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6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68화(168/1105)
168회
34. 공작님이 자리를 비운 사이··· (7)
“바쁘신 분을 모셔놓고 뭐 하는 거야?”
어차피 다 들릴 텐데도 제온은 굳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날 다그쳤다.
“본격적으로 일에 관련된 얘기를 하기에 앞서, 가벼운 친목 도모는 권장 사항이라고 [자라나는 어린 귀족들을 위한 필독서 ~기본 예법 편~]에서도 나왔었거든?!”
“그건 귀족들 사이에서나 통용되는 얘기지. 그리고 목소리 좀 낮춰.”
“꼭 친목 도모가 아니더라도, 이것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야!”
“그냥 궁금했을 뿐이면서.”
“아니거든?”
“맞잖아?”
지금 제온은 크게 오해하고 있다. 내가 단순히 호기심 때문에 이러는 것이라 착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결단코···까지는 아니지만, 아무튼 아니다.
‘세르펜스와 어떤 관계인가. 언제 룩스메아 교단에 들어갔고, 그 이후 공작가와 교류가 있었는가.’
그것은 눈앞의 이단 심문관이 아무것도 모르는 선량한 종교인일 뿐인지, 아니면 악마 숭배자 버금가는 나쁜 놈인지.
내 마음속에서 그의 이름이 ‘에일리히’가 될지, ‘에라이!’가 되어 버릴지.
그것이 판가름 나는 아주 중대한 사안이었다.
‘신관이 된 사람이 있었을 줄이야···.’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어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데도, ‘프라시더스 성씨를 쓰는 사람은 세르펜스뿐’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 그 가능성을 떠올리지 못했다.
“크흠···!”
나와 제온이 티격태격하고 있자, 이단 심문관이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며 헛기침을 하였다.
완전히 정색하는 표정이다.
‘세르펜스라면 착한 척하느라 곤란하다는 듯 멋쩍게 웃으며 내 질문에 친절히 대답해줬을 텐데···.’
그런 내숭은 없었다.
대답도 없었고, 내 옆구리의 안부를 묻는 일도 없었다.
갑자기 세르펜스가 그리워졌다. 돌아오면 회오리 막대 사탕이라도 손에 들려줘야지.
“···이따가 알려줄 테니까, 지금은 좀 넘어가자.”
“그, 그래···.”
이단 심문관의 기세에 눌린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제온이 먼저 평화 협정을 제안해왔고, 나는 그가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얘는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이것도 물어봐야겠다.
“형제끼리 사이가 참 좋으신가 봅니다.”
나와 제온이 나란히 입을 다물자, 이단 심문관이 언제 정색했느냐는 듯 다시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계속 표정을 굳히고 있는 것보다 더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비꼬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는 그에게 죄송하다는 사과를 해야만 했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해 봅시다.”
더 이상의 사담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이단 심문관이 서두를 열었다.
그래도 계속 서서 대화를 할 수는 없기에 그에게 자리를 권했고, 우리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둘러앉았다.
“편지는 잘 받아보았습니다. 이단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이렇게 신고를 하신 건 무척이나 잘하신 일입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보통은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시민으로서 당연한 의무인걸요.’ 같은 대화가 성립해야 하지 않나?
이단 심문관과 대화를 나누는 건 처음이라, 이게 이단 심문관의 직업적 특성인지 이 사람의 개인적 특징인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직접 이단을 마주한 동생분이 아닌, 형님이신 시온 님께서 편지를 작성하셨던데, 그렇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직업적 특성이었나보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다정한 말투로, 숨 쉬듯이 심문 모드에 들어가 있었다.
“공작님께서 부재중이셔서, 아무래도 부 집사보다는 보좌관인 제가 편지를 쓰는 편이 더 예의에 알맞지 않나 싶어서 그랬는데···. 뭔가 잘못된 겁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조서 작성을 위해 확인차 질문한 것뿐입니다.”
안심하라는 듯,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우선 그들이 제온 님께 어떤 식으로 접근했는지부터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아, 그걸 안 적었네.
그들의 사이비스러움을 강조하기에 바빠, 제대로 된 정황 설명을 생략해버렸다.
제온에게 너라도 말해주지 그랬느냐는 눈빛을 슬쩍 보내봤지만, 그는 그때의 상황을 설명하느라 내 쪽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정말 큰일 날 뻔하셨어요!”
제온이 이야기를 마치자, 유지스가 별일 없이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라는 듯 말했다.
자연스레 이단 심문관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아까부터 의문이었지만 차마 묻지 못했는데, 이 엘프는 대체 왜 여기에 끼어 있는 거냐고 묻는 듯한 반응이었다.
“아르젠토 공작저의 폭파 사건이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잖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기사들까지 데리고 공작저를 떠나있는 것 때문에 공작님께서 공작저 식구들을 많이 걱정하셨거든요. 물론 남은 기사와 병사들도 있다지만 전력은 많을수록 좋잖습니까? 그래서 공작님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유지스가 저택에 머물면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로 한 겁니다.”
“이해했습니다.”
내 설명에 이단 심문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이 유지스에게서 떨어졌다.
“다시 사건으로 돌아와, 한 가지 의문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아, 그들이 제게 뭔가가 씐 것 같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거요?”
이번에는 그의 고개가 가로로 움직였다.
“그거 말고도 이상한 점이 더 있는 겁니까?”
“눈치채지 못하셨습니까?”
의문에 의문이 돌아왔다.
나만 눈치 못 챈 건가 싶어 제온과 유지스를 번갈아 쳐다보니, 그들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몰랐다 해도 괜찮습니다. 보통이라면 그래야 맞습니다.”
얼핏 들으면 비꼬는 것처럼 들렸지만, 표정은 오늘 본 그의 표정 중에 가장 온화했다.
“시온 님을 불러내는 것이 목적이라면 제온 님을 풀어주면 안 되었습니다. 그로 하여금 당신을 유인해내도록 유도할 것이 아니라, 귀라도 잘라 보내면서 동생을 구하고 싶다면 지정된 장소로 몰래 나오라고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나도 모르게 하마터면 서스펜스라 외칠 뻔했다.
이것은 프라시더스 가문의 종특인가, 이단 심문관의 직업병인가.
‘좀 식겁하긴 했지만, 확실히 그렇긴 해.’
나 자체가 세르펜스를 협박하기 위한 인질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해서, 다른 누군가를 인질로 잡고 나를 끌어내려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흘깃 옆을 보니, 제온이 허옇게 질려있었다.
그는 귀가 잘 붙어있나 확인하려는 듯이, 제 귓바퀴를 만지작거렸다.
“혹시 짐작 가는 바가 있습니까?”
있다마다.
악마 숭배자들이 어떻게 안 것인지는 몰라도, 내가 시온이 아니라는 것에 확신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내가 제온과 진짜 가족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서.
그 때문에 그가 위험에 처하더라도 나 자신의 안전이 우선이라 판단하여, 그가 죽도록 내버려 둘 것으로 생각했다면.
그렇다면 충분한 설명이 되었다.
‘하지만 이걸 말할 수도 없고···.’
뭐라고 변명해야 할지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데, 갑자기 유지스가 살짝 손을 들어 올렸다.
“아! 있어요, 짚이는 점.”
“말씀해 보십시오.”
“제가 두 분이 평소에 지내시는 걸 쭉 봐왔는데, 두 분이 형제 관계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어요.”
그녀의 말에 이단 심문관이 한쪽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두 분께서 외양적으로는 닮은 점이 없다는 이유도 한몫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문제였어요. 완전히 벽을 세우고 사무적인 일 외에는 말도 안 하는 것이, 남보다 더 남 같이 보였거든요.”
“하지만 조금 전 보았던 모습은···.”
“네, 맞아요. 방금 두 분의 거리낌 없는 대화를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누가 보아도 친근함이 넘쳐 흐르죠.”
유지스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걸렸고, 이단 심문관의 표정에는 의문이 더 깊어졌다.
나와 제온 또한 영문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할 생각인 걸까?
“사실 시온은 자신의 존재 때문에 동생의 능력에 대해 사람들이 평가절하하지 않을까 줄곧 걱정했었거든요. 동생은 충분히 인정받아 마땅한 인재인데, 자신의 뒷배로 공작가에 취직한 것처럼 보일까 봐 그게 너무 미안해서 계속 거리를 두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어라?
“제온 님께서도 아마 이 점을 눈치채셨을 거예요. 그래서 더욱 열심히 해서 공작저의 모두에게 인정받고, 형에게 자랑스러운 동생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온 거겠죠. 그렇게 참고 참다가 힘이 들 때면, 비밀 통로를 오가며 우애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왔겠지요.”
그냥 흘리듯 했던 한 마디에 살이 덕지덕지 붙어, 나와 제온은 세상에 둘도 없는 형제 사이가 되어있었다.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말하면 제온이 오해하지 않을까? 내가 엘프에게 거짓말 시킨 놈처럼 보일 거 아냐···!’
유지스가 즉흥 소설의 장인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제온에게 알려야 할지 걱정이다.
말한다 해도 믿어주기나 할까?
“악마 숭배자들은 남의 약한 부분과 상처를 헤집고 파고들 줄만 알아서, 두 분 사이의 깊은 우애와 믿음을 눈치채지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고, 제온 님에게 ‘상냥한 형을 되찾고 싶으면···.’ 따위의 말을 하며 그를 현혹하려 들었던 거죠. 그자들에게는 이런 따스한 마음과 유대감 같은 건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분명해요!”
어디선가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라는 말이 들려오는 듯하다.
더러운 이단을 까면서 인간의 마음에 대한 숭고함을 치켜세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양손을 깍지껴서 가슴 앞에 모은 채 말하는 엘프의 모습에서 짙은 호소력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그녀가 지어내는 이야기들에 익숙해져서 한 귀로 흘리는 나와 달리, 이단 심문관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의문이 풀렸습니다.”
풀린 건가? 그걸로 풀리고 만 것인가!
이단 심문관이 이렇게 쉽게 인정하는 모습에 탄식해야 할지, 그렇게 만든 유지스의 스토리텔링에 탄성을 내뱉어야 할지 모르겠다.
제온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 시선이 남들 앞에서는 자신을 그런 식으로 포장하고 다녔던 거냐고,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타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공유해 줄 사람은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홀로 된 기분을 느꼈다.
“의문점이 풀렸으니, 앞으로의 일에 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말이었다.
이단 심문관의 목소리가 사무치는 고독의 바다에서 나를 건져 올렸다.
“우선 두 분께서는 약속 장소로 나가 주십시오.”
“네?!”
“시간을 끌고 계시면 성기사들을 동원하여 그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주변을 둘러싸고, 점차 범위를 좁혀가겠습니다.”
신고만 하면 알아서 짠! 하고 돌입해서, 짜잔! 하고 잡는 거 아니었나?
갑자기 적진에 맨몸으로 돌격하여 시간을 끌라는 얘기가 몹시 당혹스러웠다.
“그, 그건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날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유지스가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이단 심문관의 태도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철저하게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무려 ‘마왕’의 이름 언급된 첫 사건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자들이 내뱉은 발언들은 결코 가볍게 넘길 만한 사안이 아닙니다. 위험하다는 것은 알지만, 협조해주셔야만 합니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너무 과했다는 것을.
‘너무 신났나? 그런 건가?’
악마 숭배자들을 골탕 먹일 생각에 너무 나댔던 모양이다.
이단 심문관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고, 제온은 조용히 이마를 짚었다.
“그, 그럼 저도 작전에 끼워주세요! 들키지 않을 거리에서 두 분의 호위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실 수 있나요? 소중한 친우와 그의 동생이 위험한 곳에 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어요.”
“그렇게 해주신다면, 오히려 감사하겠습니다.”
“하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에요. 제가 반드시 지켜드릴게요!”
유지스가 안도의 한숨을 깊게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