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41)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42화(242/1105)
242회
44. 공작님과 암흑가 후일담 (1)
“그래서 시온은 결국···. 누가 들고 뛴 거죠?”
유지스가 질문했다.
유력 용의자는 세르펜스인데 토사물을 뒤집어쓴 사람은 윈스톤이었으니.
어떤 악마가 나타나서 어떤 식으로 전투를 치렀는지 보다, 그쪽이 더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그게 결정적인 원인이 되긴 했지만···.’
다른 가능성보다 그것을 먼저 떠올리고 단정 지을 줄은 몰랐다.
세르펜스에게 ‘나를 들고 싸웠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불상사’를 예고했던 것이, 엉뚱하게도 유지스의 뇌리에 깊이 박혀버린 듯했다.
‘그래도 저기에 시체가 버젓이 있는···, 어?’
이제 보니 버젓이 있는 건 아니었다. 세르펜스가 벗어 던진 겉옷이 시체를 덮고 있었다.
무의식중에 그쪽을 보지 않으려 하다 보니, 그걸 이제야 발견했다.
별거 아니라면 별거 아닌 행동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사소한 배려가 더 큰 감동을 주기도 한다.
‘아, 이러면 이따 혼낼 때 마음 약해져서 안 되는데···.’
따지고 보면 나를 배려하느라 벌어진 일이다.
좋게좋게 타이르자는 자아와 한 번쯤은 따끔하게 혼내줘야 한다는 자아가 머릿속에서 싸우기 시작한다.
골치 아파졌다.
“멀미하셨던 거 아니에요···?”
내가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자, 유지스가 걱정스럽다는 듯 질문했다.
어차피 당장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고민은 나중으로 미뤄야겠다.
“맞아요, 멀미. 공작님께서 절 들고 싸우시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윈스톤 경에게 던졌죠.”
“······.”
“일부러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악마가 도망가려 하기에 급하게 쫓아가려다···.”
유지스가 입을 떡 벌리며 세르펜스를 바라보았고, 녀석은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우물쭈물 변명했다.
그녀의 시선이 이번에는 나를 향했다. 녀석의 말이 정말이냐고 묻는 걸 테다.
나는 잘 모르겠다는 의미로 어깨를 으쓱였고, 세르펜스의 눈썹이 팔(八)자를 그렸다.
“그런데 이런 곳에 보좌관은 왜 데리고 온 거야?”
세르펜스를 골리고 있는데, 악마 탐지를 끝낸 휴마누스가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
휴마누스 주제에 예리한 질문이다.
“결과는 어땠습니까?”
“응? 악마 탐지 말이지? 아무것도 없었어.”
“다행입니다. 오늘은 악마 숭배자들의 신변을 넘겨야 하니, 이곳의 조사는 나중으로 미루고 이만 수도로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휴마누스의 질문은 바로 묵살당하였다.
눈치는 없지만, 일의 우선순위는 알고 있는 휴마누스가 나에게서 시선을 떼고 주위를 살폈다.
“저기 묶여있는 놈들이 악마 숭배자인 거지?”
“네, 맞습니다.”
“그럼 다른 놈들은 뭐야?”
“경매장에 손님으로 참가하신 분들입니다.”
“평소에도 암흑가를 드나들었던 놈들이란 거네?”
휴마누스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성검의 주인]에서 휴마누스는 암흑가의 존재만으로도 화를 냈었다. 이런 곳을 방치한 정도가 아니라 향락을 즐기던 사람들을 곱게 볼 수 없는 걸 테다.“하지만 악마 숭배자들을 제압하는 데 도움을 주셨습니다.”
“세피, 너는 마음이 너무 넓어서 탈이야.”
너무 마음이 넓은 나머지, 독자들에게 때때로 고구마를 선사하며 호구 소리를 들었던 휴마누스가 내로남불을 시전했다.
“이곳에 계신 모두가 나쁜 마음으로 이곳을 찾은 건 아닐 겁니다. 신성석이 경매에 올라온다는 소문을 듣고, 그것이 욕심 많은 자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교단에 전해주기 위해 오신 분이 계실지도 모르잖습니까?”
세르펜스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나는 이 세상 사람들이 선하다는 것을 믿고 있어요!’라는 뉘앙스로 말하였다.
그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인지는 세르펜스를 포함,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신성석?! 그런 게 올라왔어?”
“악마 숭배자들이 제국의 귀족을 유인하기 위해 거짓으로 퍼트린 소문입니다. 암흑가와 관련 없는 이들에게도, 이곳으로 들어오는 방법과 신성석에 관하여 이야기를 흘렸을 소지가 다분합니다.”
“그···건 그러네.”
“그자들의 목적은 제국의 힘을 약화하는 데 있습니다. 신성석은 그것을 위한 미끼이며, 이분들을 내치는 것이야말로 악마 숭배자들이 가장 바라 마지않는 일입니다.”
세르펜스의 말에 휴마누스가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갈등된다는 표정으로 경매장 손님들을 노려보았다.
“모두 자진해서 악마 숭배자들과 맞서 주셨습니다. 그런 분들께서 암흑가 따위를 드나들며, 신성한 물건을 관상용 보석처럼 취급하실 리 없잖습니까?”
대외펜스가 ‘나는 여러분을 믿고 있어요.’라는 시선으로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천사 같은 순수한 얼굴로 그들의 양심을 마구잡이로 파헤쳤다.
“알았어, 오늘은 세피를 봐서 그냥 모르는 척해 줄게.”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인사치레는 됐어. 제국을 생각하는 건 내 일이니까. 신경 써 줘서 내가 더 고맙지.”
그렇게 말하며, 휴마누스가 버릇처럼 세르펜스에게 어깨동무를 하려다 멈칫했다.
지난번에 세르펜스가 한 말이 여간 충격이 아니었나 보다.
평생 고쳐지지 않을 것 같았는데, 이렇게 바로 반응이 올 줄이야.
이래서 사람들이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충격 요법을 사용하는가 보다.
“크흠! 그 대신 나중에라도 암흑가에 드나들었다는 증거가 잡힌다면 그땐 어림도 없으니까, 다들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휴마누스는 갈 곳을 잃은 손을 입 앞으로 가져와 헛기침하며, 괜히 경매장 손님들에게 윽박질렀다.
다들 지은 죄가 있으니 고개를 푹 숙이며 알아서 기었다.
그중 유난히 눈에 띄는 사람이 한 명 보였다. 그자는 슬쩍 뒤로 물러나, 다른 사람의 등 뒤로 자신의 모습을 숨겼다.
“아! 아닌 사람도 있어요! 저기 화려한 가면 쓰신 분! 남들 다 싸우는데 혼자 자신의 몸만 챙기고, 공작님께서 마인과 싸우는데 자신을 지키지 않고 뭘 하냐고 바락바락 소리 질렀습니다!”
“뭐?! 그런 악마 숭배할 놈이 있다고?”
내 고자질에 휴마누스의 눈이 도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신성석을 사면 집 안 은밀한 곳에 전시해 둘 거라고 떠드는 사람도 있었는데···. 자문회에서 들었던 모슬리커 백작님의 목소리랑 완전 똑같았습니다.”
“내가 언제 그···, 흡!”
모슬리커 백작이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냈다가, 급하게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세피, 설마 저런 자들까지 봐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네, 전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그렇게 모슬리커 백작과 이름 모를 귀족 자제는 악숭이와 한데 묶이는 신세가 되었다.
살생부에 적혀있던 다른 두 명의 이름도 찌르고 싶었지만, 같은 수법에 걸릴 사람은 없을 거다. 제일 시끄러웠던 사람을 치워버린 것으로 만족하자.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세르펜스를 바라보자, 녀석이 눈을 지긋이 깜박였다.
잘했다는 칭찬이다.
“그, 그럼 저희는 이만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이대로 남아있다가는 똑같은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걸까?
누군가 인위적으로 낮춘 목소리로 어색하게 말하였다.
“아, 참. 게이트가 전부 망가져 버렸는데, 괜찮겠어?”
휴마누스가 뒤늦게 떠올랐다는 듯 말하며 그들을 불러 세웠다.
당연하게도 ‘네, 저는 비밀 출입구를 알고 있으니 괜찮습니다!’라고 외치는 머저리는 없었다.
애초에 출입구의 존재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았으니, 진짜 몰라서 입을 다물고 있는 걸 수도 있겠다.
여기저기서 갇힌 것 아니냐는 불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휴마누스는 대체 뭘 했길래, 게이트가 파괴되도록 내버려 둔 거야?’
성검의 주인씩이나 되어서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
“밖으로 통하는 길이라면 제가 알고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함께 나가면서 악마 숭배자들의 이송을 도와주시겠습니까?”
어째 게임 NPC의 퀘스트 대사를 일부 발췌한 것 같은 멘트다.
암흑가를 빠져나가기 위한 필수 퀘스트였기에, 세르펜스의 제안을 거절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것도 일루미나티에서 전해준 정보야?”
“그 얘기까지 들으셨습니까?”
“응. 그래서 당연히 일루미나티 사람들도 와 있을 줄 알았는데···. 설마 세피, 너한테만 일을 떠넘기고 도망간 건 아니지?”
휴마누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순진한 세르펜스가 어디서 수상쩍은 단체에 속아 호구짓을 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는 듯한 어투였다.
일루미나티의 일원이 전부 와 있음에도 이런 오해를 받아야 한다니!
이것이 바로 비밀 결사 단체의 비애라는 걸까?
“적어도 암흑가의 주인이라는 다크 엘프는 이 자리에 있어야 하잖아.”
백번 옳은 소리다.
휴마누스의 말에 유지스가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보인다.
지금이라도 몰래 빠져나가서 분장하고 와야 하나 고민하는 듯하다.
“그게···. 그분의 생사가 불확실합니다.”
“네에?!”
세르펜스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슬픈 목소리로 입을 열었고, 난데없이 생사가 불확실해진 유지스가 깜짝 놀라 비명처럼 반문했다.
윈스톤도 소리만 지르지 않았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해대는 세르펜스의 모습에 눈을 크게 떴다.
“가야 할 길이 머니, 가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그래···.”
침울한 목소리로 말하는 세르펜스의 모습에 휴마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기절한 악숭이들을 깨우고 경매장 밖으로 나왔다.
바깥의 풍경은 그야말로 삭막한 폐허 그 자체였다.
거리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문이란 문은 죄다 억지로 잡아 뜯거나 활짝 열려있었고, 그 사이로 언뜻언뜻 집기들이 부서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돈 되는 물건들은 당연히 없었다. 한 차례 폭도들이 쓸고 지나간 것 같다.
“유지스, 대체 무슨 일이···.”
“암흑가 주인의 생사가 불투명하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있었는지는, 이따가 다시 물을게요.”
유지스는 그것을 설명해 줄 정신이 아닌 것 같다.
나는 나중을 기약하며 세르펜스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분의 밑에서 암흑가를 관리하던 자가 마인이 되어 나타났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암흑가의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이 이상하다 했더니···. 아마도, 높은 확률로 그자에 의해···.”
“그, 그럴 리가 없어요!”
더는 말을 잇기 힘들다는 듯, 세르펜스가 말끝을 흐리며 씁쓸하게 말했다.
유지스는 그것을 격렬하게 부정했다.
“암흑가의 주인도 한패였던 거 아니야?”
“그건 아니에요!”
“제가 만나본 바, 그럴 분은 아니셨습니다.”
못마땅하다는 휴마누스의 반응에 유지스가 울상을 지었다.
세르펜스도 유지스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암흑가의 주인 또한 그자를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필요 때문에 수족으로 부리고 있기는 하나, 언제든 배신할 수 있는 암흑가의 사람이라 지칭하였습니다. 그러다 결국···.”
“희, 희망을 가져요! 마인과 싸워서 크게 상처를 입었을지언정, 분명 살아계실 거예요! 암흑가를 제패한 분이잖아요? 그 정도면 만약을 대비해서 몸을 피할 수 있는 계책 몇 가지쯤은 준비해 두셨겠죠!”
다 쓴 설정을 폐기하려는 자와 재활용하려는 자의 싸움이다.
설정값이 마음에 들었는지 간절한 표정으로 반박하는 유지스를 바라보며, 세르펜스는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유지스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제가 너무 섣불리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네, 살아계실 겁니다. 그렇게 믿는다면, 분명···.”
스콜피온의 주점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세르펜스가 아련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렇게 암흑가 주인의 생사는 열린 결말을 맞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