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86)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87화(187/1105)
187회
38. 공작님과 평화롭지 못한 일상 (2)
“일단 본론으로 넘어가기 전에, 몇 가지 짚고 넘어갈게요.”
내 입에서 용서의 말이 나오자마자 마냥 좋아하던 녀석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경청하겠노라 얼굴로 말했다.
“우선 제가 세르펜스에게 화를 낼 때마다 무서워하시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지 마시죠? 제가 당신을 비난하거나, 진저리치며 떠날까 봐 그래요? 그럴 일은 없으니까 안심하세요.”
“···정말인가?”
“그럼요!”
세르펜스가 경계 어린. 그러나 혹하는 듯한 기색을 보였다.
싱그러운 과실을 눈앞에 두고, ‘분명 저 열매는 달콤할 거야. 하지만 과연 독이 없을까?’라고 생각하며 갈등하는 모습이다.
마치 자신이 방심하기만을 기다렸다가, 그 틈에 도망치기 위한 발판을 다지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녀석은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그래, 믿겠다.”
내 말을 믿어주었다.
“그리고 ‘제발’같은 애원은 안 하셔도 돼요. 그냥 진심 어린 사과면 충분하다, 이 말입니다.”
“···그거면 되는 건가?”
“왜요, 고양이 소리가 필수인 줄 아셨습니까? 저번에 야옹 어쩌고 했던 건, 세르펜스가 잘못 한 것이 아니···인 게 아니라, 잘못하긴 했지만! 화가 났다기보다 안타까워서 그랬던 거라서 서로 가볍게 털고 넘어가자는 의미였습니다.”
“그게 아니라···. 정말, 그냥 사과만으로 용서해 준다고? 그것도 바로?”
세르펜스가 상식의 근간이 뒤집혀버린 사람의 얼굴을 하였다.
그 모습이 마치 초콜릿의 원료라는 말에 카카오닙스를 한 움큼 입에 넣은 사람처럼.
입안에 든 것을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고 어물 어물거렸다.
그 모습에서, 그의 세계에서 용서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이 애원하고 애걸하였을까? 얼마나 많이 빌고 또 빌었길래.
“정말 그거면 됩니다. 진짜로. 추가하자면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 정도겠죠.”
“···하지만, 고치는 데는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괜찮아요. 어떻게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겠어요? 실망하지 않고, 조바심내지 않고. 그때까지 기다려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제야 녀석이 입안 가득했던 쓰디쓴 숨을 뱉어내고, 다디단 숨을 들이켰다.
“그런데, ‘야옹’은 아무 효과도 없었던 건가?”
“저의 어처구니를 상실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아주 기가 막혔지요.”
지금도 실시간으로 어처구니가 증발하고 있다.
얘는 왜 이딴 질문을 이렇게 진지하게 하는 거야?
“제가 세르펜스를 야옹펜스라 부르든, 세르냥이라 부르든. 심지어 페르시안 고양이와 합성해서 세르시안 고양이라 부르는 한이 있더라도, 세르펜스를 제가 애완동물 보듯 보는 건 아니거든요?”
“···아니었나?!”
“왜 놀라, 왜!!”
녀석이 움찔하고 움츠러들었다가, 퍼뜩 어깨를 당당히 폈다. 쫄지 말라는 내 조언을 1차원적으로 받아들인 결과겠지.
“그냥 우리 세계에서는 할머니들이 손자, 손녀들을 보고 ‘우리 똥강아지’라 부르는데 그것과 같은 맥락인 겁니다.”
“으음···. 그럼 ‘마새개새’는?”
내가 예시를 잘못 든 건가, 단순히 이 자식이 이해를 못 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세계관의 차이인가?
마새개새가 여기서 왜 나와?!
“개새끼와 강아지는 다릅니다! 개새끼와 개자식은 욕이고, 강아지와 멍멍이는 귀엽다는 의미죠! 이해하셨어요?”
“아마도?”
정말 이해한 게 맞는지 걱정스러웠으나, 고개를 주억거리는 모습으로 보아 자신의 형편에 맞게 잘 해석하고 받아들인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직도 더 남았나?”
“뭔가 책상이 묘하게 가까워지지 않았어요? 분명 제 바로 뒤에 책장이 있었던 거로 기억하는 데요? 예전에 세르펜스가 여기 기웃거리면서 마카롱 받아갔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책상과 책장 사이에서 춤도 출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자리가 너무 멀어서, 대화하기 불편하길래 조금씩 옮겨봤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뿌듯함이 느껴졌다.
‘조금씩이라니, 대체 언제부터 얼마큼씩?’
나도 오늘날에 이르러서 겨우 깨닫게 되었으니, 아주 긴 시간을 들여 옮겨놨다는 얘기렷다.
“공작이 대체 뭘 하는 거야?!”
“가구 재배치?”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반응에 말문이 막혔다.
그렇게 당당하시면 이렇게 찔끔찔끔 옮기지 말고 하루아침에 옮기시지 그러셨어요?
그러나 집주인이 자기 집 가구 옮기겠다는데 뭘 뭐라고 하겠는가.
덕분에 대화하기 편해진 것도 사실이고.
“오케이, 인정! 그럼 이제 편지 얘기를 꺼내봅시다.”
세르펜스가 휴마누스에게 편지를 썼다니!
보나 마나 업무적인 이야기뿐이겠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랴.
고된 여정 중, 기대하지 않았던 친우의 답장을 받게 되었을 휴마누스가 얼마나 기뻐할까?
“악마 숭배자들이 새로 개발한 세뇌 마법에 대한 설명과 그러니 신관 동료에게 정신계 쪽으로 신성력을 단련해 놓으라고 전해달라 하였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었다.
지금부터 일찌감치 준비해놓으면 [성검의 주인]에서 있었던, 그런 비극은 피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요?”
“두 번째 시련의 장소는 바로 눈앞에 있다고···.”
“네?!”
“시간도 촉박한데, 굳이 돌아갈 필요는 없잖은가.”
그렇긴 한데,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나름 지혜의 시련을 표방하고 있는데, 그렇게 해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걸까?
혼란스러워졌다.
“어차피 두 번째 시련은 시련의 장소에 있는 골렘을 쓰러뜨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잖나.”
“결과적으로 그렇기는 한데···.”
이제 와서 편지를 회수하기 위해, 드워프 사도들이 모여있는 영겁의 화로까지 달려갈 수도 없는 노릇.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좋게 생각해보자.
휴마누스 일행이 모든 단서를 풀어서 시련의 장소에 도달하는 것은 예정된 일이었다.
‘···그래. 게임 2회차 플레이라치면, 그런 노가다 장면에 스킵 기능쯤은 넣을 수도 있지!’
공략법이 완전히 똑같고 시간만 오지게 잡아먹는 퍼즐을 다시 풀어야 한다? 심지어 중간 보상조차 없어?
요즘 게임을 그딴 식으로 만들면 욕먹기 딱 좋다.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한 유저 패치였으니, 룩스메아도 인정하고 모르는 척 눈감아 주겠지.
“그래도 단서를 숨기면서 두근두근 기대하고 있었을 드워프 사도들에게 사과하시죠!”
“그건 미안하게 됐다.”
어차피 닿지도 않을 사과.
세르펜스는 내게 하던 것에 반의반도 안 되는 성의를 담아, 허공에 대충 사과의 말을 던졌다.
“그리고요?”
“그리고?”
“편지 내용은 그게 끝이냐고요.”
“그 밖에는···. 거리상으로는 돌아가는 게 되겠지만, 마지막 목적지인 아르케 왕국까지는 팔로 왕국이 아니라 제국을 경유해 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정말 담백하다 못해 텁텁하고 건조한 내용 일색이었다.
하다못해 보고 형식이라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고 주변에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지.
쓰려고 한다면 시시콜콜 잡다하게 쓸 얘기도 많았을 텐데, 그야말로 ‘용건만 간단히.’의 표본이었다.
편지를 다 읽고, 다음 장이 있는 건 아닐지 편지 봉투를 탈탈 털고 있을 휴마누스의 모습이 보지 않아도 훤하다.
“이미 보낸 건 어쩔 수 없고···. 줘 봐요.”
“무엇을?”
“전하가 세르펜스에게 보낸 편지요.”
휴마누스는 세르펜스와 다르게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되는대로 적어놨을 거다.
그것을 읽어보면 일정이 어떻게 틀어졌는지도 대강 감이 잡히겠지.
“···그건 곤란하다.”
“설마 버렸어요?!”
“황족이 보낸 문서를 함부로 버리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소각로에 태웠다.”
문서가 아닐뿐더러, 버리는 것보다 태우는 게 더 상처다.
가만 보면 이 녀석은 휴마누스에게 유독 가차 없이 구는 것 같다.
인정하지 않아도 소꿉친구라 이건가?
“앞으로는 편지가 오면 반드시 선우에게 보여주고, 보내기 전에도 필히 검사를 받도록 하겠다.”
“가정통신문에 부모님 싸인 받아 제출하는 소리 하지 마시고.”
“그렇다면···.”
“그래도 편지는 보여주세요.”
그가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르펜스는 뭐 짚이는 거 없어요? 일정이 꼬인 이유에 대해서.”
“그 드루이드 용병을 치료하느라 늦어진 것도 있을 테고···. 스메른으로 향하는 배를 구하는 것에도 시간을 많이 낭비한 모양이다.”
스메른.
일명 반인반어라 할 수 있는 메로우들이 사는 나라이자, 대륙에 있어 유일한 섬나라다.
그들이 말하길 자신들의 나라를 ‘섬나라’라 칭하는 것은 육지 사람들의 기준일 뿐이라며, 자신들의 나라를 ‘대양 국가’라 칭하였다.
‘그쪽이 맞는 얘기긴 하지.’
어디까지나 바다 위로 드러난 섬은 육지에서 온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한 장소일 뿐.
실제 그들의 나라는 그 아래, 깊은 바닷속에 있었으니까.
“그런데 배는 왜요?”
“배를 타기 위해 도착한 항구 도시에 정박해있던 배가 전날 모두 폭발했다고 한다.”
“악숭이 짓이겠네요.”
“그렇겠지.”
간단하면서도 효율적으로 방해해놨다.
“나갔다가 돌아오는 배도 있을 거 아녜요?”
“눈앞에서 침몰했다더군.”
일부로 희망을 남겨두고 눈앞에서 터트리는 게, 딱 악숭이나 할 짓이었다.
“그렇게 항구 도시를 전전하다가, 결국에는 화가 난 마법사 동료가 가까운 호수에 떠 있던 보트를 마법으로 옮겨 바다에 띄워서, 마법으로 배를 움직여서 건넜다고 한다.”
“그게 가능해요? 물론 배를 움직이는 거야 가능하겠지만, 바닷길이라던가···.”
“그것도 마법사 동료가 뱃사람을 데려와서 해결했다더군.”
과연 데려왔을까, 끌고 왔을까? 호수에 있던 보트는 주인의 허락을 받았을까? 그 전에 지금 이거 우리 편 얘기하는 거 맞지?
아니마가 종종 돌발 행동을 벌이긴 했지만, 이건 좀···. 화끈하네.
“배는 섬에 도착하자마자 부서졌고, 돌아올 때는 메로우의 힘을 빌렸다고 쓰여 있었다.”
이런 세세한 얘기를 다 적어 놓은 휴마누스나, 그걸 다 읽고 기억하는 세르펜스나···.
이래놓고 왜 아직도 친구가 아니라는 거지?
“도적단에 관해서도 특이사항이 있다. 선우는 작은 마을이나 약탈하는 시정잡배 집단이라 하였지만,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그보다 훨씬 덩치가 크고 나름의 체계까지 갖춘 상태라는 것 같았다.”
이것도 보나 마나 악숭이 놈들이 뒤에서 지원해 준 거겠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그리고 [성검의 주인]에서 읽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휴마누스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열심히 구르고 있었다.
“그 외에도 가는 길목마다 사사건건 방해가 들어오거나 소동이 벌어지고, 직접 흑마법사를 조우한 적도 있다는 모양이다.”
놈들이 완전 사활을 걸고 있었다.
본래 이 시기에는 정면에서 부딪혀봐야 안 될 것을 알기에, 끽해봐야 이간질 정도만 했었는데···.
약간 ‘네 주제에 시련을 통과할 수나 있을까?’라고 말하는 것처럼, 휴마누스가 시련을 받든 말든 우리는 할 일을 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뭔가 달랐다.
마치 이번이 정말 마지막 기회라도 되는 양, 열과 성을 다해 방해 공작을 펼치고 있었다.
“세르펜스.”
“말해라.”
“손을 들어 머리 위에 얹어보세요.”
그냥 한 손만 올려도 되거늘.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 세르펜스는 양손을 머리에 올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어릴 적 보던 모 만화의 노란 오리 캐릭터가 떠올랐다.
“자, 이제 손을 머릿결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참 잘했어요! 장하다, 나 자신!’이라 말하는 겁니다!”
“이 행위에는 무슨 의미가 있지?”
대사는 읊지 않았지만 손은 시키는 대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세르펜스가 말했다.
“리에나에게 신성력 관련 조언을 한 거라든가, 경유지를 팔로 왕국 대신 제국으로 바꾸라고 한 거라든가. 편지 써서 전달한 거, 아주 잘하셨다는 의미로!”
“···하다 하다 이제는 칭찬까지 나에게 시키는 건가?”
세르펜스가 자기 일을 스스로 하지 않는 한심한 어른을 보는 듯한 표정을 하며 손을 내렸다.
내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