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38)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39화(239/1105)
239회
43.공작님과 암흑가의 악마 (14)
윈스톤은 천성이 바르고 정의로운 사람이다.
[성검의 주인]에서 그가 잘못된 길을 걷게 된 것은 이젠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의 전 주군과 악숭이들 때문이다.처음부터 제대로 된 주군을 만났더라면. 악숭이들이 그를 눈여겨보지 않았더라면.
윈스톤이 그렇게 타락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타락펜스의 계략을 전달받으며 혐오감을 내비치기도 했었지?’
하지만 결국 계획대로 움직이는 윈스톤을 보며, 타락펜스는 모순적인 놈이라 경멸하고 비웃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타락펜스는 그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보고 스스로를 비하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반면에 휴마누스는 그에게서 가능성을 보았다. 어둠 속에 파묻힌 빛을 찾아내 손을 뻗었다.
당신은 그런 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며, 악숭 따위는 그만두고 자신들과 함께하자고 권유했다.
그러나 윈스톤은 그 손길을 거절했다.
자신은 이미 악마와 계약한 마인이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으며, 자신을 구해준 은혜를 저버릴 수 없다는 이유였다.
자신을 한계까지 내몰아간 원수가 악숭이었던 것도 모른 채.
놈들에게 농락당하며, 그들의 충실한 개로서 목숨을 다하였다.
‘악숭이고 악마고 마왕이고, 다들 진짜 왜 사냐?!’
아무튼 윈스톤이 악마의 말에 고뇌할지언정, 그 꾐에 넘어갈 일은 절대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당장 문제는 세르펜스다.
너울대는 물결처럼, 유려한 흐름을 그리던 세르펜스의 검은 여유를 잃고 직선적으로 움직였다.
부드러움은 사라지고 매서움과 날카로움이 검 끝에 서렸다.
‘···저러다 사람 한 명 잡겠는데?’
속도 자체는 더 느려진 것 같은데, 방금까지만 해도 들리지 않던 파공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쐐애액, 거칠게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가 상당히 위협적이다.
검이 목적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강렬한 바람이 상대를 위축시켰다.
스쳐 지나간 자리에 미풍만 살랑거리던 아까와는 천지 차이다.
그 맹렬한 위세를 견디지 못한 경비원들이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응? 수가 언제 저렇게 줄었대?’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서 있는 경비원의 숫자가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흑마법사의 수는 그대로였으나, 그건 어쩔 수가 없다.
여차했을 때 내게 바로 달려올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느라, 세르펜스가 그들 사이로 깊숙이 파고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호위 병력이 많이 줄어든 탓에, 흑마법사들은 빠르게 구성할 수 있는 자잘한 마법진만 그려대고 있었다.
저 정도라면 세르펜스가 위험한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해도 될 것 같다.
“무얼 망설이고 있는가! 어서 그자를 공격해라!”
자신의 편이 실시간으로 줄어들고 있자, 일대일은 쫄린다던 악마가 재차 소리쳤다.
마새는 이번 라인업을 대체 어떻게 구성해놨길래 초장부터 저런 겁쟁이가 튀어나온 건지 모르겠다.
세르펜스를 상대 중인 악숭이들은 얼마나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을까?
저딴 놈을 숭배씩이나 하고 있었다니!
상상만으로도 아득하다.
내가 악숭이었다면 사기가 뚝뚝 떨어지다 못해 땅바닥에 스며들어 사라졌으리라.
‘기사를 끌어들이기 위해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작전인가?’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쳐도 너무 꼴사납다. 저런 놈과 같은 편이 된다면 창피해서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할 것 같다.
스카우트를 받은 당사자는 어떻게 생각하려나 궁금증이 일어, 윈스톤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에 잠겨 있었다.
멀뚱히 윈스톤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내 시선을 느낀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악마의 말이 사실이오?”
“어떤 말이요?”
“주군께서 나를 기사로 받아들인 이유 말이오.”
이러한 질문을 세르펜스가 아닌 내게 하는 이유는 ‘신의 사자’ 설정 때문일 것이다. 예의 그 방법으로 미래를 알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물음이다.
마주한 시선 속에 화나거나 동요한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 이글거리던 황금색 눈동자는 고요하고 차분한 빛을 띠었다.
저런 눈빛을 마주하고 거짓을 말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변명은 해도 괜찮겠지?
“없는 말은 아닙니다. 그래도 변명을 덧붙이자면, 놈들이 윈스톤 경을 다시 바닥으로 끌어 내리기 위해 또 어떤 더러운 계략을 꾸밀지 모르니까. 그 과정에서···.”
“됐소. 그 정도면 충분하오.”
윈스톤이 내 말 허리를 동강 내 버렸다.
변명 따위 듣기 싫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긴 시간 풀어내지 못했던 문제의 해답을 알아낸 듯, 후련해 보였다.
“그래! 그대로 결계를 깨부숴라! 이 자리의 모든 인간을 죽이고 제물로 바쳐라!”
갑자기 악마 놈이 이상한 말을 지껄였다.
경매장 손님 사이에 악숭이가 더 숨어있었던 걸까?
나와 윈스톤은 단상 위를 확인했다. 벽 부수기를 포기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도망갈 기회만을 벼르고 있었다.
어쩐지 싸한 기분이 들었다.
“커헉···!”
듣기만 해도 숨이 틀어막히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세르펜스의 검이 누군가의 복부를 꿰뚫고 있었다. 악마가 장난감처럼 흔들어대던 인질이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당시의 상황이 대강 머릿속에 그려졌다.
세르펜스가 악마의 공격을 피하며 반격을 가하는 순간, 악마가 소리쳤을 것이다.
녀석은 내 안전을 신경 쓰느라 잠시 정신을 팔았고 그 결과가 바로 현 상황이겠지.
‘대체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했더니···.’
윈스톤은 그저 미끼였을 뿐.
처음부터, 세르펜스가 빈틈을 보이도록 유도할 생각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 작전은 훌륭하게 성공한 것 같다.
녀석은 검을 내지른 자세 그대로 놀라서 굳어 버렸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세르펜스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겁에 질린 눈으로 덜덜 떨고 있었다.
완전 무방비 상태다.
‘악마는 어디 갔지?!’
튄 건지, 어디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는 건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 중요한 건 세르펜스다. 그딴 악마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치, 침착하세요! 아직 안 죽었습니다! 천천히 검을 뽑고 치료하면···.”
“커흑-!”
“끄륵···.”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잠깐 사고가 멈춰버렸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더라?’
세르펜스는 공황에 빠진 상태로도 내 말을 듣고 천천히 검을 뽑으려 했다.
하지만 덜덜 떨리는 손은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듯, 녀석은 울상을 지었다.
그 무방비한 모습을 기회로 여긴 경비원 악숭이가 세르펜스에게 달려들었고···.
‘깜짝 놀란 녀석이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서 휘둘렀···지?’
그 후,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고 묵직한 무언가가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아, 저건 확실히 죽었네.”
“흐윽···!”
너무 당혹스러운 나머지 말이 뇌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왔다.
그 말이 도화선이 되어, 세르펜스가 꾹꾹 누르고 있던 울음기가 새어 나왔다.
그렇다. 나는 많은 이들 앞에서 세르펜스를 울려버린 거다.
“서, 선배님···?”
“잠깐만요, 저도 상황 파악 좀 하겠습니다.”
윈스톤이 기괴한 것을 보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불렀으나, 잠깐 대답을 뒤로 미뤘다.
생각해보자.
대외펜스는 아직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
그동안 만난 악숭이는 대부분 알아서 죽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생포했다. 도망친 놈도 하나 있지만 그건 예외.
마물이 넘치는 산맥에서 마물을 학살할지언정, 벌레는 죽이지 못하는 여린 마음씨를 가진 대외펜스의 공식 살인은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이다.
‘보좌관이란 사람이 상처 입은 상사의 마음을 달래주지는 못할망정! 확실히 죽었네 같은 소리를 하고 있으니, 당연히 이상해 보이지!’
하지만 지금 나도 너무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워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아니지,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세르펜스가 내 앞에서 살인만은 하지 않으려 했는데, 비열한 악마 놈의 더러운 이간질과 인간 방패 작전으로 살인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그리고 내가 자신을 두려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녀석이 지레 겁을 집어먹고 울음을 터트린 거다.
‘좋아, 상황 정리 끝!’
지금 세르펜스에게 다가가면 얼떨결에 살해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탓인지, 그 누구도 그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나가도 되려나?’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손을 뻗어 보았다. 안타깝게도 단단한 막이 느껴졌다.
내가 위험이 사라지기도 전에, 멋대로 결계를 나와 싸돌아다니기라도 할 줄 알았나 보다.
세르펜스의 정신이 불안정해지며 결계의 빛이 눈에 띄게 약해졌지만, 내 힘으로 깰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괜히 윈스톤에게 깨 달라고 했다가, 공황에 빠진 세르펜스가 오해라도 하면 큰일 나겠지?’
다시 생각해보니, 악마의 행방이 확실치도 않은데 결계 밖으로 나가는 건 너무 위험한 것 같다.
‘아, 진짜 불안해 죽겠네!’
아직도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악마는 쫄려서 튄 건가?
악숭이들도 슬금슬금 도망가려고 간을 보고 있는 것 같은데, 놓쳐도 되는 건가?
연락 없는 유지스도 걱정된다.
“저, 저기··· 공작님? 세르펜스? 괜찮으니까, 일단 진정하세요.”
“···괜찮을 리가 없잖소.”
세르펜스를 달래보려는데, 윈스톤이 착잡하다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어리둥절한 것도 잠시. 그와 내가 말한 ‘괜찮음’의 주체가 다르다는 걸 이내 깨달았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니, 더욱 힘드실 거요.”
“···그, 렇겠죠.”
“조금 늦었지만, 무기를 드는 자라면 누구나 한 번씩 거쳐 가는 일종의 관례요. 주군께서는 반드시 이겨내실 거라 믿고 있소.”
지금 이 암흑가에서 내 심정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유지스뿐인데, 유지스가 곁에 없다.
윈스톤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지금 이 순간. 아주 잠깐만 유지스와 교체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렇게 보시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악마의 말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예?”
악마가 열심히 지껄인 거라고는 이간질뿐이다.
자신이 악숭 세력에 붙을 일은 없으며, 기사 서약을 철회할 생각 또한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다.
“주군께서 나를 신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전부터 눈치채고 있었소.”
휴마누스가 아닌 이상, 누구든 눈치챌 수밖에 없다.
“그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더이다. 그저 막연하게···. 내 실력이 부족한 탓에 중요한 일을 맡길 수 없어서 그런 것이겠거니, 생각하고 있었소. 하지만 이제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잖소? 조급해할 것 없이 나를 증명하면 되는 문제요.”
무척이나 고마운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들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었고, 나는 지금 세르펜스의 상태가 무척이나 걱정된다.
“주군께서는 자신의 사람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그들이 다치는 것을 염려하여, 주의를 기울이고 경계하시는 것뿐. 의심이 많은 것이 아니잖소이까?”
앞의 말에는 동의하나, 의심이 많은 건 아니라는 말에는 동의를 못 하겠다.
어쩌지?
“그렇기에 주군을 탓할 생각은 없소. 지켜야 할 사람들이 많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오.”
“그 말은 나중에 세르펜스가 정신 차리면 다시 말해주시고, 일단 가서 달래든 데려오든 해주실래요?”
“내 임무는 선배님을 지키는 것이오.”
이상하다.
방금 말하는 걸 들으면 융통성이 넘치는 사람 같았는데, 지금은 또 융통성의 ‘융’자도 찾아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