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66)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67화(167/1105)
167회
34. 공작님이 자리를 비운 사이··· (6)
나는 내가 쓴 편지를 한 번 쭉 읽어보았다.
위험한 냄새가 폴폴 풍기는 집단이 그곳에 있었다.
“좋아, 훌륭해!”
이 정도는 되어야 어디 가서 악마를 숭배한다고 얘기할 수 있지.
스스로에게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이 정도면 유지스도 감격하고, 세르펜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충만하게 차오른 뿌듯함을 가득 안고 당당한 태도로 제온에게 편지를 건넸다.
“그럼 내일 날이 밝는 대로 교단에 전달할 수 있도록 조처해 두겠습니다.”
그가 슬쩍 내용을 읽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그냥 곱게 접어 상의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생각해 보세요. 이 정도는 되어야 테네 뭐시기란 이름에 사람들이 경각심을 가지죠. 그렇다고 룩스메아 교단에서 이단으로 선포되었다는 이유로 개명하면 얼마나 꼴이 우습겠습니까? 있던 신자들도 다 떨어져 나가겠네!”
“아, 예···.”
누가 물어봤느냐고 말하는 듯한 성의 없는 답변이었다.
그리고 대화가 단절됐다.
“저기, 안 나가세요?”
“아직 할 말이 남았습니다.”
할 말이 남았다는 제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잔잔한 파란색 눈동자가 몹시 부담스럽다.
“왜, 왜요?”
“보좌관님은 왜 그렇게 제 눈치를 보십니까? 본래의 몸 주인이던 형에게 인정도 받았겠다, 이제는 상관없어진 것 아닙니까?”
“그러게요, 버릇이 됐나···?”
제온이 나서서 나에게 뭐라고 한 적은 없으나, 괜히 눈치가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그를 피해 온 것이 벌써 반년 가까이 되었다.
상황이 달라졌다고 해서 그것을 한순간에 고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게 가능한 놈은 분명 얼굴에 철판을 몇 겹이나 깐 뻔뻔한 놈이겠지.
나처럼 섬세한 마음의 소유자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더는 그러시지 않아도 됩니다.”
“뭐, 차차 나아지겠죠. 그보다 하실 말씀이란 게 그거였습니까?”
“그게···.”
그냥 눈치 보지 말라는 말을 하려는 것치고는 앞의 침묵이 너무 길다 했더니만.
달리할 얘기가 더 있는가 보다.
제온이 머뭇거리다가, 긴장을 풀어내듯 길게 호흡을 내뱉고는 재차 입을 열었다.
“가족을 잃은 것은 마찬가지인데 보좌관님께서 잘못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책임을 전가한 주제에 이런 말은 좀··· 이상하게 들릴 것 같지만, 보좌관님께서 싫으신 것이 아니라면 저희 리벨론 가를 가족처럼 여기셔도 상관없습니다.”
“···네?!”
예상치 못한 말이 또 나왔다.
솔직히 말해서, 악마 숭배자들이 내가 시온이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챈 것보다 더 놀라웠다.
“작은··· 형이 말했다시피, ‘시온 리벨론’은 이제 당신입니다. 친가족을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친척 같은 개념으로라도. 이곳에서는 당신의 가족이고 편이라 여기셔도 괜찮다는 얘깁니다.”
“어, 그게···. 부 집사님이나 비비는 그렇다 쳐도,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가족들에게까지는···.”
“다들 사정을 알게 된다면 그렇게 받아들여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충동적으로 하는 말 같지는 않았다. 오래 고심해서 내린 결론이겠지.
기분이 굉장히 얼떨떨하고, 이게 뭔 일인가 싶다.
그에게서 가족이 상당한 가치를 갖는 만큼, 내 처지를 안쓰럽게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절 받아들여 주시는 겁니까?”
“처음부터 형의 행방을 찾고 나면 그러겠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네가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고 따지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하긴 했네.’
그의 말을 듣고 나서 되짚어보니, 진짜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같다.
다만, 당시에는 ‘앞으로는 가족 취급 안 해 줄 거고, 공적인 일 외에는 남남처럼 지내자’라는 뉘앙스로밖에 들리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을 뿐.
괜히 뻘쭘한 마음에 우기고 있는 건지, 정말 내가 해석을 잘못하고 있던 건지 분간이 안 간다.
“하아─.”
그 저의를 알아보고자 제온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더니, 그가 긴 한숨을 내뱉었다.
“계속 지금처럼 데면데면하게 지내다가는 남들이 의심할지도 모릅니다. 아까 위리디아 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거북하시겠지만, 최대한 남들 앞에서라도···.”
“아뇨, 아닙니다! 그냥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그럽니다. 가족 제의를 받는 건 처음이라.”
“···저도 처음 해봅니다.”
“그러시겠죠.”
이것 참, 되게 민망하네.
그렇게 생각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제온이 손바닥으로 자신의 뒷덜미를 매만지며 괜스레 시선을 피했다.
“그냥 동생이 하나 생겼다 여기고 편하게 대해주시면 됩니다.”
“어, 음···.”
“그럼 할 말은 다 끝났으니까, 이만 나가 볼게. 그러니까··· 형.”
“그, 그래···. 잘 가, 동생.”
나는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주었고, 제온은 어색하게 웃으며 비밀 통로를 통해 제 방으로 돌아갔다.
“그냥 눈치 줘서 미안하다고 하면 될 것을, 빙빙 돌아가기는···.”
숨 막힐 듯 어색한 공기를 날려버리기 위해, 유지스가 배려 넘치게 닫아놓고 간 창문을 도로 열었다.
* * *
다음 날.
제온이 밤중에 신전 측 사람이 몰래 방문해 올 예정이라고 귀띔해주었다.
사안이 사안이라 그런지 처리가 참 빨랐다.
어제 제온에게 그랬던 것처럼 유지스가 난입해 올까 봐, 사전에 그녀에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가 수도에 올라오고 나서 이래저래 많은 일을 겪다 보니, 이전과 성격이 많이 달라져서···.”
“알아요, 이해해요.”
악마 숭배자들이 내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하듯 말하는 것에 대해 변명하기란, 무척이나 쉬웠다.
가볍게 운을 떼자 유지스의 눈동자가 아련한 빛을 띠었다.
‘성격의 변화는 없었지만, 여기 와서 많은 일을 겪은 건 사실이잖아?’
가책을 느끼는 양심을 가슴의 한 귀퉁이로 밀어두고,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소심하고 숫기 없는 시온이라니, 상상이 전혀 안 가네요.”
“와, 저를 대체 어떻게 보시고!”
“그냥 시온으로 보고 있지요.”
유지스가 화사하게 미소를 지으며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어쩐지 세르펜스의 ‘그대가 너무 그대라서.’라는 말이 떠오른다.
오호통재라, 나를 표현할 단어가 진정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탄식이 절로 나온다.
“그나저나 어제 그런 대화가 오갔을 줄은 미처 몰랐네요.”
“죄송합니다. 본인 인증을 위한 여러 절차를 밟느라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제온이가 저를 의심한 건 아닌데, 그냥 확실한 걸 좋아해서 말입니다.”
“괜찮아요. 그러면서 함께 추억도 곱씹고 형제간에 우애도 다지셨을 텐데, 제가 끼어있으면 불편하기만 하죠.”
과연 유지스다.
우리가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보고, 형제간의 우애를 다진 사실을 어떻게 알았지?
“아, 이제 오시나 봐요.”
그녀가 대화를 중단시키며 욕실 쪽에 시선을 던졌다.
잠시 뒤 노크 소리가 들렸고, 제온과 후드가 달린 로브를 입은 사내가 방 안에 들어섰다.
“반갑습니다. 그쪽이 편지를 보낸 당사자인 시온 님이십니까?”
“네, 저도 반갑습니다. 그러니까···.”
“룩스메아님의 신실한 종, 에일리히 T. 란체아라고 합니다.”
내가 말끝을 흐리니, 그가 희미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자기소개를 했다.
이 세계에서 ‘신 룩스메아의 종’이라 자신을 소개하는 자는 오직 ‘이단 심문관’뿐이다.
예상했던 바라, 그냥 덤덤하게 그렇구나 하고 넘길 수 있었다.
“네, 반갑습니다. 에일리히 님. 프라시더스 가의 보좌관인 시온 리벨론입니다.”
정식으로 소개를 마치자,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하자는 의사 표현이다.
별생각 없이 그 손을 맞잡았다. 갑자기 따스한 기운이 손을 타고 흘러들어와 온몸을 휘돌다 빠져나갔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
‘지금 스캔한 거야?’
세르펜스가 내게 신성력을 흘려 넣었을 때는 부드럽게 온몸을 감싸 안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방금은 집요하게 구석구석 살피고 검문하는 느낌이었다.
“···저기요?”
“편지에 무언가에 씌었다는 내용이 있어, 실례를 무릅쓰고 확인해 봤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서 결과는요?”
“깨끗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무려 세르펜스마저도 아무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었다.
그 이전에, 다른 누구도 아닌 신이 집어넣은 거다. 신성력으로 그걸 알아챌 수 있다면, 그날부로 신과 신자의 위치를 바꿔야 한다.
“그보다, 에일리히님께선 아직 실례를 무릅쓰고 계신 것 같은데요?”
“네?”
“이제 실내로 들어왔는데, 계속 얼굴을 숨길 필요가 있습니까?”
“아차, 죄송합니다! 제가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게 익숙하다 보니···.”
그가 뒤집어쓰고 있던 칙칙한 회색 로브를 벗자, 그 안에 있던 새하얀 신관복이 드러났다.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것이 익숙하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다. 신관복에도 후드가 달려있었고 그것을 안쪽에 또 뒤집어쓴 상태였다.
신관복에 딸린 후드까지 걷어내자, 찰랑거리는 청은색 머리칼과 맑은 초록빛 눈동자가 드러났다.
‘···세르펜스?’
정정한다.
0.3초가량 세르펜스를 떠올리게 했으나···. 아니, 사실 지금도 세르펜스가 연상되긴 한다.
하지만 짧은 머리카락이나 연령대, 빛남의 정도 등을 따져 봤을 때,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세르펜스의 미친 미모를 인간 수준으로 하향시킨 후, 나이를 먹게 하면 저런 느낌이려나?’
그렇다 해도 상당한 미중년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한 마디로, 세르펜스의 열화판 같은 외모였다.
“그쪽 분께서는···.”
“예? 아, 네. 유지스라고 해요. 아, 유지스 위리디아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유지스 님.”
“네, 네네! 저도 반갑습니다, 네.”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유지스도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태연한 건 제온뿐이다. 치사하게 혼자만 몰래 알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다들 많이 놀라셨나 봅니다.”
“네, 뭐, 어, 음···.”
“앗, 죄송해요. 이런 결례를···.”
“아닙니다. 먼저 설명해 드렸어야 했는데, 이렇게까지 놀라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눈이 반달로 부드럽게 휘어지며, 눈꼬리 쪽에 자연스러운 주름이 잡혔다.
혼란이 더욱 가중되었다.
이 사람은 대체 누구지?
“교단에 귀의하기 전 이름은 에일리히 T. 프라시더스였습니다.”
교단에 들어가 신관이 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그 이전까지 쌓아왔던 인연을 끊는 일이다.
출신 성분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어, 기존의 성을 버리고 자신의 세례식을 내려준 신관과 일종의 사제 관계 비슷한 연을 맺고 그자의 성을 따른다.
물론, 파문당하게 되면 신관으로서의 성은 회수되며 본래의 성을 돌려받는….
‘지금 중요한 건 그딴 게 아니잖아!’
가출했던 정신을 붙잡아 데려왔다.
어쨌거나, 세르펜스의 가족이라는 소리 아니던가.
이는 [성검의 주인]에서는 나오지 않은 정보였고, 세르펜스에게도 듣지 못한 이야기다.
어떻게 이런 중요 정보를 숨길 수가 있지?
입을 떡 벌리고 왠지 모를 배신감을 느끼고 있자니, 유지스가 너도 몰랐느냐고 묻는 듯한 시선을 보내왔다.
“그, 그럼 공작님과의 관계는···.”
“이미 신 룩스메아께 모든 삶을 바친 몸, 속세에서의 인연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룩스메아 교단의 이단 심문관인지, 우리 세계의 스님인지 분간이 안 간다.
“제가 중요으악─!!”
답답한 마음에 그에게 따지고 들려는데, 옆구리 쪽에서 짜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제온 녀석, 편하게 지내자더니···. 자기가 편하기 위해서 한 말이 틀림없다.
처음 만났던 그 날처럼, 그가 내 옆구리를 잡아 비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