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4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43화(243/1105)
243회
44. 공작님과 암흑가 후일담 (2)
“응? 아까는 마인이 아니라 악마가 나왔다고 하지 않았었나? 나리 혼자서 놈들을 다 잡으신 겁니까?”
우리보다 두세 발자국 뒤에서 따라오던 푸로르가 의문이 들었는지, 불쑥 질문을 던졌다.
그녀의 질문에 세르펜스가 씁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떨궜다.
“악마가 소환된 건, 순전히 저의 실수입니다.”
“예? 실수라니···.”
“뭐어?! 세피가 실수를 했다고?!”
푸로르의 반문은 휴마누스의 목소리에 의해 묻혀버렸다.
얼마나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는지, 멍하니 걷고 있던 아니마가 깜짝 놀라 넘어질 뻔했다.
“악마는 그 마인의 몸을 그릇 삼아 소환되었습니다. 악마 숭배자들은 그자의 몸에 악마 소환진을 그려놓고 제물로 쓸 혈옥까지 마련해 놓는 등, 악마 소환을 위한 모든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습니다.”
“사람 몸에 마법진을 그려놓는 게 가능한 거야?”
휴마누스가 세르펜스의 설명을 잠시 끊고 아니마를 돌아보며 질문했다.
휴대폰 배터리 관리를 잘못해서 퇴근길에 아무것도 못 하고 멍 때리는 직장인처럼. 넋을 놓고 있던 아니마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가능은 해. 단지 그것을 새기는 과정이 고통스럽고, 마법이 발동되면 마력은 물론 생명력까지 빨아먹어서 그렇지. ‘살아 있기 때문에’ 마나의 흐름이 정체되어 있지 않으니까, 마법진을 활성화하는 면에서는 무생물에 새기는 것보다 나을걸?”
“그런 식으로 마법이 쓰인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데···?”
“마탑에서는 엄격하게 금하고 있으니까.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니더라도,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마법을 새기는 건 금기야.”
아니마가 듣기만 해도 혐오스럽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치만 몸에 마법진 하나 정도 새겨놓고 있으면 여차할 때 구명줄이 되지 않을까?”
금기라는 말을 듣긴 했는지, 푸로르가 살짝 구미가 당긴다는 표정으로 넌지시 아니마에게 말을 건넸다.
과연 여벌 목숨에 목숨 거는 용병 출신답다.
그녀의 말에 아니마의 얼굴이 더욱 구깃구깃해졌다.
“아예 마법 실험체가 되고 싶다고 떠들고 다니지 그래? 인위적으로 흐름을 뒤틀고 없어야 할 길을 새로 만드는 짓이야. 마법을 발동시키지 않는다고 해도 조금씩 신체에 균열이 생기고, 갈수록 벌어져서 결국에는 깨진 유리처럼 조각나고 말걸?”
“중요한 전투를 앞두고 잠깐 일회용으로 새기는 것도 안 되나···?”
“단기간 내에 쓴다는 가정하에 한두 번쯤은 견딜 수 있겠지만, 그딴 식으로 쓸 거면 차라리 스크롤을 사는 게 낫지. 뭐 하러 고통을 느끼고 몸을 축내면서 마법진을 새기겠어? 그딴 건 생명을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흑마법사나 할 짓이야.”
“···그건 그러네.”
아니마의 이어진 설명에, 푸로르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쩝 입소리를 내며 손바닥으로 목 뒤를 쓸었다.
그 모습을 본 아니마가 흥,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팩 돌려버렸다.
“아, 미안. 얘기가 좀 샜네. 아무튼 그래서?”
스피드 웨건 아니마의 설명이 끝나자, 휴마누스가 다시 세르펜스에게 말을 붙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동안 감정선이 다 무너져 버렸겠지만, 연기펜스의 연기는 누르면 나오는 자판기 저리가라다.
녀석은 곧바로 슬픈 표정을 만들어 냈다.
“만약···. 제가 그자를 바로 죽였···더라면, 악마는 소환되지 않았을 겁니다.”
“어···?”
“하지만 저는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상대가 마인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자에게 검을 겨누고 그 목숨을 끊는 것을 망설이고 말았습니다. 단지 한때는 사람이었고, 사람의 거죽을 쓰고 있다는 이유로···.”
“그, 그러고 보니···. 세피, 너 한 번도 없었구나.”
목적어는 필요 없었다.
휴마누스의 말에 세르펜스가 처연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내가 그러했듯. 유지스는 세르펜스의 저 행동이 연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가 안타까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뭘 그런 거 가지고 자책하고 그래? 원래 처음은 다 그런 거야. 나도 참 힘들었지···. 세피, 너처럼 마음이 여리고 생명을 소중히 하는 사람에겐 더욱이나 그랬을 거야. 이해해.”
“···그게, 답니까?”
세르펜스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악마가 대륙에 소환되도록 내버려 둔 자신을 어째서 비난하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녀석의 반응에 휴마누스가 당황해하였다.
“응? 악마가 소환되긴 했지만, 큰 피해로 번지기 전에 네가 잡았잖아? 누구나 실수는 하는 거야.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거고, 너는 그것을 해결했잖아. 뭔가 문제 될 게 있나?”
“······.”
“그나저나 세피, 너도 실수라는 걸 하긴 하는구나? 항상 완벽한 줄로만 알았는데···. 인간적이고 보기 좋네!”
휴마누스가 화통하게 웃으며 세르펜스의 등을 손바닥으로 짝짝 두들겼다.
세르펜스는 아까 겉옷을 벗은 탓에 얇은 셔츠차림을 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참으로 찰진 소리가 울렸다.
‘감히···! 나도 애지중지 키우느라 토닥토닥 다독여준 것이 전부인 세르펜스의 귀한 등짝을 저렇게나 무자비하게 때린단 말이야?!’
아무리 좋은 말을 하고 있다고 한들 울컥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런 내 기분을 눈치챈 것인지, 잠자코 맞아주던 세르펜스가 몸을 비틀어 휴마누스의 손길을 피해냈다.
폭력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휴마누스는 몸을 피하는 녀석을 막지 않았다.
“혹시 악마 소환에 희생된 사람들 때문에 그래?”
자신이 불편해서 피했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듯 했다.
이 눈새를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세르펜스 또한 도무지 모르겠다는 눈치다.
“하지만 놈들이 혈옥을 가지고 있었다며.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이미 벌어졌던 일 때문에 네가 자책할 필요는 없어. 앞으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다짐한다면 몰라, 불가능한 일로 자신을 몰아가는 건 좀···. 자만이지 않을까?”
“으음···.”
날 걱정하느라 혈옥이고 나발이고, 그런 생각은 단 1분 1초도 하지 않은 겸손펜스가 침음을 흘렸다.
‘···헛다리를 짚긴 했지만, 말하는 걸 보면 주인공답긴 하네.’
룩스메아가 성검의 주인으로 휴마누스를 뽑은 건 썩 괜찮은 인선이다.
성검에 눈치 향상 버프만 걸려있었더라면 훌륭했을 텐데.
“이제야 막 시련을 끝냈을 뿐인 내가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선택의 날이 오기 전까지, ‘우리’가 네게 얼마나 많은 짐을 지우게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
“···예?”
“작년 한 해 동안 내 곁에 동료가 있어 줘서 다행이다, 혼자서라면 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몰라. 동료들과 함께였기에 극복할 수 있었던 순간이 몇 번이고 찾아왔지. 그럴 때마다, 네 생각이 나더라.”
쑥스럽다는 듯 볼을 긁적이며 말하는 휴마누스를, 세르펜스는 ‘네가 뭔데 내 생각을 해?’라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물론 표정만큼은 진지하게 경청하는 체했다.
“내가 동료들과 함께 나누어 드는 무게를 그동안 너는 혼자서 짊어지고 있었구나 생각하니,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런데도 선뜻 먼저 손을 내밀어 줘서 고마워.”
“네···?”
세르펜스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녀석은 자신이 휴마누스에게 손을 내민 적이 있던가 속으로 곰곰이 곱씹어 본 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왜, 선택의 날에 네가 말했잖아.”
휴마누스의 말에 세르펜스의 ‘그 발언’이 먼저 떠오른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선택의 날, 그곳에서 있었던 사건을 아는 이라면 누구나 같은 것을 떠올렸으리라.
어쩔 수 없다. 불가항력이다.
‘마치 휴마누스가 아직인 것처럼.’
세르펜스도 나와 같은 것을 떠올렸는지, 표정이 미묘해졌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눈썹을 모으며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누가 보아도 난감해하는 얼굴이다.
“부끄러워하기는···!”
“······.”
나와 세르펜스가 무엇을 떠올렸는지 안다면 부끄러워지는 건 자신이라는 걸 모르나 보다.
“성검의 주인 혼자 모든 짐을 짊어질 필요는 없다는 말. 그리고 성검의 주인에게 모든 걸 내맡긴 채 손을 놓고 있지 않겠다는 그 말.”
“아···.”
휴마누스의 첨언에 세르펜스가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녀석은 그럴 생각으로 한 말이 아니었겠지만, 휴마누스가 듣기에는 세르펜스가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줬다고 생각할 만했다.
“당시에는 그냥 당당하고 멋지다, 역시 세피는 책임감 넘치네, 고맙다. 그런 생각뿐이었는데···. 혼자서 짊어지기엔 너무 힘들고 무겁다는 걸 알아서 그런 말을 했던 거구나. 내가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도록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거구나···. 그걸 최근에야 깨달았지 뭐야?”
세르펜스의 그 말을 휴마누스가 그렇게 받아들였을 줄은 몰랐다.
그저 이미지 관리를 위해 자기변호에 힘썼던 세르펜스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옛 성현의 말씀에 따라, 수줍은 미소를 꾸며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면전에서 퍼부어지는 칭찬에 부끄러워하는 줄로만 알 거다.
‘완전 착각물 소설이 따로 없네, 따로 없어!’
리에나는 양손을 모으며 세르펜스를 향해 존경의 눈길을 보냈고, 푸로르의 입에서 ‘오오···!’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유지스는 세르펜스의 과거를 떠올렸는지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훔쳐냈으며, 윈스톤은 자신의 주군을 자랑스러워하며 가슴을 활짝 폈다.
“지금은 네게도 믿을 만한 동료가 함께해서 다행이다.”
조금 전에 그 동료를 못 믿어서 사달이 났던 세르펜스가 땅을 보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나도.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네 친우니까, 얼마든지 믿고 의지해도 괜찮아.”
“······.”
긴 시간, 휴마누스가 삽질한 만큼 감정의 골이 깊어진 탓일까?
보통 이쯤 되면 흔들릴 만도 한데, 세르펜스는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그저 흐릿한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다.
그리고 잠시 대화가 끊겼다.
세르펜스가 휴마누스의 말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은 탓이기도 하나, 그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전투의 흔적 탓이리라.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세르펜스는 조금 전까지 대화를 나누던 휴마누스를 건너뛰고 유지스에게 질문했다.
“경매 시작 시각으로부터 한 시간가량 흐른 뒤, 게이트를 통해 이분들께서 들어오셨어요.”
한 시간 뒤면 경매가 막바지에 올랐을 즈음이다.
혹시 세르펜스가 일부러 그 시간대를 알려 준 것인가 싶어 눈으로 질문하자, 녀석이 눈을 빠르게 깜박여 부정했다.
“그때 한 번 연락을 드릴까 했는데, 곧이어 다섯 개의 게이트를 통해 사람들이 동시에 나타나더니, 갑자기 터져버리지 뭔가요?”
“사람들이 터졌다고요?!”
뜬금없는 기승전 폭발 엔딩에 나도 모르게 기겁해서 소리쳤다.
내 비명 같은 고함에도 유지스는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마 님의 설명에 따르면 그들의 몸에는 흑마력이 심어져 있었고, 특정한 파동의 마력에 노출되었을 때 폭발하는 트리거가 걸려있었다고 해요. 그리고 그 마력의 파동은 바로 게이트 마법을 통과하여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이었죠.”
제국 이곳저곳에 퍼져있는 수많은 게이트를 찾아내서 부수는 것보다, 그것들이 집결하는 암흑가의 게이트 다섯 개를 부수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게이트를 통해 넘어온 것은 사람의 탈을 쓴 테러용 폭탄이나 다름없었다는 뜻이다.
그자들은 악마를 숭배하는 자들일까? 아니면 어딘가에서 잡혀 온 억울한 사람일까.
게이트가 망가져 버릴 정도의 폭발이라면 그 신원을 찾는 것조차 힘들 테지.
속이 불편하다.
“그리고 바로 여기···. 동굴 쪽에도 악마 숭배자들이 나타났어요. 그리고 이곳까지 폭파해 입구를 막으려 들었죠. 게이트가 있는 구역부터 여기까지 급하게 달려가 그들을 막느라 연락할 정신이 아니었어요.”
악숭이 놈들이 우리를 생매장하려 했다는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