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36)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37화(237/1105)
237회
43.공작님과 암흑가의 악마 (12)
섬뜩한 검붉은 보석은 이상하게도 시선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아름답거나 매혹적으로 느껴져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쾌하고 혐오스러움만 가득하다.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정신 차려라.”
세르펜스가 다급하게 말하며, 내 뒷머리를 꾹 눌렀다.
시야에서 검붉은 보석이 사라지며 회색 돌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급한 마음에 신성력까지 흘려 넣었는지 뒤통수가 따뜻해졌다. 그와 동시에 불안하게 두근거리던 심장이 잠잠해지고, 메스꺼운 감각도 사라졌다.
“모두 정신 차리십시오! 저것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르펜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를 벗어 던지며 소리쳤다.
그에게서 은빛의 신성력이 뿜어져 나와 파동을 그리며 넓게 퍼져나갔다. 동시에 갈색으로 물들었던 그의 청은빛 머리칼도 원래의 색을 되찾았다.
여기저기서 헛바람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녀석이 저런 거에 홀렸을 리는 만무하고···.’
세르펜스는 분명, 보석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내 머리를 눌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감각이 일그러졌었다는 뜻이고, 그 상태로 정말 긴 시간이 흘렀다면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저게 혈옥이구나.’
마석, 흑마석, 신성석은 각각의 기운이 극도로 응축되어 결정화(結晶化)한 결과물이다.
광물이라기보다는 기의 집합체에 가깝다.
그에 반해 혈옥은 피와 살점을 흑마력으로 뭉치고 압축한 덩어리에 불과하다.
흑마법의 매개체로 사용되기도 하고, 악마 소환을 위한 제물로도 사용된다.
악숭이 놈들의 표현에 따르자면, ‘산 제물보다 질은 떨어지나 관리가 쉽고, 휴대가 용이하여 많은 양의 제물을 모으기 간편하다.’라고 한다.
사람이 무슨 악마의 배를 채우기 위한 통조림 사료라도 되는 줄 아나 보다.
자기네들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자각이 있기나 한지 의심스럽다.
“프, 프라시더스 공작님···?”
“바, 방금 그건 뭐였지?”
“신성석···. 신성석은?”
신성력 덕분에 제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세르펜스를 알아보며 웅성거렸다.
일시적인 효과로 차분하게 상황을 살핀 사람들은 이내 경악하며 우왕좌왕했다.
어째서 세르펜스가 이런 곳에 있느냐는 의문부터, 방금 자신들이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관한 질문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레드포드 경은 시온을 보호하십시오.”
세르펜스는 사람들이 당황하거나 말거나, 검을 뽑아들며 단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러면서도 착실하게 내 주위에 보호 결계를 쳐놓고 가는 것은 잊지 않았다.
– 깡─!
유리 케이스째로 혈옥을 베어내기 위해 정확한 궤도로 휘둘러졌던 세르펜스의 검이 흔들렸다.
척 봐도 묵직한 무게를 자랑할 것 같은 쇳덩이가 날아와 검 면을 때린 탓이다.
챙강하는 소리가 나며, 애꿎은 유리 케이스만 깨져버렸다.
녀석은 무리해서 다시 검을 휘두르는 대신 몸을 날려 옆으로 피했다. 그 자리에 파바박 소리를 내며 단검들이 박혔다.
세르펜스가 몸을 피하는 틈을 타, 단검을 던진 놈이 손을 뻗었다.
혈옥은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쏜살같이 날아가 그자의 손바닥에 스며들었다.
마치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아니, 저건 좀 이상한데?’
마법이 아닌 무기를 던진 것으로 봐선 흑마법사가 아니다. 얼굴을 확인하니 어디선가 본 듯 만 듯 아리송하다.
‘아! 암흑가 바지사장이다!!’
새까맣게 변한 흰자위와 얼굴에 문신처럼 새겨진 구불구불한 선들 때문에 알아보기 힘들었다.
역안은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마기를 체내에 받아들인 마인의 특징이었고, 저 마법진 같은 선은 뭔지 모르겠다.
“아, 악마 숭배자다!!”
누군가가 외쳤다.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철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손님으로 위장하고 있던 악숭이들이 경비원 뒤에 숨어, 그들의 보호를 받으며 마력 구속구를 풀어내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들이 자리 잡은 위치가 출구 쪽이었다.
‘역시. 맨 처음 날아왔던 건, 스콜피온이 하고 있던 구속구였나 보네.’
조금도 궁금하지 않던 궁금증이 해결됐다.
경매장의 손님들도 머리가 있는지, 자신의 호위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윈스톤은 세르펜스의 명령에 따라 우직하게 내 곁을 지켰다.
기사들과 경비원이 무기를 뽑아들고 서로 맞부딪혔다. 구속구를 풀기 위한 악숭이들의 손놀림도 다급해졌다.
구속구가 날아온 타이밍을 봤을 때, 스콜피온은 금방에 풀어낸 것 같던데.
과연 암흑가 짬밥은 악마와 계약해도 어디 안 가는가 보다.
“네놈 때문에 다 망쳤어!!”
아무래도 악숭이 놈들이 암흑가 주인의 정체를 스콜피온에게 알려준 모양이다.
다행히 전후 사정을 모르고 들으면 지금 꾸미고 있는 일을 망쳤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사였다.
이제 막 악숭 세력에 붙은 놈이라 선동의 기본을 잘 모르는 듯하다.
하지만 내가 있는 방향으로만 새까맣게 물든 암기들을 던져대는 치사함을 선보이는 거로 봐서, 훌륭한 악숭이로 자라날 싹수가 엿보인다.
“아니, 뭘 다 막고 있어요?! 윈스톤도 지키고 있고, 보호막까지 쳐놨으면서!”
세르펜스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하지만 그는 대답하거나 나와 눈을 맞추는 대신 검을 휘둘렀다.
마치 판타지 배경의 3D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새하얀 검의 궤적이 튀어나오듯 나에게로 날아왔다.
당연하게도 그것이 노리는 것은 내가 아니다.
– 퍼엉!
뒤쪽에서 날아온 흑마법이 허공에서 갈라지며 신성력에 의해 연기로 화했다.
그 모습을 윈스톤이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듯 바라보았다.
나는 무슨 마법이 날아왔는지조차 모르겠지만, 윈스톤은 그것을 알아채고 막으려 했던 모양이다.
‘···나한테 조금만 관심을 끄면 스콜피온 따위는 바로 잡을 수 있는 거 아니야?’
다른 방향에서 날아오는 공격까지 막을 여력을 남기느라 애먹고 있는 게 아닐는지 의심스럽다.
당장은 여유가 있어 보이지만, 앞으로도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공작님! 저희도 좀 도와주십시오!!”
이게 무슨 말 같잖은 소린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를 낸 놈은 띨띨해 보이는 맨얼굴을 전부 드러낸 채, 자신의 호위 기사를 붙든 채 소리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출구를 뚫기 위해 기사를 앞세워 싸우게 하고, 검을 들어 스스로 지키고 있건만.
아주 잘하는 짓이다.
‘얼굴은 왜 까고 있는 건데?’
가만 보니 자문회에서 비슷한 얼굴을 본 것 같다. 자문회 의원의 자식인가?
아버지를 봐서라도 자길 지켜달라, 뭐 그런 건가 보다.
나도 보호받는 처지라 그것을 지적할 자격은 없지만···.
“이야, 이게 누구람? 자문회 의원의 아드님도 와 계시네? 이런 곳에 드나드는 걸 부모님께서도 알고 계십니까? 황제 폐하께서 암흑가를 찾아 없애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자문회 의원이 그걸 알면서도 숨기고 있었다니! 이건 황제 폐하에 대한 반역입니까?”
“예, 예?!”
“잠깐만. 그러고 보니 여기 있는 놈들은 전부 신성석을 돈으로 사려고 온 사람이잖아? 이단인가? 너, 내가 얼굴 딱 기억했다.”
다른 건 맘껏 지적할 수 있었다.
화들짝 놀란 띨띨이가 화려하기 짝이 없는 가면을 얼굴에 뒤집어썼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쿠키 봉투 살생부에 적힌 이름은 곧 네 줄이 될 것이다.
‘다들 얼굴을 가리고 빨리 도망가기 위해 안달인데, 생각이 없어도 저렇게 없을 수가 있나?’
딴 놈들은 염치가 있어서 입 다물고 싸우는 줄 알았나 보다.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 목표겠지만, 그냥 살아남기만 해서는 안 된다.
세르펜스에게 자신의 정체를 완벽하게 숨기고 달아나거나. 그것이 안 된다면 악숭이 처단에 앞장서 공을 세워, 죄를 삭감해야 한다.
더군다나 악숭이 놈들이 출구에 몰려있으니 최선을 다할 수밖에.
경비원의 실력은 기사들에 비해 크게 뒤떨어졌으나, 흑마법사의 지원을 받은 덕에 거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따금 세르펜스와 나에게 마법이 날아오는 것을 생각하면, 저쪽은 악숭이네가 약간 더 우세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쪽은 세르펜스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대체 왜···! 이길 수가! 없는, 거야!!”
스콜피온이 울분을 터트렸다.
잠깐 시선을 돌린 사이에 어느덧 거리가 바짝 좁혀져 있었다.
그 탓에 스콜피온은 나를 공격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세르펜스의 공격을 가까스로 막아낼 뿐이었다.
‘신성력 안 쓰는 세르펜스에게 패배해서 세력을 뺏겼던 놈이, 악마와 계약 좀 했다고 이기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아직 숨이 붙어있는 것이 용하다.
갖고 있던 암기는 다 썼는지, 그냥 마기를 날카로운 칼날 형태로 뭉쳐서 되는대로 쏘아 보냈다.
손에 들린 마지막 단검은 당장에라도 부러질 듯 위태롭다.
“나는 분명 기회를 줬다. ···자, 잠깐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을 빌려주면 이길 수 있어!”
갑자기 스콜피온이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누가 들어도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그 누구도 그딴 말에 설득당하지 않으리라.
그의 얼굴에 그려진 검은 선에서 뭉게뭉게 검붉은 연기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불길하다. 아까 놈이 흡수했던 혈옥도 신경 쓰인다.
‘악숭이 이 새끼들, 살아있는 사람 몸에 악마 소환진을 그린 거야?’
빨리 막아야 한다.
세르펜스도 그것을 눈치챘을 텐데, 어째서인가 묘하게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는 계약을 이행해야 할 때다. ···’그’가 프라시더스 공작이라는 말은 없었잖아!!”
힘을 준다고 꼬셔서 몸에 소환진까지 그린 후에, 세르펜스의 정체를 알려줬나 보다.
암흑가의 보스를 죽이면 이 힘은 네 것이고, 실패하면 네 몸과 영혼은 내 것이다.
대충 그런 느낌의 계약을 맺은 게 아닐까 한다.
명백한 사기 계약이다.
검붉은 연기가 스콜피온의 온몸을 감쌌다. 그러고도 모자랐는지 연기는 계속해서 뿜어져 나왔다.
– 챙─!
신성력이 가득 담긴 세르펜스의 세검과 진득한 마기가 스며든 단검이 맞부딪혔다.
그 충격파로 인해 불길한 연기는 모두 흩어졌으나, 다시 드러난 스콜피온의 표정은 이미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얼굴에 흉측하게 그려졌던 검은 선들이 사라지고 흰자위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반대로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은 어둡고 짙어졌다.
마기를 완벽하게 갈무리했다는 증거이고, 그것을 해낸 자는 스콜피온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좀 바빠서 어쩔 수가 없네?”
악마가 하나도 미안하지 않다는 표정으로 킬킬 웃었다.
여유를 부리는 악마에게 세르펜스가 빠르게 검을 내질렀다.
악마는 마치 연기처럼 흩어지며 열 걸음가량 떨어진 곳에서 잠시 뭉쳤다가, 세르펜스가 휘두른 검에 의해 도로 흩어졌다.
“쿠, 쿨럭-! 이러지 말고 대화를 하는 게 어때?”
악마가 저 멀리 사람들 사이에서 불쑥 나타났다.
연기로 변해도 신성력에 의한 피해는 어쩔 수가 없었는지, 타격을 받은 모습이다.
세르펜스가 바짝 따라붙으려다 인간 장벽에 가로막혀 발걸음을 멈췄다.
“으아악-!”
갑자기 나타난 악마 때문에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며 흩어졌고, 그런 이들의 머리 위로 가느다란 바늘처럼 뽑아낸 마기가 우수수 비처럼 쏟아졌다.
세르펜스가 재빨리 손을 뻗자, 은빛 장막이 넓게 펼쳐지며 사람들을 지켜냈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서 이뤄진 악마 소환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일까?
녀석의 표정은 너무나도 참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