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1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15화(215/1105)
215회
41. 공작가의 사람들 (3)
“지, 진정하십시오, 에일리히 님!”
과도하게 흥분한 에일리히를 진정시키기 위해, 알타르가 다급하게 에일리히의 팔을 붙들며 말했다.
물론 효과는 전혀 없었다.
“진정? 이런 얘기를 듣고 지금 진정하란 말이 나옵니까?!”
에일리히가 자신을 말리는 알타르를 ‘뭐야, 이 새끼 이단인가?’라고 말하는 듯한 눈으로 바라봤다.
섬뜩하기 짝이 없는 직장 선배의 눈빛에 알타르는 슬그머니 붙잡았던 팔을 놓았다.
“그, 그래도 참으셔야 합니다. 더 이상 출신 가문의 일에 직접 엮이시면···. 아, 이래서 혼자 오려고 했던 건데···.”
그래도 입은 살아있어서, 알타르가 울상을 지으며 곤란하다는 듯이 웅얼거렸다.
레클뤼턴 영지에서 보았을 때는 무척이나 당당해 보였는데 오늘은 꼴이 말이 아니다.
소파 옆에 비스듬히 세워진 그의 흉흉한 할버드가 무색해 보일 지경이다.
“후우···. 한스 님? 그럼 2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대체 뭘 하신 겁니까?”
규율이고 나발이고, 막 나가기로 결심했는지 에일리히가 알타르를 무시하며 한스에게 말을 붙였다.
“···죄송합니다.”
“프라시더스 공작가에서 일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40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느새 에일리히는 외부인이 아닌 프라시더스 가문의 한 사람으로서 집사인 한스를 다그치고 있었다.
“면목이 없습니다.”
“당신이 이런 사람인 줄 알았다면, 제가 소가주였던 시절에 당신을 잘라버렸을 텐데···.”
에일리히가 한스를 물리적으로 싹둑싹둑 잘라버리고 싶다는 듯한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제가 가문을 나서기 전에 제 동생을 잘 부탁한다고 말씀드렸었는데, 그 결과가 이겁니까? 녀석이 엇나가는 것 같으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막았어야지!”
결국 분을 참지 못한 에일리히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가문에 미련이 철철 넘치는 그의 말에 알타르는 룩스메아를 찾으며 탄식을 토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당신,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한스의 답변에 더욱 화가 치솟았는지, 에일리히가 옆에 기대어 두었던 자신의 창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눈앞이 어두워졌다.
혹시 모를 유혈사태를 대비하여, 옆에 앉아 있던 유지스가 내 눈을 가린 거다.
“이 창은 알타르 님께서 맡아 주십시오.”
“에일리히님! 안 됩니다, 다시 생각을···.”
“충분히 생각했습니다!”
다행히도 에일리히가 창으로 한스를 어떻게 할 생각은 없었나 보다.
내 눈을 가린 유지스의 손이 치워졌고, 에일리히가 자신의 창을 알타르에게 억지로 떠넘기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은 괜찮습니다. 제가 잘 말씀드리면 아직은 시말서를 쓰는 정도로···.”
“지금부터 안 괜찮아질 예정입니다.”
마치 ‘룩스메아 님이시여, 저 새끼를 죽이고 저도 지옥에 가겠나이다.’라고 말하는 듯한 에일리히의 답변에 알타르의 눈빛이 흔들렸다.
대화 내용을 들어봐서는, 아무래도 이단 심문관에게 무기를 타인에게 넘긴다는 행위는 탈교(脫敎)를 의미하는 모양···.
‘어? 잠깐만,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 거 맞나?’
확인을 위해 세르펜스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박거리는 세르펜스와 눈이 마주쳤다.
대충, ‘저 사람 대체 왜 저러는 거야?’라고 묻는 듯했다.
‘너 때문에 그러는 거잖아! 네가 너무 안타깝고, 자신의 동생과 한스 저 양반에게 화가 나고, 네가 그런 상황에 처한 줄도 모르고 있던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어서!’
세르펜스가 흘깃 에일리히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살짝 몸을 움츠렸다.
그딴 거 모르겠고 그냥 무섭다는 의미였···.
‘맞다, 얼굴!’
전대 공작과 닮은 얼굴로 분노하며 날뛰고 있으니, 녀석이 겁을 먹는 것도 당연하다.
유지스는 내 눈이 아니라 세르펜스의 눈을 가렸어야 했다.
그렇게 나와 세르펜스가 시선을 교환하는 동안, 에일리히는 알타르에게 자신의 창을 억지로 떠넘기는 것에 성공해버렸다.
“자, 잠깐만요!”
내가 급하게 외쳤으나, 때는 이미 에일리히가 한스에게 다가가 주먹을 날린 이후.
퍼억-, 거친 타격음이 들리고 한스가 뒤로 날아가듯 넘어졌다.
바닥에 쓰러진 한스가 으으 신음을 흘리며 움찔 몸을 들썩였다.
‘거, 좀 멈춰주지···!’
제어가 안 될 정도로 있는 힘껏 때린 거라면 한스가 정신을 잃거나 목숨을 잃거나, 아무튼 무언가를 잃었을 것이다.
즉, 내 외침을 듣고 충분히 멈출 수 있었음에도 멈추지 않았다는 뜻이다.
알타르도 그것을 알고, 한 손에 에일리히의 것이었던 창을 쥔 채 다른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며 고개를 푹 숙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한 대로는 부족했는지, 에일리히가 한스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리며 내게 물었다.
그 모습이 마치 ‘내가 이 새끼를 응징하는 것에 불만이라도 있는 거냐? 너도 한 대 맞아볼래?’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여서, 나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이 사람이 원래 다혈질인 거야, 이단 심문관이라는 직업 특유의 험악한 업무 환경 때문에 이렇게 변한 거야?!’
고문 도구를 꺼내 든 것이 아니라 주먹만 날려서 다행이다.
그래도, 역시 말리는 게 좋겠다.
아무래도 에일리히는 자신이 세르펜스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간과한 것이 틀림없다.
자신을 마주하고도 태연하게 행동하고, 겉으로 봐서는 멀쩡하기 그지없는 세르펜스의 모습에 착각한 거다.
‘저런 폭력적인 모습을 보고 세르펜스가 죽은 아버지를 떠올려도 곤란하지만···.’
자기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다면 더 큰일이다.
자존심이 바닥을 기다 못해 땅굴을 파고 들어간 세르펜스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
“어, 저기, 그게···. 딴 데 가서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분명 하지 말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싸늘한 에일리히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내 입은 다른 대사를 읊고 있었다.
“아, 아뇨, 저기···. 응접실의 물건들이 망가져도 곤란하고···.”
“······.”
“공작님께서 보시기에 영···,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아!”
그제야 정신을 차린 에일리히가 한스의 멱살을 놓았다.
한스가 힘없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에일리히는 망설이다가 한스를 들고 자리를 옮기는 대신, 그를 발로 살짝 밀어두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에일리히 님···.”
“됐습니다. 알타르 님께서도 들으셨잖습니까. 제 동생이란 놈이 무슨 짓을 했는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에게 창을 돌려주려는 알타르의 손을 밀어냈다.
“녀석은 신의 의지에 개입하려 했습니다. 그것은 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입니다. 이미 저는 신을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과도한 신앙심의 문제였습니다. 이단이라 칭할 정도는 아닙···.”
“그래도 누군가는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러니 제가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맞습니다.”
에일리히의 태도는 단호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어떤 말을 들어도 자신의 선택을 무를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에일리히 님께서 가문을 떠나신 이후에 일어난 일이지 않습니까? 에일리히 님께서는 ‘프라시더스’가문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겁니까?! 이미 죽고 이 세상에 없는 제 동생이? 아니면···.”
에일리히의 시선이 세르펜스에게 닿았다.
앞으로는 자신이 지켜줄 테니, 안심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매섭던 눈초리가 부드럽게 휘며 다정한 빛을 띠었다.
“저는 그것을 제 조카에게 떠넘길 수는 없습니다.”
결연한 에일리히의 목소리에 유지스가 옆에서 감동의 눈물을 훔쳤다.
아름다운 광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세르펜스가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 빚을 청산해 주겠다며 찾아온 모르는 아저씨를 마주한 듯, 바짝 경계하며 그를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지만 않았더라면.
그리고 회사에서 아끼는 유능한 직장 선배가 멋대로 거래처에 쫓아오더니, 그곳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인해 느닷없이 사직서를 내겠다고 날뛰는 통에 처지가 난처해진 알타르만 아니었더라면.
‘나도 순수하게 감동할 수 있었을 텐데···.’
떫은 감을 먹은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시온 님이라 하셨습니까?”
“예?! 아, 네···.”
“조금 전에는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너무 흥분해서···.”
“예, 뭐···. 이해합니다. 그럴 만했죠, 네.”
“저를 말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예에···.”
나보다는 알타르가 그를 더 열성적으로 말렸던 것 같은데.
말린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려거든 그에게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저치의 생각이 바뀐 것에도 시온 님의 영향이 큰 것 같군요. 맞습니까?”
“어어···, 뭐 대충 그런 셈이죠.”
대답은 그렇다고 말하였지만, 나 혼자만의 힘으로 한스의 생각을 바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열심히 떠들어댄다고 한스 저 양반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일 사람도 아니고.’
아무리 세르펜스가 대외적인 연기를 계속하고 있다 한들, 그가 이전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리고 그것을 2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옆에서 지켜봤을 한스가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다.
‘주방의 시녀들도 세르펜스가 단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챘는데, 더 가까이에서 모시는 한스가 모르면 말이 안 되지.’
뿐만 아니라, 단 한 번도 자신에게 진심을 내비치지 않았던 세르펜스가 나와 유지스에게 마음을 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세르펜스가 불안해하며 내게 의지하는 모습도 보았다.
그제야, 무언가 잘못됐음을 확신했을 것이다.
결국에는 세르펜스 또한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걸 테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봤겠지.’
그 옛날 세르펜스가 질문했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어째서 세르펜스가 그때 내 편을 들어주었는지 깨닫고.
그러고 나서야 내가 그에게 했던, 자신이 흘려들었던 말을 되새겼을 것이다.
“최근에는··· 괜찮아진 겁니까?”
에일리히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예? 뭐가요?”
“아까 저치가 말했잖습니까. 최근까지 그···.”
내가 반문하자 그가 말끝을 흐리며 슬쩍 세르펜스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 행동에서 걱정의 빛을 읽을 수 있었다.
최근까지 세르펜스는 쉬지도 못하고 일만 해왔다는 한스의 말이 신경 쓰였나 보다.
“네! 예전에 비하면 훨씬 좋아졌죠! 앞으로도 더 좋아질 겁니다. 얼마 전에는 제가 휴가도 줬어요!”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뭘.”
어쩐지 어깨가 으쓱하다.
내가 세르펜스를 얼마나 잘 키워왔는지 떠벌떠벌 자랑하고 싶어질 정도로.
세르펜스는 어째서 저 사람이 내게 감사를 표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듯, 여전히 경계하는 모양이지만.
‘···차차 나아지겠지.’
그나저나 에일리히가 좋은 사람 같아서 다행이다.
망설임 없이 한스를 후려치는 모습을 봐서는, 나중에 전 공작을 죽인 진범이 세르펜스라는 것을 알게 되어도 아주 잘했다며 칭찬해줄 기세다.
“룩스메아 님의 은총이 함께 한 덕이겠죠.”
에일리히가 은은하게 웃으며 말하였다.
성직자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한들, 신앙이 사라진 것은 아닌가 보다.
‘이리저리 생각해 봤을 때 나를 이곳에 보낸 것은 룩스메아가 확실하니까, 저 말도 틀린 것은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 거죠.”
“신의 사자께서 제 조카의 곁을 지켜주시니, 마음이 든든합니다.”
“에이, 저야말로 세르···, 아니, 공작님께 여러모로 지켜지고 있는 걸요, 뭐···.”
왠지 머쓱하기도 하고, 우쭐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없는 살림에 자식 뒷바라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보내고, 동네 사람들에게 자식 잘 키웠다며 부러움 섞인 칭찬을 듣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그렇군요.”
에일리히가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웃는 모습을 보니 세르펜스와 한층 더 닮아 보였다.
“네, 그렇···, 아니, 안 그런데요?!”
칭찬의 말은 몇 번을 곱씹어도 기분이 좋은 법이다.
에일리히가 한 말을 다시 떠올리며 무심코 대답하려다, 이상한 점을 깨닫고 말을 급선회하였다.
급하게 정정하긴 했으나, 나는 알 수 있었다. 이미 글렀다는 사실을.
‘대체 누가 말한 거지? 악숭이 놈? 아니면 같이 잡혀간 은퇴한 사용인들?’
누가 되었건 간에 용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