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43)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44화(244/1105)
244회
44. 공작님과 암흑가 후일담 (3)
지하 도시의 한 면을 덮었던 거대한 벽은 허물어져, 바깥과 통하는 동굴 입구를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벽을 이루고 있던 돌무더기가 도처에 깔려서 걸음마다 발에 걸렸다.
여기저기 그을린 자국과 땅에 깊게 팬 검흔(劍痕), 부러진 화살 등. 전투의 흔적이 동굴까지 이어졌다.
이리저리 복잡한 비밀 통로를 거칠 필요가 없어졌다는 건 환영할 일이나, 생매장당할 뻔했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라 조금도 반갑지 않았다.
“갑자기 유지스가 벽을 부숴야 한다고 했을 때도 놀랐지만, 무너진 벽 너머로 악마 숭배자들이 동굴 입구에 흑마석을 심는 모습이 드러났을 때는 정말···.”
현장에 도착하자 그때의 상황이 떠올랐는지, 휴마누스가 혀를 내둘렀다.
무너진 벽도 악숭이의 소행일 줄 알았는데. 그냥 시간 단축을 위한 강행 돌파였던 모양이다.
‘하긴. 드러난 벽은 가림막 역할을 할 뿐, 이곳을 지탱하는 것과는 하등 상관없으니까.’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아니마가 빛의 구체 여럿을 공중에 띄웠다.
우리뿐 아니라, 악숭이와 그들을 감시하며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도 밝은 빛이 드리워졌다.
새까만 어둠이 걷히며 동굴 내부의 모습이 눈에 담겼다.
부서지고 깨진 돌덩이와 벽면의 자잘한 금과 기타 등등. 전투의 흔적은 있었으나 입구 쪽에 비하면 거의 없는 수준이다.
뜬금없이 돌기둥이 솟아나 천장을 받치고 있다던가, 중간중간 색이 다른 벽이 보이는 둥 임시로 보수된 흔적도 보였다.
‘아니마의 마법이려나? 아니면 유지스의 정령?’
악숭이 놈들과 싸우다가 놈들의 마법으로 동굴 내부에 충격이 가해져, 무너지지 않도록 급하게 때운 듯했다.
한 가지 특이한 건 천장과 벽면에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이 나 있다는 점이다.
“흑마석이 박혀 있던 구멍이에요. 혹시 몰라 전부 회수해서 아공간 주머니 안에 넣어놨어요.”
내가 구멍을 유심히 살피는 것을 알아챈 유지스가 의문을 풀어주었다.
간격이 일정한 것으로 보아, 연쇄 폭발 작용을 노리고 설치한 것이 아닐까 한다.
“마법으로도 뚫어내지 못하도록 아예 동굴 전체를 무너뜨릴 생각이었는지, 바깥까지 쭉 연결돼 있더라고요.”
암흑가 내부에 어째 사람 그림자라고는 코빼기도 안 보인다 했더니.
동굴 길을 모르는 사람도 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악숭이들이 헨젤과 그레텔 빵조각 같은 짓을 해놓은 덕분인가 보다.
그러려고 구멍을 뚫은 건 아닐 테지만, 목적한 것과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건 종종 있는 일이다.
‘암흑가를 탈탈 털다가, 휴마누스 일행이 악숭이를 퇴치하고 나오는 걸 보고 이 길로 도망간 거려나?’
우리가 지나오지 않은 길에 숨어서 안전해지기를 기다리는 놈이 더 많을 것 같긴 하지만, 그들을 일일이 찾아내기엔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다.
경매장에 참가했던 인원들이 악숭이 이송에 도움을 주고 있긴 하나, 어디까지나 나가는 길이 하나뿐인 탓이다.
말이 도움이지, 사실은 그냥 동행하는 것에 불과하다.
어디 그뿐이랴?
비밀 통로투성이인 넓은 지하 도시에 작정하고 숨은 놈들을 어느 세월에 찾아내겠는가.
이곳의 영주인 푸스카토르 백작은 못 믿겠고, 교단에 알려서 동굴을 감시하도록 하는 편이 낫다.
한참을 걷다 보니, 동굴의 끝이 보인다.
그러는 동안 유지스는 자신이 겪은 일을 세세히 설명해 주었다.
싸우는 내내 아니마는 공격 마법을 쓰는 대신, 동굴이 무너지지 않도록 방어에만 전념했다던가.
휴마누스와 푸로르가 전면에 나서서 싸웠다거나.
유지스 본인이 그들을 보조하고, 리에나가 신성력으로 신체 능력을 향상시켜 주었다는 얘기 등등.
“전 이분들과 함께 싸우는 건 처음인데도, 어째서인지 합(合)이 딱딱 맞아떨어지더라고요. 좀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성검의 주인]에서도 그랬었다.성검 일행은 거의 완성된 퍼즐이었고, 부족한 부분을 메꿔줄 마지막 조각이 바로 유지스였다.
푸로르의 합류가 빨라진 만큼 손발이 더욱 잘 맞았을 테고, 유지스는 예리한 눈썰미로 알아서 적재적소에 활을 쏘았을 테니.
어색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녀가 본래 그들과 함께했다는 걸 알고 있는 세르펜스의 아랫입술이 슬그머니 앞으로 나왔다가, 빠르게 제자리를 찾았다.
“그런데 악숭이들은 다 도망간 겁니까? 어째 아무도 없네요?”
“아뇨, 그 반대예요. 늦어지면 바깥에서 동굴을 폭파할지도 몰라서, 급하게 움직이다 보니 그들을 생포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유지스가 내 눈치를 살피며 말끝을 흐렸다.
세르펜스가 매일 나를 과보호한 결과다. 결국 유지스까지 나를 과보호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체들은 어디로 치워둔 겁니까?”
내 질문에 놀라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듯, 유지스는 옅은 미소를 흘렸다.
그리고 규칙적이던 세르펜스의 발소리가 잠깐 주춤했다.
‘내가 무력이 약하지, 마음이 약하냐?’
가장 심약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나만 이렇게 싸고도는지 모르겠다.
“일단 한곳에 모아서 묻어놨어요. 동굴 입구가 드러났고 악마 숭배자들도 처치했으니, 사람들이 이쪽으로 몰릴 것 같아서요. 행여나 돈 될 물건을 찾는다고 품을 뒤져서, 중요한 증거품이나 흑마법 관련 물품을 훔쳐 가면 안 되잖아요.”
마지막으로 본 암흑가 풍경을 봐서는 몹시나 일리 있는 이야기다.
‘암흑가 내부를 완전히 뒤엎어서 쑥대밭으로 만들자는 계획도 세웠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요 며칠 암흑가에 온갖 분쟁이 터지며, 그 과정에서 많은 자료가 말소되었다.
그 외 중요한 자료는 성검 일행이 동굴에서 악숭이들과 드잡이질할 때 암흑가 놈들이 알아서 챙겼을 것이다.
뭣보다, 가장 핵심이 되는 스콜피온 주점 지하의 자료는 세르펜스가 진작에 없애버렸다.
“이게 대체 얼마만의 바깥 공기죠?”
“우리가 이곳에 왔던 날이 수요일이었으니, 정확히 12일 만입니다.”
감격에 겨워 내뱉은 혼잣말이었음에도 세르펜스가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창고에서 12일이나 콕 박혀 있었다니!
나 자신의 인내심을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다. 아니, 칭찬해 줘야 한다.
“저 너무 수고한 것 같지 않아요? 공작님, 휴가 좀 주세요!”
“상관은 없지만, 휴가 기간 동안 무엇을 하실 생각입니까?”
“당연히 늘어져 있어야죠!”
“···일이 많이 밀렸습니다. 휴가는 그것이 끝난 다음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녀석이 기가 찬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한 입을 가지고 두말을 하다니. 저런 입에는 계피 사탕을 물려줘야 한다.
“우리는 악마 숭배자들을 넘길 겸 교단에서 쉬었다 갈 생각인데, 세피는 어떻게 할 거야?”
[성검의 주인]에서도 교단을 여관처럼 이용하더니. 지금도 별다를 바 없는가 보다.주변을 경계하지 않고 푹 쉴 수 있다는 이점을 쉽게 포기할 수 있을 리 없다. 교단에서도 환영하는 일이었다.
룩스메아 교가 흔들리고 파벌이 갈리면서 더는 애용할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아무튼. 휴마누스의 말은 질문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오늘은 밤이 늦었으니 교단에서 쉬었다가 내일 함께 올라가자는 권유였다.
“공작가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지금 이 시각에? 교단에 마차를 빌려달라고 한다면 빌려주기야 하겠지만···. 쉬어 가라고 붙잡을 텐데?”
“그럴 것 같아서 가문의 마차를 대기시켜 두었습니다.”
예상한 일이다.
오늘이 디데이인 것을 알고 있었으니, 집에 갈 준비를 미리 해 두는 것이 당연하다.
“피곤할 텐데, 그냥 쉬어가지. 겸사겸사 쌓인 회포도 좀 풀고.”
“아닙니다. 연초부터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운 탓에 빨리 돌아가 봐야 합니다.”
출발 전, 급한 일은 에일리히가 처리할 수 있도록 그 권한을 일부 맡겨두었다.
서둘러야 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애초에 지금 가나 내일 아침에 가나, 어차피 일은 내일 오후가 돼서야 시작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녀석을 그때까지 재울 거니까.
그리고 세르펜스 또한 그것을 예상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이 휴마누스의 권유를 거절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휴마누스가 불편해서.
둘째, 혼자 자기 싫어서.
교단에서는 분명 편히 쉬라고 개인실을 내줄 테고, 휴마누스는 그의 바로 옆방을 선점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세르펜스가 내 방으로 찾아오는 것이 요원해진다.
“대부분의 일은 네 큰아버지에게 맡겨두고 온 거 아니었어?”
“···네? 혹시 그분을 만나셨습니까?”
“너랑 닮았다길래, 하도 궁금해서···. 하하! 그래도 미리 연락은 하고 찾아간 거야. 아주 반겨주시던걸?”
“······.”
친구도 아니지만, 친구의 큰아버지를 보고 싶어서 친구 없는 친구 집에 찾아가는 놈은 난생처음 본다.
나라도 조금, 많이···. 사실은 매우 궁금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예의가 아닌 건 아닌 거다.
‘수도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심심했나···? 그 시간에 수련이나 좀 하지.’
세르펜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을 생각에 기뻐했다가, 제대로 아는 게 없는 휴마누스의 이야기에 실망했을 에일리히가 걱정된다.
휴마누스가 속 편하게 웃으며 얘기하는 거로 보아, 일단 죽빵을 갈기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대신 속으로 엄청나게 욕했겠지.
‘설마 휴마누스 이 자식, 에일리히 님과 수다 떠느라 지각한 거 아니야?’
의심스럽다.
나는 세르펜스에게 그것을 물어보라는 의미를 담아 눈짓했다. 내가 보낸 신호를 받은 세르펜스가 알겠다는 뜻으로 눈을 깜박였다.
“그러고 보니 제가 편지로 남겼던 시간보다 늦게 오셨던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아, 그거? 안 그래도 수도에서 기다리다가 출발하려는데, 광장에서 어떤 놈이 자신이 악마 숭배자라면서 오늘 대규모 테러가 있을 거라느니 하는 말을 떠들어대는 통에···.”
“네? 그런데 이곳에 와 계셔도 되는 겁니까?”
“괜찮아. 잡아서 조사해보니까, 전부 거짓말이라지 뭐야? 내가 암흑가에 가지 못하게 막는 작전이었다나, 뭐라나···.”
휴마누스가 진절머리난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말하였다.
그 ‘조사’는 아마 높은 확률로 고문일 것이다.
“아무튼 그거 때문에 테러 대비한다고 수도에서 기다리다 늦었어. 놈이 입을 조금만 더 늦게 열었다면 게이트가 망가져서 암흑가에 못 갔을 테고, 그랬다면 아마···.”
정말로 생매장당할 뻔했다.
무너진 동굴을 다시 파는 것은 무척 오래 걸리는 일이다. 하물며, 그 동굴은 길고 복잡한 형태를 띠고 있다.
거기다 2차 붕괴의 가능성까지 생각하면, 유지스가 정령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언제 탈출을 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천장을 파내자니, 그러다 암흑가의 천장이 주저앉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파묻히는 거다.
“감사합니다.”
세르펜스가 떨떠름한 기색을 숨기며,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휴마누스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 여간 찝찝한 게 아닌 모양이다.
“우리 사이에 고맙긴, 뭘!”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니, 괜찮대도?”
“아닙니다. 언젠가 이 은혜는 반드시 갚도록 하겠습니다.”
세르펜스는 휴마누스가 말한 ‘우리 사이’를 전면으로 부정하며, 반드시 빚을 청산하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내비쳤다.
“그, 그래. 그러고 싶으면 그래야지···.”
같은 대화가 도돌이표를 찍으며 반복되자, 결국 휴마누스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그럼 그걸 어떻게 갚아나갈지에 대해 얘기할 겸, 오늘은 교단에서···.”
“그자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이 탄로 나긴 했으나, 어쩌면 그 말조차 거짓일지도 모릅니다. 만일을 대비해, 제가 먼저 수도에 가서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래, 아주 그냥 다 네 맘대로 해라!”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르펜스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그렸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그 미소를 마주한 휴마누스는 침 대신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럼 너는 이만 가 봐. 어차피 난 교단으로 가니까, 악마 숭배자들의 이송은 우리가 할게.”
“아닙니다. 그래도 교단까지는 함께···.”
“됐어, 나도 내 맘대로 할 거야.”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가 봐도 삐진 것이 확실한 휴마누스의 말에 세르펜스가 모르는 척,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또다시 감사의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