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81)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82화(182/1105)
182회
37. 공작님과 암흑가 재방문 (2)
프레드릭은 암흑가에서 본 풍경을 설명하며, 세르펜스에게 직접 보고 놀라거나 처음 와보는 티를 내지 말 것을 경고했다.
그곳에는 간교한 자들 천지여서 틈을 보이면 안 된다나?
‘이야~! 직접 틈을 보이고 휘둘릴 뻔한 사람이 하는 말이라서 그런가, 설득력이 넘치네!’
그러게 나처럼 믿을 만한 가이드를 대동했어야지.
프레드릭은 자신이 암흑가에서 겪은 고생담을 털어놓았고, 세르펜스는 순진함을 가장하며 그에 맞장구쳤다.
“정말 큰일 나실 뻔했습니다. 무탈하셔서 진심으로 기쁩니다.”
진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자동 응답기 같은 대사다.
하나, 그런 대사도 세르펜스가 읊으니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면서 미간을 살짝 모아 팔(八) 자 형태를 그리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모습이란!
프레드릭의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한 듯 보였다.
그는 세르펜스가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것이 보통 기쁜 것이 아닌지, 더욱 신이 나서 열심히 떠들어댔다.
어째서인지, 그 모습에서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아, 그래! 오티에서 군필 복학생이 신입생에게 군대 썰을 풀면서 허세를 부리는 느낌!’
이보다 적절할 수가 없다.
그러나 현실은 프레드릭에게 무척 유감스러웠다.
신입생인 줄 알았던 그 녀석은 단순히 동안이었을 뿐. 사실은 그가 군대에 간 사이 제대한 선배이며, 심지어는 특전사 출신이었던 것이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아도 이보다 가소롭게 느껴지지 않으리라.
“그러고 보니, 말씀하신 게이트가 있는 위치는 어디입니까? 시간이···.”
세르펜스가 불현듯 떠올랐다는 듯 시계를 꺼내보며 물었다.
해석하자면 그냥 닥치고 빨리 암흑가로 향하자는 뜻이다.
“아···! 이제 슬슬 변장하고 이동해야겠습니다.”
자세한 사전 정보를 듣고 오지 못했다는 설정인 우리를 위해서 프레드릭은 미리 준비한 것이 있다는 말을 하며, 남색 머리의 사내에게 손짓했다.
그는 곧장 절도 있는 동작으로 방구석에 놓여 있던 가방을 들고 와서 탁자 위에 올렸다.
암흑가를 거쳐서 온 탓인지 프레드릭과 사내는 흔하게 구할 수 있는 흰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고 그 위에 검은 후드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자신이 기사라는 것을 온몸으로 알리고 있었다.
‘설마 암흑가에서도 저렇게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다녔던 거야?’
일탈 한번 안 해본 바른 생활 사나이가 분명했다. 방탕함이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이 모시는 도련님이 암흑가 같은 곳을 간다면 따라나서는 것이 아니라, 뜯어말리며 차라리 자신을 밟고 가라고 외칠 것 같은 이미지다.
쉽게 말해, 암흑가에서 장난 아니게 이질적으로 보였을 거란 얘기다.
나는 속으로 쯧, 혀를 차며 가방 안을 슬쩍 보았다.
기성복 판매대에서 대충 눈에 띄는 걸 가리키며 ‘이거랑 똑같은 거로 알아서 여러 벌 넣어 주세요!’라는 주문이라도 했는지, 둘이 입고 있는 옷과 다를 바 하나 없는 옷이 곱게 개어져 있었다.
그 위에는 염색용 마법 시약도 올려져 있었는데, 매물이 없어 같은 색으로 구하지 못한 것 같았다.
색이 모두 제각각이라 마음에 드는 것을 선점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비비, 너의 꿈은 내가 이루어 주마!’
나는 금색 시약의 뚜껑을 열고 지체 없이 머리에 들이부었다.
“잠깐! 시온 경···이라 했던가?”
“네, 맞습니다.”
“시온 경도 가는 건가?”
병 안에 손가락을 넣고 남은 내용물을 쓱쓱 긁어모아 눈썹에 문지르고 있는데, 프레드릭이 그런 나를 제지했다.
“당연하죠! 공작님 가시는데, 보좌관인 제가 안 따라가면 누가 따라갑니까?”
“암흑가는 경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곳이네.”
프레드릭이 얼굴을 굳히며 경고하듯 말했다.
자신의 몸을 지킬 무력이 되지 않으니, 그냥 여기서 안전하게 기다리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아무런 방비도 되지 않은 저택에 나를 두고 갈 세르펜스가 아니었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여기에 데려오지도 않았다.
수련하는 윈스톤 옆에서 체력 단련이라도 하라며 병영에 던져 놓고 왔겠지.
“그러니까 더더욱 같이 가야죠. 그런 정서적으로 해로운 장소에 공작님만 보낼 수는 없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요량으로, 일부러 꾸물거리던 세르펜스가 막 벗은 재킷과 조끼를 곱게 개다 말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불만이 있다면 자기가 나서서 나를 여기 두고는 못 간다고 떼를 써 보든가.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지, 그가 내게서 시선을 거두고 가방에서 옷을 꺼내 든 뒤 가장 가까운 방에 들어가 버렸다.
상관하지 않을 테니 나더러 알아서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려나?
“···미안하네만, 사실 프라시더스 공작께서 누군가를 데려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여 준비된 옷과 시약이 세 명분뿐인지라 아무래도 그건 무리일 듯하네.”
나와 세르펜스가 시선을 주고받는 동안, 프레드릭은 말을 고르는 듯했으나 결국에는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한 모양이다.
그는 내 말을 듣지 못한 것으로 하기로 마음먹었는지 그것에 응대하지 않고, 나를 데려가지 못하는 다른 이유를 들었다.
‘어쩐지 시약병이 세 개뿐이더라니!’
다시 가방을 확인하자, 세르펜스가 옷을 들고 감으로써 그 밑에 가려져 있던 내용물이 드러났다.
척 봐도 비싼 돈 들여 맞춤 제작한 귀족의 옷이 보였다. 그 밑에는 황실 소속 기사단의 제복이 깔려 있을 테지.
저 두 명이 가방 안의 옷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길래, 당연히 가방 안의 내용물도 다 같은 옷인 줄 알았다.
그런데 출발 전 입었던 옷이라니.
‘이걸 어쩐담?’
이렇게 된 거 분리 불안 훈련을 하는 셈 치자고 하기에는 상황이 여의치가 않다.
보호자에게 집착하는 아이를 갑작스럽게 떼어 놓는다면 오히려 거부 반응만 심해질 뿐.
일단 생각해보자.
눈앞의 프레드릭은 이번 일의 담당자 같은 위치에 있었으니, 가는 것은 확정 사항이다.
세르펜스는 말할 것도 없다. 콕 찍어서 오라는 편지가 있었으니 필히 참석해야 한다. 그 전에 내가 가고 세르펜스가 안 가는 선택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호위 기사는···.
‘세르펜스가 가는데 호위가 따로 필요한가?’
없어도 될 것 같다.
거기다 세르펜스가 했던 말에 의하면 암흑가에서 고지식하게 뻗대다가 시비가 붙었다지?
차라리 내가 가는 편이 낫다.
“그런데 시약이라면 이미 제가 써버렸잖아요.”
“테일런 경은 후드를 눌러쓰면 티가 나지 않으니 신경 쓰지 말게나.”
테일런 경이라면 저 기사를 칭하는 거겠지?
후드를 덮어써도 반짝임을 과시할 것 같은 휘황찬란한 머리칼을 지닌 자신과 세르펜스는 시약을 쓸 수밖에 없고, 소거법으로 나온 결론이 그것일 테다.
‘지금 옷을 사러 가기는 너무 늦었나? 이 근방에 옷 가게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대화만 하자는 듯한 편지라서 어쩔 수 없이 격식을 갖춰 평소대로의 차림으로 온 것이 화근이다.
아무리 보안을 신경 써야 하는 일이라도 그렇지, ‘변장하고 오세요.’ 정도는 쓸 수 있었을 텐데.
아닌가? 그럼 너무 수상한가?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고, 당장 중요한 건 테일런 경이 입고 있는 옷을 어떻게 뺏느냐는 건데···.’
나도 암흑가를 구경해 보고 싶다고 떼쓰면··· 양보 안 해주겠지. 응, 그래.
내가 생각해도 가망이 없었다.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으로 테일런 경이 입고 있는 옷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을 때.
세르펜스가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갔던 방문이 끼익 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흠, 흠···! 조금 곤란한 일이 생겼습니다.”
살짝 열린 문 너머로, 세르펜스가 왠지 민망하다는 듯 헛기침을 하며 머리만 빼꼼히 내밀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그게··· 옷이 안 맞습니다.”
“네? 나름 체형을 고려해서 사 왔는데···.”
프레드릭이 그럴 리 없다는 듯,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짚이는 점이 있었기에 성큼성큼 걸어가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물론, 세르펜스는 내가 문을 활짝 여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잠깐 확인할 게 있어서 그러니까, 문 좀 열어주실래요?”
“지금 차림새가 단정치 못해서 안 됩니다.”
“그러니까 열어 달라는 겁니다.”
“······.”
“아니, 이상한 뜻이 아니라요! 상황이 어떤지 알아야 해결책이 나오든가 하지 않겠어요?”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세르펜스가 반대쪽에서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뺐다.
행여라도 그의 마음이 바뀔까 봐 바로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예상했던 대로 팔만 겨우 끼워 넣었을 뿐, 단추는 하나도 잠그지 않은 상태였다.
“죄송합니다, 이런 칠칠치 못한 모습을 보여 드려···.”
“제가 더 죄송합니다! 좀 더 정확히 알아봤어야 했는데···.”
세르펜스가 뭐라고 망언을 하고 당황한 프레드릭이 뭔가 망발을 내뱉었지만, 다 같은 헛소리니까 대충 흘려들었다.
“어디 보자···.”
셔츠의 허리 부분을 잡고 단추를 잠그듯 앞으로 여미자 넉넉하게 모였다.
반면에 그 위로는 흉부든 어깨든 제대로 맞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
‘그럼 그렇지. 세르펜스에게 기성복 따위가 맞을 리가.’
어깨를 감싸는 망토를 걸친다든지 화려한 견장을 하여 확실한 어깨너비를 짐작하기 어렵게 하고, 웨이스트 랭스의 이튼 재킷을 입거나 제복 위에 허리 벨트를 하여 가느다란 허리를 강조하는 것.
그것이 세르펜스가 옷을 껴입을수록 여리여리한 핏이 나오는 비법이었다.
‘나야 기차에서 세르펜스가 종종 재킷을 벗어두고 편하게 있는 모습을 자주 봤으니까 알고 있지만···.’
사실, 그마저도 세르펜스가 차츰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서 보인 행동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남들을 방심시키기 위함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세르펜스가 강한 걸 누가 몰라?’
겉보기에 연약해 보인다고 방심하기에는 성검의 주인 내정자로서 떨쳤던 그의 무력(武力)이 너무 유명했다.
순전히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전에 그가 세상에 자신을 걱정해 주는 것은 나뿐이라고 말했던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한다.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확실한 것은 없었다. 그래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그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했다.
누구보다 강해져야 했고, 그래서 강해졌다.
언제나 그는 완벽해야 했고, 그것에 방해되는 요소는 모두 숨기거나 지워야 했다.
‘그리고 강하고 완벽한 그를 누구도 걱정해 주지 않았다···는 건가.’
정말 그런 거냐고 물을 용기가 안 난다.
애초에 그걸 자각하고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어쨌거나,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항상 격식을 차린답시고 껴입으니 프레드릭이 그의 체형을 착각할 만도 하다.
마침 잘 됐다.
“이걸 제가 입고, 저기 건장한 기사님 옷을 공작님께서 입으시면 되겠네요! 허리가 헐렁하긴 하겠지만, 일단 들어가는 게 중요하죠.”
여기에서 세르펜스에게 맨살에 로브만 걸치고 다니길 강요할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그가 원래 입고 온 옷을 입을 수도 없다.
하필이면 오늘 세르펜스가 입은 셔츠의 목깃에 화려한 자수가 놓여 있었고, 당연히 맞춤복이다.
그리고 귀족들을 상대하는 의상점에서는 비슷한 형식의 옷은 있을지언정, 똑같은 옷은 두 번 다시 만들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테일런 경의 옷은 알아서 세르펜스에게 잘 전달될 테고. 나는 세르펜스의 옷이나 뺏어 입어야겠다.
이 정도면 허리 맞겠···지?
세르펜스 기준으로 허리 쪽은 넉넉했으니까, 어떻게든 맞을 거다. 아마도.
“옷 문제는 해결되었다 하더라도, 저는 시온 경이 암흑가까지 따라오는 건 반대입니다. 공작께서 말려 주십시오.”
이제 문제는 프레드릭이다.
그는 자기 호신이 가능한지 의문스러운 내가 암흑가와 같은 위험한 곳에 따라오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전하께서 하신 이야기가 오히려 시온 경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나 봅니다. 전하처럼 암흑가에 대해 잘 아시는 분도 계시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제가 책임지고 두 분을 지켜드릴 테니, 같이 가는 것을 허락해주셨으면 합니다.”
잠시 한눈판 사이 문 뒤로 몸을 숨기고 다시 얼굴만 내민 세르펜스가 간절한 표정으로 부탁했고···.
“크흠, 프라시더스 공작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알겠습니다.”
이제 문제는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