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9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96화(196/1105)
196회
40. 공작님과 실종 사건 (1)
점심 식사 후의 일과로, 오늘의 디저트를 정하기 위해 주방으로 향하던 도중.
울면서 뛰어오는 잭의 등장에 발걸음을 멈춰 섰다.
“잭?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보좌관님···. 어, 어떡, 어떡하죠?!”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결코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자세한 사정을 설명할 정신도 없는지, 잭은 진작에 축축해진 소매로 눈가를 비비며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계속해서 닦을 뿐이었다.
“일단 진정하시고, 찬찬히 말씀해 보세요.”
흐느끼는 그의 등을 토닥이며 다시 한 번 그에게 말을 건넸다.
“펴, 편지···.”
“편지요?”
그러고 보니 잭의 손에 웬 종이가 구겨지다시피 꽉 쥐여 있었다.
편지라 하니 불안감이 더 심해졌다. 이 세계에 와서 편지와 관련해서 좋은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말하자면, 슬슬 악숭이보다 편지가 더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대체 왜 이러는데? 내가 행운의 편지를 써서?!’
일곱 명에게 보냈어야 했는데 한 명에게만 보낸 탓인가?
지금이라도 여섯 장을 더 써야 하는 건지 정말 갈등이다.
“아, 아버, 크흑! 아버지가···!”
“아버지라면 웨인 씨요?”
잭이 코를 훌쩍이며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하다가 이내 울음에 묻혀버렸다.
“괜찮으시면 제가 그 편지를 좀 봐도 될까요?”
그를 달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은 원인 파악이 우선이다.
그래야 제대로 달래던가 하지.
잭에게 손을 내밀자 그가 손이 하얘질 정도로 꽉 잡고 있던 편지를 내게 건네주었다.
구깃구깃한 종이를 조심스럽게 펼쳐보니, 서로 다른 글씨체로 쓰인 편지 두 장이 겹쳐져 있는 상태였다.
그중 한 장은 급하게 휘갈겨 썼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다른 한 장은 그와 반대로 신중하게 꾹꾹 눌러쓴 글이었다.
일단 척 봐도 급박해 보이는 편지를 눈으로 빠르게 훑었다.
짧게 요약하자면, 잭의 아버지가 자신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아들인 잭에게 보내달라며 자신에게 편지를 맡겼다는 내용이었다.
잭의 어머니가 쓴 것으로 추정된다.
‘갑자기 사라진다는 건 또 뭐야?’
방금 읽은 편지에서 느껴지는 다급함 탓인지, 나까지 마음이 급해졌다.
그 내용을 곱씹을 새도 없이 바로 다음 장으로 넘겼다.
“이게, 대체···.”
“보, 보좌관님! 제발, 제발 저희, 아버지를···!”
“알았어요. 진정하세요. 일단 공작님께 보고드려야 할 것 같으니까 저는 이만 가볼게요. 편지도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괜찮죠?”
나는 잭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주고, 그가 내 말에 대꾸할 틈도 주지 않은 채, 그대로 세르펜스가 있는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 문을 벌컥 열어젖히자, 세르펜스가 놀란 눈을 하고 나를 바라봤다.
“서···, 시온 경?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쥐고 있던 펜까지 놓고 책상을 짚으며 반쯤 일어난 그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나야말로 걱정이다, 진짜.’
일단은 내가 활짝 열어젖힌 문부터 닫았다.
힘이 과하게 들어갔는지, 등 뒤에서 ‘쾅-!’ 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안절부절못하고 서 있는 세르펜스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선우?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문제가 생긴 건 맞는데 제가 아니라, 이전에 공작저에 근무했던 사용인들과···. 세르펜스에게 생겼죠.”
“···그건 무슨 소리지?”
녀석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전에 근무했던 사람들이라는 말에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문제가 아니라는 말에 안도하는.
그런 기묘한 표정으로 세르펜스가 고개를 기울였다.
“작년에 만났던 잭의 아버지 기억나시죠?”
당연하다는 듯 세르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실종됐어요.”
“···그, 런가?”
“문제는 그 혼자만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앞서 말했던 얘기를 바탕으로, 그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이 끝난 모양이다.
세르펜스가 나지막하게 설마라는 단어를 입에 담으며 내 눈을 마주 바라봤다.
“아마도 맞을 겁니다.”
“······.”
잭에게 도착한 또 다른 편지는 그의 아버지인 웨인이 쓴 편지였다.
공작저에 일하면서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있었는데, 그로부터 또 다른 동료가 실종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그 얘기를 전해 준 동료 또한 갑자기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우연일 수도 있으나, 어쩌면 공작저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납치하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혹시 몰라 미리 편지를 써서 자신의 아내에게 맡겼다는 글이 이어졌다.
‘끝으로, 편지를 받게 되면 보좌관인 나에게 바로 전달하라는 건···.’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의 표정을 떠올려 봤을 때.
그리고 도움을 청하라는 말이 아니라 ‘전달’해 달라 썼다는 것은, 구조 요청이 아니라 정보 전달 그 자체가 목적이라 봐야 옳을 것이다.
누군가가 세르펜스의 과거를 캐내고, 그것을 빌미로 그를 위협하려 드는 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리라.
그리고 그럴 만한 자는···.
“어째 몇 개월째 잠잠하다 했다, 내가!”
젠장맞을 악숭이 놈들! 진짜 징글징글하다.
이대로 무사히 한 해를 넘기나 했더니, 뒤에서 몰래 흉계를 꾸미고 있었다.
“···선우는 그들의 목적이 무엇이라 생각하지?”
나의 의견을 물어보고 있었지만, 이미 그의 머릿속으로는 수만 가지 시나리오가 스쳐 지나갔을 것이 뻔하다.
생기가 돌던 그의 얼굴에는 핏기가 가신 지 오래다.
투명한 우윳빛 피부를 자랑하던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서, 마치 새하얀 유약을 바르고 구운 도자기처럼 생기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괜찮, 을 겁니다.”
“그럴 리가 없잖은가.”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의 눈빛은 어느새 탁하게 흐려져 있었고, 망연하게 풀린 두 동공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세르펜스의 잘못은 ···!”
“과거가 알려진다면, 그것 또한 밝혀질지도 모르지.”
나도 모르게 흡, 하고 숨을 들이켰다.
그놈의 전 프라시더스 공작 부부는 죽어서도 그의 발목을 붙잡고,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었다.
“···증거가 없잖아요.”
“증거는 만들어내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 줄 확실한 심증이 생겼지.”
“하지만! 정당방위였잖아요?”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 나는 제 부모를 죽이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위선적이고 잔인한 인간일 뿐···.”
정말 지독한 이야기다.
“어쩌면 내가 그들에게 받았던 대우조차, 내가 부족했기 때문에···. 내가 잘못해서, 그런 식으로 교육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
“안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놈들이 이상한 겁니다. 가해자의 잘못을 묻지 않고, 피해자에게서 흠을 찾으려 하는 것이 잘못된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나 또한 가해자가 아닌가···?”
“세르펜스는 절대···.”
“그건 선우, 개인의 생각일 뿐이잖은가. 세상 모든 이들이 그대와 같은 것은 아니다.”
무슨 말이든 해야만 한다.
하지만 지금의 세르펜스에게는 어떠한 말도 닿지 않았다.
비관적 사고에 잠겨, 최악의 상황만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그들이 세르펜스를 모함하려 한 게 하루 이틀은 아니잖아요···? 악마 숭배자 따위가 하는 말을···.”
“그래서 ‘그들’을 납치한 거겠지. 그리고 이미 나를 외면했던 이들이, 이제 와서 나를 위해 입을 닫아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부정할 수가 없다.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으나,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은 내가 알고 세르펜스도 알 것이다.
오히려 역효과다.
“전 공작 부부의 죽음에 관한 것은 불명확하더라도, 내가 그들에게 어떤 식의 교육을 받았는지는 확연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그건···. 선우. 당신의 말대로 보편적이지 못하고 어긋나있고···. 그렇게 자라온 나 또한 어긋나 있다는 것쯤은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겠지.”
“세르펜스, 제발···.”
“사태를 냉정하게 보는 것뿐이다.”
“지금 하나도 냉정하지 못한 얼굴이거든요?!”
그의 고개는 나를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초점이 나가버린 눈에는 아무것도 담기지 않았으리라.
눈앞이 뿌옇고 캄캄할 것이 분명한, 무표정한 얼굴로 입만 나불거리면서 냉정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다.
“다들 알게 되겠지. 나의 모든 것이 가식이고 연기였다는 것을···. 그들이 보아온 나의 모든 것이 가식이고, 기만이고, 위선이었다는, 것이···. 밝혀, 진, 다면. 내가··· 얼마나, 잔인, 한···.”
그의 목소리가 조금씩 짓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울음기가 올라오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의 탁해진 눈동자는 바싹 메말라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숨이 조금씩 흐릿해지고, 옅어지고, 종래에는 말하는 것조차 힘겨워지며, 아주 가느다란 틈으로 비집고 새어 나오듯 겨우겨우 이어졌다.
“저, 저는···.”
갑갑해진 세르펜스가 손을 들어올려, 자신의 목에 단정하게 매어져 있는 크라바트를 끌렀다.
새하얀 천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고도 여전히 숨통이 조여오는지, 그의 손은 계속해서 목 근처를 더듬었다.
손가락은 언제나 끝까지 잠그고 다니는 셔츠의 목깃에 닿았고, 단추를 세 개나 풀어헤쳤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잠깐, 잠깐만요!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더 이상 아무것도 걸쳐져 있지 않은 목에 무언가를 풀어내려는 듯 더듬거리던 손가락이 어느새 손톱을 세우고 생살을 쥐어뜯고 있었다.
“진정해요, 세르펜스!”
“아, 으··· 읏.”
“숨 쉬어요! 괜찮을 겁니다. 괜찮아요. 저 믿죠?”
“흐, 으윽.”
마음 같아서는 힘으로라도 억지로 그의 손을 잡아두고 싶었으나, 내 힘으로는 턱도 없었다.
그의 손과 목 사이에 손가락을 밀어 넣고 얽듯이 그의 손을 잡는 것이 최선이다.
“남들이 세르펜스를 어떻게 보는지, 그것이 아직도 그렇게 무서워요? 어째서죠? 세르펜스는 타인을 인격체로 보고 있지도 않으면서, 그들의 말은 여전히 두려운 겁니까?”
“······.”
“···그들이 언제 자신을 비난할까 두려워서. 그래서 타인을 무생물 보듯이, 벽을 보고 연기 하는 것처럼 대해왔던 겁니까?”
대답 대신 흐으, 가느다란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긍정을 의미하는 것인지, 부정을 뜻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세르펜스 본인도 모를 거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벽은 벽대로 두껍게 쌓아서 남들이 다가오는 건 다 막아버리고, 그런 주제에 높이는 쓸데없이 낮아서 남들이 던진 돌에 다 맞고 있잖아요.”
정말 머저리가 따로 없다. 머리는 좋으면서 완전 헛똑똑이다. 너무 어수룩하고 미련해서 한숨조차 안 나온다.
“남들이 보는 시선이 그렇게 무서우면 어디 산속에라도 혼자 틀어박혀 있던가···.”
“······.”
“쓸데없이 책임감만 많아가지고.”
도망치는 것도 잘하면서.
그냥 홀가분하게 도망쳐 버렸으면 됐을 텐데.
하지만 그는 몇 번을 도망가도, 결국에는 다시 돌아오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