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화(2/1105)
2회
1. 공작님, 회개해주세요! (1)
출근 첫날이라 그런지, 저택 앞에 다다르니 집사가 마중 나와 있었다.
성성한 백발을 올백으로 넘기고 콧수염을 기른 모습이 무척이나 전형적으로 보이는 노집사다.
“공작님께서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집무실까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하고는 앞장서 걸었다.
‘그러고 보니 내 면접도 이 양반이 봤었지?’
그때, ‘한스 로베르트’라는 이름도 들었다.
사실 집사가 보좌관의 면접을 봐주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공작님께서 워낙에 공사가 다망하셔서 어쩔 수가 없으시다는데, 거기다 대고 뭐라고 말하겠는가.
안 그래도 일이 많았는데, 보좌관의 부재로 업무량이 더 늘었다는 이유였다.
더불어 그를 살해한 자에 대해 조사 중이라나?
‘정말 뭐라는 건지 모르겠네! 공작님이 죽이셨잖아요? 내가 다 봤습니다, 활자로.’
추측건대 증거 조작으로 바쁜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사정으로 인해, 세르펜스가 태어나기 전부터 가문에 봉사해오던 한스가 대신 면접관 노릇을 하게 된 것이다.
면접을 보기에 앞서, 나눴던 대화를 모두 정리해서 세르펜스에게 전달할 것이라 들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면접을 본 건 ‘내’가 아니라 몸 주인인 시온 리벨론이다.
내가 봤다면 앞으로의 취업길이 막히는 한이 있더라도, 아주 개판을 쳐서 떨어졌을 거다.
시온의 출신이 비록 중앙 진출도 못 할 정도의 한미한 수준의 가문이래도, 일단은 백작가의 차남이다.
‘취업을 못해도 먹고 살 길 정도야, 마련해 주겠지.’
아무튼 그렇다고 해서 시온이 어마무시한 말빨이나, 뛰어난 능력으로 합격한 것은 아니었다.
시온의 몸에 빙의한 후, 흘러들어온 기억에 따르면 그가 면접을 썩 잘 본 것도 아닌 듯했다. 솔직한 말로, 능력 또한 그저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붙을 수 있던 이유는 간단하다.
‘평범해서.’
달리 말하면, 여타 쟁쟁한 경쟁자들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왜 무능한 사람을 뽑았냐는 문제가 남았다.
그것은 사망한 전 보좌관과 관련되어 있다.
그는 너무 유능하고, 충성심이 과했다는 것 같다.
평소 앞장서서 많은 업무를 처리하시는 존경하는 공작님을 위해, 제 한 몸 다 바쳐가며 시키지 않은 일까지 나서서 처리하려 했다는 모양이다.
‘아마 그 과정에서 세르펜스가 몰래 진행하시던 구린 업무들까지 손이 닿아버린 게 아닐까?’
그 업무에 대해서는 이미 짚이는 구석도 있다.
‘암흑가 때문이겠지.’
[성검의 주인]은 지금으로부터 약 반년 뒤. 주인공이 성검의 선택을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소설의 내용에 따르면, 그 이전부터 세르펜스가 정체를 숨기고 암흑가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었다고 한다.
시기상으로 보아, 지금쯤이면 세르펜스가 암흑가를 들쑤시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이미 장악을 완료해서 관리 중이려나?
당연한 말이지만, 암흑가의 존재는 황실에 알려져선 안 되는 비밀사항.
‘만약 전 보좌관이 그러한 사실을 알아버렸다면···.’
세르펜스가 ‘너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라고 말하며, 그의 목을 ‘슥삭-!’ 해버렸대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한 사정을 모르는 불쌍한 저 노집사는 내가 무능해서 합격했다고는 아마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리라.
아니, 그 정도를 넘어,
[“이 어리석은 늙은이가 눈이 어두워, 현명하신 공작님이 본 가능성을 놓치고 말았구나!”]···따위의 탄식을 내뱉지 않았을까?
그런 식으로 세르펜스에게 무언가 깊은 뜻이 있으리라 넘겨짚었을 것이다.
사실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
‘매우 깊숙이 숨겨놓은, 음험한 속셈이라는 점에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스가 말을 건넸다.
“일단 오늘 공작님을 만나게 되면, 임시로 준남작 작위를 내리실 겁니다.”
“임시···인 겁니까?”
“예. 명색에 프라시더스 공작가의 보좌관이잖습니까. 작위가 없다니, 있어선 안 되는 일입니다. 적어도 자작위 쯤은 되어야겠지만, 아시다시피 그쪽은 시간이 좀 걸립니다.”
한스의 말대로였다.
계승이 가능한 작위는 황제에게 승인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그 일은 어디에 있는 어떤 나라와 마찬가지로, 여러 부처를 거쳐 빙빙 돌아야 했다.
그런 이유로 약 한 달 가량의 시간이 걸린다고 보면 될 것이다.
본래라면 승인을 기다리면서 겸사겸사 전임자 밑에서 업무도 배우고, 인턴 비슷한 시간을 가졌겠지만···.
‘전임자가 죽어버렸지.’
그러한 탓에 인수인계 없이 바로 실무에 투입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급한 대로, 공작의 재량으로 임명 가능한 준남작 작위를 내린다는 소리다.
전 보좌관의 사망 이야기를 다시금 떠올리니, 발걸음이 절로 무거워진다.
‘준남작 작위는 오늘 바로 받아지는데, 사표도 오늘 내면 바로 수리해주려나?’
아무것도 모르는 노집사는 심란해하는 내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존경하던 공작님을 모시게 되어 긴장한 것이라 멋대로 추측한 모양이다. 젠장!
“공작님의 집무실은 이곳입니다. 앞으로 매일 오시게 될 테니, 잘 기억해두십시오.”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버렸다.
공작가의 타운 하우스답게, 그 본관 역시 무식하게 넓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분명 거리가 상당했을 텐데, 가기 싫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금세 도착한 것 같다.
– 똑똑똑.
한스가 가볍게 문을 두드리자, 안쪽에서 중저음 톤의 부드러운 미성이 흘러나왔다.
“들어오십시오.”
누군가 저러한 목소리로 ‘너의 죄를 사하노라’ 라고 말해준다면, 정말로 모든 죄가 씻겨져 내릴 것 같다.
‘천상의 목소리란 단어가 이 목소리를 표현하기 위해 생겨난 말이었나?’
[성검의 주인] 본문에서도, 세르펜스의 목소리를 듣고 천사의 계시를 받았다며 호들갑 떨던 사람이 있었다는 내용이 있었지.‘그냥 과장하려고 써놓은 줄 알았는데···.’
작가의 무고함이 증명된 순간이다.
허락도 떨어졌으니, 한스가 문을 열었다. 그 너머로, 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이의 모습이 드러났다.
세르펜스는 방의 가장 안쪽의 창가를 등진 채, 서류가 가득 쌓인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가까이···, 가야 하나?’
가야 하는 건 알고 있지만, 정말 가기 싫었다.
내가 주저하며 자리에 가만히 서 있자, 답답했는지 뒤에서 등을 떠미는 손길이 느껴졌다.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떼니, 세르펜스도 만년필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모습은 [성검의 주인]에서 묘사되었던 그대로다. 마치 천사가 강림한 듯한 아름다운 미남.
살짝 쳐진 눈꼬리는 부드럽게 휘어, 자애로운 미소를 자아냈다.
견갑골 아래를 스치는 길이의 맑은 청은빛 머리칼은, 목 뒤에서 한데 모아 가지런히 묶여 있었다.
거기에, 잘 뻗은 콧대 위에 걸쳐진 얇은 은테의 둥근 안경까지. 그로 인해 이지적인 느낌이 들면서도, 안그래도 착해 보이는 얼굴을 더욱 순하게 만들었다.
그 모습 어디에도 두려워해야 할 요소는 보이지 않았다.
방심했다가는 그대로 속아 넘어갈 것 같다.
“반갑습니다, 제가 세르펜스 A. 프라시더스입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시온 리벨론 입니다. 그, 굳이 일어나실 필요는···.”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 그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평생 책상이든 뭐든, 그 너머로만 만나고 싶었다.
“오늘은 드릴 게 있어서 그런 것뿐입니다.”
세르펜스가 상냥하게 미소지으며, 테두리에 금박을 입힌 종이를 들어 보였다.
그 속내가 시커멓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미소를 본 순간 저도 모르게 ‘상냥한 사람이구나.’하고 생각해버렸다.
“···그것은.”
갑자기 귀에 들린 낯선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이내 그것이 내가 낸 소리임을 인식할 수 있었다.
덕분에 놓칠 뻔했던 긴장의 끈을 다잡을 수 있었다.
“작위 임명서입니까?”
세르펜스는 내 질문에 말 대신 미소로 답했다.
둥근 안경알 너머로 긴 속눈썹이 에메랄드색 눈동자 위로 살며시 드리워지는 것이 보였다.
때마침 그가 등지고 있던 창문 너머에서 쏟아지는 햇살은 마치 후광처럼 내려앉았다.
‘거, 되게 반짝거리네!’
자꾸만 경계심이 풀릴 것 같아서,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체하며 속으로 빈정거려봤다.
그냥 한 번 해본 거였는데, 의외로 도움이 되었다.
어딘가 신성하다 느껴졌던 것이,
‘빛이 나네! 그래서 뭐?’
같은 감상으로 변했다.
마음속으로 그의 꾐에 넘어가지 말자고 백번 거듭해서 다짐하는 것 보다, 훨씬 낫다.
“앞으로 잘 지내봅시다, 리벨론 경.”
세르펜스가 임명서를 건네주며, 일부러 ‘-경’이란 호칭을 덧붙여 불렀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제부턴 나도 작위를 가진 귀족이구나···!’
···라며 감격에 겨워했을 것이다. 그것도 처음으로 말해준 사람이 만인에게 존경받는 프라시더스 공작이니 더더욱.
하지만 나에겐 오히려 역효과였다.
‘어쩐지 목줄이라도 채워진 것 같아.’
그가 가진 속셈을 생각하니, 더없이 갑갑해졌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저 손에 들린 임명서를 집어 던지고 싶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양손을 내밀어 공손히 임명서를 받아들며 고개를 숙였다.
‘후─. 정말 다 때려치우고 도망가고 싶은데. 아무래도 안되겠···지?’
과연 내가 잘해나갈 수 있을지, 스스로도 의문이다.
* * *
[성검의 주인]에서는 성검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했다.『
성검은 세상을 구원할 빛이요, 동시에 세상이 어둠으로 잠식될 것이란 예지다.
그 때문에 성검이 대륙에 내려오면 사람들은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축복하는 동시에, 앞으로 다가올 어둠을 경계한다.
』
그 이유는 악마와 관련되어 큰 재액의 태동이 느껴지게 되면, 유일신인 ‘룩스메아’가 대륙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떼어 대륙에 내려보내기 때문이다.
대륙에 사는 이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신이 내려준 그분의 영혼 조각.
그것이 바로 ‘성검’이다.
동시에 신 룩스메아는 세상에 빛을 뿌려, 성검의 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가 태어날 수 있도록 하였다.
영웅의 탄생이란 말 그대로, 성검이 내려온 해에 태어난 신성력 보유자 중 한 명이 성검의 주인으로 선택되는 것이다.
‘어차피 누가 선택을 받는지 알고 있으니, 그건 일단 넘겨두고···.’
여기서 내가 신경 써야 할 것은 ‘큰 재액’이라는 부분이다.
시시한 악마 한 두 마리로는 성검이 나타나지 않는다. 적어도 대륙이 뒤엎어질 만한 개입이 일어날 때만 등장하는 것이다.
세르펜스가 부모님을 살해한 범인으로 악마를 숭배하는 세력을 지목한 이유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실제로 그들은 존재했고, 결국 마왕을 소환하기에 이르렀으니!
비록 세르펜스가 해 온 행동들을 보면 충분히 흑막스럽긴 했다. 그 정도를 넘어 정말 흑막이 맞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마왕을 소환하려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그는 스스로를 ‘성검에게 선택받을 자’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고 있으니, 아직까지는 그들과 적대적인 입장이겠지?’
그가 앞으로 벌일 사건들을 모두 알고 있는 나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런 게 주입식 교육의 폐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