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4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48화(248/1105)
248회
45. 공작님을 훈육하는 방법 (4)
우리가 공작저에 도착했을 때는 어슴푸레한 새벽이었다.
에일리히는 그동안 잠도 안 자고 기다렸는지, 평상복 차림으로 마차에서 내리는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잘 다녀왔니? 어디 다친 곳은 없고?”
“···네.”
다정한 어투로 말하며 자신을 살피는 에일리히의 행동에 세르펜스가 쭈뼛쭈뼛 대답했다.
아직은 많이 어색한 것 같지만, 그 관심이 영 싫은 것은 아닌 눈치다.
세르펜스는 에일리히가 자신을 꼼꼼히 살피는 것을 굳이 피하지 않았다.
“이 피는···.”
셔츠 소매와 바지에 묻은 피를 발견한 모양이다.
에일리히가 반사적으로 중얼거리자, 세르펜스가 뻣뻣하게 굳었다.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야 불 보듯 뻔했다. 비난이라도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긴장해서 허리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네가 무사해서 다행이구나.”
세르펜스의 걱정과 달리, 에일리히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옷에 묻은 피가 녀석이 다쳐서 난 것이 아니라, 타인의 피가 튄 것임을 알아챈 거다.
예상했던 말이 나오지 않은 탓일까?
팽팽하게 당겨졌던 긴장의 끈이 한순간에 툭 풀리는 바람에, 세르펜스의 어깨가 눈에 띄게 축 늘어졌다.
“황태자 전하께서는···, 도움이 되었니?”
성검의 주인이 세르펜스가 아닌 휴마누스라는 것을 잠시 망각한 듯한 질문이다.
하기야 자칭 친구를 표방하면서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고, 눈치도 없고. 못 미더울 만도 하다.
어째서 세르펜스가 그는 친구가 아니라 말하였는지, 아주 절절하게 와닿았을 거다.
만약 내가 에일리히였다면, 선택의 날에 신 룩스메아가 졸다가 실수한 것은 아닐지 의심했을 것이다.
“네. 덕분에 일이 잘 해결되었습니다.”
세르펜스는 휴마누스가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았다. 에일리히도 그것을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다.
나름 아주 큰일을 했는데, 취급이 매우 안타깝다.
“그래, 고생했다.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쉬는 게 좋겠구나.”
“네. 저, 으음···.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타인에게 걱정 받는 것이 조금은 익숙해진 것일까?
예전의 세르펜스라면 한참을 망설였을 말을. 혹은 가식을 담아 연기했을 말을. 잠깐의 머뭇거림은 있었으나, 진심을 담아 입에 올렸다.
세르펜스의 감사 인사에 에일리히는 말없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세 분께서도 고생 많으셨···, 습니다. 어서 들어가서 쉬시지요.”
이제야 우리가 눈에 들어왔는가 보다.
에일리히가 살이 보동보동 오른 내 모습을 보고 흠칫하며 말했다. 정말 고생을 한 것이 맞는지 의문스럽다는 눈빛이다.
“스트레스 때문에 부은 겁니다.”
“···그런 거였나?”
내가 아무렇게나 던진 말에 세르펜스가 큰 깨달음을 얻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는 약간 충격받은 얼굴이다.
대체 왜 믿는 걸까?
녀석은 살이 찌거나 부기가 오른 적이 없어서 분간이 안 되나 보다.
“주군, 속지 마십시오.”
윈스톤이 입바른 소리를 주저 없이 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단지 그 내용이 이따위가 되게 해서 미안할 따름이다.
그의 충정 어린 말 덕택에 정신을 차린 세르펜스가 나를 흘겨보았다.
“저는 그럼 이만 자러 가겠습니다! 자자, 우리도 이만 숙소로 돌아갑시다! 공작님도 이따 봬요!”
나는 유지스와 윈스톤의 등을 떠밀었다. 당연히 떠밀릴 리는 만무했다.
유지스는 가볍게 손인사를, 윈스톤은 고개를 꾸벅 숙인 뒤에 알아서 걸음을 옮겼다.
* * *
방에 돌아와 씻고 잠자리 준비를 끝내 놓자, 세르펜스가 슬그머니 창문으로 들어왔다.
“···침대가 늘었군.”
“기존에 쓰던 침대는 암흑가에서 부숴 먹어서, 빈방의 침대를 가져다 쓰겠다고 제온에게 말하고 가져왔어요.”
세르펜스의 침대를 내 방에 두려면 내 침대를 치우거나, 대대적인 가구 재배치 테트리스를 할 수밖에 없어서 짜낸 고육지책이다.
“어휴, 도대체 얼마나 살이 쪘으면 침대가 다 부서졌냐며 제온이 어찌나 잔소리를 해대는지···.”
그나마 제온이 출근 준비 중이라서 1절로 끝났다. 아니었다면 이제야 씻으러 들어갔을 거다.
“그러게 누워있지만 말고 좀 움직이지 그랬나?”
“······.”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윈스톤이 운동할 때 옆에서 뭐라도 할걸.
내가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하자, 녀석이 의기양양하게 코웃음을 쳤다. 아까 살찐 게 아니라 부은 거라는 말을 담아뒀었나 보다.
“아, 거 참. 제 살 얘긴 이젠 됐고, 일단 앉아봐요. 잠깐 대화나 좀 합시다.”
“···안 잘 건가?”
“늦게 자서 더 늦게 일어나면 되죠. 어차피 바람직한 취침 시간은 진작에 지나쳤어요.”
내 말에, 불을 끄기 위해 서 있던 녀석이 옆 침대에 걸터앉아 나를 마주 보았다.
나는 귀 밝은 유지스의 취침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방음 스크롤을 한 장 찢었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지?”
감이 좋은 녀석이다.
세르펜스가 아까 혼낸 거로는 부족했느냐는 질문을 해왔다.
“세르펜스는 왜 그렇게 자신이 없어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지?”
“사람이 진심으로 칭찬하면, 왜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느냐고요. 겸손한 정도가 아니라, 그냥 그걸 부정하고 있잖아요.”
“그야 나는···.”
“제 말 아직 안 끝났습니다.”
녀석이 또 헛소리하는 걸 두고 볼 생각은 없다.
“뭐, 세르펜스가 자라온 환경을 알고 있으니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요. 대뜸 부정하기에 앞서, 최소한 ‘남들이 보기엔 내가 그렇게 보이나?’하고 생각해 볼 수도 있잖아요.”
“상대가 예의상 해주는 말이라면 가볍게 받아넘길 수 있겠지만, 오늘은···. 그게 아니었잖은가.”
환장할 대답이 돌아왔다.
귀족들이 연회장에서 하하 호호 얼굴에 금칠하는 말을 주고받는 것은 괜찮지만, 진심으로 존경을 담아 하는 말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이다.
가식으로 점칠 된 대외펜스를 칭찬하는 거라면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진짜 자신’을 칭찬하는 말은 쉬이 긍정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더 받아들였어야죠. 좋은 점을 말 해줘도 세르펜스가 그걸 부정하면 소용이 없어요. 무슨 말을 하든 ‘아닙니다.’라며 부정부터 해대는데···. 뭐, 처음에는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열심히 설명해주겠죠. 하지만 그게 반복되면요?”
“···으음.”
녀석도 답을 알고 있는지 우물쭈물 말을 하지 못했다.
“지치고 맥이 빠지겠죠. 누가 칭찬을 하면서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어 하겠어요? 그 결과, 세르펜스에게 진심을 담아 칭찬하는 사람이 줄어들 겁니다.”
“······.”
“세르펜스는 그런 결과를 원해요?”
내 질문에 녀석은 고개를 도리질 쳤다.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다. 모르는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그의 뼛속까지 스며든 자괴감이 그것을 어렵게 만든다.
“나는···, 내가 정말로 괜찮은 사람인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그 답을 타인에게 구하려 하지 마세요.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정답은 자기 자신에게 있으니까.”
내가 녀석의 가슴께를 삿대질하며 말하자, 그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런다고 답이 재깍 나왔으면 지금 이러고 있지도 않겠지.
나는 이유식을 떠먹여 주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세르펜스는 자신의 장점이 뭐라고 생각해요?”
“······.”
“뭡니까? 그 ‘나한테 그런 게 있었나?’라고 말하는 듯한 눈은?”
세르펜스는 어리둥절해 하였고, 나는 어이를 잃었다.
이 자식, 설마 진짜 자신에게 잘난 점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 진짜 몰라요?! 정말로?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다 잘났는데?”
“······.”
부정하지 말랬더니, 이젠 침묵을 한다.
“와···, 나, 진짜 어이없어. 세르펜스 잘하는 거 있잖아요. 보이는 거 즉각 말하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가장 먼저 얼굴이라는 답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음···. 조금 선해 보이는 인상이긴 하지. 덕분에 대외적 이미지 구축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얻어낸 결과가 있으니 긍정을 표하긴 하는데, 평가가 터무니없이 절하되었다.
어떻게 저런 얼굴을 가지고 ‘조금 선해 보이는’으로 끝날 수가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런 것치고는 얼굴을 너무 적극적으로 써먹지 않았나? 자기가 잘난 얼굴인 거 알고 쓴 거 아니었나?
머릿속에서 끝없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조금 선해 보이다뇨? 그 정도가 아닙니다!”
“많이 선해 보이나?”
“···주변에서 천사 같은 외모라 칭송하는데, 대체 무슨! 이제껏 그냥 ‘착해 보인다’쯤으로 받아들인 겁니까?”
“···아니었나?”
장점이라는 단어에 곧장 연관시키지 못했을 뿐, 착해 보인다는 것에 굉장한 자부심을 품고 살았던 모양이다.
어쩌면 추한 자신의 속내를 감춰주는 최후의 보루쯤으로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너져내린 듯, 세르펜스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착해 보이는 게 맞긴 하는데,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스쳤다.
“졸라 짱 잘생겼죠.”
“졸···, 뭐?”
“아니, 그건 따라 하지 마시고요!”
“‘졸라’가 무슨 뜻이···.”
“으아악-!!”
“······.”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나머지 말이 헛나왔다.
순수한 아기펜스에게 그 어원을 설명하기는 너무 이르다.
내가 비명을 지르며 얼버무리자, 녀석이 찜찜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곤란해 보이니 더는 묻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리고 엄청나게 강하시잖아요! 다른 사람을 못 미더워할 정도로! 무력에 자신 있어서 그런 거 아닙니까?”
“아직은 그래 보일지 몰라도, 앞으로 맞서 싸워야 할 적들과 비교하면···.”
“세르펜스? 제가 아까 뭐라고 했죠?”
내가 은근한 목소리로 을러대듯 말하자, 녀석이 양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며 흡 숨을 들이켰다.
“비교 대상이 완전히 틀려먹었잖습니까! 세르펜스가 아무리 천사 같은 외모를 지녔다 한들 일단은 사람인데, 악마와 비교하면 안 되죠! 아니지? 악마도 이겼잖아!”
세르펜스가 ‘그놈은 약한 놈이었고.’라 말하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말만 안 하면 그만인 줄 아나? 어린애답게 사고가 1차원적이다.
“뭐, 그래요. 앞으로 소환될 악마는 점점 강해질 테고, 마왕은 그보다 더 강하겠죠. [성검의 주인]에서는 방심하다 뒤통수 맞고 퇴장하는 바람에 가늠이 안 되긴 하는데···. 소멸이 아닌 역소환 정도로 그쳤다는 것과 힘의 원주인(原主人)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마왕펜스보다 강할지도 모르겠네요.”
“으음···.”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실컷 기를 죽여놓고 그리 말하는 건가?”
“그러니까 이런 말에 왜 기가 죽느냐고요.”
녀석이 고개를 푹 숙였다.
누가 보면 내가 녀석의 기를 죽이고 있는 줄 알겠다.
“악마는 종족이 다르고, 마왕은 그 정도를 넘어 아예 반신이잖아요. 뭐, 스스로 무력을 키워 신의 영역에 도전하겠다는 목표라도 있으신 겁니까? 그런 거라면 응원해 드리죠!”
“그럴 리가 없잖은가.”
“그럼 그들과 비교해서 자신을 비하하지 마세요.”
내 말이 억지처럼 들렸는지, 세르펜스가 불만스럽게 입을 삐죽였다.
녀석의 생각처럼 억지가 맞다. 하지만 녀석 또한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앞으로 더 발전하겠다는 향상심은 좋지만, 자신감이 밑바탕 되지 않으면 조바심에 일찍 지치게 될 겁니다. 그래서는 넘을 수 있는 벽도 못 넘어요.”
“잘 모르겠다. 내가 더 강해질 수 있긴 한 것인지···.”
“더 강해질 수 없으면 어때요? 세르펜스는 지금도 충분히 강합니다. 본인도 인지하고 있잖아요.”
도대체 애를 얼마나 달달 볶았으면 이럴까.
강해지고 또 강해져도 항상 부족하다는 말이 메아리로 되돌아온 탓에, 녀석은 ‘지금도 충분히 강하다.’라는 말에 좀처럼 동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가 누누이 말씀드렸잖습니까? 세르펜스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채워줄 수 있을 거라고. 휴마누스는 뭐 혼자 잘나서 [성검의 주인]에서 악마들과 맞서 싸웠답니까? 다 동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이젠 세르펜스에게도 있잖아요?”
“···으음.”
“본인이 더 강해질 수 없다면, 함께 싸우는 법을 배워가면 됩니다.”
잘난 점을 짚어주고 싶었는데, 부족한 점을 짚어 버렸다.
하지만 이 부분을 짚어주지 않는다면 녀석은 평생 자신을 몰아붙일 것이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 생각하자.
“세르펜스, 이번 주 내로 자신의 장점 10개만 찾아오세요.”
“···열 개나?”
“만약 다 못 채울시, 저택 중앙홀에서 모자란 횟수만큼 ‘나는 겁나 잘생겼다!’를 외치게 할 겁니다.”
“뭐···?”
세르펜스가 넋이 나간 얼굴로 멀뚱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길래 장점을 말하라 그럴 때 뭐라도 댔어야지. 이제 와 후회해 봤자 늦었다.
“그럼 얘기 끝났으니 어서 잠이나 잡시다. 가서 불 꺼요!”
“자, 잠깐. 갑자기 이렇게 통보하는 건 너무하잖은가!”
“커어어-!”
“자는 척하지 말고!”
내가 잽싸게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자, 녀석이 나를 흔들어댔다. 어찌나 간절하게 흔들어대는지 또다시 멀미 기운이 올라올 지경이다.
나는 이불을 도로 걷고, 녀석을 노려보았다.
“스무 개로 늘립니다?”
“···잘 자라.”
녀석은 언제 나를 흔들어댔느냐는 듯, 내가 들춰냈던 이불을 곱게 덮어주고 두어 번 토닥여주기까지 한 후 불을 껐다.