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0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01화(201/1105)
201회
40. 공작님과 실종 사건 (6)
“이제 말씀해 주세요.”
유지스가 바짝 긴장하며 말했다.
세르펜스는 바로 입을 여는 대신 손깍지를 끼었다가 한 손으로 다른 손을 감싸 쥐었다 하며 꼼지락거렸다.
“시온이 오기 전, 제가 어떠한 생활을 해 왔는지.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만물을 고루 사랑하신다거나···.”
“······.”
“이건 저도 아닐 거라 생각했어요. 그저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나 관심사가 없으셨던 거겠죠.”
유지스의 답변에 세르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눈을 감으며 크게 심호흡을 내뱉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준비다.
‘괜히 나까지 다 긴장되네···.’
그러고 보면 녀석에게 그 당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자세하게 들어본 적이 없다.
대략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성검의 주인]에서 읽었고, 녀석도 그것을 알고 있었으니 굳이 힘든 얘기를 꺼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세르펜스의 입으로 그의 과거를 직접 듣는 것은 나 또한 처음인 셈이다.
“소중한 것을 만들지 마라. 그 누구에게도 특별한 관심을 둬서는 안 된다. 너의 소중한 것은 네 약점이 되어 악마와 그들을 숭배하는 자들의 먹잇감이 될 뿐. 너는 그자들에게 휘둘리게 될 것이며, 네 소중한 것들은 결과적으로 망가지게 될 것이다.”
“···네?”
“저의···. 그, 으음. 전대 프라시더스 공작이 저에게 항상 하던 말입니다.”
시작부터 내가 모르는 이야기다.
자기 딴에는 교육이라고 한 말일 테지만, 그것은 저주에 가까운 말이었다.
아니, 그냥 저주였다.
“제가 조금이라도 애착을 갖는 것이 생기면 눈앞에서 그것을 망가뜨리고. 시선을 끄는 것이 생긴다면 그것을 버리시며.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런 짓을···!”
유지스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입가를 가리며 말했다. 나 또한 동감하는 바다.
악마를 숭배하는 자들이 그리할 거라 말해놓고, 자신이 몸소 그것을 실천까지 해 보였다.
상황만 놓고 보면 전 프라시더스 공작이 악마를 숭배하는 줄 알겠다.
실천하는 쓰레기가 이렇게 해롭다.
“그자가 하던 말은 항상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이것만은 너무···. 뼈저리게 느껴져서···.”
눈앞에서 물건을 부수고 난리를 쳤으니 그럴 수밖에.
어린 자식에게 애착 인형을 쥐여주지는 못할망정, 애착형성의 가능성 자체를 뿌리째 뽑아버렸다니.
진즉 알고는 있었지만, 부모 자격도 없는 놈이라는 걸 새삼 또 깨닫게 된다.
속으로 쯧쯧 혀를 차고 있노라니 세르펜스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성검의 주인이 되지 않았기에, 이제는 괜찮을 줄 알았지만···. 그자의 말 중, 그것만은 옳았던 것이···.”
“뭔 헛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그딴 놈이 한 말들은 모두 잊어버리세요!”
“그래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귀담아들을 가치도 없어요!”
세르펜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와 유지스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망할 놈의 답답펜스.
저딴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당장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주제에 나보다도 더 간절하게 나를 돌려보낼 방법을 찾으려 하지.
“누구나 소중한 무언가를 가슴에 품고 있어요. 그것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앞으로 나아가고, 고난에 발버둥 치며 극복하려는 의지를 갖출 수 있는 거죠. 지금의 삶이 행복해서, 계속 이어나가고 싶기 때문에, 사람은 살아갈 수 있어요.”
“유지스의 말대롭니다. 툭 까놓고 말해서 지키고 싶은 게 없는데 왜 싸워요? 대체 무엇을 위해?”
하다못해 길거리의 취객들이 치고받는 짓거리도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다.
하물며, 대륙을 위협하는 존재를 적으로 두고도 지키고 싶은 것이 없다?
싸움이 끝났을 때 얻을 수 있는 ‘예정된 행복’이 없다면.
그것은 이겨내야 할 역경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이 되겠지.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갉아먹어 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책임감···, 으로?”
“그러니까 그 책임감이 대체 어디에서 나오느냐, 이 말입니다.”
“···으음.”
“것 봐요, 대답할 수 없죠?”
만약 지금이 선택의 날 전이라면, 세르펜스는 분명 자신이 그러기 위해 태어났다는 별 같잖은 소리를 해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놈의 거지 같은 성검을 치워 놓으니 이런 점이 편하고 좋다.
룩스메아가 성검을 다른 누구도 아닌 휴마누스에게 준 까닭은, 사실 세르펜스의 눈앞에서 거슬리는 성검과 눈새를 한꺼번에 치워버리기 위한 큰 그림이 아니었을까?
“저는 책임감이란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때로는 가족일 수도 있고, 사회적인 직위나 명예가 되기도 하고, 자신의 양심일 때도 있죠.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 대상은 달라질지언정, 결국에는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다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건가?”
“네, 그런 겁니다. 막말로 세르펜스는 길거리에 떨어진 아무 돌멩이나 대충 주워서, 평생 몸에서 떼어놓지 않고, 어디 한 군데 긁히거나 깨지거나 잃어버리지 않도록 책임감을 느끼고 살필 수 있겠어요?”
세르펜스는 머뭇거리다 고개를 저었다.
“전대 프라시더스 공작이 한 짓이 바로 그런 겁니다. 세르펜스로 하여금 이 세상이 어떠한 의미도 가질 수 없도록 만들어 놓은 주제에, 그것을 지키라는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한 거라고요.”
그딴 거, 퍽이나 지키고 싶겠다.
차라리 일찌감치 잃어버려서, 그 책임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나서는 것이 훨씬 이롭다.
“세르펜스도 그자가 한 말들이 잘못되었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느꼈으니까. 저에게 이 세상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지켜야 할 이유를 찾고 싶다고 한 거잖아요. 이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 고통뿐인데 이 세계를 지켜야만 한다면, 그게 어디 성검의 주인입니까? 그냥 성검의 노예지.”
그자는 세르펜스가 대륙을 지키는 영웅이 되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대륙을 위해 얼마든지 희생해도 좋을 도구라고 생각한 것이 틀림없다.
“노예···, 인가?”
녀석이 내가 한 마지막 단어를 되뇌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안쓰러운 자식 같으니라고.
“자, 자! 정신 차리시고! 앞으로 또 그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 겁니까, 말 겁니까? 또 할 거면 야옹, 안 할 거면 애옹.”
“왜 그딴···.”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고양이 소리로 퉁 치자 이겁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논리가···.”
“아, 빨리요. 세르펜스가 개소리를 하시는 바람에 그거 바로 잡느라 시간 엄청 소모했잖습니까!”
세르펜스의 서류 일부와 실종되었던 내 서류가 새로 발견된 탓에, 지금 처리해야 할 서류가 산더미다.
오늘 근무시간 중에 끝내기는 글렀다. 아, 바쁘다 바빠!
“유지스가 보기에도 세르펜스가 한 말이 개소립니까, 아닙니까?”
“네, 네?! 그, 그게, 개소리···였죠?”
“그럼 반성의 의미로 고양이 소리를 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해, 해야 하나···?”
“것 봐요. 세르펜스? 어서 하세요.”
내 앞에서는 자진해서 미야옹까지 한 주제에 다른 사람도 같이 있다고 점잔빼는 꼴이란.
결국, 세르펜스는 마지못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작게 애옹하고 울었다.
“좋아요, 그럼 계속 얘기하세요.”
“이런 걸 시켜놓고, 잘도···.”
“무릎 꿇고 손든 상태로 얘기하게 시킬 수는 없잖아요.”
나름대로 현재 상황을 판단하고 내린 벌이다.
세르펜스는 나를 노려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고는, 과거의 일을 떠오르는 대로 아무렇게나 내뱉었다.
전 공작 부인에게 내쳐지고, 싸늘한 눈동자를 마주 한 일.
바로 설 수 없을 때까지 체력 단련을 거듭하여 결국 넘어진 자신을 그 누구도 일으켜 세워주지 않았고,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공작저 한복판에서 방치된 일.
그것을 말하며 세르펜스는,
“그자는 저에게 남들에게 기대하지 않아야 하며, 기대려 해서도 안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라는 말을 짧게 덧붙였다.
정말이지 개소리다.
매일같이 신성력 수련을 위해 신성력을 한계까지 쥐어짜 냈고, 체력이 붙고 본격적인 검술 훈련에 들어간 후로는 다치지 않는 날이 드물었으며, 그렇게 제 몸에 난 상처를 돌보는 것 또한 언제나 자신의 몫이라 다시 한 번 신성력을 긁어모아야 했다는 이야기.
그 외에도 제압당해 무방비한 상태의 마물의 목숨을 끊어내야만 했던 일이라던가, 기타 등등.
세르펜스는 전 공작 부부가 살아있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나둘 털어놓았다.
마치 남의 이야기가 적힌 책이라도 읽는 양.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말하려는 것 같았지만, 그것을 떠올리고, 문장으로 다듬어 입 밖에 내뱉는 행위가 이어질수록 눈에 띄게 힘겨워하였다.
개중에는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도 있고 [성검의 주인]에서 읽지 못했던 내용도 있었다.
반대로 내가 알고 있지만, 그가 하지 않은 얘기도 있었다.
전 공작 부부의 죽음에 관한 진상이라거나, 고문을 당했다거나. 그런 일들은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어, 어떻게···, 그런, 천인공노할···!”
세르펜스의 말이 끝났을 즈음.
유지스는 그의 말을 도중에 끊지 않기 위해 꾹꾹 눌러 참은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엉엉 울었다.
심지어는 사람의 탈을 쓰고 할 짓이 아니라며, 악마 숭배할 놈들이라 욕도 했다.
“대체, 대체 그런 걸··· 어떻게 견뎌오신 건가요?!”
그녀의 물음에 세르펜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신성력을 이용해 억지로 감정을 억누른 것을 말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심정이 뒤섞여있는 듯 보였다.
유지스는 그에게 정확한 답변을 요구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는 대답을 바라고 물은 것조차 아니었을 거다.
작년 투기장 사건 때부터 세르펜스가 신성력을 ‘그런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휴마누스 일행이 찾아왔을 때 리에나의 말 덕분에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을 테니까.
그러니 그녀의 말은 물음이 아닌 탄식이다.
“자, 잠깐만요! 그렇다는 건 납치되었다는 자들이 바로 그···?!”
한참을 울어 젖히던 유지스가 무언가 깨달았는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비명을 지르듯이 소리쳤다.
“네. 그 당시 일하던 이들입니다.”
세르펜스의 답변에 유지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얼굴 한가득 눈물로 범벅인데, 표정은 가뭄이라도 난 듯 메말라 보였다.
“어, 어떻···, 그, 그런···.”
머릿속이 복잡한 건지, 아니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납치범들이 어떤 일을 꾸미고 있는지 알아채고 말문이 막힌 것인지.
그녀는 말을 더듬거리다가 허···, 하고 맥빠진 숨을 토해냈다.
“제 몸을 간수하는 걸 중히 여기던 자들이니, 이제까지는 알아서 겁을 먹고 입단속을 했겠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알고 있는 것들을 모두 떠들 것이란 얘기다.
“그들을···. 그러니까···, 하아···. 찾아야, 겠죠?”
유지스는 한참 말을 고르고 골라, ‘구한다’라는 말 대신 ‘찾는다’라는 표현을 찾아냈다.
“네. 그리고 조사 과정에서 세르펜스는 빠질 겁니다.”
“···이해해요.”
“집사에게 관련 자료를 받는 대로 유지스에게도 넘길게요.”
“네, 좋아···, 잠깐만요! 그런데 그자도 그때 일했던 사람 아닌가요?”
내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유지스가 멈칫하더니, 자리에 풀썩 앉으며 나와 눈을 맞추고 따지듯 물었다.
“···맞죠.”
“그런 사람이 준 자료를 믿을 수 있는 건가요?”
“그는 프라시더스 공작가의 명예를 무엇보다 중요시하니까, 그런 측면에서 보면 그런 셈이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네요.”
“마음에 들지 않아도, 당장은 참을 수밖에요. 앞장서서 그자들을 쫓아낸 게 그 양반이라, 그자들에 대해 아는 것도 많거든요. 그를 빼면 조사에 걸리는 시간도 한참 길어질 겁니다.”
내 말에 유지스가 ‘···그도 그렇겠네요.’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녀의 혼잣말을 끝으로 응접실은 완벽한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