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11)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12화(212/1105)
212회
40. 공작님과 실종 사건 (17)
내가 너무 과소평가했다.
재활용도 안 되는 일반폐기물인 줄 알았더니, 유해하기 그지없는 지정 폐기물이었다.
‘어떻게 세르펜스가 바로 앞에 있는데 저딴 말을 지껄일 수 있지?’
화를 낼 만하다. 화가 나야 정상이다.
그러나 세르펜스는 그저 쓰게 웃을 뿐이었다.
반쯤은 대외펜스의 이미지상, 연기로 끌어낸 표정일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서글프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그는 내 어깨를 두어 번 도닥인 후 손을 거뒀다.
이런 답답이 답답펜스가···.
– 퍽!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헛소리를 지껄이던 놈이 바닥을 굴렀다.
화를 참지 못한 내가 나선 것은 아니다.
내가 뭔가를 하기도 전에 빛과 같은 속도로 걷어차였으니까.
그러지 못했다고 말 하는 것이 맞을것이다.
“가족의 목에 칼을 대고 협박을 하든, 자신의 뱃속에 칼날이 들어왔든. 그 어떤 상황이 됐건 간에, 악마 숭배자들의 뜻에 따르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행동입니다! 하물며 그들의 사상을 다른 이들에게 주입하려 함은 신에 대한 모독이요, 대륙을 등지는 행위일지니···. 아아, 룩스메아 님이시여! 이 가련한 영혼을 어찌하오리까!”
할버드를 등에 멘 이단 심문관이 밧줄에 묶인 채 나동그라진 놈을 지그시 밟으며, 신에게 기도를 올리듯 거룩하게 말하였다.
장엄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
이미 발로 차서 쓰러트려 놓고 어찌하느냐고 묻는 건, 선 조치 후 보고에 해당하는 거냐고 질문하기 어려울 정도로 진지했다.
평소라면 속으로 ‘이거 광신도 아냐?’라 생각하며 그를 피했겠지만, 오늘은 정반대다.
이보다 통쾌할 수가 없다.
당장 어깨동무라도 걸치며, ‘오늘부터 친구 1일, 콜?’이라 말해주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건 그렇고, 말하는 걸 봐서는 사람들에게 대강의 이야기는 전해 들은 건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어 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게 나을 뻔했다.
세르펜스가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처럼, 자신들의 무고함을 입증하기 위해 서로를 팔아넘기듯 떠들어댔겠지.
모르긴 몰라도 사람들을 한 명씩 따로 격리해서 물어보면 없던 죄도 튀어나오지 않을까 한다.
“···아, 소개가 늦었습니다. 룩스메아님의 신실한 종, 알타르 F. 악스트입니다.”
그가 오른손을 자신의 심장이 있는 위치에 가져다 대고,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자기소개를 하였다.
무척이나 경건해 보였다.
발밑에 있는 사람만 없었더라면.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제 소개는···.”
“네, 알고 있으니 괜찮습니다.”
쓸데없이 자기소개로 시간 낭비하기 싫은 세르펜스가 적당히 말끝을 흐렸다.
그의 의도까지는 모르겠지만, 세르펜스가 누군지 정도는 알고 있는 알타르는 세르펜스가 원하던 답을 내놓았다.
“단도직입적으로 질문드리겠습니다. 이 자들을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확실하게 이단으로 판명 난 자들은 교단에서 처분을 내리겠지만, 그 이외의 신변은 조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양도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뒤쪽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세르펜스의 말 한마디에 자신들의 처우가 결정 날 거라는 걸 알기에, 그들은 최대한 불쌍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그냥 그들의 행태가 아니꼬워서,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인 걸 수도 있다.
만약 일부러 그런 표정을 지은 게 맞는다면 괜한 노력을 한 거다.
‘세르펜스는 그들 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니까.’
보통 이런 경우 반사적으로라도 시선이 향하기 마련이나, 녀석의 시선은 눈앞의 이단 심문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신 룩스메아의 이름 아래 내려진 심판이라면, 그 결과에 따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교단에서 죄가 없다고 판결이 난 자들에게, 제가 어찌 죄를 따로 물을 수 있겠습니까?”
세르펜스의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펴졌다.
내 마음에는 들지 않는 답이었지만, 어쩌겠는가. 더는 저들과 엮이고 싶지 않다는데.
직접 그렇게 말 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뜻이 은연중에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정말 그래도 괜찮으신 겁니까? 교단의 법률은 이교도를 분별하기 위함일 뿐입니다. 제국의 귀족법에 따른다면, 저들에게 내려질 처분은···.”
“괜찮습니다. 그러니 저는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뜻이 정 그러하시다면···. 알겠습니다. 그럼 프라시더스 공작의 드높은 신앙심과 명예를 위해, 최대한 조용히 처리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어라?
이건 또 생각지도 못했던 희소식이다.
설마 세르펜스는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고 겸양을 떨었던 걸까?
“아···. 그렇게 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세르펜스가 얼떨떨한 기색을 무려 1초나 내보였다. 금세 연기 모드로 돌아와 처연한 미소를 살포시 지었으나, 분명히 당황했다.
그의 노림수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혹시 과거의 일이 알려지는 걸, 이젠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보통 그렇게 판단했다면, 기왕 이렇게 된 거 복수나 하자고 생각했을 텐데.
보면 볼수록 순진하고 어벙한 구석이 있다.
‘[성검의 주인]에서의 타락펜스는···.’
원래 순수함과 잔인함은 종이 한 장 차이라 했다.
뭐, 대충 그런 거겠지.
‘아무튼, 잘됐네!’
이래서 마음을 곱게 쓰면 복이 온다고 하는 건가 보다.
이 세상이 마냥 거지 같은 건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악숭이에 대해 아는 거로 봐서, 눈앞의 이 청량감이 넘치는 담청색 머리칼의 사내는 에일리히와 친분이 있는 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신경 써 주는 걸지도 모르지.
‘할버드와 창, 대충 비슷한 느낌의 기다란 무기잖아?’
교단의 성법(聖法)상, 사사로운 감정에 의해 편의를 봐 주면 안 된다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악순환이 있다면 선순환되는 기능도 있는 법.
서로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래! 서로서로 돕고 살아야지! 암, 그렇고말고!’
그렇게 생각하니, 지연도 그렇게 나쁜 것 같지만은 않다.
이 세상에는 아직 정의가 살아 숨 쉰다.
갑자기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밤하늘에서 빛나는 달과 별은 물론이거니와.
달빛을 받아 은빛이 더욱 도드라진 세르펜스의 청은색 머리카락이 반짝반짝 겨울바람을 타고 공중을 노니는 모습도.
심지어는 고개를 돌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유지스의 뽀얀 입김이 흩어져가는 모습까지.
‘모든 성직자가 이런 느낌이면, 룩스메아도 믿을 만하겠는데?’
아, 이건 너무 갔다.
“오늘 밤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묵으실 곳이 없으시다면 신전의 빈방을 내어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일정이 있어서 돌아가 봐야 합니다.”
거짓말이다. 그런 거 없다.
“그러시다면야 어쩔 수 없군요. 이후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러 저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알타르는 두 번 붙잡지 않고 우리를 바로 보내 주었다.
호의적인 표정과 목소리를 보아 여전히 세르펜스를 신뢰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성기사를 몇 명 현장에 남겨두고, 나머지 성기사들과 함께 사람들을 데리고 신전으로 향했다.
우리는 행적을 남기기 위해, 일부러 야간열차를 잡아탔다.
고급 열차의 표는 구할 수도 없어 일반 평민들만 타는 열차를 타야만 했다. 그마저도 침대칸은 이미 다 나가고 없더라.
“어우, 매일 널찍널찍 비싼 것만 타고 다니다가 이런 거 타니까 엄청 좁게 느껴지네요.”
힘을 많이 소모한 유지스를 생각해서 방음 스크롤을 찢으며 말했다.
가운데에 탁자는 당연히 없고, 마주 본 좌석은 성인 남자 두 명이 겨우 낑겨 앉을 정도의 폭이다.
칸막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돌아가는 내내 세르펜스와 유지스는 얼굴을 꽁꽁 감추느라, 더 답답해졌을 뻔했다.
“안 그래도 좁은 자리에 이불까지 꺼내면 더 답답해지잖는가?”
이불을 몸에 둘둘 감고 자리에 앉자, 옆에서 세르펜스가 꾸물꾸물 움직이며 나를 창문 쪽으로 밀어냈다.
“와, 자기 어깨 넓어서 자리 차지하는 건 생각도 안 하는 거 봐!”
오늘 있었던 일만 아니었더라면, 겉으로만 호리호리해 보이는 세르펜스가 아니라 진짜로 호리호리한 유지스 옆에 앉았을 것이다.
내가 생각해서 불편함을 감수해주고 있는데, 자기도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원래 이렇게 부대끼는 것도 지나고 나면 다 추억으로 남는 법입니다. 세르펜스가 언제 이런 싸구려 열차의 싸구려 칸에 타보겠어요? 정 불편하시면 세르펜스도 같이 덮을래요?”
“사양하지.”
인간 난로 효과를 노렸으나, 매정한 세르펜스는 차갑게 거절했다.
“유지스는요? 여름 이불이라도 괜찮으면 꺼내드려요?”
“그래 주신다면 감사하죠.”
그에 비해 유지스는 시원시원하다.
내가 건넨 이불을 잠시 옆에 두고, 그녀는 갑갑한 무장을 풀어냈다.
“···장갑은 계속 끼고 계시는 겁니까?”
장갑을 낀 손으로 다시 이불을 끌어다 덮는 유지스의 행동에 세르펜스가 반응을 보였다.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찬 바람 탓에 손이 시려서 그러나 무심코 지나칠 뻔했으나, 듣고 보니 좀 이상하다.
“아하하···. 들켰네요.”
“이리 주십시오.”
유지스가 어색하게 웃고만 있자, 세르펜스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자신의 앞에 내밀어 진 손바닥을 보며 그녀는 진심으로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기꺼이 그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세르펜스가 조심스럽게 장갑을 벗겨내고, 그녀의 손바닥이 위쪽으로 향하도록 뒤집었다.
“이게 뭐야! 완전 피멍이 들었잖아요! 이걸 왜 그냥 참고 있었대요?! 바로 옆에 신성력 낭비의 귀재가 있는데!”
시위를 걸치는 손가락 마디 사이에 퍼렇다 못해 보랏빛이 나는 멍을 보고, 기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르펜스가 많이 피곤해 보이셔서요. 이 정도는 하루 이틀이면 낫는걸요? 별거 아니에요.”
내 외침에 그녀가 열없게 웃으며 말했다.
하루 이틀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엘프의 기준이겠지.
사람으로 치면 일주일은 족히 넘기고도 남을 정도로 심각했다.
“고작 멍든 상처를 치료하는 것쯤은 일도 아닙니다. 시온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하지만, 유지스 당신은 조금 뻔뻔해지셔도 괜찮습니다.”
세르펜스가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며, 한탄하듯 말했다.
그의 손에서 따스한 치유의 빛이 흘러나와 그녀의 손에 스며들었다.
녀석은 자신이 유지스를 ‘당신’이라 지칭한 것을 자각이나 하고 있을까?
“···감사합니다.”
말끔해진 유지스의 손을 내려다보며 세르펜스가 불쑥 감사 인사를 했다.
“치료를 받은 것은 저인데, 어째서 세르펜스가 제게 감사를 하나요?”
“저를 돕기 위해서였잖습니까.”
그의 답변에 유지스가 후후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저를 먼저 구해주신 건 두 분이었잖아요. 그리고 저희가 어디 남인가요?”
“남···이, 아닙니다.”
“그렇죠. 힘든 일이 있으면 선뜻 도와주겠다고 나서고, 다치면 말을 하지 않아도 먼저 치료해주는. 그런 사이죠.”
“···으음.”
세르펜스가 재빨리 그녀의 손바닥 위에 장갑을 올리고,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덮지 않겠다던 내 이불 안으로 파고들었다.
공연히 쑥스러워진 까닭이다.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면 어쩌나 했는데, 감사의 인사를 받으니 기분이 좋네요.”
“그게 다 제 교육의 성과입니다.”
이불 위로 기특한 녀석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두툼한 이불 덕분에 폭신폭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