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31)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32화(232/1105)
232회
43.공작님과 암흑가의 악마 (7)
세르펜스는 윈스톤을 대할 때 연기를 했고, 윈스톤은 세르펜스의 눈치를 살폈다.
이상한 일이다. 정말로.
‘윈스톤이 저렇게까지 세르펜스의 눈치를 살폈었나?’
세르펜스가 내숭을 떠는 거야 항상 있는 일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윈스톤의 태도는 확실히 이상했다.
기사가 신임을 얻기 위해 주군의 기분을 살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윈스톤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어 보였다.
수능을 앞두고 마지막 모의고사에서 8등급이라도 받은 고3 학생처럼 자신감이 떨어져 보였다.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저번 납치 사건 때문이려나···.’
누군가 주군을 음해하려 들었는데, 기사가 그 사실을 모든 사건이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것도 개인 호위라는 직함까지 달고서?
이는 마치, 아이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학폭위가 열리고 나서야 알았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이가 말하지 않아서 몰랐다는 말은 변명조차 되지 않는다.
그것은 아이가 자신을 믿고 의지할 수 있도록 신뢰 관계를 쌓지 못한 보호자의 잘못이다.
‘애초에 보호자라면 먼저 눈치채고, 무슨 일이 생겼는지 물어봤어야지.’
분명 징후는 있었다.
늦은 밤, 내 방에 유지스와 한스가 수차례 방문했고 세르펜스는 아예 드러누웠다.
아무리 세르펜스가 기척을 감추고 드나들었다 한들, 한계는 존재했다.
‘얕게 자는 거면 몰라, 깊게 잠든 상태로 기척을 어떻게 감춰?’
깊이 잠든 것 같은데 기척이 없다?
그건 그냥 가사 상태다.
자는 게 아니라 혼절한 것이니, 바로 병원으로 데려가야 한다.
‘다른 기사들은 몰라도, 한 건물을 쓰는 윈스톤이라면 알아챘겠지.’
그러나 어째서인지 윈스톤은 그것을 묻지 않았다.
일루미나티라든가 신의 사자 뭐시깽이 하는 이야기도 들려줬으니, 가만히 기다리면 어련히 세르펜스가 말해주리라 낙관했던 걸까?
어쩌면.
반대로 비관했는지도 모르겠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은 분명했고, 자신이 그것을 눈치챌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에 관해 일언반구도 없었으니까.
‘신뢰의 문제지···.’
아이가 어떻고 보호자가 어떻고 하는 얘기를 예시로 들었으나, 윈스톤은 세르펜스의 보호자가 아니다.
그것은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세르펜스는 은밀함을 요구하는 일이었다며, 기사단을 이끌고 갈 수는 없어서 최소한으로 인원을 꾸렸다는 말로 기사들을 이해시켰다.
자신이 늦어서 악숭이 놈들을 막지 못했을 때를 대비한 지시 사항을 한스에게 맡겨 두었다나 어쨌다나.
미리 사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신속하게 움직여 줄 거라 믿고 있었다는 표정 연기는 덤이었다.
‘문제는 그 변명이 윈스톤에게는 해당 사항이 눈곱만큼도 없다는 건데···.’
공작인 자신이 매일 밤 보좌관의 방에서 자는 것에 대한 변명을 마련하지 못한 게 아닐까 한다.
그도 그러할 게, 현재 진행형이니까.
“···시온?”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세르펜스가 의아하다는 듯 나를 불렀다.
“무슨 생각을 그리도 골똘히 하는 건가?”
“어떻게 하면 침대 두 개로 네 사람이 잘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
“그냥 공평하게 모두 침낭에서 자면 되는 것 아닌가?”
세르펜스는 뭐 그런 것 가지고 고민을 하느냐는 듯, 가볍게 대답했다.
아주 큰일 날 소리다.
“절대 안 됩니다!”
“어째서?”
“세르펜스도 들었잖아요? 제가 에일리히 님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세르펜스의 편안한 잠자리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거. 맡겨 달라고 장담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걸 어기게 만들 셈입니까?”
“···그냥 되는대로 내뱉은 말이 아니었나?”
“아닌데요? 완전 진심인데?”
나는 진정성을 가득 담은 눈으로 세르펜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는 잠시 나를 마주 보며 눈을 깜박이다가 고개를 돌리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으니까 내 마음대로 하라는 뜻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나는 냉큼 아공간 주머니에서 침대를 꺼냈다.
“세상에···. 침대를 가져왔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라 진짜였군요?”
유지스가 나의 창의력에 탄성을 흘렸다.
어찌 들으면 기가 막힌다는 듯한 반응이었으나, 그건 내 착각일 것이다.
“그렇다는 건 ‘무슨 일이 있어도’라는 말 또한 진담인가요?”
“무슨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십니까?”
“혹시, 만약에 밖에서 노숙할 일이 생기면···.”
역시 똑똑한 사람이라 응용력이 남달랐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그녀는 벌써 야외에서의 취침 환경을 걱정하고 있었다.
“공작저에 원거리 출정 시 임시 막사용으로 쓰는 커다란 천막이 있을 겁니다.”
“···침대에서 주무실 생각이로군요.”
“아! 날씨가 좋을 때는 별을 보면서 잠드는 게 더 좋으려나?”
“그런 얘기가 아니···었지만, 그건 좋은 생각인 것 같아요.”
유지스의 귀가 쫑긋거렸다.
그녀의 눈부신 태세전환 탓에 윈스톤은 대화의 흐름을 따라오지 못하였는지,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세르펜스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노려보았다.
이상한 사람은 나 한 명으로 족하니 더 이상 늘리지 말아 달라는 눈빛이다.
“그러고 있지 말고, 세르펜스도 빨리 침대나 꺼내 봐요. 그래야 견적을 낼 거 아닙니까?”
제국의 공작쯤 되면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침대에서 자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담아 나는 세르펜스를 재촉했고, 녀석은 마지못해 하며 아공간 주머니의 입구를 열었다.
“···에계?”
아공간 주머니는 고작 킹사이즈의 침대를 뱉어내었다.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크기에 탐탁지 않다는 반응이 절로 튀어나왔다.
세르펜스가 어째서 반응이 그따위냐는 눈빛으로 나를 흘겨보았다.
“모름지기 제국의 공작쯤 되면, 건장한 성인 남성이 열 바퀴가량 구르고 남을 정도로 커다란 침대에서 자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건 대체 무슨 기준인가?”
“이대로는 안 되겠네요. 공작저에 돌아가는 대로 세르펜스의 방을 검문하겠습니다.”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억지를 부리는 건 좋지 못한 버릇이다.”
녀석이 마치 땡깡부리는 어린아이에게 훈계를 늘어놓듯 말했다.
친구를 애 취급 하다니, 어디에서 배워먹은 버릇인지 당최 모르겠다.
“어쩔 수 없네요. 저는 주어진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어른이니까···. 유지스가 제 침대에서 자고, 저희 셋이 세르펜스의 침대에서 자는 거로 하죠?”
“말도 안 되는 소릴.”
“아뇨, 가능합니다! 테트···, 아니 블록 맞추기 놀이처럼, 윈스톤 경이 중앙에 눕고 좌우로 저와 세르펜스가 그의 발 옆에 머리를 대고 누우면 될 겁니다!”
“···내 잠자리를 보장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나?”
사실 나도 말하면서 어렴풋이 느꼈다.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고.
친하지도 않은 사람 옆에서 자는 것도 모자라, 머리맡에 그 사람의 발을 두고 자야 한다?
고역이 따로 없다.
“그냥 내가 바닥에서 자겠소.”
차마 주군의 얼굴 옆에 발을 둘 수 없었는지, 윈스톤이 불편한 잠자리를 자처했다.
‘윈스톤은 복지가 너무 바닥을 쳐서, 잠까지 바닥에서 재우기는 좀 미안한데···.’
세르펜스는 무조건 침대에서 재워야 하니, 남는 건 나뿐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가장 최약체인 내가 차갑고 딱딱한 돌바닥에서 자는 것도 이상하다.
‘···다들 반대하겠지.’
진작에 내 침대를 배정받은 유지스도 이 상황이 불편한 듯 보였다.
그녀는 뭔가 말하고 싶은 듯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들어볼 것도 없다.
차라리 제가 바닥에서 잘 테니 침대를 두고 싸우지 말아 주세요, 뭐 그런 얘기겠지.
“당신은 종종 기발하다 못해 기괴한 발상을 떠올리곤 하는데, 반대로 그 생각에 사로잡히면 시야가 좁아지는 단점이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곰곰이 고민하고 있는데, 세르펜스가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골치 아프다는 듯 말했다.
그의 말에 유지스도 뭔가 짚이는 구석이 있는지 ‘아, 역시.’하고 짧은 탄성을 흘렸다.
“제가 뭘 놓치고 있는 거죠?”
“이곳의 주인이 사용하던 침대가 있을 것 아닌가.”
“그런 게 있다면 즉각 즉각 말했어야지, 왜 이제서야 말하는 겁니까?”
“당신의 발상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남 탓하는 거, 나쁜 버릇인 거 아시죠?”
세르펜스가 지금 누가 할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삐죽였다.
어쨌거나 제3의 침대 덕분에 모든 문제는 원활하게 해결되었다.
윈스톤은 행여나 내가 좋은 침대에서 자라고 세르펜스의 옆자리를 양보할까, 서둘러 전당포 주인의 침대를 선점했다.
2m가 넘는 키 때문에 발이 침대 밖으로 빼꼼 튀어나왔음에도, 그는 무척이나 만족해하였다.
‘그렇게 세르펜스와 한 침대를 쓰는 게 불편했나?’
그렇다고 저대로 자게 두기는 좀 뭣하다.
침대 커버와 이불을 싹 벗겨내고, 내 아공간 주머니에서 굴러다니던 이불을 새로 깔아주었다.
유지스도 배정된 잠자리가 마음에 든 것 같다.
그녀는 벌써 침대에서 뒹굴고 있었다. 아주 바람직한 자세다.
‘세르펜스가 본받으면 좋으련만···.’
녀석은 밖을 돌아다녔던 차림 그대로 침대에 들어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는지, 옷을 갈아입을 겸 씻으러 욕실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욕실 상태는 괜찮을는지 모르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전당포 주인을 프레드릭에게 넘기기 전에, 청소를 시켜놓는 건데···.’
우려와 달리 세르펜스가 더러운 욕실에 놀라 후다닥 도망쳐 오는 일은 없었다.
씻는 문제를 생각해서 이 전당포를 택한 만큼, 청결 또한 꼼꼼히 신경 쓴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리고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녀석이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탈탈 털어내며 창고로 돌아왔다. 보드랍고 뽀송뽀송해 보이는 것이 필시 공작저에서 가져온 수건이리라.
또한 녀석은 잠옷이 아니라 품이 낙낙한 셔츠와 활동성이 좋아 보이는 바지를 입고 있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동네이기 때문에, 여차하면 바로 전투태세로 들어갈 수 있도록 대비한 걸 테다.
‘나는 내내 여기서 뒹굴거릴 생각으로 잠옷만 한가득 가져왔는데···.’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다.
앞으로는 옷장을 통째로 넣어야겠다고 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어째서 침대 위에 침낭이 올려져 있는 거지?”
내가 세르펜스의 옷차림을 스캔하는 동안 녀석은 침대를 확인한 모양이다.
유지스가 꺼냈던 침낭 중 하나가 자신의 침대 위에 떡하니 올라가 있는 모습에, 세르펜스가 의문을 표했다.
“시온이 자다가 실수로 세르펜스를 깔아뭉갤까 봐 걱정된다나 봐요.”
유지스도 씻으러 갈 생각인지 침대에서 꾸물꾸물 일어나며 답변했다.
그 말에 세르펜스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내 험한 잠버릇은 나를 믿고 곤히 잠든 세르펜스를 걷어차고, 이불을 빼앗고, 구석으로 밀어붙일 것이 분명하다.
“자다가 실수로 아이를 깔아뭉개면 얼마나 죄책감에 시달리는지, 세르펜스가 압니까? 우리 엄마는 아직도 술에 취했다 하면, 절 끌어안고 그때 일을 사과하신다니까요?”
나는 기억도 없는 일이건만, 보통 놀랐던 게 아닌 모양이다.
“리벨론 백작가 사람 중에서 시온이 가장 얌전하다는 소문이 정말 사실이었어요?!”
창고 밖으로 나갔던 유지스도 내 목소리를 들었나 보다.
그녀가 부리나케 창고로 돌아와 경악 어린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 그런 소문이 있었소?!”
“네, 윈스톤 님께서는 못 들어 보셨나요? 시온은 어렸을 때부터 유독 내성적이어서, 가족들이 많이 걱정했다나 봐요.”
“···그저 소문일 뿐 아니오?”
“그렇다고 보기도 어려운 게···, 시온의 동생인 제온 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래요. 직접 들은 사람도 한둘이 아니에요.”
유지스가 마치 괴담을 말하는 듯한 어투로 조곤조곤 설명했고, 윈스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래도 헛소문이려니 생각했었는데···.”
두 쌍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세르펜스는 알아서 하라는 듯 고개를 돌려 나를 외면했다.
‘제온도 공작저에서 일하고 있는데, 왜 아직도 그런 소문이 돌고 있는 거지?!’
당연히 모두의 뇌리에서 지워지리라 생각하고 잊고 지냈었다.
하지만 사용인들 사이에 아직도 그런 얘기가 오가고 있는 거라면.
제온의 심기가 불편해 보이면 절대 눈을 마주쳐서는 안 된다는 근무 수칙 따위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나폴리탄 괴담이 따로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