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4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41화(241/1105)
241회
43.공작님과 암흑가의 악마 (16)
“그런데요, 공작님.”
“아까는 이름으로 잘만 부르시더니, 다시 공작님입니까?”
호칭 실수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할 땐 언제고.
세르펜스가 이제는 공작님이라 부른다고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사람을 해하는 것을 보고 거리감을 느끼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걸 테다.
“남들 앞에서 제가 너무 맞먹은 것 같아서 자체 반성 중입니다. 저희가 친구 먹기로 했지만, 공과 사는 지켜야 하지 않습니까?”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내가 하지 못할 말이라도 했나?
어째선지 세르펜스가 ‘내 보좌관이 이런 말을 할 리가 없는데···?’라는 뉘앙스로 말하였다.
얼굴에 불안함과 초조함이 가득하다.
당장에라도 날 결계에서 꺼내어 머리통을 붙잡고 이리저리 돌려보며, 다친 곳은 없는지, 정신에 이상은 없는지 확인하고 싶어 안달 난 것처럼 보였다.
과민반응이다.
나를 걱정하기보다, 자신이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마땅하다.
“이거, 이거! 혼이 쏙 빠져나가서 아직도 안 돌아오셨네! 진정해요.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어요. 그게 오늘이었을 뿐입니다.”
“······.”
녀석이 무언가 말을 할 듯 말 듯. 입만 벙긋거리다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정작 놀랐을 사람은 나일 텐데, 못난 자신 때문에 티를 못 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빨리 저택에 돌아가고 싶다. 휴마누스랑 유지스는 언제 오려나?
“근데 있잖아요, 공작님. 아까 하려고 했던 말인데···.”
“말씀하십시오.”
“황태자 전하께서 오시면 악마는 확실히 잡는 거죠?”
“예, 그럴 겁니다.”
“그 전에 도망칠 가능성은요?”
“움직임이 있다면 제가 바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는 건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된다.
세르펜스가 넋을 놓고 있을 때 공격하려다가, 되려 살상력이 수직 상승 하는 것을 보고 쫄려서 계속 찌그러져 있는 듯하나···.
‘지금처럼 숨어있기만 하면, 예정된 결말을 맞이할 뿐이지.’
악마는 휴마누스가 오기 전에 기습해 올 것이다. 적어도 2:1보단 나을 테니까.
대신 이번에는 정말 죽자사자 덤벼들겠지.
세르펜스도 그것을 눈치채고 있을 터였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휴마누스가 오면 어쩌고 하며 악마의 불안감을 살살 건드리고 있었다.
‘···이 자식, 화난 건가?’
직접 때려잡고 싶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벌벌 떨면서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느껴봐라. 뭐, 그런 심보 같기도 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악마가 이곳을 빠져나갈 일은 결코 없습니다.”
평소의 대외펜스라면 안심하라는 미소와 함께 부드러이 말했을 텐데.
지금은 결의로 가득 찬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하였다.
없을 거라는 가정조차 아니다. 확고하게 ‘없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느닷없이 내게 손을 뻗었다.
– 콰앙─!!
갑자기 뒤쪽에서 커다란 굉음이 터지며, 어디선가 쩌저적 금 가는 소리가 들렸다.
세르펜스의 손이 신성 결계를 무시하고 들어와 내 손목을 낚아채고 냅다 잡아당겼다.
– 쨍강!
“으악!”
얼마나 빠르게 잡아당겼는지, 몸이 살짝 공중에 떴다. 녀석이 계속 손목을 잡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내동댕이 당해 바닥을 굴렀을 것이다.
발을 땅에 디디고 겨우 균형을 잡은 후 내가 서 있던 자리를 돌아보았다.
‘호랑이는 제 말 하면 온다던데, 악마는 한술 더 떠서 공격까지 하네?!’
더는 세르펜스가 인간을 상대로도 망설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탓일까?
악마는 그릇의 형태를 잡아먹고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윈스톤의 정수리를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덩치. 눈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새까만 몸은 명확한 형태를 이루지 않은 채 일렁거리고 있었다.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연기는 마치 공장 굴뚝에서 솟아나는 매연을 연상케 하여, 보기만 해도 공기가 텁텁하게 느껴졌다.
세르펜스는 내 앞에서 악마의 공격을 막아냈다.
은색의 빛을 뿌리는 얇은 세검이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육중한 주먹을 가로막았다.
검이 주먹을 감싼 마기를 베어내고 안으로 파고들자, 그것은 바로 형태를 흐트러뜨리고 안개가 되어 우리를 덮쳤다.
“흡-!”
본능적으로 숨을 멈췄으나, 필요 없는 행동이었다.
세르펜스가 나를 옆구리에 끼고 뒤로 훌쩍 물러났으니 말이다.
‘아니, 뭐···. 그래. 당연히 날 노리겠지, 응···.’
인질을 방패 삼아 휘둘러도, 세르펜스는 요리조리 피해서 공격을 시도했었다.
고의는 아니지만 이미 인질을 한 번 푹찍한 뒤다. 두 번 못할 것은 없었다.
하물며 푹찍 당한 놈이 멀쩡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으니. 다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죽지 않는 한도 내에서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세르펜스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그에 반해 나를 대할 때는 어땠는가.
안전을 거듭 확보하고도 계속해서 불안감을 내비쳤다. 인질로서 완벽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
장담컨대, 내가 악마의 손에 들려있었다면 세르펜스는 검을 들 수조차 없었을 거다.
‘아, 속 메스꺼워···.’
그렇지 않아도 속이 울렁거렸는데, 세르펜스에게 들려서. 그것도 배가 압박되는 자세로 마구 흔들리니 정말 죽을 맛이다.
악마는 마기를 두르고 물리력을 행사하여 정면으로 공격하다가도, 얌체같이 나를 향해 마기를 쏘아 보내기도 하고. 세르펜스의 검이 휘둘러질 때면 안개처럼 흩어져서 우리를 향해 돌진했다.
안개가 호흡기에 침투하더라도 세르펜스는 신성력으로 대처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세르펜스는 검을 크게 휘두르며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진짜 너 죽고 나 죽자, 딱 그 상탠데?!’
아까 전만 해도 방정맞게 나불거리던 주둥이는 기화되어 사라지기라도 했는지, 악마는 말없이 덤벼들 뿐이었다.
적당히 방어하며 빈틈을 노리던 전략은 이미 버린 듯하다.
그렇다고 세르펜스가 막고 피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안개로 이루어진 악마의 몸은 아무리 베어도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녀석이 검을 휘두르는 데 주저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세르펜스의 검에 깃든 신성력이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꽃처럼 어른어른 피어올랐다.
파괴력과 절삭력은 크게 떨어지겠지만, 자유자재로 몸을 안개로 바꾸는 악마를 상대하려면 신성력이 닿는 면적을 넓히는 편이 더 유리하다.
“크으윽···!”
입도 없는데, 악마가 신음을 흘렸다.
세르펜스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악마의 공격을 피하다가도, 돌연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움직임에 거침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악마를 이루고 있는 입자는 점차 소모되었고, 내 위장은 요동치며 날뛰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우읍···. 으읍, 윽···.”
슬슬 한계가 다가왔다.
그리고 한계를 맞이한 것은 나뿐만이 아닌 듯하다.
만일 죽을 각오를 다 해서 온갖 치사한 수를 써가며 공격했음에도, 상대에게 조금의 피해도 끼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의 삶은 사그라드는데, 상대방은 멀쩡하다면.
그리고 시시각각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면.
이제는 어린아이만 한 크기가 되어버린 안개 악마는 출구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도주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항거할 수 없는 힘 앞에서 악마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뿐이었다.
세르펜스는 한계점에 도달한 나를 윈스톤에게 던지다시피 떠넘기며, 힘차게 땅을 박찼다.
긴 꼬리를 끌며 움직이는 혜성처럼, 청은색의 긴 머리를 휘날리며 날아갔···을거다.
안타깝게도 그 모습을 나는 보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웨엑─···.”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하였다.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속으로 버틸 수 있다, 버텨야 한다를 수도 없이 되뇌며.
흔들림을 최소화하기 위해 몸을 웅크려 팔꿈치와 허벅지로 세르펜스의 팔을 꽉 붙들었다.
그렇게 버텨내고 참아왔으나.
아무런 대비도 못 하고 던져지는 바람에. 윈스톤과 부딪히며 받은 충격 탓에.
결국, 둑은 무너져내렸다.
“괘, 괜찮···소?”
윈스톤이 자신의 품에서 토를 하는 내 등을 조심스레 토닥이며 물었다.
이런 선량하고 정의로운 기사의 충심을 의심하다니, 이런 매정펜스!
‘세르펜스 이 자식! 설마 내가 한계에 다다른 걸 알고 윈스톤에게 떠넘긴 건 아니겠지?’
타당한 의심이다.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같은 생각을 했을 거다.
더욱 용서할 수 없다.
“죄소으웨에···.”
“···아, 아니오. 괜···찮소.”
괜찮다고 답하는 윈스톤의 음성이 어째 해탈한 것처럼 들렸다.
그렇게 열심히 아까 먹은 도시락을 게워내고 있는데, 등 쪽에 윈스톤의 것이 아닌 또 다른 손이 얹어졌다.
바로 속이 안정되는 것이 느껴진다.
“괜찮으십니까?”
세르펜스였다.
나는 윈스톤의 가슴에서 머리를 떼어내며 그를 노려보았다. 눈빛을 받은 녀석이 흠칫 어깨를 떨었다.
너무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손을 꼼지락대며 울멍울멍한 표정을 짓는다.
익숙한 얼굴이다. 이제 저런 수에 쉽게 넘어갈 내가 아니다.
하지만 지켜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이번만 넘어가 준다, 진짜! 다음번엔 국물도 없을 줄 알아라!’
속으로 다음을 기약하며, 나는 소매로 입가를 문질러 닦았다.
“악마는요?”
“다 끝났습니다.”
세르펜스의 말에 여기저기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 콰앙!!
출입문도 터졌다.
문 너머에는 유지스와 휴마누스를 위시한 성검 일행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다들 괜찮으세요?!”
“세피! 나 왔어!!”
유지스는 우리의 안부를 확인했고, 휴마누스는···.
성검을 뽑아들고 있지 않았다면 놀러 왔다고 착각할 뻔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주변에 악마가 남아있는지 확인해주시겠습니까?”
“설마 놓친 거야?!”
“잡아내긴 했으나, 소환된 악마가 안개로 변하는 능력을 갖춘 터라···. 성검의 힘으로 확실하게 확인해주시길 바랍니다.”
세르펜스는 휴마누스의 인사를 정당하게 무시하며, 다짜고짜 일부터 시켰다.
채근하는 듯한 어투에, 휴마누스는 어어 하다가 성검을 양손으로 고쳐잡으며 눈을 감고 집중했다.
그러는 동안 세르펜스는 유지스와 대화를 나눴다.
“유지스야말로 괜찮으십니까? 아무 연락도 없으셔서, 시온 경이 걱정이 많았습니다.”
“시온 만이요? 세르펜스는 제 걱정 안 하셨나요?”
“저도 많이 걱정했습니다.”
계략펜스가 계획대로라는 속내를 숨기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녀석은 괜찮으냐는 질문의 답을 피하려고 나를 팔아먹었다.
일부로 나를 콕 집어 말한 후, 유지스의 관심을 그쪽으로 돌려버린 거다.
“윽···. 이게 무슨 냄새야?”
어디서 코맹맹이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난 방향을 확인하니, 아니마가 코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 윈스톤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손에 들고 있던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마력의 실이 허공에 수를 놓았다.
순식간에 마법진이 완성되었고, 그것은 푸른 바람이 되어 나와 윈스톤의 몸을 휘감고 사라졌다.
내가 게워낸 토사물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축축하게 젖었던 옷이 막 빨래하고 건조기까지 돌린 것처럼 뽀송뽀송하고 산뜻해졌다.
위대한 마법 앞에 질량 보존의 법칙은 명함도 못 내밀고 그대로 귀가했다.
놀라운 이적을 행한 그녀는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자신의 키보다 큰 스태프를 한 뼘 크기의 작은 막대기로 줄여서 소매 안에 집어넣었다.
“감사합니다!”
“고맙소이다.”
“으···, 거기 당신은 입이나 좀 헹궈요.”
나와 윈스톤이 감사를 표하자, 아니마는 도망치듯 한 걸음 물러나며 리에나의 등 뒤로 모습을 감췄다.
감사의 인사는 됐으니, 자신의 몸부터 챙기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까 입 벌렸으면 가글까지 해줬으려나?’
앵콜을 요청하기엔 아직 그녀와 데면데면한 사이다.
어쩔 수 없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물을 꺼내 우글우글 입안을 헹궈냈다.
“아니마 님께서 나쁜 의도로 하신 말은 아니에요.”
리에나가 자신의 등 뒤로 숨은 그녀를 대신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하였다.
“예, 저도 알아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검의 주인]을 통해 아니마가 어떤 사람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그녀가 낯선 사람을 피하고 공격적으로 말하는 것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본능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