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2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26화(226/1105)
226회
43. 공작님과 암흑가의 악마 (1)
올해가 다 가기 전에 확실히 해 둬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슬슬 악숭이들이 첫 악마 소환을 시도할 때가 다가왔습니다.”
“그렇네요, 이제 곧 해가 바뀌니···.”
내가 분위기를 잡고 입을 열자, 유지스 또한 진지한 표정으로 호응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아하고 고풍스럽기 짝이 없지만, 사실은 그저 에끌레르를 탐미(耽味)하기에 바쁜 세르펜스라거나.
청자라기보다는 청취자에 가까운 모습으로 멀뚱멀뚱 앉아있는 윈스톤과 달리, 적극적으로 회의에 참여하겠다는 자세가 돋보였다.
“시온은 작년에 첫 소환이 암흑가에서 행해질 거라고 예견했었죠?”
“어, 음···. 뭐, 그랬었던 과거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왜 그렇게 떨떠름한 반응인가요?”
시선을 회피하는 나를 보며 유지스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사실 그게, 저희 측에서 암흑가를 장악 중이라는 정보가 놈들에게 새어나간 것 같습니다.”
“네? 그걸 어떻게···, 아!”
갑자기 유지스가 기가 막힌 소설 소재가 떠올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녀 본인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러하다. 아마 세르펜스의 생각도 나와 크게 다름이 없으리라.
“그러고 보니, 아르젠토 공작의 보좌관도 그곳에서 악마 소환이 행해질 예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죠? 그렇군요. 과연, 이해했어요.”
나는 아직 이해가 안 되었다. 추가 설명을 요구하는 바이다.
“배신자인 그가 그 정보를 제국에 알리고 목숨을 부지했다는 것을 눈치채서, 제국의 황제가 그것을 대비하기 위해 세르펜스를 암흑가로 파견하여 그곳을 장악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추측을···.”
과연.
오늘도 사실과는 매우 동떨어져 있으나, 매우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이런 걸 두고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 픽션이라고 하는 건가?
‘그럼 이걸 정정하느냐, 마느냐. 그게 문제인데···.’
슬쩍 세르펜스를 바라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녀석이 눈을 두어 번 깜박였다.
당장은 그냥 넘어가자는 의미다.
“하지만 제국 측에서 그 정보를 얻은 것은 올해 중반이었잖아요. 암흑가를 완벽히 장악하지는 못했을 거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은 없나요?”
유지스의 의견에 세르펜스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쪽이 그것을 의심하고 조사했다면,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오래전부터 암흑가의 패권을 손에 쥐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채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이 소설은 아무래도 릴레이 소설이었던 모양이다.
세르펜스가 유지스에게 바통을 넘겨받아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암흑가를 어떤 방향으로 개선해 나갔는지를 생각한다면···.”
“그렇네요. 암흑가에서 이루어지던 노예 경매를 없애고, 그것을 양지로 끌어올려서 암암리에 이루어지던 노예 거래가 근절될 수 있도록 유도했으니···. 그것만 봐도 악마 숭배보다는 룩스메아 교단의 이념에 가깝죠.”
그리고 그자는 지금 유지스의 착각을 유도하고 있었다.
“또한 암흑가에서 악마가 소환된다는 것은 그쪽에서도 반길만한 일은 아닙니다.”
“확실히···. 악마가 날뛴다면 암흑가의 위치가 발각될 테고, 악마 숭배자들이 그곳에 눌러앉는다면 그건 그거대로 큰일이겠네요. 암흑가의 주인에서 한순간에 악마의 노예가 되는 꼴이니까요.”
세르펜스의 부채질로 이야기는 빠르게 결말부로 치달았다.
“그자의 정체가 세르펜스였다는 것은 모르더라도, 그곳에 악마가 소환된다면 세르펜스가 바로 막으러 올 것이라는 걸 그들도 알고 있겠네요. 그렇다는 건···.”
“네, 아마도 시온은 그것을 우려하고 있는 듯합니다.”
모로 돌아갔지만, 목적지에는 제대로 도착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세르펜스의 말투가 묘하게···.”
셋이서 매일같이 다과를 즐기며 노닥거린 지도 벌써 반년 가까이 되었다. 게다가 최근 들어 세르펜스는 그녀에게 급속도로 마음을 열기 시작하였다.
즉, 눈치 빠른 그녀가 지금 세르펜스의 말투에 스며든 작위성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네?”
세르펜스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러고는 자신의 말투에 어색한 점이 있었느냐고 묻는 것처럼, 순진한 얼굴을 꾸며내며 나와 윈스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 과정에서 세르펜스와 눈이 마주친 윈스톤이 뻣뻣하게 굳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제가 뭔가 착각했나 봐요.”
유지스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정말로 자신이 착각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고, 윈스톤 때문에 세르펜스가 대외펜스를 연기한 것뿐이겠거니 하고 넘어간 게 아닐까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미래를 마왕도 알고 있으며, 마왕이 알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있···, 아니 뭔 소리냐?”
아무튼 나중에 그렇다는 것을 들키더라도 윈스톤 때문에 눈치 본 거라고 변명할 생각인가 보다.
“어쨌거나, 대충 그런 상황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어떻게 생각해요?”
“그런데 시온은 악마 숭배자들의 목적이 암흑가에 악마를 소환하는 것 자체라고 말하지 않았었나요?”
시키지도 않았는데 유지스가 손을 들며 질문했다.
고작 네 명밖에 없는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다.
“네, 뭐···. 그렇게 말하긴 했죠. 그런데 변수가 생겼으니 계획이 바뀌었을 수도 있잖습니까? 미리 점찍어뒀던 악마보다 더 센 놈을 소환한다거나, 세르펜스가 악마와 싸울 때 옆에서 깔짝거려줄 놈들을 추가로 배치한다거나···.”
“혹은 양동 작전을 펼친다거나 말이죠?”
“그럴 수도 있고, 그 외 기타 등등이요.”
대답이 되었는지 유지스가 들어 올린 손을 내렸다.
“암흑가에 악마가 소환된다는 것은 변함이 없을 거다.”
질문이 아니라서일까?
세르펜스는 손을 올리지 않고 바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데요?”
“그곳은 외부와 단절된 폐쇄된 공간이다. 위험에 처해도 도움을 받기 어렵고, 밖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알 방도가 없다.”
결국 같은 얘기다.
암흑가는 세르펜스를 공격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며, 동시에 세르펜스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분탕질하기 딱 좋았다.
적당한 악마를 소환해서 세르펜스와 싸움을 붙여놓고 시간을 끄는 사이에···.
“시온은 어떻게 하고 싶은가?”
“네? 저요? 왜요?”
“그들이 당신을 노릴 테니까.”
“아차! 그랬지, 참!”
그러고 보니 악숭이네는 내가 이계의 신 같은 거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너무 허무맹랑한 나머지 깜박 잊고 있었다.
“당신은 정말···.”
“시온, 깜박할 게 따로 있죠.”
세르펜스가 고개를 떨구며 이마를 짚었다.
뒤이어 유지스가 그건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뉘앙스로 말하였다.
두 명 다 심각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별수 없네요. 저도 같이 갈게요.”
“···괜찮은가? 위험할 수도 있다.”
내가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하며 선심 쓰듯 말하자, 세르펜스가 근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 남아도 위험하다면서?”
“으음···.”
“세르펜스가 괜히 조바심내다가 다칠까 봐 안 되겠습니다. 보호자인 제가 따라가야지 어쩌겠어요?”
그뿐만이 아니다.
내가 저택에서 기다리는 것을 택한다면 세르펜스는 유지스와 윈스톤을 이곳에 남겨두고 혼자서 암흑가로 향할 것이다.
[성검의 주인]에서 등장했던 악마가 그대로 나온다면 조금은 안심할 수 있을 텐데, 그럴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지금 소환할 수 있는 악마의 수준은 거기서 거기라지만, 악숭이네가 이번 시기를 절호의 기회라 여기고 무리해서 강한 악마를 소환하는 것에 성공했다면.
‘아니지? [성검의 주인]에서 소환된 암흑가 악마는 본체로 넘어온 녀석이었으니까···.’
적당한 그릇을 찾았다면, 굳이 무리할 필요도 없이 더 강한 놈을 소환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 문제점을 안고서 녀석을 그곳에 혼자 보낼 수는 없다.
그나마 휴마누스가 제때 도착한다면 세르펜스를 도울 수도 있겠지만, 악숭이 놈들이 암흑가 내부에서 게이트를 봉쇄해 버린다면 그것조차 요원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다 같이 가는 편이 낫다.
‘밖에서 뭔 일이 터지면 휴마누스가 알아서 하겠지.’
친구로 두기에는 쬐까 거시기한 면이 있지만, 성검의 주인 자격은 [성검의 주인]을 통해 충분히 입증했다.
“시온.”
“왜요?”
“···고맙다.”
미안해 죽겠다는 듯한 눈으로 고맙다고 말하며 웃는 모습이 퍽 애처롭다.
“당연한 말을 뭐 그리 무게 잡고 합니까?”
“그럼 어떻게 말해야 하지?”
“어깨동무 딱 걸치면서, ‘짜식, 고맙다! 잘 되면 꼭 밥 한 끼 살게!’라고 말하는 거로도 충분합니다!”
“식사라면 매일 내가 제공하고 있잖···. 아, 그렇군. 외식이 하고 싶었던 건가?”
“···외식은 암흑가 쪽을 어떻게 하고 나서 느긋하게 생각하기로 합시다. 당장 급한 건 그게 아니잖아요?”
조금 논점이 어긋난 것 같지만, 가끔은 외식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그냥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질문이 있습니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윈스톤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아까 유지스가 손을 들어 올린 것 때문에, 일루미나티 회의에서 발언권을 얻기 위해서는 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 무안해할 것 같으니 맞춰 줘야겠다.
“네, 윈스톤 경의 발언권을 인정합니다. 질문하시죠.”
“크흠···! 묻고 싶은 것이 산더미 같지만···.”
“괜찮으니 맘껏 물어보세요. 어차피 오늘 당장 가겠다는 것도 아니니까.”
“그럼 묻겠소.”
대체 무슨 뭘 물어보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제국에도 암흑가가 있소이까?”
“···네?”
“제국은 불법 행위를 철저하게 단속한다고 들었고, 내가 본 제국은 실제로도 그러했소. 그리고 암흑가라 해도 보통은 치안이 좋지 않을 뿐 아니오? 그런 곳을 외부와 단절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좀 이상하오.”
우리 셋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라서 그것을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하였다.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대화에 끼지도 못하고 이해도 못 한 채, 멍하니 앉아있었을 그에게 뒤늦게 미안함이 밀려들었다.
“저희가 말하는 ‘암흑가’라는 건, 거대한 지하 도시입니다. 제국이 불법 행위를 철저하게 단속하니까, 다들 거기로 모여든 거죠.”
“지하 도시···?”
윈스톤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표정으로 내가 말한 단어를 따라 말하였다.
“예.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진짜 지하에 있거든요. 원래 거기가 룩스메아의 지하 성지였는데, 다들 알다시피 아직도 못 찾고 있었잖아요? 찾아낸 놈이 교단에 알리는 대신에 불법 점유를 해버린 거죠.”
“네에?! 잠깐만요, 시온! 거기가 어, 어디라고요?”
“엇! 유지스 몰랐어요?”
나는 세르펜스를 쳐다보았다. 그동안 말 안 하고 뭐 했느냐는 의미를 담아서.
“몇 번 왔다 갔다 했으니, 당연히 눈치챘을 줄 알았다.”
와, 저런 뻔뻔한.
“듣고 보니···. 그런 견고한 지하 도시를 그런 범죄자들이 만들어 냈다는 게 말이 안 되긴 하네요. 범죄의 온상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서 간과했어요.”
그걸 또 넘어가나? 나라면 세르펜스에게 바득바득 따졌을 텐데.
유지스는 먼저 자신을 반성했다.
군자는 여의치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을 반성하고 소인은 남의 탓을 한다더니, 유지스는 진정한 군자라 할 수···.
‘잠깐, 그럼 나는 소인이 되는 건가?’
그래도 나보다는 세르펜스가 더 치사했으니, 나는 중도를 걸었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아무튼, 암흑가는 그런 곳이라 외부와 단절되어 있습니다.”
“······.”
어째 윈스톤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벙해 보였다.
집 나간 그의 얼을 되찾아 주기 위해서 윈스톤의 눈앞에 손바닥을 가까이 대고 휙휙 흔들었다.
“저기요? 묻고 싶은 거 많다던 사람은 어디 갔나요?”
“그, 그럼 주군께서 암흑가를 장악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는···.”
“아···, 그거.”
괜히 불렀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