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21)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22화(222/1105)
222회
42. 공작님의 연말 정산 (2)
세르펜스가 케이크 한 조각을 우아하게 음미하며 먹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는 동안에도 세르펜스와 에일리히 사이에 직접적인 대화가 오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편하게 만드는 어색함은 없었다.
‘뭐, 본인들은 어색해하는 것 같지만···.’
작년 생일 파티에 휴마누스가 끼었을 때처럼 인공적인 느낌은 없었다는 얘기다.
하마터면 올해도 생일 파티를 두 번에 걸쳐서···.
생일 파티, 두 번···.
“아니! 나이가 스물다섯인데 생일 파티를 한 게, 작년과 올해. 고작 두 번이라는 게 말이나 됩니까?!”
문득 떠오른 생각에 울컥하여 소리치자, 세르펜스가 내가 마시던 찻잔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취한 거 아닙니다. 같은 주전자에서 나온 차를 마셔놓고, 뭘 의심하시는 겁니까?”
“···정말 아닌가?”
“제 술버릇, 아시잖아요?”
“으, 으음···.”
내 지적에 녀석이 머쓱해 하며 잔을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나저나 고작 두 번이라니···. 확실히 적긴 적네요.”
세르펜스의 돌발 행동 때문에 그대로 묻힐 뻔했던 대화 주제를 유지스가 다시 꺼내 들었다.
“그쵸? 스물다섯 번을 다 채울 때까지, 매월 25일마다 세르펜스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게 어때요?”
“···그런 건 더 이상 생일이라 볼 수 없는 것 아닌가?”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구체성을 갖기도 전에 세르펜스가 초를 쳤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꼭 태어난 날에만 축하하라는 법은 없잖아요? 살다가 행복함을 느끼는 어느 순간,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 그거야말로 축하할 일이죠. 그리고 문득 함께하는 것이 기쁘다고 느껴질 때도, 얼마든지 상대방에게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건가?”
“예압!”
“그래도 매달 생일을 챙기는 건 안 된다.”
거의 넘어오는가 싶었는데, 역시 안 되는 건 안 되는 모양이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비어버린 앞 접시에 새로운 케이크 조각을 올렸다.
대화는 계속 이어졌고, 점차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떠드는 사람은 주로 나와 유지스, 세르펜스. 이렇게 세 명으로, 에일리히와 윈스톤이 분위기를 보느라 말을 아꼈다.
나와 유지스야 언제나 항상 똑같았고, 세르펜스는 이유야 어찌 되었건 내게 말을 놓으며 평소대로의 어투를 사용했다.
그것들이 맞물려 녀석의 긴장감이 느슨해졌다.
‘어느 정도의 내숭은 남았지만, 이 정도면···.’
무의식중에 본연의 모습을 내비치며 웃고, 얘기하고, 좋아하는 달달한 디저트를 먹는 그의 행동들이 무척이나 보기 좋았다.
거짓으로 순수함을 연기하는 것보다 훨씬 순수하고 빛이 났다.
‘이런 모습을 세르펜스가 봐야 하는데!’
녀석이 본인도 모르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한쪽 벽면을 거울로 밀어버리고 싶다.
그러면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하다가 우연히 거울에 비친 자신의 자연스러운 표정을 볼 수 있을 텐데.
그래야 두 번 다시 자신이 추하다는 헛소리를 안 하지.
‘집무실이나 응접실은 남들 보기 좀 그렇고···. 서재에 전신 거울이라도 하나 들여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 정도라면 인테리어 시공도 필요 없으니 녀석의 동의 없이 들여놓을 수도 있고.
그의 자리 정면에 놓아두면 보기 싫어도 보게 되겠지.
“시온.”
“네? 왜요?”
유지스와 가벼운 사담을 주고받던 세르펜스가 나를 불렀다.
내가 말없이 가만히 있는 게 의아했는가 보다.
“또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예? ‘또’라뇨? 제가 언제 이상한 생각을 했다는 겁니까?”
“항상···?”
“세르펜스가 착각한 겁니다. 저는 언제나 바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뭐?”
녀석은 나의 떳떳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얼빠진 소리를 내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라면 근거를 대 보시죠!”
“당신이 평소에 말하고 행동하는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평소에요? 제가 뭘 어쨌는데요?”
“당신이 나를···. 그게, 그러니까···. 나에게 그···, 으음···.”
막상 반박하려 해도 할 수 있는 말이 없는지, 녀석이 말을 더듬거렸다.
이해한다.
아직 데면데면한 윈스톤과 에일리히 앞에서, 나에게 애 취급당하고 우쭈쭈 받으며 지낸다는 얘기는 차마 할 수 없었겠지.
“것 봐요! 말씀 못 하시네! 하하하하!!”
“으읏···.”
마새개새같은 얘기를 해도 되겠지만, 원래 생각이라는 것이 어느 하나에 꽂히면 다른 방향은 떠올리지 못하는 법이다.
결국 세르펜스는 나의 이상함에 대해 그 무엇도 말할 수 없었고, 분하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아이고, 고소해라.
“시온의 양심은 어디에 있나요?”
낄낄 웃고 있는 나를 보며, 유지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 양심의 행방을 물었다.
“당연히 제 가슴 속에 있죠!”
“···언젠가 꼭 찾기를 바라요.”
“아니, 여기 있다니까요?”
“다른 무언가를 보고 착각한 것이 아닐까요?”
친절한 표정과 상냥한 말투로 유지스가 말하였다.
비꼬는 기색은 하나도 없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뒤숭숭하다.
화제를 바꿔야겠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에일리히 님의 방은 어디죠? 역시 ‘프라시더스’니까 5층 이려나요?”
나는 살짝 삐진 상태인 세르펜스 대신, 에일리히에게 직접 질문했다.
“네. 아까 제온 님···, 집사에게 방 위치를 들어 두었습니다.”
에일리히가 이제는 집사가 된 제온의 호칭을 정정하며 답하였다.
모셔야 할 사람은 늘었는데 갑자기 선임자가 은퇴를 선언하여 당황했을 그에게 심히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뭐 어쩌겠는가.
‘똘똘한 녀석이니까, 알아서 잘하겠지.’
게다가 나라는 든든한 배경도 있으니, 나이가 적고 경력이 짧다고 괜한 트집 잡힐 일은 없을 거다.
“안 그래도 매일 5층에 갈 때마다, 어딘가 싸늘하고 적막한 느낌이었는데···. 잘됐네요. 아무래도 머무는 사람이 있으면 공간의 온기부터가 달라지는 법이니까요.”
“아! 맞아요. 거기가 좀 그렇죠? 그래도 유지스가 들르기 시작했을 즈음엔 좀 나아진 겁니다. 처음 제가 갔을 땐 이게 사람이 사는 공간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니까요?”
근래에는 진짜로 사람 사는 공간이 아니게 되어버렸지만.
‘왜냐면 세르펜스가 내 방에서 자니까!’
이를테면 ‘우리 집에 아무도 없어!’라는 말에 놀러 갔더니, 정작 친구도 없었다. 뭐 그런 상황 같은 거다.
지금 세르펜스의 방은 세르펜스가 씻고 옷을 갈아입는 장소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그 때문에 현재 5층은 이제 ‘개인’ 서재라 말하기도 모호해진 서재만 생활감이 넘치고, 그 외에는 모델하우스 느낌이 물씬 나는 이상한 곳이 되어버렸다.
“그 정도였습니까···?”
에일리히가 먹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프라시더스 가문의 사람들만 쓰는 곳인데, 이제까지 프라시더스라고는 세르펜스 뿐이었으니까요. 아차! 저랑 유지스가 종종 서재에 놀러 가는 데, 괜찮겠죠?”
“예, 물론입니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이제까지처럼 편하게 지내주십시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질문해 봤으나, 에일리히는 오히려 환영한다는 듯한 얼굴로 대답하였다.
“식사도 같이하는데, 괜찮죠?”
“예, 괜찮습니다.”
난 자리는 알아도 든 자리는 모른다고,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앞으로도 그냥 평소 하던 대로 살아도 될 것 같다.
* * *
그리고 세르펜스도 평소에 하던 대로, 늦은 밤 내 방 창문을 넘어왔다.
“어라? 또 오셨네?”
“역시, 많이 불편했···나?”
녀석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치며 물었다.
표정과 행동이 따로 놀았다.
“아뇨, 아뇨! 이젠 토닥토닥을 안 해줘도 곧잘 주무시고, 같은 건물 같은 층에서 지내는 사람도 있으니까 안 오실 줄 알았죠.”
“그렇게 생각한 것치고는 창문을 잠그지 않았더군.”
“···거기는 그냥 제2의 출입문이라 생각하고 있어서요.”
“창문은 사람이 출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옳은 말이었으나, 내 방 창문을 가장 많이 드나드는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다.
“어쨌거나 세르펜스가 이제 됐다고 느껴질 때까지, 얼마든지 와서 주무셔도 됩니다.”
“정말 안 불편한가···?”
“솔직히 말하자면 재밌는데요?”
“···재미?”
세르펜스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잠을 자는 것에서 재미가 왜 나오느냐, 이거다.
“저만 즐거웠어요? 누워서 자기 전에 이런저런 대화 주고받다가 잠드는 거. 약간 수련회나 수학여행 같은 느낌이라 전 좋았는데?”
엠티는 주정뱅이 천국이니, 포함하지 않기로 하자.
“으음···, 확실히. 신기한 경험이었다.”
“신기하기만 했어요?”
“신선하고···.”
“또요?”
계속 다음을 요구하는 나를 보며, 녀석은 느릿하게 눈을 깜박였다.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거다.
“기분은 들뜨는데, 머릿속은 되려 평온해졌다. 마음이 상쾌해지는 것 같으면서도 따뜻해지기도 하고···. 그래. 즐겁고···, 재밌는 것 같다.”
그렇게 말하며, 녀석은 마치 소풍 전날 기대감에 잔뜩 부푼 아이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나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잘 준비를 했다.
녀석도 침대로 올라가 이불을 덮고 누웠다.
“그런데 아까 말한 수련회라거나, 수학여행이라는 건···. 그곳에서의 추억인가?”
세르펜스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 맞아요! 세르펜스는 제가 추억을 공유하지 않네 어쩌네 했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거든요?”
“그런가?”
“네, 그렇습니다! 제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그렇다면 말을 해라.”
녀석이 내 말을 끊어먹으며 불만을 표했다.
“매번 이건 이러이러한 추억이 생각나네요, 그때 이런 일이 있어서 어쩌고저쩌고···. 그럴 수는 없잖아요.”
“어째서?”
“당장 현재를 즐기고 있으니까요.”
아직 추억할 과거가 그다지 쌓이지 않은 세르펜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언젠가는 세르펜스도 알게 될 겁니다.”
그의 머리를 반쯤 헝클리다시피 쓰다듬어주고, 불을 끈 후 자리에 누웠다.
“어쨌든 저는 충분히 과거를 추억하며, 동시에 추억을 쌓아가고 있어요. 제가 저로서 살아가면서 그리움에 삼켜지지 않는 건 세르펜스의 덕택이기도 하니까, 제게 미안해할 이유도, 서운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
“안 자는 거 다 압니다.”
“···그래. 고맙다.”
벌써 졸음이 밀려오는 것도 아닐진대, 녀석은 반쯤 잠긴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남과 자신을 너무 떨어뜨려 생각하느라 타인의 감정에 잘 공감하지 못해서 그렇지, 알고 보면 감수성이 풍부한 녀석이다.
“세르펜스.”
“말해라.”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부르기 무섭게 녀석이 바로 대답했다.
“올해는 어땠어요?”
“무슨 의도의 질문이지?”
“말 그대로요. 새 친구도 사귀었고, 같은 성(姓)을 공유하는 가족도 생겼고. 그 밖에도 이것저것 많잖아요?”
이번에는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새 잠이 든 것은 아닐 테니, 올 한 해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고 있는 걸 테다.
“그래···. 참 많은 일이 있었지.”
회상에 잠긴 그 목소리가 애잔하게 울렸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나날인데, 왜 그렇게 아련하게 말합니까?”
“···정말 그랬으면 좋겠군.”
“그럴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우, 당신이 위험한 상황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지 않도록 잘 감시해야겠지.”
“와! 진짜 이러 깁니까?”
누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으며 그에게 따졌으나, 세르펜스는 말없이 코웃음 쳤다.
그리고 뒤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려고요?”
“······.”
답이 없는 거로 보아, 그런가 보다.
나도 잠에 들기 위해 편한 자세를 찾으며 눈을 감았다.
“···선우.”
뒤척거리다 손이며 발이며 어디 하나 거슬리는 것 없는 완벽한 수면 자세를 취했을 때, 세르펜스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왜요?”
“내일, 함께 가 주었으면 하는 곳이 있다.”
그의 목소리를 들어 봤을 때, 가볍게 어디 놀러 가자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
“그러죠, 뭐. 그런데 멀어요?”
“그렇지는 않다. 아주 가까운 곳이다.”
세르펜스가 잔잔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게 어딘···.”
– 똑 똑 똑.
내가 질문을 미처 끝마치기도 전에,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