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13)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14화(214/1105)
214회
41. 공작가의 사람들 (2)
“자살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에일리히가 그럴 리 없다며 한스의 말을 부정했다.
한스의 폭탄 발언에 당황한 것은 세르펜스 또한 마찬가지였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르펜스보다 에일리히가 더 혼란스러워 보였다.
‘안 그래도 자신의 동생이 조카를 학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접하고 충격이 컸을 텐데···.’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동생이 자살했다는 얘기까지 들었으니,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만도 하다.
게다가 에일리히가 누구인가?
그딴 것도 동생이랍시고, 제국의 공작이라는 부귀영화가 보장된 작위를 양보하고 교단에 들어간 사람이 아니던가.
나로서는 치가 떨리는 일이나, 그에게는 좋은 동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녀석, 아니···. 전대 프라시더스 공작은 현실에서 도망쳐, 자신의 목숨을 버릴 정도로 마음이 여린 사람은 못 됩니다.”
아니었나보다. 어렸을 때부터 싹수가 아주 노랬던 것이 틀림없다.
악독하고 냉혈한이라 힘든 일이 있으면 남에게 떠넘기고, 바닥에 떨어지면 다른 사람들을 짓밟고 올라가겠지. 자살은 무슨.
‘애초에 괴로운 건 세르펜스인데, 자기가 뭐라고 자살을 해?’
어차피 전대 공작이 쓰레기라고 판명이 난 상황이다.
이렇게 된 거 세르펜스의 명예라도 지키고자 거짓말을 하는 것이 틀림없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사실입니다.”
한스가 무척이나 당연한 사실을 말하듯이 평이한 어조로 대답했다.
이단 심문관을 둘이나 앞에 두고도 말하는 모습이 담담하기 그지없다.
설혹 세르펜스가 잦은 학대로 정신에 혼란이 와서, 알아서 나가 죽은 사람을 자신이 죽였다고 착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는 전 프라시더스 공작님에 관해서는 간접적으로 이야기만 접했을 뿐이라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믿지 못하겠다는 의견은 저도 마찬가집니다.”
침착함을 잃은 에일리히 대신, 알타르가 한스의 말에 냉철하게 박론했다.
타당한 근거가 없다면 그것을 사실이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근거는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보았고, 또 도왔으니까요. 그분께서는 자살 후의 은폐 작업을 저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오늘따라 한스 저 양반이 폭탄을 여럿 터트렸다.
세르펜스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그 표정이 아주 장관이다.
커다랗게 뜬 눈으로 눈썹은 잔뜩 치켜 올라갔고, 반대로 입술은 절로 벌어져 턱은 아래로 내려갔다.
표정 관리를 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진 탓일까?
예기치 못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대외펜스가 급하게 일을 처리하러 자리를 비웠는지, 대내펜스의 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물론, 그의 오랜 걱정과 달리 추한 모습은 전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런 얼굴을 가지고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어렵다.
“어, 어째서 그런···?”
세르펜스가 한스에게 어째서 그런 거짓말을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목소리가 떨렸다.
“그것이 돌아가신 전 주인님의 뜻이었습니다. 이제껏 숨겨와서 죄송합니다.”
한스의 대답으로 인해 세르펜스의 질문은 어째서 그런 짓을 했느냐, 혹은 어째서 그런 중요한 일을 지금까지 자신에게 숨길 수 있느냐는 의미로 변질되었다.
“그분께서는 도련님···. 그러니까 현 공작님께 자신들이 악마 숭배자들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알리라 하셨습니다. 공작님께서 악마 숭배자들을 더욱 원망하고 미워할 수 있도록.”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악숭이가 학대를 일삼던 부모를 치워줬다면, 감사를 표하며 악숭세력과 전속 계약을 맺을 일이다.
“그게 가당키나 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말도 안 된다는 알타르의 말에 한스가 고개를 푹 숙이며 답하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분은 미쳐있었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대륙을 구원할 영웅을 키워낸다는 것에 심취해 계셨습니다.”
그는 마치 고해성사라도 하는 듯한 말투로 말을 계속 이어갔다.
작년, 세르펜스가 훌륭하게 자랐다고 뿌듯해하던 표정은 더 이상 그의 얼굴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 계획의 첫 단추는 신성력이 뛰어난 영애와 혼인을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자, 잠깐만 기다려 보십시오. 그러니까 그 계획이···, 현 프라시더스 공작님께서 태어나시기도 전에 시작되었단 말입니까?”
“정확히는 ‘태어나는 것부터’라고 하는 것이 옳겠지요.”
에일리히가 크게 동요하여 다그치듯 물었으나, 한스는 여전히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옆에서 유지스가 헛바람을 집어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아차, 이 얘기를 빼먹었었구나!’
세르펜스가 일부러 하지 않은 것인지, 경황이 없어서 깜박 잊은 것인지.
어느 쪽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바로는···!”
“교단에 돌아가시는 대로 은퇴한 사용인들에게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그분들 사이에는 그 어떠한 애정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가문과 연을 끊었다고 한들, 에일리히는 세르펜스의 아버지와 어린 시절을 함께한 형제였다.
전 프라시더스 공작이 어떤 사람인지 아주 모르는 바가 아닐 텐데도 그는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남들 앞에서 얼마나 잉꼬부부 행세를 해댔길래 그들이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인지 감이 안 온다.
‘그리고 남들 앞에서는 세르펜스에게 얼마나 다정하게 굴었을지···.’
그런 거짓된 애정이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
아예 보이지 않으면 기대라도 하지 않을 텐데. 갈증조차 일지 않았을 텐데.
자신이 더 잘하면 그 따스함이 연기가 아닌 진심이 될 수 있을까, 기대하고.
자신이 부족해서 진실한 애정을 받을 수 없었다며 자책하며.
사막의 신기루처럼 그것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더욱 애타게 사랑을 갈구했을 세르펜스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끝내 자신은 그것을 얻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좌절하고, 결국은 포기하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에일리히가 허망하다는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질문은 눈앞의 한스가 아니라 죽은 자신의 동생에게 하는 말일 것이다.
가족으로서 아들을 학대한 그의 행동에 충격받고, 그에게 기만당한 한 명의 사람으로서 그에게 실망하고.
신을 모시는 종으로서, 신의 뜻을 멋대로 좌지우지하려 한 그의 행동에 분노한 것일 테다.
“···공작님께서는, 알고 계셨습니까?”
저택에서 일하는 사용인들도 알고 있는 것을 세르펜스가 모를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
에일리히는 부정해주길 바라는 간절한 표정으로, 자신의 조카에게 질문하였다.
“어떤 이유로 제가 태어난 것인지를 물으시는 거라면 알고 있습니다.”
세르펜스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한스의 돌발 행동으로 당황하던 그였으나, 익숙한 이야기가 이어지자 침착함을 되찾은 모습이다.
참담한 일이다.
“어떻게 그런 일을···, 받아들일 수 있으신 겁니까?”
“어렸을 적부터 들어온 이야기입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물을 필요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현 공작님을 더욱 완벽한 성검의 주인으로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몰아붙이셨습니다.”
세르펜스의 말에 한스가 설명을 덧붙였다.
오직 필요성에 의해 태어난 아이라는 말만큼이나, 아이를 벼랑까지 몰아붙이는 말이 또 어디에 있을까?
‘그 필요성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자신이 필요가 없어진다면?’
그런 불안감을 평생 지니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실로 두렵고 끔찍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최근까지도 이어졌습니다.”
한스의 말에 에일리히의 몸이 움찔했다.
죽은 것은 옛날의 일이 아니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었다.
세르펜스의 모든 삶은 성검에게 저당 잡혀 있었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니까.
“휴식은 안일함의 상징이며 취미는 사치이고 탐욕은 죄악이라는 가르침에 따라, 공작님께서는 그 어떠한 취미도 없이, 그 무엇도 원하지 않으며, 최소한의 휴식만을 취하며. 그렇게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오셨습니다.”
세르펜스가 평생에 걸쳐 포기하라고 강요당한 것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모든 이들이 추구하는 것이었다.
“보좌관님께서 하신 말씀이 다 옳았습니다.”
“···예? 저요?”
갑자기 나를 부르는 호칭에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저는 이제껏 돌아가신 주인님의 사상에 사로잡혀있었나 봅니다.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그렇게 생각해 왔습니다. 제가 틀렸습니다.”
이제 알 것 같다.
한스가 어째서 전 공작 부부가 자살했다는 거짓말을 했던 것인지.
이것은 속죄였다.
세르펜스가 그들을 죽였는지, 따로 범인이 있는 것인지. 그런 건 한스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문제는···.’
세르펜스가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악마 숭배자들이 알아챈 이상, 가장 의심을 받는 사람은 바로 세르펜스다.
‘···실제로도 그가 죽였고.’
아무튼, 그런 얘기가 계속 언급되면 힘들어지는 사람 또한 세르펜스였다.
그런 이유로 이 문제를 확실하게 종식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런 거짓말을 한 거겠지.
더군다나 최근에는 세르펜스가 혼자 잠을 잘 수도 없어, 내 방에 와서 자는 모습도 몇 번이나 목격하지 않았는가.
그런 모습을 봤으니,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을 만도 하다.
“뭐···, 지금이라도 아셨다니 다행입니다.”
조금 떨떠름한 기분이 들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세르펜스도 얼떨떨하다는 표정이다.
‘그렇다고 용서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내가 용서하고 말고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세르펜스가 용서해준대도 뜯어말릴 생각이다.
라크라는 사람을 비롯하여 그에게 동조한 몇몇 사용인들은 간당간당한 상태에서 결국 선을 넘은 거라면, 한스는 이미 그 선 너머에 있던 사람이다.
“제가 이제껏 모신 것은 공작님이 아닌 공작 가문이라는 허울뿐이었고, 제가 따른 것은 돌아가신 전대 공작님의 명이었습니다. 저는 지금의 공작님께서 힘들어하시는 것도 몰랐습니다.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사죄드리겠습니다.”
“···으음.”
한스의 사과에 세르펜스가 침음을 흘리며 슬쩍 내 눈치를 살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내게 조언을 구하고 있는 거다.
‘남들 앞에서 내 눈치 좀 보지 말라는 얘기를 해 둬야 하나?’
어쨌거나, 용서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 것 같다.
“저는 공작님을 주인님으로 모실 자격도, 용서받을 자격도 없는 놈입니다. 업무 대부분은 부집사에게 거의 양도하였고, 나머지 인수인계를 마치는 대로 자리에서 물러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집사의 마음이 편해지신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세르펜스의 답변에 한스가 더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이걸로 문제는 일단락된 건가, 라고 생각하려던 참이었다.
“아주···. 잘···, 알겠습니다. 그놈이 자살을 택한 이유가, 자기 아들에게 평생의 족쇄를 매달아 두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른 에일리히가 노기 어린 목소리로 이를 악물고 말하였다.
‘저기, 에일리히 님? 아까부터 느꼈던 건데,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어쩌고 하는 그거 말입니다. 계속 어기고 계신 거 아닙니까?’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켰다.
그런 얘기를 할 분위기도 아니거니와, 했다가는 한 대 맞을 것 같아서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