서 시온의 방을 찾아가라 해도 찾아갈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립다거나 반갑다거나 하는 기분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응접실에 도착하여 자리에 앉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시녀가 찻주전자와 찻잔 등이 올려진 카트를 끌고 왔다.
미리 주의를 들었는지, 세르펜스의 얼굴을 힐끔거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훤히 보였다.
시녀가 꼿꼿하다 못해 뻣뻣한 자세로 찻잔을 테이블 위에 하나씩 늘어놓았다.
긴장한 탓인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지만, 세르펜스의 얼굴을 보며 넋을 잃지 않고 맡은 바 임무를 다 했다는 것에 나는 만점을 주고 싶다.
“이렇게 영지까지 몸소 찾아와 주셔서 영광입니다.”
“아닙니다. 아직 어린 아기를 데리고 먼 길을 오라 할 수는 없잖습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리벨론 영지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여 꼭 한번 와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볼 것이 많거나 대단한 곳은 못 됩니다.”
“후후···.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평화로운 분위기라, 제게는 화려하고 번화한 수도보다 훨씬 보기 좋습니다.”
세르펜스가 눈을 살짝 접어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모습에 카론은 감격에 겨워했고, 그의 아내인 미레아는 그 주책없는 모습이 부끄럽다는 눈치다.
“그러고 보니, 혹시 아이가 신성력을 발현한 적이 있습니까?”
백작과 몇 마디 겉치레 식의 말을 주고받던 세르펜스가 이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백작 부인의 품에 안긴 비비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린 아기가 신성력을 발현하는 것이 대체 뭔 말인가 싶겠냐만은, 처음부터 지니고 태어난 힘이기 때문인가 의미 없이 신성력을 뿜어내는 경우가 더러 있다나 보다.
그러면서 본능적으로 신성력을 쓰는 방법을 익혀가는 거다.
비유하자면 뒤집기 같은 거라고 볼 수 있는데···.
“네. 요즘 들어 뒤집기를 시도하는 것 같은데, 힘이 모자라서 그런가 그때마다 빛이 반짝거리더라고요.”
“뒤집기를 벌써 해요?!”
아직 2개월도 채 안 지난 아기가 뒤집기를 시도한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질문했다.
조심하라는 뜻인지, 왼쪽에 앉은 제온이 신발의 옆면을 부딪쳐왔다.
“신성력 덕분이겠지. 그래도 아직 완전히 넘어가지는 않는단다.”
신성력과 뒤집기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건가 싶어, 신성력에 일가견이 있는 세르펜스를 바라보았다.
“원래 신성력을 가진 아이들이 행동 발달 속도가 조금 빠릅니다.”
세르펜스가 그런 거라면 그런 거겠지.
조금 수준이 아닌 것 같기는 한데, 비비가 가진 신성력도 조금 수준은 아니니 이게 맞는 것도 같다.
이렇게 되면 궁금해 지는 게···.
“공작님은 언제부터 뒤집기를 하시고, 언제 첫 걸음마 떼셨습니까?”
“···아무리 저라도 그렇게까지 어린 시절은 기억 못 합니다.”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냐는 눈빛을 눈웃음 속에 감추며, 세르펜스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옆에서 ‘턱-.’하는 소리가 들렸다. 제온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는 소리다.
‘이젠 진짜 닥치고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