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18)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19화(219/1105)
219회
41. 공작가의 사람들 (7)
당장 다음날이라도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공작저에 쳐들어올 줄 알았던 에일리히는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공작저를 다시 찾았다.
안쓰러운 조카님을 위해, 그가 좋아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달콤한 초콜릿이 듬뿍 들어간 퐁당 쇼콜라를 사 들고서.
‘호두 얘기 한 번 꺼냈다고 일주일 내내 호두를 먹인 사람의 삼촌 아니랄까 봐···.’
생긴 것만 닮은 줄 알았더니, 하는 행동까지 닮아 있었다.
“으음···. 정말로 교단을 나오실 생각이십니까?”
세르펜스가 코를 간질이는 초콜릿 향을 애써 무시하며, 에일리히에게 질문했다.
그 어조에서 ‘나는 그쪽이 대체 왜 이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라는 뉘앙스가 뚝뚝 묻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일리히의 눈빛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존재하지 않았다.
“예, 제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에일리히가 강단 있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런 걸 받아오라 하신 걸 보면, 교황 성하께서도 원치 않으시는 것 같은데···.”
세르펜스는 그렇게 말하며 테이블 위로 손을 뻗어 에일리히가 가져온 서류 뭉치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에일리히를 다시 프라시더스 가문에 편입시키기 위한 서류들로, 당연히 세르펜스의 서명과 프라시더스 가문의 인장이 필요했다.
즉, 교황은 정 교단을 나가고 싶다면 세르펜스에게 먼저 허락을 받아오라고 시킨 거다.
‘보통 이런 서류 작업은 교단을 완전히 나온 후에 진행하지 않나?’
무슨 탈교가 회사 이직도 아니고, 교단에 소속된 상태로 가문에 냅다 이름을 올리고 보는 건 좀 아니올시다 싶다.
등록이야 나중에 한다 쳐도, 이런 걸 먼저 준비해놓고 있는 것만으로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그런데도 이런 걸 교황이 시켰다면 가능성은 크게 두 가지다.
에일리히가 교단을 나간 후 세르펜스가 그를 받아주지 않을 가능성을 염려했거나, 그냥 에일리히를 놓아주기 싫었거나.
세르펜스는 그중에서 후자의 경우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에일리히가 껄끄러워서 전자의 경우를 모르는 척하는 걸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는 세르펜스가 진짜 가족의 정을 느껴보길 바라지만, 그가 싫다면 강요할 수는 없는 문제다.
속으로 ‘나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다.’ 생각하며 조용히 녀석을 지켜보겠노라 다짐했다.
그리고 수플레 컵에 담긴 퐁당 쇼콜라를 디저트용 숟가락으로 떠 올린 그때였다.
“신의 사자인 시온이 말하길, 과거의 일을 저나 이단 심문관님께서 책임질 필요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세르펜스가 내 이름을 팔았다.
줄곧 세르펜스에게 꽂혀있던 에일리히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나는 미처 내 입까지 도달하지 못한 가여운 숟가락을 수플레 컵에 비스듬히 걸쳐놓았다.
이걸 입에 넣기 전이라 망정이지, 하마터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내뱉다가 목에 사레가 들릴 뻔했다.
“네, 뭐···. 두 분께서 잘못하신 건 아니잖아요. 세르펜스는 피해자고, 에일리히 님께서는 교단의 규율을 워낙 철저하게 지키느라 모르셨던 것뿐이고···.”
“몰랐다는 말이 면죄부가 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알았다면 세르펜스를 도와주셨을 거잖아요.”
“그러나 알려고 하지 않았잖습니까. 주위에서 떠드는 듣기 좋은 소문에 내심 만족해하며 기뻐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가 얼마나 노력하고 힘들어했을지, 그런 건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에일리히가 어두운 표정으로 답했다.
그 목소리에서 죄책감이 뚝뚝 떨어지는 듯하다.
세르펜스도 그렇고 에일리히도 그렇고, 왜 이렇게 죄의식에 사로잡혀있는지 모르겠다.
‘전대 공작 놈이 가지고 태어났어야 할 양심이 둘에게 나뉘어서 분배되기라도 한 거야, 뭐야?’
어쨌거나 세르펜스는 나를 이 대화에서 배제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는 모양이다.
내가 조용히 지켜보기로 마음먹기가 무섭게, 녀석이 나를 언급한 것을 봐서는 틀림없다.
이렇게 된 거 궁금했던 거나 물어봐야지.
“그 전에 에일리히 님께서는 어째서 공작가를 나가셨던 건지 질문해도 될까요?”
“그건···.”
바로 대답을 하려는 듯했던 에일리히가 잠시 멈칫하더니 의문스럽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전에도 그런 질문을 하셨던 거로 기억하는데···. 정말 몰라서 물으시는 겁니까?”
성검 관련 파트에 세르펜스 담당인 것 같은 내가 그걸 왜 모르느냐는 질문이었다.
“제가 신의 사자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오래된 일은 잘 모릅니다. 그···, 뭣이냐. 전에 제가 악숭이에게 납치당했다는 얘기 들으셨잖아요? 그때 같이 잡혀있다가, 제가 도망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이 오리지널 신의 사자셨는데, 그분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넘겨주신 거라서···. 네, 뭐···. 자세한 얘기는 넘어가죠.”
이전에 유지스가 흘리듯 말한 설정이 있었는데 귓등으로 들은 터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러한 탓에 기억을 떠올리기가 힘들어, 끝을 흐지부지하며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 그런 사정이···.”
다른 의미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기 힘들어한다고 오해한 것이 분명한 에일리히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사정은 묻지 않겠다는 뜻이리라.
‘난 물어볼 거지만.’
에일리히가 내 사정을 묻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저쪽의 사정을 묻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까.
“아무튼 그건 대충 넘어가고, 이젠 말씀해주시죠? 어째서 가문을 떠난 건지 알아야 세르펜스가 참고하고 받아들이든 말든 할 거 아닙니까?”
내 말에 에일리히의 시선이 슬쩍 세르펜스를 향했다.
녀석은 서류를 다시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두 손을 곱게 포개어 무릎 위에 올린 채 앉아있다가, 에일리히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가 가문을 나와 교단에 귀의하는 것을 택한 이유는 저보다 동생이 영주로서, 귀족으로서 더 나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귀족으로서 그놈의 역량이 어땠는지는 내 알 바가 아니다.
그러나 가주로서, 아버지로서는 영 글러 먹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어리석은 판단이었죠.”
에일리히가 세르펜스에게서 시선을 떼고 그의 앞에 놓인 퐁당 쇼콜라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게 말했다.
새까만 그 디저트는 새하얀 슈가 파우더로 뒤덮인 채, 그 속내를 조금도 드러내지 않은 상태였다.
그 옆에 놓인 작은 숟가락도 은색으로 깨끗하게 빛나며 여전히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신학보다는 정치에 더 관심을 보였고, 냉철한 성격에 결단력도 뛰어났으며, 저와는 달리 권력에 대한 야심 또한 많아서···. 성직자보다는 정치가에 걸맞은 사람이었습니다.”
전대 공작에 대해서는 안 좋은 이미지만 잔뜩이라, 에일리히의 말이 ‘그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소시오패스였습니다.’라는 말로 번역되어서 들렸다.
“그래서 전대 공작에게 가주 자리를 양보하고 교단에 들어가신 겁니까?”
“사실 양보했다는 말에도 어폐가 있습니다.”
“네?”
이게 무슨 개는 개인데 짖지 않는 개는 무지개 같은 소리인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무지 개 같은 소리하지 말라고 따졌을 일이나, 세르펜스의 삼촌이라 한 번 봐줬다.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에일리히를 바라보자 그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사실···, 그의 욕망이 두려웠습니다.”
에일리히는 결국 자신은 도망친 거나 다름없다고. 그래서 비극이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도대체 얼마나 권력욕을 드러냈길래, 에일리히가 작위를 포기하고 교단으로 도망을 가?!’
자신은 그렇게 욕심이 많으면서 세르펜스에게는 그 무엇도 바라지 못하게 강요하다니.
알면 알수록 끔찍할 정도로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그 녀석이라면 교단에 들어가서도 권력을 취하려 했을 겁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자, 잠깐만요!”
나는 잠시 에일리히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고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니라면, 교황 자리를 노렸을 거라고 말씀하시려던 것 같은데···. 맞습니까?”
“그러고도 남을 녀석입니다.”
갑자기 뒷골이 땅겼다.
“그럼 두려웠다는 게···. 전대 공작이 교황이 돼서 교단의 힘을 멋대로 휘두를까 봐···, 어···. 아니, 진짜 무섭잖아요, 그거!”
하마터면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 뻔했다.
에일리히는 아까 자신의 판단이 어리석다고 하였지만, 이제 보니 무척이나 현명한 판단이었던, 아니, 하지만 그럼 세르펜스가···.
“아, 진짜 미치겠네!”
마음 같아서는 쌍욕을 퍼부어주고 싶었으나, 나를 바라보고 있는 두 쌍의 눈 때문에 화를 삼켜야만 했다.
‘진정하자···. 아무리 그래도 혈족 앞에서 패드립을 할 수는 없잖아?’
그리고 자꾸 어디선가 이상한 말들을 배워오는 세르펜스 앞에서는 특히나 더 참아야 했다.
“이유는 잘···, 알겠습니다. 네, 너무 잘 알겠네요.”
솔직히 말하자면 모르는 게 나을 뻔했다.
저번에 에일리히에게 같은 질문을 했을 때, 그가 어째서 답을 피했는지 알 것 같다.
이단 심문관으로서 그딴 얘기는 차마 할 수 없었던 거겠지.
“···그렇다면 지금은 어째서 가문으로 돌아오시려는 겁니까?”
세르펜스가 ‘그래서 이젠 그럴 걱정이 사라졌으니 돌아오려는 거냐?’는 질문을 약 다섯 번쯤 꼬고 열 바퀴쯤 돌려서 말했다.
표정만큼은 순진무구함을 꾸며내고 있었으나, 저런 질문을 하는 것부터가 문제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대놓고 ‘나는 가족 간의 정이라는 게 뭔지 몰라요.’라고 말하는 꼴이었다.
‘아니지, 내가 가족을 그리워하는 걸 눈치채고 실수로 제온을 고용했던 걸 보면···.’
아예 다른 세상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감히 자신이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무의식중에 그 가능성 자체를 지워버린 게 아닐까 한다.
“이단 심문관님께서는 옳으신 판단을 하였습니다. 만일 그자가 교황이 되었다면 그때는 저 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성검의 주인 후보가 같은 일을 당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럴듯한 얘기다.
더욱 완벽한 성검의 주인을 육성한답시고, 어디 산골짜기에 기숙사를 지어놓고 애들을 굴렸을 것이다.
“하지만 가문의 어른으로서···.”
“그 말씀도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가문을 떠나 교단에 귀의하신 순간부터 프라시더스 가문의 모든 일은 이단 심문관님과 관련 없는 일이잖습니까?”
언뜻 들으면 원망하는 것처럼 들리는 말이었다.
상관하기 싫어서 이제까지 내팽개친 것 아니냐고. 이제 와서 가문의 어른이란 말을 입에 담지 말라고.
그러나 세르펜스의 두 눈은 한 점의 원망조차 담기지 않고 유리알처럼 투명했다.
‘이 녀석, 진짜 에일리히를 완벽하게 타인이라 생각하는 거구나?’
에일리히는 소문을 통해서라지만, 세르펜스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어왔을 거다.
성검의 주인이 될 자로서 워낙에 유명하다 보니, 교단에 몸을 담은 이상 자연히 듣게 될 수밖에 없다.
직접 만나지는 못했을지언정.
에일리히는 그의 성장 과정을 쭉 함께했다.
‘그에 반해 세르펜스는 에일리히에 관한 소문을 들을 길이 없었겠지.’
당연히 일부러 찾아 들을 생각도 없었을 테고.
우연히 듣게 되어도 ‘교단이 자랑하는 고문 전문가’ 따위의 흉흉한 얘기뿐이었을 거다.
“원치 않게 교단에 들어가셨던 것이 후회되어, 이제라도 자신의 삶을 찾고 싶다는 이유라면 도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 때문에 제게 그런···, 일이 생겼다는 죄책감 때문이라면 그러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이단 심문관님을 원망할 생각은 없습니다.”
세르펜스는 더없이 상냥하게 웃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친절한 어투로.
에일리히에게 더없이 잔인한 말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