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5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58화(158/1105)
158회
33. 공작님과 시온 리벨론 (4)
비비가 깰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나 걱정했지만, 그것은 기우에 그쳤다.
세르펜스가 비비를 자신이 앉은 소파 옆자리에 내려놓기가 무섭게, 불편함을 호소하듯 칭얼거리며 깨어났다.
‘진짜 곱게도 자라고 있었네.’
어쩐지 어딘가 내려놓는 모습을 본 적이 없더라니.
“우으이아···, 아?”
깨어난 비비는 안아달라는 듯이 웅얼거리며 팔을 내뻗다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세르펜스의 얼굴을 발견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멍하니 입을 벌리고 파란색 눈동자를 데록데록 굴리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그 안에 들어있는 영혼이 시온일 가능성이 크고, 지금이 그것을 확인하기 위한 자리만 아니라면 당장에라도 껴안고 볼을 비벼댔을지도 모를 일이다.
“시온 리벨론, 맞습니까?”
“하으?! 으, 우웅···.”
세르펜스의 질문에 시온으로 추정되는 아기는 몸을 크게 움쩍댔다. 사실상 자신이 시온이 맞는다고 시인한 꼴이다.
그것을 얼버무리기 위함인지, 입을 오물거리며 평범한 아기인 척 굴었다.
하지만 차마 세르펜스와 눈을 마주칠 수는 없었는지, 고개를 돌렸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후 굳어버린 표정으로 인하여 전혀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흐, 으읍-!”
자고 일어났더니 제 가족은 한 명도 보이질 않고, 주변에 보이는 이라고는 나와 세르펜스뿐.
그가 진짜 시온이든,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였든. 충분히 두려워할 만한 상황이다.
“차라리 울었더라면 평범한 아기가 아닐까 의심해 봤을 텐데···.”
되려 그것을 삼키는 모습에 확신할 수 있었다.
내 중얼거림에 그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숨을 들이켰다. 겁을 집어먹었다.
“역시 맞는 것 같죠?”
아기가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꾸역꾸역 차오른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니 천하에 둘도 없는 쓰레기가 된 것 같다.
마음이 너무 무겁고 안타까워, 쓴웃음만 나왔다.
“저, 혹시···.”
“네? 왜요?”
갑자기 세르펜스가 넌지시 말을 걸어왔다. 무언가 해괴한 걸 본 듯한 표정이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그, 시···. 아니···.”
“그냥 본명으로 불러요. 괜히 헷갈리니까.”
“그···, 으음. 알겠습니다.”
그가 약간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뾰족한 수가 없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제가 왜요?”
“저는 선우가 일부러 공포 분위기를 연출하시는 줄 알았는데, 그냥···. 별생각이 없으셨던 거구나 해서···.”
저야말로 상황 판단할 시간도 안 주고, 비몽사몽 한 상대에게 다짜고짜 본인 확인 들어갔으면서.
지금 누구한테 뭐라고 하는 것인지.
“어쨌거나 시온이 맞는다는 건 확실한 것 같으니, 이제 어쩔까요?”
내 시선이 닿자, 비비라 불러야 할지 시온이라 불러야 할지 모를 아기가 몸을 떨었다.
얼마나 겁에 질렸는지, 꺽꺽거리는 모습이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세, 세르펜스!”
당황하여 세르펜스의 이름을 불렀다.
그 의미를 알아챈 세르펜스가 시온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시온은 그의 손길을 뿌리치려는 듯 고개를 필사적으로 내저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은색의 빛이 시온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아슬아슬하게 껄떡거리던 숨이 언제 그랬냐는 듯 안정적으로 가라앉았다.
“이렇게까지 무서워할 줄은 몰랐는데···.”
가족들과 있을 때도 불안한 기색이 느껴지긴 했으나, 내 머리채를 잡았을 때 빼고는 나름 침착한 모습을 보였었는데.
의지할 곳이 사라지자마자, 이다지도 두려워할 줄이야.
“우선은 선우가 그 몸에 들어가게 된 것부터 해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러네요.”
그래야 세르펜스에 관해서도 변론이 가능해지겠지.
“저는 신 룩스메아의 사자···입니다.”
그래도 전에 한 번 말해봤다고 오그라드는 느낌이 많이 사라졌다.
이전에는 시공간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정도에서 그쳤다.
이 짓을 몇 번만 더 하면 얼굴에 철판 깔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수도 있을 것 같다.
“믿기 어려우실 거라는 건 잘 압니다. 하지만 본인도 어느 정도 눈치채셨잖아요? 당신이 프라시더스 가문의 보좌관이 된 후 지내 왔던 시간이 전부 사라지고, 뒤바뀌었다는 것을.”
“······.”
“이미 죽었던 당신에게 신성력까지 부여해주며 다시 태어나게 하고, 그보다 이전의 시점에 저의 영혼을 깃들게 하였습니다. 이런 이적을 행하는 건, 마법으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시온은 이 세계의 사람이니 저보다 더 잘 알겠죠.”
“······.”
제대로 대화가 성립되고 있는 건지, 그냥 혼자 떠들고 있을 뿐인지 모르겠다.
올림 해서 2개월짜리 아기를 앉···힌 것도 아니라, 눕혀 놓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문뜩 자괴감이 엄습한다.
“거, 거이마···!”
“거, 인마?”
“아이!”
“아니? 아, 거짓말···?”
이미 정체가 까발려졌다고 생각해서일까? 그가 어눌하게나마 입을 열어 제 뜻을 전해왔다.
대화를 받아주었다는 것 자체가 설득의 여지가 있다는 걸 뜻한다.
비록 말의 내용은 부정적이었지만, 긍정적인 반응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이 말들에 반응했다는 건, 역시 내가 빙의한 시간 선이 아니라 원작 기준이라는 건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이렇게 확인하고 나니 걱정과 안도가 동시에 덮쳤다.
그에게 세르펜스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해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시온임을 눈치채지 못했을 경우 일어났을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의 말문이 트였을 때, 자신을 죽인 것이 세르펜스라는 것을 말한다면···.’
정신이 아찔해졌다.
‘비비’가 보통 이상의 신성력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세르펜스가 이렇게 리벨론 영지까지 내려올 명분이 생기지 않았을 테고, 그랬다면 이런 사실을 모르고 넘어갈 뻔했다.
‘제온만 두고 생각하더라도···.’
어떻게 제 형의 몸으로 형을 죽인 자와 함께할 수 있느냐고. 그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세르펜스의 편을 들었던 거냐고 비난을 했겠지.
잠시 가능성만 떠올렸을 뿐인데도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어떻게든 설득해야 해.’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해당했는지 몰라도, 그 기억은 지워지지 않겠지. 그 공포는 계속 그를 괴롭힐 것이다.
용서해 준다면 그것이 가장 좋겠지만, 사실상 그건 불가능하려나?
그렇다면 최소한 함구해 주는 것 정도는···.
“거짓말이 아닙니다! 저는 이 대륙의 안녕을 위하여···. 아, 물론 무력적으로는 형편이 없긴 한데, 그건 원래 시온의 육체가···. 아, 아니. 탓하려는 건 아니고요···.”
미심쩍다는 눈빛이 계속해서 나를 콕콕 찔렀다. 때에 따라 아기의 눈빛도 매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으어애 어아아이아 하에 이우어에?”
“······?”
생후 2개월 남짓한 아기의 옹알이를 해석하는 방법은 대학에서도 배우지 못했다.
‘내가 아동복지학과가 아니라 유아교육과였다면 알아들을 수 있었을까?’
잠시 전공에 현타가 왔다.
역시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현장 실습은 그 격이 달랐다.
‘어쩌면 세르펜스라면 알아들었을지도 몰라!’
시온이 신체 나이는 2개월이지만, 정신은 성인인 것처럼.
세르펜스는 육체는 성인이지만, 정신 연령만은 아가아가 하지 않던가.
“그, 그런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셔도···.”
세르펜스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역시 안되는 건 안되나 보다.
나도 모르게 실망감을 드러냈는지, 그의 표정이 눈에 띄게 시무룩해졌다.
“우, 우어야 애에···?”
뭐라는 건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의아해하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객관적인 눈으로 현재 상황을 살펴보자.
나는 세르펜스에게 말도 안 되는 일을 시켜놓고, 그것을 해내지 못하자 실망했다며 그를 타박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실망한 중대장도 아니고···.’
트집도 적당히 잡아야지. 아무리 중대장이라도 최소한 노오력하면 고칠 수 있는 부분만···, 그랬던가?
그만 생각하자.
“세르펜스에게는 진작에 상황을 밝히고 협조를 받고 있습니다. 제가 신의 사자···로서 미래를 조금 볼 줄 아는데, 그것을 바꿀 만한 힘이 없다 보니 그에게서 도움을 받는 상태입니다.”
“마오아애! 어마 시에 사아아며 어애어! 미애으 아아여!”
“···예?”
“거이마!”
너무 격하게 부정하는 거 아닌가?
“···시에 사아아며어 아우어오 으이 모아어아?”
“······.”
뭔가 되게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도통 모르겠다.
역시 세르펜스에게 죽었던 일 때문···이려나.
“떠올리기 힘드시겠지만, 혹시 죽었을 때···. 아니, 그 계기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으어?”
“아, 그게 제가 좀 급하게 파견되느라 못 들은 게 많거든요. 원래 다른 사람이 오기로 됐었는데, 여러 사정이 얽혀서 갑자기 발령이 난 거라···.”
“···어?”
내가 생각해도 참 어처구니없는 소리다. 무슨 일 처리를 그따위로 하느냐, 뭐 그런 심정이겠지.
하지만 사실인걸?
“그리고 제가 알고 있는 미래는 선택의 날 기점으로 그 이후뿐. 그 미래에 시온의 존재는 이미 없었습니다. 세르펜스는 두 명의 보좌관을 두었고, 두 번째 보좌관의 죽음 후. 더는 보좌관을 두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 했다고 해야 할까요?”
“······.”
“당신은 세르펜스를 두려워하고 있어요. 저는 그 두 가지 사실이 뭔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으···!”
시온의 시선이 세르펜스를 향했다.
세르펜스는 내가 오지 않은 시간 선에서 자신이 시온을 죽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힐끔거리며 눈치를 보는 그 시선에서 무엇을 느낀 것인지, 세르펜스가 긴장하는 낯을 했다.
“애···? 애오 나으 그어 우으오 오으어이아?”
“으음···.”
서로를 두려워하는 두 쌍의 눈동자가 짧은 시간 허공에서 얽혔다.
‘···어떡하지? 큰일 났다!’
아까 전부터 쭉 느껴왔던 문제다.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그것이 불가능했음을 이제는 인정해야만 했다.
파란색 드레스를 입은 귀여운 아기가 인상을 찌푸린 채, 연신 입을 오물거리며 옹알이를 하는 상황에서 진지해지는 것이 내게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왜 귀엽고 난리지? 누가 애한테 이렇게 귀여운 거 입혀 놓으래? 리본은 또 누가 달아놨어?!’
말도 알아먹지 못하니, 그냥 귀여운 옹알이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럴 땐 처연한 표정의 세르펜스를 보자.
얘는 또 눈에 띄게 겁에 질려 있어서. 그리고 그 원인을 너무 잘 알아서, 마음이 찢어지게 괴롭다.
‘그런데 그 두려움의 대상이 2개월 남짓의 아기라, 이게 또···.’
내 눈에는 어린아이 둘이 서로를 노려보는 거로밖에 안 보여서 미치겠다.
마냥 가볍게 볼만한 상황이 아닌데, 마냥 귀여워 보여서.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아이이, 아으 슈겨거···.”
아, 이건 알 것 같다. 당신이 나를 죽였어, 라고 말한 거다.
급 마음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아 뿌아 아이아! 져 뽀야갸오 슈겨거! 아으 아아! 그아으이 먀해여어!”
시온이 두려움으로 꾹꾹 눌러왔던 원망을 터트렸다.
‘···아마도.’
내가 무슨 정신으로 그에게 상황 설명을 요구했는지 모르겠다.
대체 무슨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모두 알아들을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걸까.
‘나중에 다시 와야 하나?’
신성력 때문에 언제쯤 비교적 정확한 발음이 가능해지는지 가늠이 안 된다.
타이밍을 잘못 잡았다가, 백작령으로 내려왔을 때 모든 것이 까발려진 후면 어쩌지?
공작저에 가서 한스에게 세르펜스가 몇 개월 때 첫 단어를 구사했는지 물어봐야 하나? 알고 있으려나?
“끄어에 애 으어 우으오···. 이 아이아···!”
“흣···.”
세르펜스는 뭘 알아듣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원망 가득한 외침에 반응할 뿐인지, 겁에 질려 몸을 움츠렸다.
나도 괴롭다.
이 상황에 홀로 집중이 안 되는 나 자신으로 인해 너무 괴롭고, 미안하다.
아, 이 불쌍한 아기들을 어찌해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