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88)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89화(189/1105)
189회
38. 공작님과 평화롭지 못한 일상 (4)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지, 세르펜스는 아직도 연기하지 않는 자신을 긍정하는 게 어려운가 보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일단 당면한 과제부터 처리하자.
“좋아요, 그럼 앞으로 휴마누스와 친하게 지내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요.”
“뭐? 갑자기 왜···. 어째서?”
“어째서는 무슨 놈의 어째섭니까? 제가 친하게 지내라 한다고 그러겠노라 할 것도 아니면서.”
세르펜스는 본인이 진저리를 치며 말해놓고,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만 보니, 말의 앞뒤가 다르지 않으냐 따지는 것 같기도 했다.
“탓도 잘못도 아니지만, 실수한 건 맞잖아요? 세르펜스가 느끼기에 기만이라 여겨질 만했고요. 그때의 세르펜스는 지금보다도 훨씬 어린 나이였고, 그래서 더 상처를 입었던 거겠죠. 더군다나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으니···.”
“그자는 친구가 아니며, 단 한 순간이라도 친구였던 적 또한 없다.”
“퍽이나?”
앞의 말은 그렇다 치더라도 뒷말은 확실한 거짓이다.
누가 들어도 명백한 거짓이었다.
아까 존경 어쩌고 하는 소리까지 한 주제에, 이제 와 발뺌한다고 잘도 믿겠다.
“아, 아까 전에 한 얘기는 말실수였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힘들어서, 조금···. 그래. 조금 혼란스러워 다소 감정적으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고 계시네요. 지금.”
횡설수설 말하는 꼴이 아주 가관이다.
내가 먼저 유도하지 않는 이상, 힘들었다든가 괴로웠다든가. 그런 말은 먼저 꺼내지도 않는 주제에, 저렇게까지 말하다니.
“뭐, 그래요. 이해합니다. 같은 아픔을 겪고, 그것을 먼저 이겨낸 인생의 선배인 줄 알았는데, 그냥 칠렐레 팔렐레하는 놈이었다니. 배신감을 느낄 만하죠. 배신감이라는 게 원래 쉽게 지워지지 않는 법이고, 믿은 만큼. 마음을 내준 만큼 더···.”
“내가 처음 사귄 친구는 선우, 당신이다. 그딴 놈은···!”
이렇게 치를 떨며 말하는데, 그 말을 어떻게 믿어?
그는 휴마누스를 친구라 여겼던 과거를 완전히 흑역사로 취급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예이, 예이. 그러믄요.”
“비꼬지 말고.”
“네, 그렇다 칩시다. 세르펜스의 말이 다 맞아요. 세르펜스가 말하는 것이 곧 진리죠. 암요, 그렇고 말고요.”
“···미안하다. 내가 그대에게 너무 무리한 부탁을 했군.”
녀석이 푹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표정은 아까와 다른 방향으로 심각해졌지만, 안색은 확실히 좋아졌다. 농담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도 되찾은 모양이고.
하지만 그와 맞바꿔서 짜증 지수가 오른 것 같으니, 그만 건드리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어쨌거나요. 친구를 두루두루 사귀라고 권장하고 있지만, 싫은 아이와 억지로 같이 놀 필요는 없습니다. 놀이터에 있는 아이들과 모두 친하게 지내길 바란다면, 그게 오히려 욕심이죠.”
“선우, 당신은 모든 문제를 가볍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칭찬 감사! 그게 제 챠밍 포인트죠!”
세르펜스가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신에! 확실하게 티를 냅시다.”
“티를 내라?”
“네. 세르펜스가 오냐오냐 받아주며 어중간하게 구니까, 휴마누스가 자꾸 혼자만의 우정을 키워나가잖아요. 세르펜스만 절교하면 답니까? 인간관계는 양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게 기본입니다.”
“하지만 그건 정치적으로 무리가···.”
“누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말래요? 어깨동무나 포옹처럼 친근한 표현들이 싫다면 억지로 받아줄 필요는 없다, 이 말입니다. 적어도 휴마누스는 사적인 감정 때문에 공적으로 누군가를 압박하거나 피해를 주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 정도는 세르펜스도 알잖아요.”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미움받을까 봐. 그것이 두려워서라고 솔직하게 말해도 될 텐데, 꼭 저런다.
그건 사람의 본능이다.
남에게 미움받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니, 있기나 할까?
그것을 이겨내고 당당해질 수 있는 것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첫걸음이다.
“말을 하든 표를 내든 해야 상대방도 알아챌 거 아닙니까? 그래야 자신의 행동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돌아보고 반성하든, 눈치를 기르든지 하겠죠. 그게 안 되면, 하다못해 어째서 자신을 피하는지 물어볼 수나 있지. 결과적으로, 세르펜스의 행동은 그가 사과할 기회조차 뺏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것만은 세르펜스가 잘못한 게 맞습니다.”
인지 능력이 자리잡힐 무렵부터 친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람이 알고 보니 속으로는 자신에게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고, 자신을 꺼리고 미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충격적일까?
휴마누스가 모르고 세르펜스를 기만했다면, 세르펜스는 알면서 휴마누스를 기만한 꼴이다.
그것도 아주 긴 시간 동안.
“그러니까···, 어, 어어?! 갑자기 왜 울어요?!”
기껏 대화할 수 있도록 달래놓고 시작했건만, 녀석은 결국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차분하게 얘기를 듣는 듯하다가 아무런 전조도 없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하는데, 당황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니, 대체 누가 울렸어요, 누가?! 거, 몹시 나쁜 사람일세!”
“선우가 보기에도···, 흡, 나는 나쁜 사람인가?”
지금 얘, 내가 잘못했다고 말해서. 그것 때문에 우는 거야?
아무리 (스물) 다섯 살이라지만, 진짜 20년분의 나이를 내다 버릴 것까지는 없잖아?
“세르펜스가 왜 나쁜 사람입니까? 하나도 안 나빠요. 방금 얘기한 건 세르펜스가 나빴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냥 사회생활이 미숙해서. 그래서 모르고 실수한 거니까, 앞으로는 고쳤으면 좋겠다는 의미로다가···.”
“하지만, 선우는··· 내게 단 한 번도 착하다는 소리를, 흑, 해준 적 없잖은가.”
아무래도 내 귀가 잘못된 것 같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확인 차 그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세르펜스···? 설마하니, 지금 제가 ‘아이고~! 우리 세르펜스! 착하다, 착해!’ 같은 소리를 안 해줬다고 서운해서 이러는 겁니까?”
“우···읏···.”
“그렇게 시무룩한 표정 짓지 말고요.”
‘네가 애세요?’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애가 맞긴 맞아서 꾹 눌러 참았다.
몸뚱이만 컸지, 속은 전혀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다. 사랑과 관심, 보살핌이 한창 필요할 때였다.
“잘 들어봐요, 세르펜스.”
나는 그의 어깨를 짚고 있던 손을 옮겨, 그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말문을 열었다.
세르펜스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여전히 울먹거리는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제가 세르펜스에게 착하다는 말을 하지 않은 건, 세르펜스가 나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세르펜스는 어릴 때부터 선과 악에 대해 줄곧 강요받았잖아요. 선과 악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으면 했어요. 더는 그러한 틀에 갇히지 않았으면 해서. 그래서 그랬던 겁니다.”
“정···말로?”
“물론이죠! 그런 틀에 가두지 않더라도 세르펜스는 옳아요. 가끔 실수한다 해도, 그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겁니다. 절대 그릇된 게 아니에요.”
이런 얘기를 한다고 바로 눈물을 뚝 하고 멈출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왜 더 우시는 겁니까?!”
“그, 그래도···, 흑! 선우에게도, 주관적인 선악의 틀이··· 흡, 있을 것 아닌가? 만약···. 아주 만약에. 내가 선우의 ‘틀’에서 벗어난다면?”
“혼내야죠.”
“···그것뿐인가?”
녀석이 훌쩍거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모습이 마치, 고작 그것뿐이냐고 묻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 리가요! 매일 쫓아다니면서 옆에서 ‘세르펜스, 회개하시죠? 회개해야죠. 회개하시는 게 어때요? 회개할 때도 됐는데?’ 하면서 깐족거리고, 자고 있을 때도 귓가에 속닥거려서 꿈속에서까지 노이로제가 걸리도록 괴롭혀 줄 겁니다!”
내가 생각해도 아주 잔혹한 처사라 아니 말할 수 없다.
이 정도면 테네브리오도 ‘와, 씨, 나도 이건 좀···.’이라 말하며 한 수 접고 가지 않을까?
하지만 세르펜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건지.
아니면 내가 자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말이 마냥 좋은 건지.
녀석의 입가가 조금 씰룩거리는 듯하더니, 결국 푸흣 하는 공기 빠지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떨구며 웃음을 흘렸다.
‘정말이지, 잘 웃고 잘 우는 녀석이라니까?’
이런 다채로운 감정을 그동안 어디에다가 꼭꼭 숨겨두고 있었는지 모를 노릇이다.
“내가, 으음···. 너무 고민했던 것 같군. 그래, 선우 당신은 이런 사람이지···.”
녀석이 눈가에 맺힌 눈물을 저 스스로 닦아내며 환하게 웃었다.
빨개진 코를 훌쩍거리며 웃는 그 모습이란.
길거리에서 미아가 되었던 아이가 엄마를 되찾고 그 품에 포옥 안긴 것처럼. 비로소 안심한 듯 무척이나 편안해 보였다.
“네, 맞습니다. 이제 아셨으니까, 앞으로 이런 고민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참고하도록 하지.”
“땡! 참고가 아니라 반영해야죠!”
벌로써 머리칼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마구 헝클어뜨렸다.
손가락 마디 사이사이로 가늘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간질거리며 스쳤다.
이게 세르펜스의 머리통만 아니었다면, 그에게도 촉감 놀이로 권해주고 싶을 정도로 기분 좋은 느낌이다.
“그래, 알았다. 반드시 반영하도록 하지.”
머리가 산발이 되어도 세르펜스는 좋다고 웃으며 말하였다. 거울을 통해 자기 머리 꼴을 본다면 바로 사라질 미소였다.
당장은 보는 내가 재밌으니, 이따 퇴근하기 전에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손을 거뒀다.
“좋아! 그럼 앞으로 휴마누스가 반갑다며 껴안으려 하면 어쩐다?”
“···그것까지 포함된 답변이었나?”
“당연한 소릴!”
어째 세르펜스가 본인도 모르게 이중 계약서에 서명한 것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처럼, 사기당했다는 듯한 낯을 했다.
“자, 자. 어서 대답해 보시죠!”
“···피한다.”
“정답! 앞으로 휴마누스든 누구든, 세르펜스가 원치 않는 접촉을 하려 하면 ‘안 돼요. 왜 이러세요? 이러지 마시죠!’라고 외치는 겁니다!”
“대사가 조금 이상한 것 아닌가?”
“걱정돼서 그럽니다, 걱정돼서!
불편한 기색은 있었지만, 피할 수 있으면서 다 받아주기에 어느 정도 친근함은 느끼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까놓고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비유하자면 추천해준 친구 말만 믿고 해당 주식을 왕창 사들였는데, 바로 다음 날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알고 봤더니 그 친구는 사지도 않았던 것.
완벽하지는 않지만 대략 그런 느낌인 거다.
불구대천의 철천지원수가 따로 없다.
‘나라면 어깨에 손만 올려도 기겁하며 떨쳐내겠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휴마누스의 접촉을 죄다 받아줬는데, 만약 그저 그런. 아무 감정도 없는 사람이 치근덕거린다면 얼마나 방치할지···.
걱정이 안 되면 이상한 거다.
이전에는 성검의 주인 내정자 쉴드라도 있었지. 이 순진한 녀석이 적정선이라는 걸 구분할 수나 있을까?
“잠깐.”
답답해서 가슴을 치고 있는데, 갑자기 세르펜스가 내 손목을 움켜잡았다.
“아프게 친 거 아닙니다. 살살 때렸어요.”
“그건 척 봐도 안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 교단에서 보상으로 준 배지는 어디 갔지?”
이단 심문관, 에일리히가 가져왔던 하얀 벨벳 상자.
그 안에는 묵직한 금괴 6개와 방금 세르펜스가 언급한 배지 3개가 들어 있었다.
금괴야 그냥 팔면 돈이 되는 물건이고.
배지는 엄지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크기였는데, 빛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삐죽삐죽한 형태에 중앙에는 새끼손톱만 한 투명한 보석이 박혀 있었다.
“분명 얼마 전까지는 잘하고 다니지 않았었나?”
“아뇨, 그게 말입니다. 흑마력 감지 기능이 있으니 제가 보기 편하게 커프스단추처럼 하고 다니라 하셨잖아요? 그런데 지금이 여름이라 셔츠를 매일 빨아야 하다 보니, 매일 옮겨 달기 귀찮기도 하고 실수로 세탁해버리거나 잃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신성 모독으로 잡혀갈 것 같고···.”
“그래서 지금은?”
“아공간 주머니 속에 넣어놨습니다!”
조금 전까지 울먹거리던 세르펜스의 눈이 도끼눈으로 변했다.
분명 내가 세르펜스를 혼내고 있었는데, 바로 형국이 뒤집혀버렸다.
“어차피 세르펜스가 옆에 있으니까 괜찮잖아요?”
“항상 같이 있는 것도 아니질 않나.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매일 챙길 수 있도록 습관을 들여놔야 한다.”
그가 눈을 부라리며 엄포를 놓았다.
절대 타협은 없어 보이는 눈이다. 당장 그것을 소매에 달겠노라고 대답하지 않으면 이대로 영영 손목을 놔주지 않을 기세다.
“아, 것 참! 알았어요, 알았어! 지금 달 테니 일단 놔주시죠?”
세르펜스의 손이 떨어져 나갔고, 나는 조끼 안주머니에 넣어둔 아공간 주머니를 꺼내어 그 입구를 열었다.
그 순간.
“···잠깐.”
“또 왜요?”
갑자기 세르펜스가 흠칫 어깨를 움찔거리더니, 그것을 가로채어 안을 뒤적거렸다.
“대체 안에 뭘 넣고 다니는 거지?”
“네?”
그는 가타부타 설명하는 대신 손을 펼쳐, 자신의 손바닥 위에 놓인 물건을 내게 보여주었다.
교단에서 준 배지다.
“···이게 왜 까매졌죠?”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대체 어디서 뭘 주워서 넣고 다니는 거지?”
세르펜스가 징글징글하다는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 중앙의 카펫 위에 주머니 안의 내용물을 탈탈 쏟아부었다.
온갖 간식거리와 돈, 금괴, 마법 스크롤.
그 외에 자질구레한 잡동사니가 마구 쏟아졌고, 세르펜스가 시간 날 때마다 만들어 준 특제 성수가 든 병들도···.
“어라? 이것도 맛이 갔네?”
5리터가 되는 병들 중 4개의 병이 잿빛으로 뿌옇게 흐려져 있었고, 남은 하나는 금방이라도 꺼질듯한 옅은 빛을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뱃지가 까맣게 변한 것은 아마 이것 때문인 듯하다.
“대체 어디서 뭘 하고 돌아다니는 거지?”
“잠깐만요! 세르펜스가 토벌을 끝내고 돌아온 이후에는 줄곧 같이 다녔잖아요! 저는 무고합니다!”
“지금 이걸 보고도 무고 소리가 나오는가?!”
가끔 주말에 공작저 밖을 나설 때도 녀석이 쭐레쭐레 쫓아 나왔으니, 문제가 있었다면 세르펜스가 원정을 나갔을 때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짚이는 구석은 충분히 있었다.
“아마도···, 그때 악숭이가 저한테 세뇌를 안 건 게 아니라 못 건 거였나 봐요.”
본의 아니게 놀린 꼴이 되었다. 전혀 미안하지 않았다.
“대체 그때가 언젠데 아직 이걸···.”
그러게나 말이다.
마법 스크롤을 최대한 챙겨간다고 아공간 주머니에 바리바리 챙겨서 가져가 놓고, 그대로 까먹어버렸다.
그때 바로 꺼내서 확인했다면 한 번 혼나는 거로 그냥 끝났을 텐데.
“그런데 아공간 주머니에 넣으면 뭐, 제3의 차원에 존재하는 공간과 연결되거나 그런 건 아닌가 봐요?”
“그런 대륙 반대쪽에 있는 마법사에게도 도둑질당하기 좋은 물건을 누가 사용하겠나? 그리고 은근슬쩍 논점을 흐려서 넘어갈 생각이라면 포기해라.”
세르펜스의 목소리 톤이 확연하게 낮아졌다.
“내가 왜 이걸 확인할 생각을···, 하아···. 악마 숭배자가 부 집사에게만 세뇌를 걸었다는 그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이 아니었는데···.”
잘못한 건 나인데, 녀석이 자책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배지도 꼬박꼬박 손목에 하고 다니며 한 시간 단위로 확인하고, 성수도 앞으로는 매일 매일 꺼내어 상태를 확인하겠습니다!”
나는 자리로 돌아가 무릎을 꿇고 손도 들어 올렸다.
이런 주제에 내가 누구에게 훈수를 두고 있던 건지. 진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