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0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10화(210/1105)
210회
40. 공작님과 실종 사건 (15)
위쪽에 있는 자들이 인스턴트 흑마법사가 맞는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직접 두 눈으로 보면 점차 메말라 가는 것이 보일 테니 알겠지만, 지금으로써는 그저 추측에 불과하다.
그러나 흑마력이든 생명력이든, 뭐가 됐건 간에 그것이 점차 바닥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위에서 들리던 소리가 아까보다 드문드문 들려오는 것 같지 않아요?”
“그렇군.”
“체감상 10분도 채 안 된 것 같은···.”
무심코 중얼거리다가 이상한 점을 뒤늦게 깨닫고 멈칫 입을 다물었다.
“···왜 그러지?”
이 녀석, 아까부터 내게 반말을 하고 있었다.
내겐 너무 자연스러운 일상인지라 이제야 눈치챘다.
“세르펜스, 남들 앞에서 저에게 반마···알, 아! 내가 먼저 세르펜스를 세르펜스라 불러서구나!”
내가 세르펜스를 이름으로 부르는 데, 세르펜스가 내게 꼬박꼬박 경칭을 붙이며 높임말을 쓰면 그게 더 이상한 노릇이다.
이름을 부른 것이 하극상이 아니라, 서로 합의된 친근감의 표현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식시켜주기 위함이었나 보다.
‘잠깐만. 그럼 내가 휴마누스 앞에서 세르펜스를 이름으로 부른다면 어떨까?’
그때도 이렇게 맞춰 줄 것이 분명했다.
다음에 그를 만나게 되면 반드시···.
“···후우.”
삼천포로 빠지려는 생각이 세르펜스의 짧은 한숨에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그 한숨의 의미는 알면 앞으로는 조심하라는 주의이자, 그걸 이제야 깨달은 거냐는 한탄이자, 이런 상황에서 딴생각하지 말고 정신 차리라는 경고였다.
“그치만 저, 할 게 없잖아요.”
유지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눈앞에서 마법이 펑펑 터져나가는 이펙트를 보며 전신을 두드리는 쇼크 웨이브에 벌벌 떠는 것도 슬슬 익숙해졌다.
여차하면 지켜 줄 세르펜스가 등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으니 두려울 것도 없다.
‘이렇게 멍하니 서 있을 시간에 차라리 갇혀있는 사람들을 풀어주는 게 낫지 않나?’
세르펜스가 천장이었던 돌무더기들을 받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지원군이 오기 전까지가 아니라, 그 후.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킬 때까지다.
바람잡이 같은 위험 분자가 아닌 일반인들이라면 풀어준다고 방해할 것 같지는 않다.
‘웨인의 상태도 걱정되고···.’
세르펜스도 그것을 모르는 바가 아닐 텐데, 나를 꽉 붙잡고 놓아 줄 생각을 안 한다.
어깨를 움직거리고 몸을 비틀며 놓아달라고 간접적으로 표현해도 소용이 없다.
그냥 직접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그때였다.
“위대하신 마왕 테네브리오 님께 그대의 희생을 반드시 전하겠노라!”
당연히 내가 한 말은 아니다.
우리에게 처음 말을 걸었던 악숭이의 목소리다.
그 말의 진의를 파악하기도 전에, 계단 위에서 누군가가 떠밀려지는 모습이 눈에 담겼다.
“으아악-!”
남성의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연신 시위를 당기던 유지스가 앗 하는 경악 어린 외침을 내뱉으며, 활에 깃든 정령의 기운을 급하게 거두어들였다.
마법을 상쇄시키기 위해 담은 힘이었다.
그것을 무방비 상태로 맞는다면, 연약한 인간의 몸은 마치 바늘에 찔린 풍선처럼 처참하게 터져 버릴 것이다.
‘전에는 같은 편에게 불꽃 슛을 날리고 도망가더니! 악마교에는 도망칠 땐 같은 편을 미끼로 던지자는 교리라도 있나? 테네브리오가 그렇게 가르치든?!’
두 눈에 담긴 광경은 거기까지.
눈을 깜박이는 찰나, 시야가 어두워졌다.
윽, 억, 악!
고통에 찬 외마디 음성이 연달아 들렸고, 그와 동시에 쿠당탕 무언가 맞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렸다.
“자, 잠깐만요! 세르펜스 손 좀 치워봐요! 이게 어떻게 된···.”
“보지 않는 것이 좋다.”
그건 나도 안다.
계단은 길었고 흑마법과 정령의 기운이 부딪히는 충격으로 벽과 계단이 깨지며 뾰족한 파편들이 즐비했다.
그런 곳을 꼭대기에서부터 굴러떨어졌으니.
정령의 기운이 가득 담긴 화살에 맞고 갈가리 찢기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그렇다고 무사할 거라는 얘기는 아니다.
“앗-! 이, 이거 놓으세요!”
유지스의 외침이었다.
소리를 들어봤을 때, 도망친 놈을 쫓으려는 유지스를 누군가가 붙잡은 듯했다.
세르펜스의 양손은 내게 붙어 있으니, 남은 사람이라고는 방금 떨어진 악숭이뿐이다.
“뭐, 뭐야? 아직도 살아있어?!”
“···그런 것 같군.”
내 독백에 세르펜스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의 말에 동의라도 하듯이. 끄으윽···, 다 죽어가는 사람의 목에서 새어 나온 듯한 처절한 소리가 뒤따랐다.
– 콰아앙! 쿠르릉···!
처음 화약이 폭발했을 때보다 훨씬 더 큰 폭발음이 들렸다.
설마 저택을 부수고 있는 건가?
“이익···! 이거! 놔요!!”
유지스가 악숭이를 뿌리치는 것에 성공했는지, 탓 탓 탓 계단을 오르는 가벼운 소리가 좁은 층계에 울려 퍼졌다.
곧이어 부서진 건물 잔해를 부수는 것인지, 또다시 콰앙 하고 커다란 굉음도 들려왔다.
지하는 어차피 세르펜스가 결계로 받치고 있으니 안심하고 날려버린 게 아닐까 한다.
“세르펜스는 이러고 있어도 되는 겁니까?”
“내가 자리를 뜨면 여긴 무너질 거다.”
쫓지 않아도 되냐는 질문에 세르펜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리고는 녀석은 내 눈을 가리지 않은 손을 내 허리에 둘러 번쩍 들어 올렸다.
몸이 떠오르고 살짝 대각선으로 기울어지는가 싶더니, 곧이어 ‘퍼억-!’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억···!”
누군가의 숨넘어가는 소리도 들렸다.
이건 발로 찬 거다. 틀림없다. 장담할 수 있다.
지금 이 녀석은 계단을 굴러 다 죽어가는 사람을 발로 찬 것이다!
“주, 죽인 겁니까?!”
“그냥 기절만 시켰을 뿐이다. 잠시···, 손을 뗄 테니 10초만 눈을 감고 있을 수 있나?”
“···왜요?”
“이대로는 좀···. 뼈를 맞춰야 할 것 같아서.”
관절이 제대로 틀어졌나 보다.
그런 와중에 도망가는 악숭이를 지키려고 유지스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다니. 아주 무서운 놈이다.
자신을 미끼로 던진 놈이 뭐가 예쁘다고 그렇게까지 하는 건지···.
“···30초 셀게요.”
발이 땅에 닿았고, 나는 눈을 꼭 감으며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틀어막았다.
으득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30초를 다 세고 슬그머니 눈을 뜨자, 사지 멀쩡하게 달린 남성이 기절한 채 밧줄에 묶여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녀석은 아공간 주머니 안에 저런 것도 넣고 다니나?’
유용하긴 하나, 흉흉하기 짝이 없다.
“죄송해요, 놓쳐버렸어요···.”
세르펜스의 상비품에 혀를 내두르고 있으려니, 유지스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터덜터덜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게요.”
“그자들이 시온을 노린 것이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앞으로 더 심해지겠네요. 하아-, 어떻게든 잡았어야 했는데···.”
세르펜스와 유지스가 수심에 찬 얼굴로 영문 모를 대화를 주고받았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문제는 그 내용이다.
“네? 저요? 갑자기? 왜요?”
“그야 그들이 시온에 관해서 이상한 오해를 했잖아요.”
“오해라면···, 아!”
나에 관한 오해라면 하나뿐이다.
내가 다른 세계에서 온 신이라던가 뭐 그 비슷한 신격을 갖춘 존재라던가.
아무튼 룩스메아와 동급이라는 그 오해 말이다.
도망간 놈이 바로 그 잘못된 정보를 테네어쩌고에게 전달할 테고···.
“악숭이 놈들이 앞으로 제 영혼을 제물로 삼으려고, 절 납치하러 올 거란 말입니까?!”
“노리는 건 영혼뿐 아니라 몸 또한 마찬가지일 거다. 당신이 이계에서 온 신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오해를 했으니, 신의 영혼을 담을 수 있는 육신이라면 훌륭한 그릇이 될 거라고 생각하겠지.”
“···미친.”
나도 모르게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룩스메아를 친근하게 ‘걔’라고 부른 것에 대한 대가가 바로 이것인가?
이래서 함부로 신을 거론하면 안 되는 것일까?
이게 바로 신의 응징이라는 건가?!
“···그런데 어차피 세르펜스가 절 아끼는 거야 말할 필요도 없고, 제가 신의 사자라는 것까지 진작 알고 있었으니 달라지는 건 없잖아요? 저희를 타락시켜서 자기네 편으로 꼬드기려는 전략은 오늘부로 완전히 포기한 것 같고.”
가만 생각해보니 별로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다르다. 그 전까지는 당신을 납치해서 나를 협박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했겠지만, 앞으로는 타협의 여지 없이 더 강한 악마를 소환하기 위한 소모품으로 사용하려 할 거다.”
크게 달라지는 점이 있었다.
즉각 사살이 아니라는 점을 위안으로 삼기엔 제물로 바쳐진 영혼의 최후를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바로 곁을 지키면서 사고를 치게 두다니···.”
“앞으로는 악마 숭배자를 마주하게 되면 시온의 입부터 막는 건 어때요?”
세르펜스의 자조 섞인 한탄에 유지스가 그를 달래며 상냥한 목소리로 무서운 소리를 해댔다.
저 말에 세르펜스가 혹하기라도 하면, 악숭이와의 조우 이벤트가 뜰 때마다 입에 재갈을 물게 생겼다.
“그러고 보니 유지스는 오해하지 않은 겁니까?”
사달을 막기 위해. 그리고 겸사겸사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언제나 오해할 거리가 있다면 오해를 넘어 한 편의 대서사시를 만드는 그녀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번에는 작문을 할 생각이 없는 듯 하다.
“시온이 자신의 상관과 맞먹으며 친구처럼 대하는 것은 언제나 있는 일이잖아요.”
“······.”
그녀가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설정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서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했지만, 이번에는 조용히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이래서 평소의 행실이 중요하다는 건가 보다.
왠지 입안이 쓰다.
“그래도 신 룩스메아님께도 그런 식일 줄은 몰랐어요.”
“괜찮습니다. 욕한 것도 아니고 칭찬이었잖아요?”
“욕도 조금은 있었죠.”
양심에 손을 얹고 단언하건대, 철저하게 사실에 근거한 발언이었다.
“···괜찮을 겁니다. 신 룩스메아는 세르펜스를 아끼고, 그런 세르펜스가 저를 아끼는데 뭐가 문젭니까?”
“그런 건가요?”
“그렇고 말고요! 오죽하면 세르펜스의 세례명 뜻이으읍-!”
세례명만 말하지 않으면 되는 줄 알았더니, 그 뜻도 말하면 안 되는 거였나 보다.
세르펜스가 내 입을 틀어막았다.
“이미 놓친 것은 어쩔 수 없으니, 우선 사람들부터 구합시다.”
녀석은 그렇게 말하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하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이미 유지스는 내 말의 절반을 들어버렸다. 그녀가 부럽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부담되어서 나도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냥 유지스와 눈싸움이나 할걸.’
안에 들어오니 훨씬 더 부담스러운 눈빛들이 수두룩 빽빽이다.
땅을 울리는 진동과 천장에서 울리는 천둥과도 같은 굉음.
목숨의 위협을 느끼며 공포와 절망에 빠져들기에 충분하다.
그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주는 은빛의 신성한 결계를 보며 경외심을 갖기에 모자람이 없다.
‘어째 지하실이 방음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더라니···.’
드디어 발을 디딘 지하실은 마치 감옥처럼 되어있었다.
쇠창살이 죽 늘어섰고 그 너머로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겁에 질려있는 사람의 면면들이 보였다.
세르펜스의 기분이 상하기라도 하면 머리 위의 돌무더기들이 바로 자신을 덮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사람들은 어디 가고 합죽이들만 남았다.
“그런데 지원군은 왜 아직도 안 온대요?”
침묵이 어색하다.
앞장서 걷는 세르펜스의 뒤를 따르며, 철창 안에 갇힌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살펴보며 입을 열었다.
죄다 멀쩡해 보인다.
고문을 당한 이들은 더 안쪽에 있는가 보다.
“레클뤼턴 지부의 신전은 이곳과 정 반대 방향에 있으니, 아무리 서두른다 하여도 소식을 듣고 오기까지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거다.”
녀석이 언제나 그러하듯 친절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상냥하게 대답했다.
“그럼 영지 소속 경비대는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
“바로 황제 폐하께 보고를 올려야겠군.”
악숭이가 이렇게나 날뛰었는데도 출동하지 않았다니.
만일 교단 측 인원이 먼저 도착하게 된다면, 자존심 상한 황제가 레클뤼턴 영주의 작위를 강등시켜버릴지도 모르겠다.
“자, 잠깐만요!”
뒤이어 따라온 유지스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외쳤다.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춰 뒤를 돌아보았다.
“···그 말씀은 여차하면 한 시간 이상 그 상태로 대치할 생각이었다는 건가요?”
“네.”
유지스의 물음에 세르펜스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전 그렇게나 오래 버틸 자신은 없었는 데요···?”
“아직 자신의 한계를 모르시는 것뿐입니다.”
“아뇨, 저는···.”
“저는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단호하기까지 한 그의 대답에 유지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 저거, 그거네.’
주인공 일행이 한계에 몰렸을 때, 위기를 도움닫기 삼아 한계를 뛰어넘고 능력을 확장하는 것은 흔한 클리셰 중 하나다.
휴마누스, 아니마, 리에나. 모두 겪었다.
유지스와 푸로르 역시 그것을 피해 가지 못했고, 나는 그것을 세르펜스에게 말해주었다.
‘그거랑 이거는 다르지!’
그냥 한계에 봉착하기만 하면 능력이 쑥쑥 오르는 줄 아는가 보다.
그러니까 세르펜스가 착각한 것이다.
“제, 제가 그렇게 대단해 보이나요···?”
아무것도 모르는 유지스가 눈을 빛내며 물었고.
“물론입니다.”
세르펜스는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