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7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80화(180/1105)
180회
36. 공작님의 가족 상봉 (5)
“이단 심문관님, 일단 진정하고 다시 앉아주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오늘 그것에 관해 말씀드릴 예정이었습니다.”
세르펜스의 차분한 태도에 이단 심문관이 다소 민망하다는 얼굴로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조카 앞에서 냉정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는 생각에 부끄러워하는 거려나?
“공작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나 봅니다.”
“네, 당연히 전해 들었습니다.”
어쩐지 나와의 친분을 자랑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은 내 착각이 아닐 것이다.
그 증거로 이단 심문관의 표정도 상당히 미묘해졌다.
‘세르펜스, 너 인마! 내 가족이 아니라 네 가족이거든?’
대체 뭘 견제하고 경계하는 건지 모르겠다.
설마 내가 이단 심문관의 존재를 알고 나서, ‘진짜 가족이 생겼으니까, 저는 이제 필요 없겠네요?’라고 말하며 훌쩍 떠나기라도 할까 봐 저러나 싶기도 하고···.
가능성이 있다. 그가 불안해할 만도 했다.
‘유지스에게 충분히 마음을 열었는데도, 계속 그녀를 성으로 부르는 것도 관련이 있으려나?’
친구가 생기고 그의 세계가 넓어진다고 하여, 내가 어디론가 떠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인지시켜야 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저러면서 잘도 나를 돌려보낼 생각을 했다.
나를 걱정해서 그랬다는 것을 알기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으나, 종종 튀어나오는 이런 모순적인 모습에 돌연 화가 났다.
방법을 찾아냈다면 자신은 이제 괜찮다고 말하며 나를 안심시킨 뒤 돌려보냈겠지.
그 후 달라진 거 하나 없는 일상을 살아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속에서 열불이 났다.
“시온 경? 왜 그렇게 보십니까?”
표정 관리를 한다고 했는데 그를 너무 뚫어져라 쳐다본 모양이다.
내 시선을 느낀 세르펜스가 의문을 표했다.
“두 분이 닮긴 닮았구나, 해서요. 그냥 비교 분석 중이었으니까,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하시던 대화 계속 나누세요.”
순진한 세르펜스는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속도 모르고 한가롭게, ‘그냥 평소와 다름없이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군.’이라고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
“이번 원정을 위해 수도를 떠나기 전, 시온 경의 말을 듣고 수상한 점은 없는지 주의를 기울인 결과···. 볼타 산맥의 결계 안쪽에서 이런 것을 찾아냈습니다.”
세르펜스가 자신의 발치에 내려놓았던 작은 상자를 테이블 위로 올리고, 뚜껑을 열었다.
“이건 흑마석이 아닙니까? 결계 안쪽에 악마 숭배자가 숨어들었을 줄이야.”
“제가 회수해 온 것은 산맥 전체로 따지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세상에, 신 룩스메아시여···.”
그 말에 이단 심문관이 작게 탄식을 토하며 자신이 모시는 신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머릿속으로 산맥의 결계가 깨졌을 때 벌어질 참사를 떠올렸나 보다.
“그 자리에서 바로 정화를 할까 했으나, 교단에 제출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서 임시방편으로 이렇게 가져왔습니다. 지금은 성수로 인해 많이 약해졌지만, 본래는 더 큰 흑마력을 품고 있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혹시 흑마석을 발견한 위치도 기억하고 계십니까?”
이단 심문관이 상자의 뚜껑을 닫고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며 물었다.
“네. 오늘 중으로 지도에 표시하여 교단으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혹시 조사단을 파견할 예정이라면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겁니다. 토벌 직후라 마물들의 수가 줄어들긴 하였으나···.”
세르펜스가 어제 나와 유지스에게 알렸던 정보와 가설을 이단 심문관에게 전하였다.
그 이야기를 이단 심문관은 심각한 얼굴로 귀 기울여 들었다.
“잘 알겠습니다. 최대한 주의하여 신중을 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소중한 누군가의 생명이 빛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대외펜스가 대외 미소를 지으며 대외적인 대사를 날렸을 뿐이다.
그가 말한 ‘소중한 누군가’는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이’를 뜻하는 불특정 다수를 지칭하는 말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단 심문관은 그것이 자신의 안전을 신경 쓴 말로 받아들였나 보다.
만나기 전에 보였던 기대심은 어디에다 갔다 버렸는지, 줄곧 사무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이단 심문관이 그 감정의 편린을 드러냈다.
먹먹해진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그럼 안녕히···.”
“네?! 벌써요?”
이단 심문관과 세르펜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 인사를 주고받다가, 중간에 끼어든 나를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닮은 얼굴 둘이 나란히 비슷한 표정을 짓고 서 있으니, 무척이나 호화찬란하다.
언젠가 연회장에서 세르펜스가 유지스와 함께 빛을 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시온 경?”
매력 발산 시간인가?
둘 중에서 더 반짝거리는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하며, 본인이 더욱 뛰어난 얼굴 인재임을 나에게 어필하였다.
더 볼 것도 없다.
당장 기호 1번 세르펜스에게 문자 투표를···. 아니, 이게 아니지.
“에일리히 님께서 벌써 가시는 건가 해서요. 더 있다가 가시지 않고···.”
세르펜스는 그렇다 치자.
만나보기도 전에 킬각을 재던 놈에게 무엇을 바라겠는가.
하지만 이단 심문관에게는 아주아주 오랜만에 마주한 혈육이자, 처음으로 대면한 조카와의 시간이다.
‘정말 이대로 돌아가려고? 언제 또 만날 줄 알고?’
아무리 조카가 데면데면하며 벽을 세우고 있기로서니, 댁까지 그러면 안 되잖아.
어른답게 먼저 다가가서 까까라도 사 먹게 용돈을 손에 쥐여 주며 덕담 한두 마디는 건네야지!
“제게 더 하실 말씀이 남았습니까?”
“저는 없는데 두 분 사이에는 있지 않나 싶어서요?”
내 말에 이단 심문관이 힐끔 세르펜스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을 받은 세르펜스는 언제나 그러하듯 온화한 낯으로 웃어 보였다.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단 심문관이 슬그머니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그 속에서 희미하게, 흐뭇한 감정이 묻어났다.
추측건대, ‘비록 몸이 떨어져 있고 성이 다르다 하여도, 마음만은 여전히 가족.’ 따위의 속 편한 생각이나 하고 있겠지.
‘안 괜찮아, 이 양반아···.’
아무리 피가 물보다 진하다고는 하지만 세월의 벽에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는 처음 만난 조카의 심중을 파악하지 못하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깜빡 속아 넘어갔다.
“그럼 진짜 가보겠습니다.”
“네, 살펴 가십시오.”
세르펜스가 ‘삼촌, 더 놀다 가면 안 돼?’라고 말하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붙잡는다면 모를까.
내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해서 이단 심문관이 다시 소파에 궁둥이를 붙이고, 세르펜스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눌 것 같지는 않았다.
이단 심문관은 미련 없이 응접실 밖으로 나갔고, 제온도 배웅을 위해 그를 따라나섰다.
“거 봐라.”
그들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세르펜스가 비웃듯이 말했다.
나에게 하는 소리였지만, 그 비웃음의 대상은 내가 아니었다.
“···세르펜스야말로 대체 뭘 본 겁니까?”
남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녀석이 알아채지 못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르펜스는 자신에게 향하는 애정을 걸러버렸다. 그것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이든 글이든, 직접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는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할 거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저기, 혹시···. 아···, 아니에요.”
유지스가 무언가 감을 잡았는지 입을 열었다가, 도로 입을 다물었다.
저 반응은 확실히 눈치를 챈 거다.
세르펜스가 계속해서 자신을 숨기며 겉돌듯 행동하게 된 것에 ‘가족’이 연관되어 있음을 짐작한 것이 틀림없다.
‘공작저의 사람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고 있으니, 의도적으로 캐묻지 않더라도 내가 오기 전까지 세르펜스가 어떻게 지냈는지도 들었을 테고···.’
무거운 적막이 가라앉았다.
“아, 참! 저는 두 분께서 계속 일을 하고 계시는 줄 알았는데, 맛있는 것을 먹으며 놀고 계셨군요?”
“앗-! 그걸 어떻게 아셨대요?!”
유지스가 분위기 전환을 꾀하며 일부러 높은 톤으로 밝게 입을 열었다.
입가에 쿠키 부스러기라도 묻은 건가 싶어 손으로 입가를 매만졌으나, 아무것도 묻어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게 묻었다면 세르펜스가 진작에 지적했겠지.
“저는 두 분 일이 끝나시면 같이 먹으려고 유명 제과점에 주문도 넣어 놨는데, 조금 서운하네요.”
“그게, 세르펜스와 개인적으로 할 얘기도 있고, 당분이 부족한 것 같아서 급하게 뭐라도 먹여야 할 것 같아서···.”
“개인적인 이야기라면···. 어쩔 수 없죠.”
유지스가 반사적으로 이단 심문관이 머물렀던 자리를 힐끔 곁눈질했다.
자신에게는 말해주지 않는 그 이야기가 못내 섭섭하면서도 이해한다는 반응이었다.
“그나저나 저희만 간식을 먹은 건 어떻게 아셨대요?”
“응접실에 들어오자마자 진한 초콜릿 냄새가 나던데 어떻게 모르겠어요? 대체 뭘 드신 거죠?”
“아, 냄새···!”
나와 세르펜스는 계속 응접실에 있어서 그 냄새에 코가 익숙해진 나머지 그것을 간과하고야 말았다.
“핫초코와 스모어 쿠키를 먹었···는데···. 이단 심문관님도 눈치채셨으려나요?”
“그렇지 않을까요?”
나를 노려보는 세르펜스의 눈빛 때문에 옆얼굴이 따끔거릴 지경이다.
뭐라고 말을 붙이면, 아주 그냥 밖에 나가서 떠들고 다니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느냐고 비아냥거릴 것만 같다.
“그러게 내가 집무실에서 먹자고 했잖은가.”
“단 냄새에 홀려서 포르르 응접실 문을 연 게 누구시더라?”
“그건 당신이 열라고 시킨···.”
“시켰다고 그걸 또 열어요? 누가 들으면 제가 공작인 줄 알겠네!”
반박할 말이 없는지 녀석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새치름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세르펜스도 즐겼잖아요! 같이 즐겨놓고 자꾸 이러깁니까?”
“···그, 렇긴 하다만.”
“솔직히 말해서 저보다는 세르펜스가 더 즐겼죠. 안 그래요?”
“그런 적은 없다. 증인이 없다고 해서 현실을 멋대로 왜곡하려 하지 마라.”
증인이 없다고, 녀석이 뻔뻔하게 오리발을 내밀었다.
나를 보고 배웠다면 저런 양심 없는 태도는 보이지 않았을 텐데, 대체 누굴 보고 배운 거람?
“에이, 제가 제 몫의 쿠키까지 하나 더 드렸잖아요. 핫초코도 두 잔이나 더 마시셨고. 맛있게 잘 먹어놓고 딴소리하기 있기 없기?”
“으음···.”
“확실하게 대답하세요! 있기? 없기?”
“어, 없기···.”
결국, 녀석이 고개를 푹 숙이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패배 선언을 해왔다.
그러게 금방 들통날 거짓말은 하지 말았어야지.
“시온···.”
“네? 왜요?”
“불쌍하니까, 너무 괴롭히지 마세요.”
달콤한 승리의 맛에 도취해 있으려니, 유지스가 조심스럽게 나를 불러 조심스럽게 타이르듯 말했다.
그러나 욕하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법이라고 했던가?
그 말이 세르펜스에게 더 큰 데미지를 입혔다.
녀석은 안경을 벗을 생각조차 못 하고 손가락으로 안경을 들어 올리며, 그대로 양손으로 붉어진 제 얼굴을 덮었다.
“처음부터 순순히 인정하셨으면 이런 일은 없잖아요?”
다이아몬드를 순순히 넘기면 유혈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나는 그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세상의 진리를 속삭였다.
“당신은, 정말···!”
“알아요, 알아. 완전 착하고 상냥하죠.”
내 위로에 힘입어 세르펜스가 얼굴을 가린 손을 치우고, 눈에 힘을 주며 나를 바라보았다.
“저어···. 두 분은 평소에 이러고 지내시나요?”
결정적인 말로 세르펜스를 녹다운시킨 오늘의 MVP, 유지스가 어색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냥 노는 겁니다. 장난치는 거예요.”
“아, 그러시구나···. 이게 노는 거였군요···. 제국 사람들의 놀이는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유지스도 곧 익숙해지실 겁니다.”
“그건 좀 싫네요.”
화사하게 웃으며 말하는 모습이, 이미 익숙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