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7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73화(173/1105)
173회
34. 공작님이 자리를 비운 사이··· (12)
이단 심문관은 힘없이 너부러진 악숭이를 성기사 중 한 명에게 넘기고 제온의 상태를 살폈다.
제온의 이마에 손을 얹고 신성력을 불어넣고 있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노라니,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아, 유지스 왔어요?”
“네. 더는 경계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요. 그나저나 몸은 괜찮아요? 갑자기 문이 닫혀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바로 활을 쏘아야 하나 고민했는데, 갑자기 저택 안에서 느껴지던 기척이 확 늘어나서···.”
유지스가 오른편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며 말했다.
자신이 쏘아낸 화살로 인해 내가 더 위험해질까 봐, 꾹 참고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무의식중에 하는 행동을 보아, 어쩌면 그녀는 계속 활시위를 당긴 상태로 경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장갑 때문에 확인할 수는 없지만, 붉어져 있을 그녀의 손가락을 떠올리니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고맙습니다. 유지스 덕분에 털끝 하나 안 다쳤어요!”
“시온이 다치지 않았다면 그걸로 됐어요.”
그녀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건 그렇고 대체 어떻게 하신 건가요?”
“어떻게 하다뇨?”
“그들이 잘 숨어있다가 이유 없이 자신을 드러냈을 리는 없잖아요. 시온이 무언가 하신 것 아닌가요?”
그 말 속에는 호기심과 부담스러울 정도의 기대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사실을 입에 담는 순간 사라져 버리고 말, 신기루 같은 감정에 불과했다.
“어, 그게···. 별건 아니고 그냥 ‘마왕 새끼, 개새끼’라고 외쳤을 뿐인데요.”
아니나 다를까.
온화한 곡선을 그리던 유지스의 입술이 일(一)자로 변했다.
“시온···.”
“네.”
“혼날 거예요.”
“네?”
“세르펜스 님에게 혼날 거라고요.”
“네?!”
유지스가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싸늘한 표정으로,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한 목소리로.
무려 3단계에 걸쳐 확언하였다.
“서, 설마요. 세···, 공작님께서는 마음이 여려서 누구 혼내고 그런 거 못하십니다.”
“아니요. 장담할 수 있어요. 분명히 혼나실 거예요.”
“저도 처음에는 ‘아, 이거 혼나겠는데?’ 했지만, 결국에는 그냥 넘어가 주더라고요.”
“어쩐지 세르펜스 님께서 시온을 과보호한다 했더니, 이제야 알겠네요.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었군요?”
“그, 그게···.”
“말로는 자신의 안전을 잘 챙긴다 하시면서, 중요한 순간에는 이렇게 자신을 내던지며 희생하시니···. 세르펜스 님께서 어떻게 시온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희···, 뭐요?”
나와 관련 없는 단어를 뽑으라면 Top10 안에 드는 단어 중 하나가 희생이라고 생각하는데, 유지스의 생각은 다른가 보다.
세르펜스도 기가 차서 야옹하고 지나갈 일이다.
“방금 하신 말씀, 사실입니까?”
“악!! 까, 깜짝이야···!”
하도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와 멍하니 서 있는데, 갑자기 이단 심문관이 소리소문없이 스윽 나타나 말을 걸었다.
목소리는 또 어찌나 스산한지, 정말 깜짝 놀랐다.
“절대 아닙니다. 일부러 숨어있는 이들을 드러내게 하려던 게···.”
“그런 의도가 있었을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유지스가 오해했을 때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안 해준다니 어째 좀 섭섭하다.
아무튼 그렇다는 건 ‘마왕 새끼, 개새끼’를 말하는 거려나?
“시간을 끌어 달라고 위험한 곳에 보낸 제가 할 말은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죽여달라는 식으로 목을 내밀고 있으라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아니시겠죠.”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위험한 행동을 하신 겁니까?”
이단 심문관이 압박하려는 듯이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와, 엄중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에게서 풍기는 희미한 혈향과 그 기세에 눌려,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나고야 말았다.
“그, 그런데 아까 제가 악숭이에게 도발할 때는 별말 안 하셨잖아요.”
“당연히 무력화된 상대 앞이라 그러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럼 제가 너무 치사한 놈이 되잖아요?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무모한 것보다 약삭빠른 것이 더 나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이 꼭 화난 사람 같다.
‘설마 지금 나를 혼내고 있는 건가?’
세르펜스에게 혼날 거라는 경고를 잔뜩 받자마자 유사 세르펜스에게 혼이 날 줄이야.
기분이 참 묘하다. 무슨 맛보기 체험도 아니고···.
“하지만 억울한 걸 어떡합니까! 악숭이가 자꾸 저를 악숭이로 몰아가는데···! 상대가 악숭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지만, 그래도 악숭이에게 악숭이라 불린다는 게, 마치 개에게 개보다 못한 놈이라는 욕을 들은 듯한 느낌입니다.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아시죠?”
“전혀 모르겠···.”
“에일리히 님께서는 악숭이에게 악숭이라는 모욕을 들으면서 잠자코 계실 겁니까? 어차피 말하는 놈이 악숭이라서? 그건 아닐 거 아닙니까! 악숭하는 놈에게 악숭 할 놈이라는 욕만큼은 듣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잖아요!”
“음···.”
“그래서 외친 겁니다. ‘마왕 새끼, 개새끼’를!”
“아, 알겠습니다. 시온 님의 신앙심은 잘 알겠으니, 이제 진정하십시오.”
좋아, 넘어갔다.
세르펜스는 적어도 날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확신이라도 있지만, 이단 심문관은 아직 잘 모르겠다.
적어도 그의 새하얀 신관복에 튄 악숭이의 붉은 피를 봐서라도 그에게 혼나는 일 만큼은 피하고 싶다.
“하지만 위험하다는 것은 변함이 없으니, 앞으로는 악숭···. 아, 아니 악···.”
“악마 숭배자요?”
“···네. 악마 숭배자를 섣불리 도발하지 마십시오.”
“예압-!”
“······.”
“왜요?”
“···아닙니다.”
이단 심문관이 무척이나 해괴한 것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반보 뒤로 물러났다.
가뜩이나 세르펜스와 닮은 외형에 하는 짓까지 서스펜스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너무 편하게 대했나 보다.
이젠 좀 자제해야지.
“그건 그렇고, 제온이는 좀 어때요?”
“장기적인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고 간단한 명령을 수행하게 하는 종류의 흑마법에 걸렸던 것 같습니다. 마법은 이미 풀렸으며 흑마력의 잔재도 정화했습니다. 가벼운 타박상 외에는 다친 곳도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다면 안심이다.
만일 후유증이라도 남았다면 리벨론 령에 있는 그의 가족들을 볼 낯이 없다.
“그보다 아까 악마 숭배자에게···.”
“···악숭이에게, 뭐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차피 놈을 심문한다면 알게 될 일이니···.”
아직 걸리는 점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악숭이가 하는 말을 모두 헛소리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조금 부족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눈 딱 감고, 딜을 더 넣었어야 했나?’
마음이 약해서 차마 그러질 못했다.
“어차피 놈이 하는 얘기는 마왕의 상상력이 가득한 상상의 나래에 불과하니, 너무 믿진 마세요.”
“제게도 그 정도 판별력은 있습니다.”
그럼 뭐가 문제일까?
악숭이 놈이 가진 마왕에 대한 경외와 신앙을 깨트리기 위해서, ‘테네브리오’가 마왕이 직접 지은 신명이라고 말한 거?
하지만 그 정도는 놈이 내게 말해줬다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적어도 내가 룩스메아가 보낸 영혼이라든가, 신의 사자라는 것 보단 훨씬 타당성 있잖아?’
나도 양심이 있는지라, 내가 신의 사자에 걸맞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다.
모름지기 신의 사자라면 세르펜스처럼 신성하고 고결한 맛이 있어야지.
어느 날 갑자기 세르펜스가 등 뒤에 날개를 달고 와서 ‘오늘부터 신의 사자 1일 차’ 따위의 말을 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에 비해 나는 어떠하던가.
물론 알고 보면 나만큼 속 깊고 진중한 사람도 없으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깝죽거리는 까불이로 오해하기에 십상이다.
이런 내가 신의 사자라는 말을 들으면, 이단 심문관의 신앙심이 곤두박질쳐서 더는 룩스메아의 앞잡이 노릇은 못 해먹겠다며 속세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잡은 악마 숭배자들의 심문을 마치는 대로, 포상금 지급을 겸해서···. 다시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겸해서 뭐 어쩌겠다는 건지도 좀 알려주면 좋으련만.
“아! 혹시 공작님을 뵈러 오시는 건가요?”
“음···. 그렇군요. 되도록 만나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공작가의 사람을 빌려 썼으니 사후 보고라도 인사를 드려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는데, 묘하게 기뻐 보였다.
되도록이라 하면 어디까지나 권장 사항이지 꼭 그래야 한다는 법이 있는 건 아니라는 소리다.
그렇다고 이단 심문관이 그 원칙을 칼같이 지킨다고 보기에는, 이번 사건을 담당한 것이 신경 쓰인다.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이단 심문관님은 왜 이단 심문관님인가요?”
“···예?”
“그냥 문득 에일리히 님께서는 어쩌다 교단에 들어가신 건가 해서요. 듣기로는 원래 공작 가문을···.”
미친 서스펜스 가문 같으니. 표정 변화에 걸리는 속도가 0.1초도 채 되지 않는 것 같다.
살기를 내뿜는 것도 아닌데 서릿발 같은 표정만으로 등골이 오싹해진다.
“저는 프라시더스 공작님의 자리를 위협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애초에 자진해서 물러난 자리입니다. 혹시라도 제가 공작위를 탐낼까 봐 걱정하시는 거라면 그러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욕심이 있었다면 10년 전에 교단을 나와 공작가에 다시 들어갔을 겁니다.”
“그런 의도로 물은 게 아니라···.”
그 ‘자진해서 물러난’ 이유가 궁금했던 거다.
“더는 그 화제에 대해 말씀드릴 것은 없습니다.”
“진짜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
뭔 말을 못하겠다.
예민하게 구는 것으로 보아, 10년 전 세르펜스가 공작위에 오를 때 그의 어린 나이로 인해 여러 말이 오간 것이 아닐까 한다.
그중 몇 명은 줄을 선답시고 괜히 이단 심문관에게 찾아가 동생에게 뺏긴 자리를 되찾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해댔을 테고.
‘···아무래도 원하는 답을 듣기는 글러 먹은 것 같은데?’
그래도 어떤 사람인지 대충은 감이 잡혔다.
이미 만난 적이 있다면 괜한 걱정이겠지만, 아직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면 세르펜스가 만나도 괜찮을 것 같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걱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거울을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만나기 전에 괜찮다고 미리 다독여 놓고, 내가 옆에 있어 주면 괜찮지 않을까?
“이 뒤는 저희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이만 돌아가 보셔도 좋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이단 심문관은 제온을 들고 있던 성기사를 우리 쪽으로 부르고, 자신은 다른 성기사들에게로 향했다.
“아직 안 깨어났네요?”
“몸이 약하시다고 들어서 일부러 깨우지 않았습니다.”
별 이상이 없다고 들었는데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제온의 모습에 의아하여 툭 던진 말에 성기사가 대답했다.
즉, 기절한 김에 잠든 상태라고 보면 되는 건가?
세상 편한 녀석이 따로 없다.
어딘가 억울한 마음이 들었으나, 그렇다고 곱게 자는 애를 깨우는 건 못 할 짓이다.
잘 자는 사람 깨우는 놈은 잘 먹고 있는데 음식 뺏는 놈과 비견될 만큼 나쁜 놈이다.
“이리 주세요. 제가 업고 돌아가겠습니다.”
“아니에요, 이쪽으로 주세요.”
“···유지스가 왜요?”
“그야 제가 힘이 더 세니까요.”
그 말에 이견은 없으나, 외간 여자에게 업혀서 돌아가는 것 보다 자기 형에게 업혀서 돌아가는 것이 제온의 이미지에 더 이롭지 않을까 한다.
“여기서는 형인 제가 책임을 지는 것이 낫습니다.”
“시온을 무시하려는 건 아니지만···.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공작저까지?”
“······.”
전혀 안 괜찮을 것 같다.
“그럼 반반씩 들까요?”
“시온이 말하는 반반이라면···. 조, 좋아요! 제가 다리, 아니 상체 쪽을 들게요!”
내가 말한 반반은 거리를 반으로 나눈 것을 의미했다. 말 그대로 신체를 반씩 들자는 얘기는 절대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건 유지스가 이상하게 반응한 거다.
그녀가 평소에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주 잘 알겠다.
“그냥 제가 이대로 공작저까지 모셔드리겠습니다.”
유지스의 말을 듣고 오해했는지, 제온을 들고 있던 성기사까지 끼어들었다.
외간 여자에게 업혀서 돌아가는 것도 이상하지만, 외간 남자의 품에 안겨서 돌아가는 것도 만만찮게 이상하다.
그냥 깨울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곤히 자는 모습이 살짝 얄미워서 그만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