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9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93화(193/1105)
193회
39. 공작저에 찾아온 불청객 (4)
리에나와 푸로르 사이에 앉은 아니마는 머리 위에서 무슨 대화가 오가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멍 때리며 앉아있었다.
[성검의 주인]에서 읽었던 내용에 근거하여 생각해 볼 때, ‘마왕 따위 혼자서 콱 죽어버려서, 빨리 언니한테 돌아가고 싶다···.’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세피 옆에 앉은 사람은 그의 보좌관인 시온 리벨론 경이고, 그 옆은···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놀러 온 거야?”
다른 일행들과는 연회장에서 만난 적이 있으나, 초면인 푸로르를 위해 휴마누스는 소개를 이어가다 말고 옆길로 빠졌다.
“유지스 위리디아예요. 세르펜스 님과 시온의 친구로서 현재는 프라시더스 가의 식객으로 들어와 살고 있어요.”
유지스가 괜히 하지 않아도 될 친구라는 말을 운운하며 당당하게 말했다.
휴마누스더러 들으라고 한 소리일 테다.
“아르케 왕국의 외교 사절은 어쩌고?”
“지금은 다른 분이 와 계시고, 저는 그만뒀어요.”
유지스가 유자처럼 상큼하게 웃었다.
아니라는 건 알지만, 어쩐지 ‘돈 많은 친구가 생겨서 일 때려치우고 놀고먹으려고요.’처럼 들려서 기분이 복잡 미묘 찝찝해졌다.
실제로 푸로르도 유지스를 백수건달을 보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고.
‘이렇게 되면 푸로르에게 세르펜스는 장난꾸러기, 나는 사탕 집착남, 유지스는 백수로 기억되는 건가?’
절망적이다. 이보다 절망적인 첫인상도 없을 것이다.
이제는 슬슬 공식 단체 비스름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일루미나티인데, 그 간부들이 이따위라니.
“하하하, 나도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공작저로 들어와 버릴까?”
“황태자 전하께서는 황위를 이어받을 분이시니, 당연히 황궁으로 돌아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휴마누스가 가볍게 던진 농담에 세르펜스가 정색하며,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너희 집으로 꺼져.’라 말하였다.
“그냥 해 본 소리지. 세피도 참, 내 걱정을 많이 한단 말이야?”
그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때문에 걱정이다.
“여행이 끝나면 바로 레니에와 결혼할 테고, 황금 같은 신혼에 공작저로 들어와 살 리가 없잖아?”
“······.”
“그렇다고 너무 질투하지는 말고. 사랑은 사랑이고, 우정은 우정이지. 누가 뭐래도 세피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니까!”
“······.”
맞장구쳐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음에도 휴마누스는 혼자서 잘도 떠들어댔다.
그 ‘가장 친한 친구’로 지칭 된 세르펜스가 뭐라고 따진다 한들, 수용해주지 않을 기세였다.
세르펜스는 미간을 모으며 난감하다는 미소를 지었고 휴마누스는 티 없이 밝게 웃었다.
‘쟤는 대체 뭐가 문젤까?’
안 좋은 의미로 그의 성장 과정이 궁금해졌다.
“그러고 보니···. 황태자 전하께 보낸 편지에 악마 숭배자들이 최근에 개발한 세뇌 마법에 관하여 적어드렸는데, 보셨습니까?”
세르펜스가 휴마누스로부터 고개를 돌려버리며, 정면에 앉은 리에나에게 말을 걸었다.
연관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대화 중이었는데 그러고 보니는 무슨.
그냥 더 이상 휴마누스의 말을 받아주는 것조차 싫증 난 것에 불과했다.
“네, 읽어보기는 했지만···.”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리에나의 안색이 어두워졌고, 그 모습에 세르펜스가 다정한 표정을 꾸며내며 조심스레 질문했다.
오늘 휴마누스에게는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표정이다.
“제가 있던 지부에는 정신적인 고통으로 인해 찾아오시는 분들은 거의 없다시피 해서···. 찾아오시더라도 최대한 대화를 통해 신자 님들께서 스스로 극복하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기본 메뉴얼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지 감이 잘 안 오네요.”
그럴 만도 하다.
정신적인 트라우마는 그 기반이 되는 기억으로 인해 발생하기 마련인데, 신성력이 그 기억 자체를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까.
결국 일시적인 안정에 그치게 되는 것이다.
잦은 발작으로 인한 호흡 곤란 혹은 자해 증세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교단에 찾아가 신성력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다.
“막상 닥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한 번에 성공해 낼 자신이 없어요. 더군다나 실패했을 때의 부작용도 너무 커서···. 과연 제가 떨지 않고 잘해낼 수 있을지도 걱정이에요.”
푸로르의 말에 리에나는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직 피해자를 실제로 마주한 적도 없는데, 그녀는 벌써 책임감을 느끼며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니, [성검의 주인]에서 문자로 읽었던 것 이상으로 당시의 그녀가 고통스러워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세르펜스 님께서는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할 수 있었죠?”
믿을 수 없다는 표현이 가능할 정도의 반응이었다.
내 어깨에 유지스의 어깨가 스쳤다. 그 방향을 바라보니, 그녀는 상체를 반쯤 틀어 세르펜스를 보고 있었다.
휴마누스가 그녀가 가진 눈치의 반의반의 반 만이라도 가졌으면 좋았으련만.
“이제는 부끄럽게도 허명(虛名)이 되어버렸지만, 한때는 성검의 주인이 될 자로 불리지 않았습니까. 대륙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한 다방면으로 노력해오다 보니, 그런 것도 가능해진 것 같습니다.”
세르펜스가 겸손한 체하며 대답했다.
“휴마누스 님께서 세르펜스 님을 자랑스러워하고, 동료로 삼고 싶어 하는 이유도 알 것 같아요.”
그녀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직접 입에 담지는 않았지만, 자신보다는 세르펜스가 일행에 들어오는 것이 더 나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때, 세르펜스가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휴마누스의 뒤를 돌아 리에나에게로 다가간 세르펜스가 그녀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의 손끝에서 빛이 흘러나와 리에나에게 스며들었다는 것은 뻔한 얘기다.
‘어떤 식으로 수련해야 할지, 그 요령을 가르쳐 주고 있는 거라고 보면 되려나?’
리에나 또한 그의 의도를 바로 알아차리고, 눈을 감으며 세르펜스가 흘려보낸 신성력의 흐름에 집중했다.
“햐, 공작 나리가 대단하긴 대단한가 보네.”
“내 친구가 좀 대단하지!”
“우리 언니도 한 대단 하는데···.”
푸로르의 감탄 어린 말에 휴마누스가 뿌듯해하였고, 줄곧 딴청 피우던 아니마도 슬그머니 지인 자랑에 동참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언니’는 어떻게 되는 거지?’
[성검의 주인]에서는 아니마가 성장하게 되는 기폭제가 되어버린 탓에, 이번에는 악숭이들이 손대지 않으려 할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릇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질로 붙잡으려 할 가능성은?’
악마가 일부러 남겨 둔 그녀의 자아가 나왔을 때,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악에 굴복하지 말라고. 약해지지 말라고.
이제는 자신에게 의지하지 말고, 나아가라고.
악마에게 육체와 마력의 제어권을 완전히 빼앗겨 아니마를 공격하면서, 반격도 못 하고 울면서 자신의 공격을 그저 막아낼 뿐인 아니마를 보면서.
‘자신을 끊어내라고, 그녀는 몇 번이고 말했었지···.’
그것을 기반으로 그녀의 성향을 파악해 보자면, 자신이 아니마의 발목을 붙잡으려 한다면 격렬하게 저항하려 할 것이다.
자신으로 인해 아니마가 타락하거나 악숭이들에게 이용당하게 된다면 견딜 수 없이 괴로워할 테다.
아니마가 그녀에게 목을 걸다시피 굴지만, 그건 그녀가 본인에게 애정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
그녀는 진심으로 아니마를 아끼고 있었다.
고아였던 그녀에게 자신을 친언니처럼 따르는 아니마는, 그녀에게도 특별한 존재였으리라.
“그 ‘언니’라는 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쪽이 그런 건 왜 묻는 건데요? 설마 우리 언니에게 관심 있는 건 아니겠죠? 감히?!”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다.
넌지시 물어보면 알아서 자랑을 늘어놓으며 떠들어댈 줄 알았더니, 아니마가 날 선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경계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세르펜스가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봤다.
남이 보면 그냥 쳐다보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평소보다 아주 미세하게, 가늘게 뜬 눈에는 불만이 깃들어 있었다.
‘···너는 그쪽이나 집중하세요.’
섬세한 작업이라면서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그냥 얼마나 대단하고 굉장하고 멋진 사람이길래 동생이 이렇게 잘 따르고 존경받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겁니다. 아까 나갔던 그 부 집사 있죠? 사실 걔가 제 동생이거든요. 그런데 자주 티격태격해서···.”
“근무 시간에 사탕이나 먹으니까 그렇겠죠.”
세상에 이렇게 억울할 데가!
뭐라고 반박하고 싶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억울해졌다.
‘그래, 상관 앞에서 커다란 막대 사탕을 쯉쯉거리며, 불량한 태도로 일하는 형을 존경할 수 없다는 건 인정해! 하지만 그게 나는 아니라고! 안 먹는다고!’
내 것이 아니었어야 할 수치심에 얼굴이 홧홧거렸다.
본래 수치심의 주인이 돼야 했을 세르펜스는 자신과 관계없는 이야기인 척, 리에나에게 신성력을 불어넣는 행위에 집중하였다.
이런 치사펜스!
“하루만···, 하루만 더 일찍 오거나 늦게 오시지! 정말 큰맘 먹고 꺼내 든 건데!!”
“시온, 힘내요. 괜찮으니까, 진정해요. 저는 다 이해해요.”
얼굴을 감싸며 괴로워하는 나의 등을 유지스가 토닥거렸다.
이 빚은 반드시 달아두고, 기필코 녀석에게 갚아주고 말리라.
머릿속으로 수치심에 부들부들 떠는 세르펜스의 모습을 상상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 ‘언니’라는 분도 사탕 정도는 드실 거 아닙니까?”
“우리 언니는 어른이라서 그런 유치한 사탕은 안 먹네요!”
“맛있는 걸 먹는데 애 어른이 어딨습니까? 그 말은 사탕에 대한 모독입니다, 사과하세요!”
“흥!”
세르펜스를 위해 사탕을 변호해 봤지만, 아니마는 코웃음 치며 무시했다.
그대로 고개를 홱 돌려버리는 모습이 사탕에 대한 변론뿐 아니라 그냥 나와의 대화 자체가 내키지 않는다는 모양새다.
불세출의 천재이자 마탑주의 손녀라는 것이 겹쳐 유명한 아니마와 달리, 그녀는 유명하지 않아서 뭐라도 알아내 볼까 했는데···.
아무래도 당장은 아니마에게서 그 ‘언니’라는 사람의 정보를 얻어내는 건 어려워 보였다.
‘같은 마법사인 솔레르티아도 잘 모른다고 했고···.’
생산계열인 데다 마나 감응력이 떨어져서 마탑에는 오르지 못하고, 마탑 소속의 부속 건물에서 지냈다나 뭐라나.
유지스가 투기장에 대해 알아왔을 때처럼 어둠의 루트를 이용해야 하나?
“이제 감이 좀 잡히시는 것 같습니까?”
“알 것 같기도 하고···. 아직은 조금 애매하네요.”
어느 정도 리에나가 따라왔다고 느낀 건지, 세르펜스가 그녀의 이마에서 손을 거두는 모습이 보였다.
“교단에서 성검의 동료로 선택된 분이잖습니까. 조금만 노력하시면 틀림없이 해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 리에나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 거의 죽어가던 나도 살려냈잖아?”
세르펜스가 온화한 미소를 꾸며내며 부드럽게 말하였고, 푸로르가 기운 내라는 듯 힘차게 말했다.
그 둘을 번갈아 보며 리에나가 감동하는 표정으로 양손을 깍지끼며 가슴 앞에 모았다.
너무 훈훈한 분위기라서 리에나와 푸로르 사이에 새침하게 앉아있는 아니마가 더욱 작아 보였다.
‘저럴 거면 쟤를 왜 가운데에다 앉힌 거야?’
푸로르에게 가려져 안 보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시야 확보용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