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78)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79화(179/1105)
179회
36. 공작님의 가족 상봉 (4)
“그리고 이번 일을 해결하는 데에 있어, 공작님께서 부재중이라고는 하나 미리 허락을 구하지 않고···.”
“그 이야기라면 제 보좌관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이단 심문관은 겨우 서두를 열었을 뿐이나, 이어질 말은 무척이나 뻔했다.
세르펜스는 그것을 끝까지 듣지 않고 그냥 잘라냈다.
나와의 약속이 아니었다면 그는 이단 심문관의 말을 끝까지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이라는 말로 말문을 트며, ‘자신의 사람들을 두루 아끼는 책임감 넘치는 가주님’을 연기했겠지.
‘나와 제온과 같은 일반인이 정면에서 악마 숭배자와 마주하게 하는 것은 협조가 아닌 희생을 강요한 것이라고 몰아갔으려나?’
이단 심문관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대처 방안을 준비해 두었다고 해도, ‘그래도 위험한 건 위험한 거다.’, ‘그것이 정말 완벽한 대응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와 같은 말로 쪼아가면서.
그러나 지금은 나와 그러지 않겠노라, 마시멜로 협정을 체결한 뒤였다.
어차피 따지고 들지도 못할 거, 이단 심문관의 말을 끝까지 들어봐야 시간 낭비라 여긴 것이 아닐···.
“시온 경께서는 자신이 먼저 돕겠다고 나선 것이니, 그 일로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아닌가 보다.
내가 괜히 꼬투리 잡지 말라고는 했지만, 저렇게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느닷없이 자다가 봉창을 자진모리장단으로 두들기는 소리를 해대는 것으로 보아, 사기펜스가 약을 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말을 끊은 것 또한 그 과정 중 일부겠지.
벌써 효과가 있는 건지 이단 심문관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얼결에 눈이 마주쳤다.
민망한 마음에 어색하게 살짝 웃어 보인 후, 차를 호록 들이켜며 그 시선을 회피했다.
“저로서는 무력도 없는 분이 자꾸만 위험에 노출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쩌겠습니까? 저도 그의 의견을 존중해 줄 생각입니다.”
세르펜스가 걱정과 기특함을 반반씩 담은 따스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은연중에 내가 자신을 희생한 것이 오늘내일 일이 아니라는 뉘앙스가 담겨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내가 허구한 날 남을 감싸고,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인 줄 알겠네!’
그보다 큰 문제는 사기펜스의 기술이 적아를 구분하지 않는 광역기라는 것에 있었다.
안 그래도 나에게 크나큰 환상을 가지고 있는 유지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깊이 공감을 표했고···.
지난번 유지스의 소설로 인해 크나큰 오해를 하게 된 제온은 나를 아주 불여우 보듯 보고 있었다.
‘유지스는 그렇다 쳐도, 세르펜스 저 녀석은 다 알면서 각본을 짜고 있는 건데!’
세상에 억울해도 이렇게 억울할 데가!
미쳐서 팔짝팔짝 뛰다가 팽글팽글 돌아버릴 지경이다.
“그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내 이미지가 부담스러워졌지만, 어쨌거나 잘 해결되었구나 생각하려는 찰나.
이단 심문관이 구태여 그것을 부정하였다.
그대로 가만히 있으면 조용히 넘어갈 수 있을 텐데, 참으로 솔직하기 그지없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예? 그렇다면 어째서···.”
“시온 경 말고 다른 두 분에게도 보고를 들었으니, 알고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다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시온 경의 의견을 존중했을 뿐입니다.”
어리둥절해 하는 이단 심문관의 모습을 보며 세르펜스가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이단 심문관은 나와 세르펜스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작게 미소를 그리며 순순히 감사를 표했다.
진실을 모른다면 한 편의 미담이 따로 없다.
“실은 제가 오늘 이렇게 방문한 이유는 세 분께 감사를 표하고 공작님께 늦게나마 양해를 드리기 위함도 있었으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이제부터가 본론이라 말하는 것처럼, 이단 심문관이 미소를 지우고 진지한 얼굴로 입을 떼었다.
분위기상으로, 저번에 얘기하려다 말았던 ‘포상금 지급을 겸해서’ 이후에 생략된 내용이려나?
“좀 더 명확하게 윤곽이 잡히고 나서야 제대로 된 대화가 가능할 것 같아서 현장에서는 그냥 넘어갔지만···.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괜히 불안하게스리, 이단 심문관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왠지 모르게 그에게서 이상한 소리로 말을 돌리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테네브리오’라는 이름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이 마왕이 ‘직접 지은 신명’이라는 얘기는 어디서 들으신 겁니까?”
“그야 당연히 악숭이가···.”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고 미리 확인했습니다. 악마 숭배자를 심문해 본 결과,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치사하게 자료 조사를 해오다니.
그런 사람으로 안 봤는데 실망이다.
“지금 제 말이 아니라 악숭이 따위의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
“저도 시온 님의 말씀을 더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몇 번을 심문해 보아도 돌아오는 대답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거기다 시온 님께서 보내 주셨던 편지를 보여주었더니, 허탈한 웃음을 흘리다가 그대로 실성해버렸습니다.”
“······.”
이단 심문관이 악마 숭배자를 심문한다는 말은 그를 고문한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자신이 마왕에게 들은 이야기가 사실인지 거짓인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본인이 확실히 알고 있는 사실을 솔직하게 말하여도 돌아오는 것은 고문이요, 거기다 거짓으로 이루어진 편지까지 봤으니.
‘그래, 미칠 만도 하네···.’
어딘가 마음 한편이 숙연해졌다.
하지만 나는 룩스메아의 사자니까, 사실 이 모든 것은 룩스메아가 꾸민 것이나 다름없지 않나?
룩스메아와 테네브리오의 아바타 대전에서, 테네브리오가 아바타를 잘못 골라 패배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고작 마왕의 안부를 좀 물었다고 그렇게 무너지다니···.’
나라면 룩스메아 욕을 아무리 해대도 눈 하나 까딱 안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맞장구까지 쳐줄 수도 있다.
과연 반 쪼가리에 불과한 놈답게 신 룩스메아처럼 외국계(外國系). 아니, 외계계(外界系) 용병을 쓸 여력이 없었나 보다.
“제온 님. 그 편지에 적힌 내용은 정말 사실이었습니까?”
“그, 그것이···.”
“솔직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과장이 있긴 했지만, 대략···적으로는 비슷···합니다. 결과적으로 상대가 악마 숭배자인 것도 맞았고···.”
갑자기 자신을 향한 이단 심문관의 날카로운 눈빛에 제온이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약간의 허위와 과장이 섞였다 하여도 그 덕분에 그들을 순조롭게 잡아 들였으니, 그것에 관하여 추궁하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편지에 적힌 내용만 보면 다소 사상이 의심스럽기는 하나···. 그것도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라면 말이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그저 정보의 출처가 궁금할 따름입니다.”
나는 왜 저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다면 이단으로 몰아서 감옥에 처넣겠다는 이야기로 들릴까?
“근거 없는 말은 삼가십시오.”
“맞아요! 시온이 얼마나 신 룩스메아님을 진실하게 따르고 있는데, 그런 모욕적인 발언은 조심해 주세요!”
나만 그렇게 들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세르펜스가 얼굴을 굳히며 이단 심문관을 노려보았고, 유지스는 펄펄 화를 내며 내 양심을 자극했다.
“죄송합니다. 이런 식의 화법이 버릇이 된 지라···. 시온 님의 신앙을 의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다행이네요. ‘마왕 새끼, 개새끼’ 이상으로 굴욕적인 욕이 뭐가 있나 떠올려 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공작님이나 유지스 앞에서 할 만한 소리는 아닌 것 같아서요.”
“···다시 한 번 사과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직업병이라는데 뭐 어쩌겠는가. 오해할 만한 여지도 충분했고.
나름 너그럽게 넘어간답시고 가볍게 농담을 던져 봤는데, 이단 심문관은 더욱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깊이 숙이며 내게 사과했다.
“아무튼 그 정보 말이죠···. 네, 정보···. 제가 그것을 알게 된 것은···. 무척이나 고된 여정과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는데, 그게 그러니까 말입니다···?”
“시온, 괜찮아요! 제가···, 제가 얘기할게요! 떠올리기도 힘드실 텐데, 더는 말씀하지 않으셔도 돼요!”
뭐라고 말을 해야 잘 속아 넘겼다고 소문이 날까? 역시 룩스메아 사자 설을 꺼내 들어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며 횡설수설 시간을 끌고 있자니, 갑자기 유지스가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는 내 양손을 꼬옥 붙잡았다.
“사실 시온은··· 악마 숭배자들에게 납치를, 흡-, 당한 적이··· 있어요. 지금은 이겨내셨지만, 그것 때문에 폐소 공포증으로 고생하시던 모습도 제가 봤고요.”
이단 심문관이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바라봤다.
저 말이 진짜냐는 의문이겠지만, 차마 그렇다는 대답은 할 수가 없어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세르펜스는 입가를 손으로 가리며 눈을 내리깔고 있었고, 제온은··· 확인하지 않는 것으로 하자.
“그···렇다는 것은 납치되었을 때···.”
“네, 분명 그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편지를 작성한 것이 틀림없어요. 그렇죠?”
“마, 맞습니다. 네에···.”
룩스메아의 욕에 맞장구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유지스의 소설에 맞장구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나는 오글거림에 몸서리치며 상체를 푹 수그렸다.
대답하기 괴로우니까, 더는 내게 말 시키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함께 잡혀있던 분들의 희생으로 시온은 가까스로 탈출할 수 있었으나···, 흑.”
“그런 일이 있었다니···! 어째서 교단에 신고하지 않으셨던 겁니까?”
없었던 일이라서요.
“분명 그 후유증으로 정신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했기 때문이겠죠. 나중에 가서는 자신들의 은신처가 들킬까, 그들이 그곳을 떠났기 때문에 증거가 없어 신고할 수 없었던 걸 테고요.”
“아···.”
어째서인가 이단 심문관의 탄식이 ‘아···! 그런 큰일을 당한 충격으로 저렇게 산만해졌구나!’라고 들렸다.
내게 고생 한 번 안 시키고 곱게 키워주신 부모님께 실례니까, 제발 그만둬 주었으면 좋겠다.
“괜찮으십니까?”
세르펜스가 걱정스럽다는 듯,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내 등을 쓸어내리며 자상하게 물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실시간으로 흑역사가 생성되는 과정을 보며 엄청나게 웃고 있겠지.
정말 수치스러웠다.
“···사정은 잘 알겠습니다. 교단은 언제나 열려있으니, 앞으로는 이번처럼 바로바로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단 심문관이 안쓰럽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떠올리기 괴로우시겠지만, 그 밖에 무언가 떠오르는 것은 없습니까?”
“그, 그게···. 그러니까···.”
– 톡, 톡.
등을 부드럽게 쓸면서 나를 안정시키는 척하던 세르펜스가 이번에는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아! 맞아요! 그들이 볼타 산맥의 결계를 깨뜨리겠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그런 말씀을 왜 이제야 하시는 겁니까?!”
이단 심문관이 깜짝 놀라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즈, 증거가 없어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말을 믿어줬을까요? 아무 증거도 없는데도요? 더군다나 그때는 제가 공작가의 보좌관도 아니었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주 중대한 문제입니다!”
문득, 내가 왜 지금 혼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슬쩍 허리를 펴고 세르펜스를 바라봤다.
‘네가 시키는 대로 운은 띄워 놨으니까, 빨리 진정시키고 할 얘기해라.’
세르펜스가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내 등을 두어 번 두드리고 손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